천 안 문(天 安 門) 원래는 명, 청조의 왕궁정문으로서 황제가 조서를 내리던 곳이었다. 원래의 이름은 정문승천문(正門承天門)이었으며, 명나라 영악제 15년(1417년)에 건립되었다. 청순치 8년(1651년)에 개건하여, 이름을 텐안먼으로 고쳤다. 성문 아래에는 금수교가 있다. 다리 북측 좌우는 붉은색 스탠드이고 다리남측 좌우에는 한쌍의 화표와 한쌍의 돌사자가 있다. 1949 년10월1일 모택동 주석은 천안문 성루에서 새 중국의 창건을 선포하는 개국대전을 시화하였다. 천안문 성루는 1988년 1월1 일부터 정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개장시간: 매일 9시~16시30분
천안문 광장 북경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 현대사에 있어 굵직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1966년 문혁(文化大革命) 당시 백만이 넘는 홍위병이 운집한 곳도, 1976년 사인방과 주은래 양편의 지지 세력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현장도 이곳이었고.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북경시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총면적은 44 만 평방미터로서 백만명을 수용하여 행사를 진행 할 있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광장 중심에는 인민 영웅 기념비 가 우뚝 서 있다. 기념비 남측은 모주석 기념당이다. 광장 북측은 천안문 성루이고 서측은 인민대회당이고 동측은 중국 역사 박물관과 중국 혁명 박물관이고 남측은 정양문과 전문전루이다. 이러한 웅장한 건물들은 광장과 혼연일체가 되어 장려한 화폭을 이룬다.
자금성(紫禁城) (고궁박물관 故宮塼物院)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목조궁전이 바로 자금성이다. 자금성은 명․청 시대에 황제가 살았던 황궁이다. 이곳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역사적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자금성 안에는 9천 9백 99칸의 방이 있다. 명왕조때 축조된 이후 명.청대 왕조가 이 자금성에서 최후의 날을 맞이하였으며, 그밖에도 수많은 역사적 현장들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을 달고 세계각국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대륙 전역에서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도 골고루 볼 수 있다. 개장시간: 9시-16시
경산공원 고궁의 북쪽에 있고, 높이 92m 인공 구릉위에 청나라 때의 정 자 5개가 세워져 있으며,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언덕의 동쪽에 있는 고목은 명조의 마지막 숭정 황제가 자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유리창 거리 천안문 광장 남쪽에 있다. 서화, 골동품, 필묵, 연, 고도구, 고서적 등을 파는 오래된 가게가 나란히 들어 서있는 구역으로 왕가에 문방사우를 납품하는 가게들로 형성이 되기 시작하여 융성하다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중국의 유명고서화 또는 골동품을 살 수 있다.
역사 박물관 천안문광장의 동쪽에 있으며 두 박물관이 서로 접하여 있다. 건물을 향해 오른쪽 이 역사 박물관이고 왼쪽이 혁명박물관이다. 역사박물관 : 중국 고대, 근대의 역사 문물재료, 역사과학재료를 전시 5,000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를 원시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사회 3단계로 나눠서 알기 쉽게 표시하고 있다. 혁명박물관 : 근대이후 공산당의 역할을 중심으로 전시.
전문 (前門 첸먼) 거리 전문 거리는 5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북경의 상업 중심지로 유명하다. 전문은 천안문 앞을 동서로 길게 이은 장안 거리 남쪽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북경 서민의 생활의 장이 되어 왔다. 북경 시민들은 규모는 작지만 오랜 전통을 간직한 이곳의 상점들을 무척 좋아하여 자주 찾는다. 전문 거리에는 북경 오리구이 전문점을 비롯한 음식점들과 몇백 년의 역사를 가진 개성 있는 전문상가, 잡화점 등이 길을 따라 즐비하다. 관광객과 시민들로 온종일 붐비지만 북경 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쇼핑장소로 유명하다.
한국의 동대문 같은 똥딴(東單)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한국의 동대문 쇼핑거리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Niceclub, 시스템 등 한국의 고급브랜드를 파는 곳이 여러 곳 눈에 들어오며, 한국에서 팔다 남은 재고상품을 값싸게 처리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가격대나 트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베이직을 좋아하시는 슬림한 체형의 분들은 값싸게 유명브랜드를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민족문화궁 천안문 서쪽에 있다. 인구는 전 인구의 6.7% 이면서 면적은 전 국토의 60%를 점유한 소수민족의 역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고, 내부에는 박물관, 도서관, 오락실, 강당이 있으며, 소수민족의 역사 문화가 비교적 상세히 나타나 있어, 중국의 소수민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광제사 징산(경산)공원의 서쪽에 있다. 금나라 때 창건되었으며, 베이징 (북경)가의 사찰로도 유명. 문고와 백단의 가운데 조각된 큰 불상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중국 불교 협회 본부가 이곳에 있다.
천단 공원 북경 서남쪽에 위치하며, 원래는 청 왕조 황제가 기우제를 드리는 곳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고대황제의 제사풍을 지닌 건축물이다. 전 면적은 270만 평방미터이고, 명대 영락 18년(1420)에 창건되어 첫 이름을 천지단(天地壇)이라고 했다가 후에 天. 地를 분리하여따로 제사를 드리다가 명대 嘉請 때 天壇이라고 개명했다. 제단은 祈年殿, 還丘壇,과 齊宮 3가지로 나눈다. 명,청의 황제들이 오곡풍성을 기원하던 곳으로 기년전, 원구, 황궁우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특히 기년전(누각)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한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은 목조건축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화원 해전구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 중심으로부터 20킬로미터로 이화원은 산을 등지고 물을 낀 수려한 황실 원림이다. 금조 이래 역대 황제의 원림으로 청나라 때 별궁으로 쓰였고, 만수산을 배경으로 넓은 곤명호가 있고, 건물과 정원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청산에 휩싸인 누각과 호수를 끼고 뻗은 낭하, 산천 경개속에 3000여개 유람 명소가 분포되어 있어 "사람의 손으로 천 연적 극치를 이룬다″는 중국 원림예술의 전형으로 되고 있다.
명13릉 북경시 북쪽 창평현 내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 중심으로부터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명나라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후 13개 황제의 능묘군이다. 능묘 구역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웅위롭고 기백이 넘친다. 목적에 개방한 것은 다만 두 곳, 즉 장릉 (주체묘)와 정릉(주익균묘)이다. 정릉은 십 삼릉 가운데서 유일하게 완전히 발굴된 묘이다.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지하궁전″과 지하문물들을 관람한다.
베이징(북경) 동물원 시의 서쪽 교외에 있다. 팬더곰으로도 유명하지만(솔직히 팬더 보기는 굉장히 어렵다. 걔네들이 엄청 게을러서...)그 외에도 진기한 동물을 볼 수 있다
만리장성 북경의 북쪽 약 70km 지점에 있다. 북경교외의 거용관 밖에, 군기지 같은 숭산 준령위에 용처럼 길게 누워 있는 장성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조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5세기 이래 각 지방의 나라들이 북방의 흉노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벽으로 만든 長城을 진시황이 연결한 것이 시초다. 현재의 남아 있는 장성의 대부분은 명대의 것이다, 약 6,350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높이 7~8m,폭 5.8~6.5m. 팔달령은 해발 1,000m가 넘으며, 특히 만리장성의 경관이 웅대하다. 북경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유명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용경협 (龍慶峽) 연경현성(延慶縣城)에서 동북쪽으로 15km 쯤 떨어진 곳으로 고성하(古城河)가 가로지나는 협곡으로 古城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양쪽 벼량이 2,300m로 깍아 지를듯하여 그 기세가 매우 장관이다. 용경협은 협곡형의 저수지로 약 800만 ㎥의 물을 저수할 수 있으며 물 깊이가 450m 이다. 50m 에 달하는 인공폭포와 1986년부터 시작한 빙등회(氷燈會)가 유명하다. 길이가 300m 나 되는 동굴에는 "서유기"등 신기한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있고 얼마 전에 복원한 金剛山공원은 보트를 타고 유람 할 수 있다.
웅화궁 26미터 되는 북경에서 가장 큰 라마묘로서 동성구 북신교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청조 옹정황제가 즉위하기 전의 관저였다. 궁내에 모신 높이 26 미터 되는 목조 미륵럽상과 금실녹나무 조각불감 및 금, 은, 동, 철, 석으로 만든 라하산은 궁중 3보로 불리다. 옹화궁 건물은 기상이 도고하고 규모가 웅장하며 한족, 몽고족, 만주족, 장족의 특색을 띠고 있다.
와불사 당나라 때(627~650)세워진 절로 길이 5m,무게 54t의 누워서 자는 듯한 모습의 와불로 유명한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의 자세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중산공원 천안문 서쪽에 위치. 시내관광을 하다가 피곤하면 조용히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공원으로 연못에 찻집도 있다.
향산공원 북경 서북쪽 교외에 위치. 역대 황제들이 수렵을 즐기던 곳으로, 10월 중순~11월 상순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겨울의 설경도 유명하다. 공원 안에는 향산호텔이 있다.
북해공원 서성구문진가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오랜 황실 원림이었다. 원내는 경도를 중심으로 화폭을 이루고 있다. 섬에는 고목이 울창하고 그 속에는 정자와 누각들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백탑은 경도 산정에 우뚝 서 있어 호수에 비친 탑영은 그야말로 운치를 돋운다. 탑 위에 올라서면 북경 전경을 볼 수 있다.″환도춘음″은 북경팔경의 하나이다. 경도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구료벽, 오룡정, 정심재 등 풍격이 각이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다.
로구교 북경서쪽 교외풍대구 영정하에 있으며 시내 중심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북경에 현존하는 가장 오랜 아치형 석교이다. 다리 난간에는 크고 작은 엎드린 돌사자 485마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각기 생동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다리동쪽 끝에는 건륭황제가 쓴 <로구효월>이란 네 글자가 있다. 중국 역사상 ( 7.7사변)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였다.
인민대회당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전국시민대표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면적이 약 17만 평방m의 대형 건물로 10,000명을 수용하는 대회의장과 5,0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대규모 연회장 이다.
대관원 선무구 남채원가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고전명작 <홍루몽>에 근거하여 설계, 축조한 중국 고대 식원림이다. 원내에는 여기저기서 시냇물이 흐르고 랑하가 구불구불 뻗어있으며 절묘한 가산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생기발랄한 원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해마다 춘절(구정)이 오면 옛날 왕비가 친정 방문하던 상황을 재연한다.
계대사 북경서쪽 문두구 경내에 있다. 사찰은 산세를 타고 축조되어 구조 가 특이하며 그윽한 운치를 남긴다. 사찰내의 포탑송, 와룡사, 활 동송, 자재송 등은 원근에 이름이 있다. 전인이 지은 한수의 고시에는 <담자사는 샘물로 이름있고 계대사는 소나무로 이름이 났거늘 나무마다 모양이 달라 조물주와 재간을 겨루도다>라는 글귀가 있다
계태사 계단사(戒壇寺)라고도 칭하며 문두구마안산(門頭溝馬鞍山) 허리에 위치하며, 북경성에서 약 35 km 거리 이다. 요나라, 원나라 고탑, 불상, 경문이 있는 탑원이 있으며, 그리고 老松은 奇松으로 유명하다. 당나라 때(622년)지어진 절로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 는 주변 환경이 아름다우며 500년 이상 된 고목들로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석화동 북경 서남쪽 방산구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와 5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석굴내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순, 석만, 석종유, 석화포도 등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경물이 무려 천개가 있다. 그 중 중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월내석, 높이 18미터나 되는 도럽 종유석, 500여개 석편이 쌓여서 이루어진 10미터 높이, 18미터 넓이의 대형 석만은 웅장, 수려하여 관객들의 무한한 상상 력을 불러일으킨다.
베이징(북경) 대학 시의 서쪽 교외에 있다.1898년에 창립된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 18학과가 있으며, 총 학생수는 약 1만 명 정도. 18세기말 고궁 소유의 정원 안에 있어 캠퍼스가 매우 아름답다. 넓은 호수와 조경이 잘되어 있어서 중국 연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북경 원인(猿人) 유적지 북경 서남쪽 50 여 km에 위치하며 이곳의 용골산 석회암 동굴혈은 57.8 만 년 전 북경원인의 서식처이자 불씨를 보관한 곳이다. 북경원인의 두개골을 발견한 후 다 시 40여개의 남녀 북경원인과 그들이 먹었던 100 여종의 동물화석, 대량의 석기 와 불의 흔적을 발견케 되어 북경원인이 이 동굴에서 약 300 여 년 동안 거주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왕푸징 북경시내에 위치한 고급 쇼핑가이다. 최고급의 호텔과 유명 백화점이 즐비한 이곳은 중국의 명동이라 불리우며 지방 여행객들의 관광 명소로 되어 있다. 호텔지하의 민속음식점들과 거리곳곳의 패스트 푸드점 그리고 6시 이후 열리는 야시장은 진짜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기에 충분하며, 그곳에서 판매되는 각종 벌래와 고기들의 구이는 여행의 별미가 될 것이다.
스두 十渡 스두(十渡)는 房山區의 남부에 있는 拒馬河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풍경이 아름다운 공원으로서 北方桂林으로 이름나 있다. 그중 九渡는 풍경구의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으로 뻗은 협곡은 마치 15 km에 달하는 화랑을 방불케 한다. 七渡는 기이한 봉우리와 풍경이 수려하여 유명하며 拒馬河는 티 없이 맑고 해변가는 평탄하여 많은 천연적인 수영장을 형성 하였다.
석화동 石花洞 방산구 하북향 남동영촌(房山區 河北鄕 南東營村)에 있으며 북경에서 56km 떨어져 있다. 동굴안의 벽에는 10 여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십불동(十佛洞)이라고 한다. 十花洞은 여러층의 암석 동굴로서 그 규모가 커 화북암석제일(華北岩石制一)이라고 한다. 이미 6층 암석 동굴이 발견되어 그 총 길이가 3000 m 며 현재 1,2층이 개방중이다. 1층은 지층과 평형되고 2층은 1층의 30m 아래에 있는데 춘하추동 12℃ 온도를 유지하며 련화지(連花池)의 월내석(月乃石)은 전세계에 보기 드문 기이한 모습이다.
다슬랄 (大柵欄) 신, 모자, 의복 및 북경 특산품, 외국상품을 팔고 있다. 동인당(同仁堂)에서 재래적인 방법으로 증상에 따라 中藥을 제조해 주거나 판매하는 것을 비롯해 신, 차, 주단 등을 판매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점들이 많다.
모주석 기념관(毛主席紀念館) 과 인민 영웅기념비(人民 英雄紀念碑) 천안문 광장 남부 정중앙에 있는 것이 모주석(모택동) 기념관이고 바로 앞에 서있는 높이 38m 의 석조 비석이 인민 영웅기념비이다. 모주석 기념당은 중안의 방에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 되어 있으며 인민영웅 기념비 정면의 글씨는 모태동의 글씨고, 뒷면의 비문은 모택동의 문장을 周恩來가 썼다
圓明園 (원명원) 북경 해정구(海淀區) 동부에 위치하며, 청왕조 강옹건(康雍乾) 성황시기에 전국의 인력, 물자를 모아서 150년 동안 세운 유명한 황가어원(皇家御園)이다. 그 당시 원명원은 장춘원, 기춘원을 포함해서 면적이 347만 평방미터에 달하였고, 중국 원예건축예술 의 정화로서 수석, 기석, 기묘한 나무들을 수집하고, 강남 유명한 정원들을 모방해 서 유럽식 원림으로 건축했다. 궁전인 해안당(海晏堂)은 건륭제가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명 해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아편 전쟁 중 영불 연합군의 침략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서양식 유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림 무술쇼 중국의 무술의 원류라 불리우는 소림사의 무술을 음악과 극 연극 형식으로 재현하였다. 다양한 무기와 권법들로 영화에서 보던 중국무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어린 동자승과 무예승들이 승복을 입고 격파, 곤봉, 쌍절곤, 창, 칼등을 사용하여 겨루기와 각종 기예를 선보인다.(중국어, 영어 나레이션)
서커스쇼 지금은 우리에게 잊혀져간 하나의 볼거리이지만,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볼거리이며,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중국의 문화상품중 하나이다. 어린소녀들의 유연한 몸놀림과 기예들은 모든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우다커우 중국 북경의 대학가로 유명한 곳이다. 한때는 학교 앞 노점이 활성화되어 많은 젊은이들의 패션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나 거리정화 차원에서 완전 정비되었다. 현재 한국 유학생 및 외국의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밀집하여 있는 지역으로 현지학생들과의 교류 및 세미나를 위해서 이곳의 방문은 필수 이다.
중관촌 북경 최고의 전자상가이다 아직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기술에 외국산들의 집합소가 되어 있지만 DVD등 몇몇의 중국 제품을 자랑스럽게 판매하고 있는 중국의 용산 전자 상가라 할 수 있으며, 이곳을 방문하면, LG, 삼성 등 국산메이커의 반독점을 볼 수 있어 흐뭇해지는 곳이기도 한다.
홍교시장 홍교시장에 가면 사람 빼고는 모두다 가짜라고 하는 말이 돌 정도로 가짜의 천국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의 모든 브렌드는 이 곳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최신 브로셔우를 통한 상품 선택도 가능하다, 시계, 액세서리, 가방, 신발, 의류, 골동품, 수산물, 전자제품, 장난감, 잡화 등을 취급하며, 100% 가격 흥정으로 물건을 구입하는데 이 재미가 장난이 아니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여인가 이름처럼 원래는 여성용품 전물 쇼핑몰이었으나 점점 많은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원래 여인가라는 이 거리의 이름의 유래는 유독 여자들이 많이 다니고 여성 대상의 장사가 성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