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66호 정직과 진실은 축복이요, 거짓과 핑계는 멸망이다 (시119:162~165)
지난주 저는 30여 명의 신학생들에게 2박 3일 동안 금식기도를 시키며 성경을 근거로 직접 교육했습니다. 제가 신학생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교육한 내용은 ‘거짓되지 말고 진실해라. 거짓을 이 기도원에 다 묻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이 된다고 강조, 또 강조했습니다. 금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똑같은 말을 2005년 세계목회자영성세미나에서도 했었습니다. 세미나 첫 시간에 세계 30여 개국에서 참석한 목회자들에게 저는 “거짓말을 죽여서 이 기도원에 묻고 가라.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고, 여러분 목회가, 인생이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강의 후 통성으로 기도하자 많은 목회자들이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거짓된 삶을 회개하고 청산했었습니다.
그때 참석했던 목회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을 후에 만나보니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짓을 기도원에 묻고 와서 진실하게 사니까 목회도 잘 되고, 가정도 평화롭고 모든 것이 잘 된다.”라고요. 실제 그들은 예전보다 교회가 많이 성장했고, 사업가들도 성공한 것을 많이 봅니다. 당연하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3~165).
이번 신학생들에게서도 이와 같은 희망을 봤습니다. 저는 신학생들에게 금식하는 중에는 절대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 중에 “혹시 핸드폰 쓴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몇이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고맙다.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해줘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육 후에 세 학생이 저에게 와서 “사실 저도 핸드폰 했는데 아까 손을 안 들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늦게라도 거짓을 고백해준 신학생들 때문에 기뻤습니다.
‘별거 아닌데 그깟 것 가지고 뭘 그러세요?’ 하십니까? 아닙니다. 작은 거짓말도 안 됩니다. 저는 제 차를 운전해주는 집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목사님이 어디 계시냐 묻거든 이리저리 핑계 대거나 거짓말하지 말고 ‘목사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해라.” 왜냐? 모든 거짓말은 마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여러분, 거짓과 핑계는 멸망의 형제입니다. 그 샘플이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아말렉 군대를 치고 전리품을 취해 돌아옵니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모든 소유를 가리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말입니다. 사무엘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사울은 거짓말로 이를 둘러댑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대개 거짓이 들통나면 이렇게 핑계를 대지요. 진실하지 못한 대가는요? 그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왕권도 박탈당했으며,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행5:1~2). 아나니아는 아내인 삽비라와 함께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한 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간도 볼까요? 그는 여리고 점령으로 얻은 전리품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수7).
그렇다면 정직과 진실은요? 당연히 축복의 형제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에 들어가 신임을 받게 됩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위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틈에 젊은 요셉을 유혹하며 동침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명언이 나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거짓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일로 요셉은 누명을 뒤집어쓰고 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나님은 그런 그를 최고의 자리에 앉히시며 만인 앞에서 그를 신원해주셨습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눈앞의 이득을 위해 거짓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잠시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진실을 택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인데요.
여러분, 거짓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해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고(눅12:2), 또 진실은 영원하나 거짓은 눈깜짝일 동안뿐이기 때문입니다(잠12:19). 다윗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다윗은 완전범죄를 꿈꾸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복인 우리아의 처에 반하여 그를 취하고 그가 잉태하자 우리아를 맹렬한 전쟁터에 앞장을 세워 전사하게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완전한 각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전쟁터의 군인들도 눈치채지 못한 완전범죄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다윗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나고 맙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죄를 콕콕 찍어줬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곧바로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합니다. 그는 핑계 대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자복했습니다. 우리 신학생들이 핸드폰 사용여부를 물을 때 손을 들지 않았지만, ‘진실되라’는 제 강의를 듣고 저에게 이실직고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때 제가 그들을 용서했듯 하나님도 다윗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 둘째, 거짓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계곡 없는 산이 없듯 흠 없는 사람이 없기에 때론 진실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얼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옷에 얼룩이 묻은 것을 오래 두면 나중에는 빨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이치와 같기에 죄는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양심에 화인이 맞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딤전4:2).
저는 38년 동안 어디서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못하시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거짓말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히6:18). 맞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는 자를 아주 싫어하고 미워하십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6:16~19). 그래서 그런 자들을 다 지옥에 보내십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2:15).
거짓말을 해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거짓이 때론 빨리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고, 천국 입성을 거부당할 일이라는데 굳이 하시겠습니까? 거짓이나 꾀로 하지 마세요. 정직하면, 진실하면 하나님이 완전한 지혜를 주십니다(잠2:7). 그러므로 늘 정직하지 못한 자신과 진실하지 못한 자신과 싸워 이기십시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2:22). 할렐루야!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하자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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