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龍帝)의 신위(神威) 대무신국은 그 장소에 나라를 세울 경우 천하대영웅(天下大英雄)을 얻는다는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에 따라 세워졌다. 주변으로 보여지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무천룡에게는 감명 깊기만 했다.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호화찬란한 전각들은 칠마전의 솜씨였고, 고풍 창연한 가운데 그윽한 맛을 주고 있는 전각들은 과거 대무신국 시절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무천룡은 정의무성의 시신을 안아 들고 묘택을 찾아갔다. 이미 주변은 천라지망(天羅之網)으로 덮여 있었다. 그의 침입은 즉각 발견되었다. 삐이― 익―! 펑― 펑―! 강적이 침입했음을 알리는 요란한 향전과 폭죽이 연이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저 멀리서 무천룡을 향해 물밀 듯 다가서는 흑의인들이 있었다. 칠십이 명으로 하나같이 빼어난 신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흑응곡의 정예무사들로 별호는 흑응칠십이걸(黑鷹七十二傑)이었다. "진세를 발동해라!" "칠십이(七十二) 비응대진(飛鷹大陣)을 일으켜라!" "놈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그들은 단 한 번의 음공으로 이십여 명을 쓰러뜨린 무천룡에게 두려움을 느꼈기에 단신으로 덤비기보다 협공하는 쪽을 택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무천룡이 우뚝 서 있는 동안, 칠십이걸 중 서른여섯은 무천룡을 중심으로 만상진식(萬象陣式)을 이루었고, 나머지 서른여섯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도검을 뽑아들었다. 요란한 강철음이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어리석은 자들! 남의 영토 안으로 들어와 마굴(魔窟)을 세운 것만 해도 큰 죄이거늘, 이제 그 주인 앞에서 검을 빼내 주인의 노여움을 산단 말이냐?" 무천룡은 진세를 둘러보고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치며 정면의 흑의인 쪽을 겨냥했다. 그들과의 거리는 십 장 정도였다. 지공을 일으켜 십 장 밖의 사람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강호에서 다섯 사람도 하지 못하는 상승무공이었다. 흑의인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서 무천룡의 자세를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슈슈슝―! 무천룡의 손가락이 금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다섯 줄기 지력이 흑의인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십 장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천룡의 손가락에서 뿜어지는 지력은 이십 장 이내의 모든 것을 박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크으… 윽…!" "으악!" 손가락이 한 번 퉁겨지자 진세를 펼치고 있던 다섯 명이 머리가 박살난 시체로 화했다. "용서치 않으리라!" 다시 한 차례 퉁겨지자 허공으로 떠올랐던 서른여섯 중 진세의 주축이 되는 다섯이 심장에 동전만한 구멍이 난 시체가 되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혈향(血香)이 물씬 풍겨지며 흑응칠십이걸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천… 천하제일지공이다!" "으으… 현음마(玄陰魔) 사전주(四殿主)님의 현음지력(玄陰指力)도 이보다 못하다." "피하라!" 살아 남은 자들은 무천룡이 가까이 올까 무서워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무천룡은 굳이 도망치는 자들까지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도적을 잡기 위해서는 괴수를 죽여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미친 호랑이 떼가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지 못하도록 그 더러운 날개를 꺾어 버려야 한다." 무천룡의 목적은 흑응군(黑鷹軍)이었다. 흑응군은 이제껏 칠마전의 발이 되어 왔던 수백 마리의 크고 힘센 검은 매들이다 . 칠마전 사람들의 명예만 복종하도록 길들여져 있는 흑응군은 칠마전에서도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중원과 일만여 리를 격하고 있는 서장에서 중원 진출을 꾀하는 이들에게 흑응군은 천리마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무천룡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마령의 절벽 가운데 무수한 새 둥우리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근처는 등불로 요란했고 사람 그림자 언뜻언뜻 보였다. 무천룡의 신위(神威)에 놀란 흑응곡 무사들이 싸우기를 포기하고 흑응의 둥지로 가 흑응을 타고 도망치려 하는 것이었다. "흥, 저기 있었군." 무천룡은 칠마전 무리들에게 있어서는 대살성이 되었다. "사람은 살려둘 수 있을지 모르나 검은 매들은 살려두지 않는다!" 무천룡은 차게 외치다가 손을 아래쪽으로 휘저었다. 돌길을 이루고 있던 붉은 석판이 깨어지며 수 백 개의 자잘한 돌 알갱이가 되어 그의 장심으로 빨려들었다. 해물공(解物功)에 이어지는 섭물진기였다. 무천룡은 돌가루를 움켜쥔 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칠십 장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경공이었다. 그는 허공을 딛고는 다시 진기를 호흡하며 재차 몸을 날렸다. 무천룡은 신기에 가까운 신법을 시전해 입마령을 이루는 검은 절벽 아래 이르렀다. 깎아지른 절벽은 어디를 봐도 몸을 의지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끼륵― 끼륵―! 절벽 아래에서 백 장 정도 높이에 모여 있는 흑응군의 둥지로 가는 길은 따로 있었다. 칠마전이 만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해 삼 년에 걸쳐 판 절벽 안쪽의 암굴이 그것이다. 무천룡은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알았다 해도 그 길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도 떠나지 못한다!" 무천룡은 차게 외치고는 절벽과 평행하게 위로 솟구쳐 올랐다. 낡디낡은 흑삼자락이 바람을 일으키는 가운데 그의 몸이 이십 장 높이 떠올랐다가 잠시 주춤했다. "차― 앗!" 무천룡은 운룡번신(雲龍飜身)의 신법으로 몸을 뒤틀며 까마득히 높은 절벽을 솟구쳐 올랐다. 몇 번 몸을 뒤집으며 솟아오르자 흑응의 둥지가 십 장 안으로 다가섰다. "내려가라!" "마귀 같은 놈! 죽어라!" 양쪽 절벽에서 치를 떠는 호통과 함께 수천 발의 철전(鐵箭)이 무천룡의 몸을 향해 폭사되었다. 피피피핑―! 궁수 이백이 일제히 손을 놀려 무천룡을 고슴도치같이 만들어 버리려 하는 것이었다. 흑응곡의 궁수들은 활 하나로 화살 다섯 개를 동시에 쏘아 보낼 수 있는 신궁술(神弓術)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 하나의 길이는 다섯 자였고 무게는 이십 근 정도나 되었다. 절벽 곳곳에 나 있는 구멍 안에서 머리를 내밀며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내는 무리들의 입가에는 자신감이 떠올랐다. "살아남지 못하리라!" "삼두육비의 괴물이라 해도 천마궁진(千萬弓陣) 아래 살아날 수는 없다." 화살이 빗발치듯 퍼부어질 때였다. "우우―!" 입마령을 무너뜨려 버릴 듯 우렁찬 장소성과 함께 한 덩어리 금빛 구름이 만들어져 화살 더미 속으로 날아올랐다. 파파파팟―! 금빛 구름이 스치는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는 화살이었으나 금빛 기류에 스치자 모두 쇠부스러기로 화하고 말았다. "어엇…?" "사… 사람이 아니다!" "도… 도망가자!" 득의해 있던 궁수들은 무천룡이 몸을 금빛 강기로 뒤덮으며 화살을 분쇄하자 아연실색해 활을 내던지고 일제히 암굴 속으로 도망쳐 갔다. "내가 살심을 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무천룡은 궁수들이 매복해 있는 암굴을 그대로 지나쳐 둥지가 있는 선반 같은 절벽 위로 신형을 가속시켰다. 그가 펼쳐낸 금빛 강기는 대무신공으로 무천룡의 내공이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뀐 것이었다. 우르르르― 릉―! 그의 몸이 나아가는 곳으로 우레 소리가 나며 절벽에서 흙과 돌이 떨어져 내렸다. "하하하… 하나도 갈 수 없다." 무천룡의 목소리가 둥지보다 위쪽에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은행알 만한 돌 조각이 수백 개 쏘아졌다. 피피피핑―! 단순한 돌 조각이었지만 흑응곡 궁수들이 쏘아보낸 철전보다 열 배는 강했다. 소나기같이 쏟아져 가는 돌 조각은 하나하나 모두 살인암기(殺人暗器)였고, 금석을 뚫는 신병이기(神兵利器)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돌 조각에 머리통이 뚫려 버리는 생명체의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끄아아악―! 케에에― 엑―! 거대한 둥지 안에서 흑응곡 무사들의 명에 따라 날아오르려 했던 흑응들이었다. 금빛 암기가 악마의 비같이 쏟아져 내리며 피보라가 일어났다. 매의 피는 사람의 피보다 더 진한 비린내를 풍겼다. 무천룡이 던져낸 돌 조각은 사백여 마리의 흑응 중 반수 가량을 머리가 박살난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이 죄다!" 무천룡은 과거 대무신국이 흑응을 타고 날아온 칠마전의 수뇌 고수들에 의해 거대한 시산혈해로 화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대무신국을 찾았던 인간과 짐승은 모두 그의 손아래 죽으리라. "쓰러져라!" 무천룡은 돌 조각으로 이백여 마리를 떨어뜨린 직후 재차 치솟으며 지공을 발출했다. 슈슈슈슝―! 금빛 지강이 번득일 때마다 날개를 푸덕이며 도망치려 하던 매 떼가 속속들이 떨어졌다. 무천룡의 지력은 돌 조각에 비해 백 배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났다. 지력인지 도끼질인지 모를 무자비한 손길이 새둥지를 박살냈다. 그러나 흑응의 수가 워낙 다수이다 보니 무천룡 혼자 힘으로 다 죽일 수는 없었다. 끄륵끄륵―! 새 울음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수십 마리의 흑응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입마령의 절벽에 형성되어 있던 새의 둥지 중 가장 위쪽에 있었기에 무천룡의 살수를 피할 수 있었던 흑응군 일부가 가까스로 탈출한 것이다. 흑응군은 하나마다 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두고 보자, 살인귀!" "칠마전의 복수가 있을 것이다!" 흑응을 타고 훌훌 날아가는 자은 흑응곡의 호법(護法) 이상급 되는 정예고수들 이었다. "어쩔 수 없군." 무천룡은 날개가 없음을 한탄하며 더 이상 손을 놀리지 않았다. "아…대무신국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사 년 전 피에 씻겼던 대무신국의 땅을 다시 한 번 피로 씻기게 되었구나." 무천룡은 유유히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었지만 그는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았다. 그의 내공은 동정대호(洞庭大湖)에 비할 수 있을 만큼 풍부했고, 장강대하(長江大河)만큼 거침이 없었다. 무천룡이 가랑잎같이 가볍게 지면을 밟을 때 근처는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시체로 남아 있는 자들 이외에 살아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들은 흉수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흠…칠마전으로 도망쳐 여기서 벌어진 일을 말하겠군. 칠마는 이 순간부터 공포를 느끼며 살리라." 무천룡은 정의무성의 비교적 좋은 토질의 땅에 눕히며 약간 긴장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정체를 밝힐 경우 그들이 겁을 내고 도망쳐 버리지 않을까?' 그는 불길한 생각이 앞섰다. '칠마는 소심한 자들이다. 그들이 내가 두려워 숨어버린다면 나는 복수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 그들을 숨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칠마는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 무천룡은 나름대로 생각하다 한 가지 결정을 보았다. 칠마를 모두 죽이기 전까지 자신의 신분을 비밀로 해야겠다는 결심이다. 칠마는 대무신공을 두려워할 뿐 나머지 어떤 무공도 두려워하지 않은 자들이다. 자신의 신분을 숨긴다면 그들이 꼬랑지를 감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천룡은 그것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내가 무천룡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된다 . 대무신공만 아니라면 칠마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이 아무리 대단해도 무서워 도망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공기는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지만 그는 향기롭게만 느꼈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그에게 물려준 나라다 . 이제 그 자신의 손에 다시 일어나야만 되는 대무신국의 땅이니 어찌 감명 깊지 않겠는가? "칠마전이 이 땅을 철저히 유린했다지만 사실 겉보기일 뿐이다. 그들은 중요한 다섯 군데를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무천룡은 대무신국이 황폐해졌다고 여기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장경각(藏經閣)이 지하에 남아 있다 . 그리고 장진각(藏珍閣)이 있고, 약고(藥庫) 또한 지하동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나에게만 알려준 비밀통로이니 어찌 그 사악한 자들이 나의 보물들을 취했겠는가?" 그는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든든해졌다. "하하하… 게다가 신병창(新兵倉)과 만보전(萬寶殿)도 무사하지 않는가?" 무천룡은 대무신국을 다시 일으키리라 맹세했다. 백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날 새벽. 무천룡은 흑삼이 아닌 금포(金袍)로 몸을 감싼 채 밤새 만든 정의무성의 비묘(秘墓)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금포는 대무신국의 왕자임을 상징하는 법의(法衣)였다. 그는 머리 위에 작은 금관(金冠)을 썼고, 일곱 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양팔에는 옥환(玉環)이 채워졌고, 패검( 劍)이 허리에 걸려 있어 위엄 있는 모습을 한결 돋보이게 했다. 밤새 찾아낸 이 보물들은 정의무성과 대무신국의 신민들이 후대를 위해 비장해 둔 물건들이었다. "할아버님, 이제야 비로소 대무신국의 땅을 되찾았습니다 . 다시 세우게 된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전에 칠마의 수급을 베어 할아버님의 제단 위에 바치겠습니다." 무천룡은 눈물을 글썽이며 제사를 마쳤다. 그는 정의무성의 묘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 흙구덩이로 위장을 시킨 후 옷을 갈아입었다. 깨끗한 흑삼을 걸쳤고 죽자(竹子)를 머리에 썼다. 등에 천괴검(天魁劍)이라는 상고기검(上古奇劍) 하나를 찬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강호랑객이었다. "이것은 후일 떳떳이 걸치리라." 무천룡은 비밀 창고 안에서 꺼낸 국왕의 물건들을 금빛 보따리 에 넣고는 등에 걸머멨다. 하늘에 새벽 안개가 걸려 있었다. 아득한 능선 저편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느껴졌다. "칠마전으로 갈 때다." 무천룡은 나직이 중얼거리다 손을 품안에 넣었다. 결코 천하고 수치스럽다 여길 수 없는 낙헌지 시절 얻었던 여러 가지 물건이 그의 손에 잡혀졌다. "나는 무천룡인 동시에 낙헌지이기도 한다 .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낙헌지 시절에 알았던 사람들을 모른 체해서도 안 된다." 그는 귀엽게 생긴 금호각 하나를 꺼내 입술 사이에 빼물었다. 삐익― 삐익―! 호각소리가 정해진 신호에 따라 하늘에 울려퍼졌다. "하하…!" 무천룡은 호각소리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자 상쾌한 기분이 되어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지 않아 하늘 꼭대기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리는 금학(金鶴)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끄― 아― 아― 악―! 무천룡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반갑다는 듯 우는 학은 개방 태상방주가 병선자에게 주어 무천룡의 발이 되었던 금시단정학(金翅丹頂鶴)이었다. 단정학은 무천룡의 체취를 아직 잊지 않은 듯 아주 반갑다는 눈빛을 던지며 무천룡 곁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천룡은 자신의 어깨에 긴 목을 걸치고 부비는 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대무신붕을 타고 십이거마(十二巨魔)를 토벌했듯이 나는 자네를 타고 칠마를 물러칠 것이네." 금시단정학은 무천룡의 말을 알아듣는 듯 금빛 깃털을 그의 뺨에 비벼댔다. "하하… 서장(西藏)으로 가세. 거기 갔다가 중원으로 가는 거야." 무천룡은 크게 말한 후 학의 등에 올라탔다. 금시단정학은 이제 무천룡과 영혼이 통한 듯 호각소리로 신호하지 않아도 곧바로 떠올랐다. 금빛 구름이 둥실 떠가는 듯하더니 일인일조(一人一鳥)의 모습은 입마령의 검은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당고라산(唐姑喇山). 칠마전에 세워진 후 마도성역(魔道聖域)으로 화한 당고라산은 만추를 받아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달빛이 산등성이를 비추고 있을 때 학 울음소리와 함께 별빛이 떨어져 내리듯 당고라산 안으로 떨어져 내리는 금빛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하하, 수고 많았네." 청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방갓을 쓴 청년 하나가 학을 타고 내려와 이슬 묻은 풀숲을 밟으며 학등을 쓰다듬었다.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돌아올 것이니 기다리고 있게." 금시단정학은 청년과 말이 통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검미(劍眉) 성목(星目)에 예지와 기백이 담겨 있어 젊은 패기와 함께 위압감을 주는 모습이었다. 바로 대무신국의 천룡제인 무천룡이었다. '저쪽에서 마기(魔氣)가 솟구친다.' 무천룡은 금시단정학을 타고 당고라산까지 왔다. 초행이라 칠마전을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동쪽으로 오 리쯤 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마의 기운을 보고 하강한 것이다. 동쪽에서 일어나는 마의 기운은 대무신공의 주인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사악하고 잔인한 힘이었다. "흥…새벽이 되기 전 이곳을 정리하겠다." 무천룡은 마기가 일어나는 곳을 향해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삼 리 달렸을까? 무천룡이 돌로 뒤덮인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산등성이를 넘어 들이닥치는 오십여 명의 고수들이 있었다. "저 놈이다!"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마도고수들은 무천룡을 발견하자 쾌재를 부르며 신법을 배가시켰다. '과연 대단한 자들이군. 벌써 나를 발견하다니… 아마 거대한 단정학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달려온 것이겠군.' 무천룡은 칠마전의 경계가 철저하다는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남들이 보면 거만하다 싶게 뒷짐을 지고 섰다. 방갓 아래로 보이는 지극히 영준한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날아드는 칠마전의 무사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급이었다 . 펼치는 신법이 중원의 절정고수보다 훨씬 나았다. 당고라산에 있는 수호대 고수들은 칠마전의 기라성 같은 고수들 중에서도 일급에 속한 자들이었다. 무천룡을 향해 다가서는 자들은 호전위사(護殿衛士)들로 칠마전 최정예 중에 해당된다. 그들은 무천룡이 전혀 두려움 없이 서 있다는데 몹시 분개하며 무천룡을 중심으로 원형진 하나를 만들었다. 그들의 수괴는 팔이 하나뿐인 청의괴인이었다. 머리가 황갈색으로 봉두난발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사자인지 사람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별호는 독비사자(獨臂獅子)이며 호전위사 중 우두머리급 되는 위사장(衛士長) 직위에 있었다. "흐흐…어린 녀석이 간담이 크군." 독비사자는 무천룡이 진중(陣中)에 서서 오만무도한 표정을 짓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려 할 때 무천룡이 먼저 물었다. "칠마는 안에 있느냐?" 그의 청아한 목소리가 모두들 놀라게 했다 . 목소리가 좋아서 놀라는 것이 아니고 그의 말 때문이었다. 칠마라는 말은 금기(禁忌)였다. 그렇게 말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참수(斬首)되는 것이 당금 천하의 법이었다. 칠존(七尊)! 칠마라는 이름이 없어진 대신 강호인들의 입에서 불리게 된 새로운 호칭이 바로 그것이었다 . 한데 무천룡이 금기를 깨고 칠마라는 호칭을 입에 올린 것이다. "고약한 놈!" "당장에 목뼈를 부러뜨려야 한다." 위사들은 당장이라도 무천룡을 찢어 죽일 듯이 분개했다. "흐음…!" 독비사자는 그래도 우두머리답게 사리판단력을 갖고 있어 위사들에 비해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비한 구석이 있는 놈이야. 칠마전 주위는 금역이다. 백 리 밖에서부터 저지를 당해 칠십 년 동안 여기까지 무사히 온 자는 단 하나도 없었는데…' 독비사자는 무천룡이 초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여겼지만 그의 눈빛이 매우 담담하다는데 다소 안심했다. '내공이 강하다면 눈에서 신광이 흐르고 태양혈(太陽穴)이 솟아났을 것이다. 눈빛이 담담하고 태양혈이 밋밋한 것을 보면 내가고수(內家高手)가 아님에 틀림없다.' 독비사자가 나름대로 판단했지만 그것은 정말 오판이었다. "칠마의 목을 자르러 여기까지 왔다. 칠마가 안에 있느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하지 않는 것이냐?" 무천룡이 독비사자를 바라보며 눈에서 신광을 폭사해 냈다. 황홀한 금광이 눈에서 흘러나오자 독비사자는 자신의 추측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으윽…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된 상태였군 . 네… 네 에미 뱃속에서부터 무공을 닦았다 해도 이런 고수가 될 수 없을 나이인데…?" 독비사자가 말을 더듬자 무천룡은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보기보다 말이 많은 자군." 무천룡이 손바닥을 앞으로 잡아채는 자세를 취했다 . 아무런 발출음도 나지 않는 가운데 무형의 흡인력이 일어나 독비사자의 몸을 잡아끌었다. "어어…!" 독비사자는 자신의 몸이 무형의 힘에 끌려나가자 기절초풍 놀라 몸을 바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무천룡이 일으켜낸 흡인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독비사자는 그대로 일곱 걸음을 끌려와 무천룡 앞에 털썩 무릎을 꿇게 되었다. "크으으!" 독비사자는 두 어깨에 태산을 걸머진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무천룡이 유유히 뒷짐을 쥔 채 물었다. "철마는 안에 있느냐?" 그의 목소리에는 말할 수 없이 강한 진기가 깃들여 있었다. 독비사자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일신내공이 모조리 사라지는 고통을 느끼며 입안 가득 피를 물었다. "크허헉!" 그가 피를 토하자 함께 나타났던 호전위사들은 사색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귀신이다!" "우리들로서는 막을 수 없는 놈이다!" 위사들은 독비사자야 어찌 되건 말건 꽁무니를 뺐다. 무천룡은 굳이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 독비사자만 혼자 피를 줄줄 흘리며 남아 있게 되었다. "칠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크윽…세… 세 분이 남아 계시다." 독비사자는 너무도 엄청난 상대에 대항할 마음을 버리고 풀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누가 남아 있느냐?" "이(二), 오(五), 칠(七) 세 분 전주님이 계시다." "이오칠이라면 음마(淫魔), 비마(飛魔), 선마(扇魔)를 말하는 것이냐?" 독비사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렇다." "다른 자들은?" "먼… 먼저 중원으로 들어가셨다. 지존마궁(至尊魔宮)을 비롯한 네 군데 거처로 떠나신 것이다." 무천룡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칠마전이 벌써 활동을 개시했단 말인가? 중원이 위태롭겠다.' 그는 내심을 감추며 차갑게 물었다. "네 군데 거처라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과… 과거 소림사(少林寺)였던 곳에 세워진 지존마궁, 검보 자리에 세워진 태양마궁(太陽魔宮), 남천관 자리에 세워진 현음마궁(玄陰魔宮), 그… 그리고 백독마부(百毒魔府) 근처에 세워진 검마궁(劍魔宮)이다." 무천룡은 기가 막혀 얼굴을 핏빛으로 물들었다. '으음, 소림사와 검보, 남천관, 그리고 백독마부 자리에 마궁을 세웠단 말인가? 놀랍도록 신속한 진격이구나.' 무천룡은 독비사자 앞을 왔다갔다하며 물었다. "칠마전에는 몇이나 있느냐?" "모두 합해 삼 천 정도다. 과거에는 이 만의 고수가 있었으나 네 분 전주가 떠나실 때 모주 중원으로 들어갔다. 거의 텅 비었다 할 수 있다." "삼 천이라고?" 무천룡은 칠마전에 너무도 많은 수의 마도고수가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너무도 많은 수를 죽여야 하는데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지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천룡에게 주어진 천명(天命)이라면 내키지 않는 살육이라고 감행할 수밖에 없으리라. 무천룡은 그에게 칠마전에 대해 다시 몇 마디 물어보았다. 독비사자는 체념한 표정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이야기했다. 덕분에 무천룡은 중요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중원천하가 칠마전주이자 중원의 지존마궁주(至尊魔宮主)인 심마(心魔)를 맹주로 추대했고 , 칠마전 출신 마도고수들에게 지배당하게 되었다. 둘째, 과거 무림맹 사람들이 은밀히 활약하며 칠마전 고수들을 상대로 산발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 물론 대세를 바꾸기에는 미약한 저항에 불과하다. 셋째는 흑응곡에서 비롯된 일이다. 누군가 단신으로 흑응곡을 괴멸시킨 일이 흑응을 타고 날아온 자들에 의해 전해져 칠마전이 경악했고, 중원의 지존마궁에 알리는 비합전서(飛 傳書)가 이미 띄워졌다. 독비사자는 모든 것을 밝히고는 무천룡의 손 아래 점혈당해 정신을 잃었다. 무천룡은 순순히 실토한 그를 차마 죽일 수 없어 점혈만 하고 등을 돌렸다. 당고라산은 아주 아름다운 산이다. 산세는 수려해도 칠마전에 의해 수십 년 간 지배되며 요소요소마다 매복이 설치돼 있었다. "할아버지는 십수 년 전 대무신붕을 타고 혼자 몸으로 칠마와 겨뤄 결국 칠마령을 취하지 않았던가?" 무천룡은 호기를 느끼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이 리 정도 갔을까? 원래는 깎아지른 벼랑이었던 곳을 인공으로 깎아 만든 거대한 터가 보였다. 그 위에는 궁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까지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는데 길 좌우에는 칠마전의 중원정복을 기념하는 색색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깃발 위에 쓰인 글귀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 칠존압세(七尊壓世), 칠존이 세상을 장악했다. 〉 〈 칠마전(七魔殿) 십만영웅(十萬英雄)이 중원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 〈 칠십 년 금제(禁制)의 장한(長恨)을 이제야 풀었다. 〉 하나같이 기가 막힌 문구들이었다. 무천룡은 서두르지 않고 유람 나온 사람처럼 깃발과 근처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 대로를 따라 가다가 그는 궁궐에 이르는 계단 아래에 이르게 되었다. 희디흰 돌계단은 아주 거대했다. 그것은 칠마전의 힘이 무천룡의 상상보다 열 배 막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무천룡은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칠마전!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그는 가벼운 긴장감을 느꼈다. 공포의 집마궁을 지척에 대하자 복수심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둥― 둥― 둥―! 쇠북 소리가 세 번 울리며 일백 계단 위쪽에 서 있는 거대한 궁궐의 철문(鐵門)이 천천히 열렸다. 그그그긍―! 철문의 무게는 어떤 저울로도 달 수 없을 만큼 엄청났고 대문 위 아주 거대한 황금빛 편액 하나가 걸려 있었다. 〈 七尊殿 (칠존전) 〉 새로 만들어진 황금빛 편액 위의 글씨가 무천룡의 눈을 화끈거리게 했다. "훗훗… 칠마전이 칠존전으로 둔갑을 했군. 그렇다고 마두가 존자(尊者)가 될 수 있겠느냐?" 무천룡이 비웃음을 흘릴 때 철문이 열리고 안에서부터 수백 명의 검수들이 질서 정연히 걸어나왔다. 하나같이 살기 등등한 모습들인데 그 중 유난히 빼어나 보이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은관(銀冠)을 쓴 은포노인이었다. 그의 얼굴 모습이 무천룡에게 아주 낯익어 보였다. '어디서 한번 본 얼굴인데…?' 무천룡은 그를 유심히 살피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기억해낸 것이다. '그렇군, 바로 선마(扇魔)다.' 무천룡이 은포노인을 대번에 기억해 내지 못했던 이유는 노인이 전에 반나의 몸으로 무천룡과 만났었기 때문이다. 옷을 걸친 모습이기에 조금 낯설어 보였다. 은포노인은 바로 칠마령의 마지막 한 조각을 접수하러 비마와 함께 흑응곡으로 왔던 일곱 번째 전주 선마였다. 선마지선(扇魔之扇)! 천하칠살수(天下七煞手) 중 맨 마지막 번째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선마의 부채수법이었다. 계 속 |
첫댓글 ㄷㄷㄷㄷㄷㄷㄷ
감사 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셔요♬
잘 읽어 보았어요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