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자듯 웅크리고 쉬던 몸과 마음을 봄으로 초대하는 건,
언제나 토박이씨앗나눔잔치로 시작한다.
시작하는 때를 생각하면 겨울 한가운데 같지만,
막상 씨앗나눌 때를 가늠하며 씨앗을 고르고 밭꼴 살피는 시간통해
어느새 수-욱 밀리듯 봄으로 가 있다는 것, 느낀다.
토박이씨앗나눔잔치 준비하면서 토박이 삶에 대해 묵상한다.
씨앗이 가진 힘, 그 삶에 담긴 결, 견인해가는 주변 생명(인간..ㅎㅎ)의 일상까지.
그렇구나, 알아채고 만지고 바라보면서 마음에 닿았던 것들, 경험으로 남기고 이야기 나누면서 꿰어지는 것들..
언젠가 언어로 잘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잔치가 끝나면 씨앗들이 누구에게로 전해졌는지 정리하는 작업 이어진다.
이제는 길게 늘어진 이력을 정리하면서 누군가의 인생길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엉켜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씨앗을 신청하고 받은 이들의 밭꼴 떠올릴때 그 사람의 하늘땅살이를 한참 상상해보기도 하고
그 씨앗들을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생각이 멀리까지 가기도 한다.
씨앗이 경험하는 여러 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면 참 재밌겠네, 풋- 웃음이 난다.
그렇게 2월을 맞이하면
슬슬 잠자고 있는 씨앗들을 깨울 준비한다.
먼저 방안에서 같이 지내던 고구마를 꺼내서 물에 담그고 싹내기 시작한다.
둘다 지역에서 길게 이어온 귀한 토박이다.
화촌호박고구마는 2019년 씨앗조사하면서 만났다.
화촌면에 사시는 양금석어르신이 40년이상 이어오신 것인데
초가을에는 밤같다가 숙성되면 물이 많아지면서 노랗게 된다.
어르신께서는 1월 중순부터 방안에서 커다란 고무대야 놓고 싹 내기 시작하신다고 했다.
다른 고구마와 견주어 줄기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느낌도 있다.
횡성물고구마는 횡성 공근면 오산리 박부례 할머니가 평생 이어오시던 고구마이다.
밝은누리움터에서 2019년부터 이어왔다.
지난해 처음 받아서 심었다가 슬픈 사정으로 맛을 보기도 전에 씨를 모두 잃었는데
고맙게도 올해 네덩이나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무사히 지켜줄게!!
두 고구마가 올리는 줄기 색이 확연히 달라서 한 곳에 넣고 같이 기른다.
올 겨울에 화목보일러 바꾸면서 훈훈한 실내온도가 유지되서 그런지
예년보다 빠르게 줄기가 올라오고 있다.
화촌호박고구마는 자색빛깔 줄기가 참 어여쁘다.(내 취향..♡)
횡성물고구마 줄기는 연두빛 잎을 또렷하게 내고 있다.
멧돼지에게 여러번 이랑이 뒤집힌 후로는 고구마 심는데 별로 마음 두지 않고
겨우 씨 연명하고 내가 좀 맛 볼 정도로만 심었었는데
지난해부터 고구마 키우기에 마음 쓰고 있다.
고구마줄기도 좋아하고 겨우내 고구마 잘 보관했다가 틈틈히 꺼내먹는 그 맛을 알았달까,
아니, 그런걸 내가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올해 고구마를 물에 담그면서 내가 나를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방안에서 고구마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우수절기 지날즈음에 비도 눈도 꽤 온다.
덕분에 샘물이 그득해서 작은배미에 물도 채웠다.
겨울 보낸 밀에게 물 적셔주는 느낌으로.
그 김에 뿌리가 들뜨지 않고 꾹꾹 밟아주기도 한다.
밭에도 가서 횡성재래마늘이 솟아나온게 없는지 살핀다.
마늘은 튀어나온게 몇개 없었는데
지난 가을에 자리 옮겨줬던 파와 쪽파들이 올라와있는게 보여서 다시 자리 잡아줬다.
우수지나 경칩, 춘분날까지 눈이 여러번 왔다.
이번이 마지막 눈일까 싶어 눈 싸움도 하고,
아무도 안 밟은 눈덮인 산길을 엉금엉금(?) 걷기도 하고,
눈 위로 쏟아지는 따순 햇살을 맘껏 맞기도 하고.
그랬다.
눈 온 풍경을 맘껏 즐기는구나, 한참 웃고 있는 나를 본다.
지금도 이 사진들을 보면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집 뒷켠 비닐집 안에 묻어있던 씨앗고를 연다.
그 전까지는 왕겨숯으로 채워둔 곳에 다시 스티로품 상자 안에 무, 배추, 감자 들을 넣고 겨울 났는데
충분히 따뜻한데 비해 습기가 고여서 되려 해를 입는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지난해 묻을 때는 바닥에 왕겨숯을 넉넉히 붓고 높이를 띄운다음
스티로폼 상자없이 양파망에 씨앗들 넣고 뚜껑 닫았다.
열어보니, 다른 것들은 크게 상함없이 겨울 잘 났는데 맨 아래 있던 울릉분홍감자가 모두 물러져있었다.
다섯해 만나온 것인데 씨 놓쳐서 속이 상했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너가 희생한거니.. 괜히 의미 부여하면서
그간 고마웠다는 인사나누고 부산물 더미에 올려주었다.
아래터전에서는 울릉분홍감자가 무사히 겨울났다는 이야기 들으며 안심하면서.
밭에서 겨울 보낸 녀석들도 생존 확인한다.
무주골파, 다롱쪽파, 쪽파 두 종류(움터에서 길게 이어온 것과 우리씨랑에서 받은 것), 농우대고(양파모구)
모두 작은 손을 올리면서 무사히 겨울 보냈다고 알려온다.
볏짚을 수북히 덮어 겨울보낸 근대는 얼어붙은건지, 무사한건지 알 수가 없어서
오가며서 수시로 들여다보게 하더니 이렇게 귀여운 싹을 보여줬다.
이제 꽃대 올리고 씨 맺을 때까지 고라니로부터 잘 지키는 일이 남았다!
이제 6년차 맞이하는 명이나물(산마늘) 기세가 남다르다.
내면에서 임산물 30여년 기르시는 분께 씨앗얻어 홍순덕님이 풍암리에서 2년 기른 것을
21년에 옮겨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어린시절에 이리저리 옮겨심는 바람에 연차에 비해 여리여리했는데
올해는 잎부터 남다르다.
뿌리나누기도 처음해봤다.
토실토실한 뿌리가 참 튼실하다.
올해는 꽃을 볼 수 있을까? ^_^
농우대고 양파싹도 겨울 잘 보냈다.
겨울나면서 이정도 살아남은 건 처음인 것 같다.
간격을 보면, 다 살아남지 못할거야...하면서 심은 내 마음이 보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길도 보이지 않고
주변 어느 농가에서도 어르신들도 양파 심고 짓는 것 볼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어렵다, 안된다는 말이 무성하니, 이제 그만할까, 싶기도 한데ㅡ
몇 알 안되지만 굵은 양파를 얻었던 날의 기쁨,
아끼고 아껴서 밥상에 올려 먹었던 그 맛,
이런 것들이 계속 양파를 심게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멈추지 않으니까.
작은 비닐집 안에서 겨울보낸 무릉배추가 모두 물렀다.
열뿌리가 모두 썩은건 처음 경험한다.
같은 조건으로 있던 개성배추도 여덟뿌리 중 세뿌리 살아남았다.
이번 겨울이 추울거라는 예보를 의식해서 비닐로 덮어주기 전에 풀더미를 꽤 두텁게 얹어줬는데
그게 되려 숨쉬기를 방해해서 썩게 만들었다.
살아남은 개성배추 세뿌리는 그나마 풀더미 사이에 덜 덮여있던 것들이었다.
다정도 병이고, 날을 가늠하면서 바지런히 살피지 못했던 손길도 아쉽다.
올해 씨받으려고 했던 밀동초는 모두 씩씩하게 겨울 보내고 새잎도 올리고 있어서
그나마 그 푸른 빛이 위로가 된다.
(덮어줄 풀이 부족해서 하나도 덮어주지 않은 밀동초는 모두 무사하다. 허허)
한동안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 확인하고 흙날(3/23) 조선무도 장다리 박았다.
밭 손질하면서 한움큼씩 얻게되는 냉이는 된장국도 끓여먹고 무생채에 넣어 버무려 먹는데 맛도 향도 좋다.
크게 밭일을 하는게 아니지만 이맘때는 슬슬 이랑을 건드리기만 해도 이렇게 먹을게 생긴다.
말린나물 먹던 시간에서 향도 맛도 생생한 봄나물을 입에 넣는 즐거움이
밭으로 가는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땅이 어느정도 녹고 3월 초가 되면 바지런히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더덕과 정읍귀리쌀 심는 일이다.
더덕은 씨넣고 싹이 날 때까지 볏짚으로 단단히 덮어둔다.
씨뿌리면서 힐끔힐끔 세해보낸 더덕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올 가을에 먹을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
귀리는 2월에도 심는다는데 아직 땅이 충분히 녹지 못해서 3월 첫째주에 뿌린다.
되도록 10일을 넘지 않도록 하고 싹이 난 뒤에는 바지런히 자랄 수 있게 돕는게 중요하다.
열매가 충분히 익으면 빨래판에 밀어서 갈무리하는데 쉽게 껍질이 벗겨진다.
씨넣으면서 고소한 맛이 입안에 도는 듯 하다.
지난 가을에 밭이 미리 준비되지 못해 씨넣지 못했던 보리 삼총사(토종육줄보리(쌀보리), 흑보리, 겉보리)도 함께 심었다.
쌀보리는 물 많은 눈이 충분히 내렸던 2020년을 제외하고는 겨울을 안정적으로 나지 못해
봄보리로 심는게 더 낫다는 결론 얻었다.
애초에 씨앗받을 때 봄보리로 심는 거라 들었는데 가을에 심어 겨울나기를 시도하다 다시 돌아온 셈이다.
그러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겉보리가 쌀보리보다 추위를 잘 견딘다는 것,
보리는 추위뿐 아니라 물에도 예민하다는 것.
봄가뭄 뿐 아니라 겨울가뭄에도 취약하다.
안철환 선생님 책 읽다보니 보리를 심을 때 겨울가뭄을 대비해 소금을 뿌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적용하는건지 원리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직접적인 시도는 못했다.
예상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정말 그러한건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여쭤보고 싶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하면 좋을 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ㅡ
바로 쑥뿌리캐기다.
겨울-봄이 서로 밀당하면서 땅이 숨쉬느라 공극이 생긴데다
아직 이른 봄이라 쑥이 제 기세를 회복하기 전이라 쉽게 뿌리를 쓱쓱 뽑아낼 수 있다.
4월만 되도 금세 자기 세력을 확장해서 쑥뿌리 캐는게 참 녹록치 않다.
여름은 말해 뭐해... 그리고 다시 가을이 되면 쑥이 스러졌다 한들 거기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럴때는 쑥이 한창 세력을 확장했던 곳을 눈으로 꼭꼭 확인해뒀다가
땅이 숨쉬기 시작할때 바지런히 가서 호미질을 한다.
그렇게 딸려 나오는 쑥뿌리를 보면 뭔가 쾌감이 있다.
이겼다.. 훗. 뭐 이런 ㅋㅋㅋ
그 김에 무너진 두둑도 올려주고 좁아진 고랑도 길 낸다.
한동안 좀생이별이랑 천랑성 보는 재미로 좋았다.
그 얇디얇은 초생달이 어느새 저렇게 통통해져서 밤길을 비춘다.
늘 경험하는 건데 늘 처음처럼 신비롭다.
첫댓글 저도, 이 때다! 하고 보이는대로 쑥뿌리 캐요. ^^
토종씨앗 나눔받는것도 좋은데 이렇게 삶을 나누는 이야기 보게 되는것도 참 조으네요~ 토종감자얻는거 심고 주말에 비를 맞춰야지 계획했건만 뭘한다고와따가따하다가 타이밍 놓침^^ 글보고 힘받아 낼심어볼테얏!^^
쑥뿌리 캐기 좋은 팁입니다
미리 공부해둡니다~!!!
씨앗이 한 해를 넘겨 다음 생을 이어가며 저마다 이야기를 전해주네요.
쑥처럼 민들레도 지난해 많이 캐냈었는데 밭 생명들이 골고루 잘 자라도록 해주는 몫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