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직을 위한 자기관리 9 학부모에 대한 태도와 상담
https://youtu.be/bsJ8t22bxNM
학부모에 대한 이해와 상담
요즘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교사들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2~30년 전의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하고 현재의 학부모의 태도는 많이 다릅니다. 2~30년 전에는 자녀교육에 관한 학교를 신뢰하고 교사에게 맡겼습니다. 당시에는 교사는 학부모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전문가로 존경을 받았고 학부모는 교사를 그만큼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학부모도 다 대학을 나왔고 교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교사보다 학부모가 자녀교육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서울에 부자동네, 법조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더 많은 민원이 발생하고 교사들은 기피하는 지역이 된 이유입니다. 그 지역은 본인들이 교사보다 더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사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또한 이전에는 다자녀 시대지만 지금은 한 두자녀만 키우기 때문에 그만큼 자녀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고 맡깁니다. 특히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의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치면서 태도가 달라집니다.
어떤 학부모도 자녀들이 사고를 치면 처음 한두번은 사고를 치는 자녀를 야단을 칩니다. “너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혼냈을 것 아니냐? 그리고 담임이 학부모에게 아이문제로 전화하면 우리 아이를 야단쳤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야단친 본인의 태도가 잘 되었다는 것을 담임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의 문제가 계속되고 자녀를 통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가고 학교에서는 문제때문에 계속 연락이 오면 서서히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흡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서 계속 적발되고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자녀를 보면 이미 중독되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학교에서 자꾸 지적하고 벌점을 줘서 아이를 더 망치게 한다고 생각하고 담배피우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복장이나 두발 화장문제로 벌점을 받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자율에 맡기게 해주면 안되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칙은 이미 학부모, 교사, 학생간 합의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바꿀수도 없고 특정인만 허용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 아이들만 봐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단속하다보면 아이들과 관계가 깨지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렇게 하니까 학교에 다니기 싫다, 선생님이 싫다’고 부모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학교탓, 교사탓으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학부모 역시 교사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러면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교사에게 전가시키면서 풀게되고 감정이 격해지면 아이의 모든 행동이 학교탓이고 또 아이의 말만 듣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몰아붙입니다.
계속 사고를 치고 학교폭력을 일으켜 학교에서 강제전학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학부모는 모든 교사들이 혈안이 되어 우리아이를 강제전학 보내기위해 없는 죄까지 찾아내려고 한다고 오해를 해서 모든 교사들을 걸고 넘어집니다.
교사와 학부모의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게 되면 교사의 모든 말투와 행동에 꼬투리를 걸고 넘어집니다. 어떤 담임은 사고치는 아이에게 “너 이번에 성적 떨어지면 죽는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교사와 갈등관계에 있던 부모가 자녀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를 죽인다고 협박 할 수 있느냐 이것은 아동학대다’라고 신고를 했습니다. 또 자주 사고를 치는 여자아이에게 학생부장이 “이 미친새끼야 너 또 사고쳤냐?”라고 했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미친년이라고 했다고 아동학대라고 신고를 했습니다.
책상사이를 지나가다가 길이 비좁아 살짝 밀쳤는데 그것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기도 하고 지각비를 걷는다는 이유로 신고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앞에서 무안을 줬다고 신고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관계가 깨지고 신뢰가 깨지고 감정싸움이 되면 모든 것에서 빌미를 찾습니다. 또 가해학부모에게서 합의금을 뜯어내기위해 자녀를 억지로 한방병원에 입원시키고 학교에서 중재를 해달라고 합니다. 등 등 그 사례는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학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학교에 부적응하고 계속 사고를 치는 아이의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학부모와 좋은 관계는 아니더라도 갈등관계는 되지 않기위해서는 학부모와 상담할 때 아이문제를 너무 학부모의 탓이라고 이야기 해서는 안됩니다. “문제아이는 없다 단 문제부모만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아이들 문제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부모의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부모도 아이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학교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말이 안되지만 부모의 그 심정을 이해하고 부모의 힘든 점을 공감해 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부모도 공감받고 싶어합니다. 사실 그렇게 키우고 싶은 부모는 없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키울 수 밖에 없는 형편과 환경이 있었고 그 부모도 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상처는 대를 이어 전가됩니다. 담임은 문제학생을 1년만 맡아서 관리하면 되지만 그 부모는 평생 그아이와 씨름하며 살아야 하는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보다 더 힘든 것은 부모입니다.
문제를 일으켜 사고를 친 자녀 때문에 학교에서 특별교육을 하다보면 교육받으러 오는 것을 엄청 싫어하고 귀찮아 하면서 오지만 상담을 통해 오히려 치유받고 위로 받았다고 하면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 학부모를 교육시키기 보다는 위로해주고 공감해주기 때문입니다.
공감을 해주면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발견하고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너 때문에 맨날 학교 불려다니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니?” 하고 야단치던 부모도 “내가 힘들어서 너를 그렇게 키워서 미안하다 지금부터라도 잘 할게” 이렇게 바뀝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잘하고 부모자녀의 관계가 회복되기도 합니다.
몇 년전에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수십군데 카터칼로 자해를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언니와의 차별대우 때문에 본인도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받았지만 좋은 관심이 아니라 부정적인 관심을 받고 문제아로 낙인찍혔습니다. 엄마는 매일 자해하는 팔을 보면서 하지말라고 경고를 했지만 멈추질 않았습니다. 엄마는 홧김에 “그래 죽어라 죽어”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가 죽어라고 했다고 하면서 진짜로 죽어버리겠다고 상담을 합니다. 사촌동생은 “죽는다면서 언제 죽느냐? 죽지도 못하면서...”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많이 걱정되고 두렵기까지 해서 그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말려도 소용이 없고 계속 자해를 하니까 충격요법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그런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났습니다. 하지만 가르치기보다는 공감이 먼저이기에 “오죽 힘들면 그런 말씀까지 했겠습니까?” 라고 공감을 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 엄마의 입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말은 하면 안되는데 그랬습니다.” 라며 자기 반성을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후 아이는 자해를 멈추고 학교생활을 잘 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행동과 말에는 그 사람만의 사정과 이유가 있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일단 공감부터 해주고 나의 이야기를 해야 대화가 됩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사고쳤다는 말을 듣고 집에오자마자 우리아이를 야단쳤다고 자랑하는 학부모에게도 “야단보다는 먼저 공감해주시고 나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세요”라고 이야기 해줘야 합니다. 자기가 원인제공을 했던 안했던 잘 잘못을 떠나 그 아이는 자기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자기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엄마만이라도 내편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먼저 공감을 받아야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 뇌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교사도 인간인지라 담임으로서 힘든 사정을 학부모에게 이야기하고 학부모에게도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부모가 교사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좋겠지만 이미 자녀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화오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공감의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교사가 일단 부모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나면 부모도 교사의 마음을 공감해줄 것입니다.
교사는 항상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위해 각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칙과 절차를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가 교복이나 두발 화장등의 문제를 가지고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면 교칙을 바꾸어 달라고 학생이 직접 학교에 요구하기도 하고 아이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학부모도 교칙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정식으로 절차를 안내해주면 됩니다. 교칙은 교육부 방침과 학부모, 교사, 학생이 함께 합의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한 두사람의 의견으로 고칠 수 없으니 정식으로 학부모회에 절차를 거쳐 합의해오면 의논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대다수의 학부모가 동의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변경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절차를 안내해주지 않고 안된다고만 하면 갈등만 심화됩니다. 또한 제도와 법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현 제도안에서도 그런 것들을 허용해주는 대안학교도 있다는 것을 안내해주면 됩니다.
이런 저런 것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교칙을 어기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학생은 대책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적발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적발될 때마다 냉정하게 주의를 주고 교칙에 맞게 대처하면서 지내다보면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때가되면 바뀌기도 하고 또 그럭저럭 지내다 졸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바꾸려고 찾아다니면서 잘못을 적발하고 처벌 하다보면 아이도 적응하지 못하고 교사도 힘들어 집니다. 너무 좋은 교사가 되려는 욕심보다는 행복한 교사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관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자기를 지키는 것이 행복을 지키기위한 최선인 것 같습니다.
첫댓글 공감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