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지혜가 담긴 강화 전등사와 탈취 당한 외규장각 의궤] 정병경.
ㅡ강화길ㅡ
햇살의 열기가 적당한 시기다. 먹거리가 풍성하고 오색 단풍 구경으로 눈과 입이 호사하는 계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 두기 때문에 외출이 어려웠다. 3년만에 거리두기가 일부 해제되어 만남이 자유로워져 해방감을 느낀다.
354ㅡD지구 라이온스 회장 동기와 함께한 시절이 23년째다. 청춘은 지나가고 인생 가을로 접어든 시기다. 이미 곁을 떠난 동기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처럼 동기 17명과 강화도길을 나선다. 마음은 청춘이다.
가로수에서 단풍 절정을 실감한다. 차량 통행이 많아 세 시간 걸려 도착이다. 강화도길은 차량 증가로 도로 확충이 시급함을 느낀다.
역사가 숨쉬는 지역에 숨은 보물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외침이 잦아 수난을 겪은 땅이다.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 행사 때 그림이나 글로 기록을 남긴 의궤가 있다. 창덕궁 규장각에 보관했으나 왜란, 호란에 대비해서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하나 더 두었다.
강화도에 안전하게 보관된 의궤儀軌를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의 보물을 프랑스군에 의해 탈취당한다. 근래 박물관 전시 때 잠시 빌려온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관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입장이다.
강화는 초지진草芝鎭을 비롯해 방어 구축構築인 5진 7보 54돈대가 있다. 조선 19대 숙종은 46년 재위 중 50돈대墩臺를 설치하여 방어에 최선을 다한다. 해상으로부터 외침을 막기 위해 구축한 요새다.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세 강江이 합류한다(한강,임진강,예성강).
강화도는 육지와 단절된 섬이어서 많은 인물이 유배된다. 조선 제10대 연산군이 유배로 거쳐간 곳이다.
조선 14대 선조와 인목왕후에서 난 영창대군의 비애悲哀가 서린 장소다. 광해군에 의해 강화로 유배되어 8세 때 세상을 떠난 곳이다.
광해군은 공빈 김씨 소생인 친형 임해군을 강화로 귀양보낸다. 인조반정으로 인해 자신도 강화에 유배되는 인과응보의 전철前轍을 밟는다. 아이러니하다.
조선 22대 정조 이복 동생 은언군과 그 아들 상계군 '담'을 비롯한 여러 명이 유배 간 강화섬이다.
전계대원군 3남 원범은 가족을 따라 1844년 강화에 유배된다.
후사가 없는 헌종이 승하하자 모후 순원왕후(순조 비) 덕에 25대 왕으로 등극한 철종이 5년을 지낸 강화도다. 장조(장헌세자)의 아들 은언군이 철종의 조부다. 신성스런 땅이 왕족과 관료들에겐 비운의 섬이다.
마니산(472.1m) 정상 참성단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례를 올린 곳이다. 지금도 개천절에는 제사를 지낸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있는 명산이다. 전국체전 행사 때 마니산에서 성화 채화를 한다.
강화는 전천후다. 비오는 날은 안개구름이 펼처져 멋을 더한다. 낙조와 팬션, 카페의 천국이다. 일제시대에 조양방직을 비롯한 염색공장이 많았다. 카페로 바뀌어 성업중인 곳을 다니다보면 하루가 아쉽다. 지난해 보문사 다녀올 때 토담카페에서 시간을 빼앗긴 곳이기도 하다. 강화는 섬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녔다.
ㅡ전등사로ㅡ
강화 팔경 중 하나인 전등사傳燈寺로 달린다. 1641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현재 남한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절이다.
주차장에서 300여 미터 쯤 오르다보면 성문을 만난다.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는 2,300미터의 삼랑성三郞城이다. 성城을 받치고 있는 돌 앞에서 무구한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엿본다.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도 부른다.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는데 미처 다 보지 못해 아쉽다. 남문인 종해루宗海樓를 들어서면서 산전수전 700년 은행나무를 만난다. 무언의 안부를 묻고 법당으로 향한다. 가을 단풍이 분위기를 살린다.
전등사傳燈寺는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다.
본래 진종사眞宗寺였는데 개명한 절이다. 가로 세 칸에 세로 두 칸인 대웅보전의 단청은 풍상에 색이 바랬지만 광채는 여전하다.
석가모니부처 오른손 옆에 협시 아미타부처와 왼편에는 약사여래 부처를 모셨다. 보물 제1785호로 지정했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온 명찰이다. 옛 사고史庫 건물은 1930년경에 없어지고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覺 현판은 전등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대웅보전 네 기둥 위에 있는 벌거벗은 원숭이 목각이 세기世紀를 거듭한다. 추녀를 받치고 힘겨워하는 원숭이를 나부상裸婦像이라 한다.
마을의 주모와 사랑에 빠진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립에 참여한다. 주모와 혼인하기로 약속하고 번 돈을 여인에게 맡긴다.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여인은 돈다발을 들고 사라진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돈에 눈 먼 여인 대신 힘겹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원숭이로 표현한 조각상은 바로 그 여인이다. 흑심 품은 여인의 마음을 읽게 된다. 원숭이를 바라보며 과유불급에 대한 가르침을 교훈삼는다.
"강화의 천년 고찰
마음을 펼친 선승
후대가 이어 받아
만세에 이타행을
중생은
범종의 울림
인연따라 바람처럼."
해는 서서히 기운다. 낙조의 상징인 강화는 노년은 조바심이지만 젊은이에겐 성숙을 더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노을은 초조한 마음을 알리가 없다. 하루 동안 비추어준 금쪽같은 해를 등지고 서울로 달린다.
2022.10.27.
첫댓글 역사가 숨쉬는 강화에 잘 다녀오셨습니다.
마니산, 전등사 등의 가을 풍경을 함께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나들이 다녀왔던 강화
전등사 나부상이 궁금해
유심히 올려다봤던 모습에
잠시 미소 지었던 생각이 납니다
잔잔한 아름다운 섬 강화도에
이리 아품이 많이 젖어있음을
그저 역사의 페이지로 넘겨봅니다
광화기행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