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김없이 박새가 집 창고에 둥지를 틀었다.
이 곳이 뭐가 좋다고 집을 지었나 고맙기도 하고,
벌레 물어 입에 넣어주고 밤엔 보듬고 자며
엄마, 아빠 바쁘게 육아하는 박새가족이 사랑스럽다.
저렇게 눈과 입을 꽉 다물고 있다가
무슨 소리라도 나면 자동으로 입을 크게 벌리는데 진짜 신기하다.
그런 박새를 강아지도 재미있게 바라본다.
요새 한낮 더위 피하느라고 창고에 있는데,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박새를 꼬리 흔들어가며 흐뭇하게 쳐다본다.
나는 또 그런 강아지를 귀엽게 바라보며 밭에서 캐온 고들빼기를 다듬고 산나물도 정리한다.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담긴, 봄 뒷자락(춘분~곡우) 이야기다.
춘분이 되면,
겨울난 마늘(횡성재래)과 파(조선파)가 전해주는 기운 업고
고추(칠성초와 사근초)씨를 가장 먼저 밭에 넣는다.
여지껏 고추를 곧뿌려왔는데 올해는 고추가루도 얻고,
장만들 때 필요한 고추씨도 마련할까하여 이렇게 모종판을 처음 사서 많이 심었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이 모종판을 들여놓기에는 너무 좁다.
어쩔 수 없이 바깥 온실에 두고 밤에 이불 덮고, 해나면 열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추웠나보다.
단 두 개 빼고는 싹이 나지 않았는데 (가지는 글을 쓰는 요즘에서야 싹이 나고 있다)
이제야 왜 선조들이 모종을 하지 못했나 이해가 된다.
곧뿌려도 흙이 좋으면 붉은고추를 거두기도 한다.
지난해만 해도 싹 안난 자리에 곧뿌린 걸 다시 옮겨심어 평소보다 한참 늦었었다.
주변에서 씨보기는 어려울꺼라 했지만 다행히도 고추,가지 모두 씨를 얻었다.
고추 다음은 감자 차례...
올해도 지난해처럼 서홍, 인제할머니,수미,눈뻘개,강화분홍,자주감자를 심었다.
나는 삭힌 오줌과 재 섞은 물을 붓고 감자를 심는다
감자 몇구덩은 감자가 얼었던지, 곰팡이가 났든지 싹이 안나오지만 그려려니 한다.
이 때 나무도 많이 심는데
올해는 애기 회양목 몇그루와 너무 좋아하는 푸른딸기 정도만 심었다.
터전을 일구는 지난 삼년동안 심어놓은 나무에서 이제는 제법 꽃이 많이 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라는 가사의 '고향의 봄'이란 노래가 와닿는다.
그 시절 나즈막한 초가집과 담장사이 피어난 나무의 봄꽃이 얼마나 정겨웠을까.
나무 뿐 아니라 꽃들도 한창이다.
해마다 죽었나 살았나 살짝 조바심나는 작약과 상사화도
어느새 불쑥 얼굴을 내밀고
3년전 심었던 취와 삼잎국화도 많이 늘었다.
처음 황량하던 이곳을 채워주는 꽃과 나무, 들풀들이 참 고맙다.
하지만 밭기슭에 심은 딸기만은 여전히 느리다.
그럴 만한것이 공사하느라 몇 번 위기가 있었다.
올해는 아예 이웃밭에서 딸기를 퍼와, 맘먹고 옮겨 심었다.
표고는 주인 잘못 만나 제 역량 다 발휘 못하고 있다.
일단 밭에 나무가 없었어서 그늘이 거의 없다.
강한 햇볕을 계속 받다보니 껍질이 죄다 벗겨졌고,
자리를 옮겨주려해도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봄가을, 겨우 몇 개, 맛이나 보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사먹는 것과 비할 수 없다.
지난해 우리 강아지는 산에서 더덕자리를 알려주고 달맞이씨앗 밭으로 안내하더니 올해는 새 밭 기슭에 있던 돼지감자를 캐주었다.
이러니 너를 예뻐할 수 밖에...
하다가도 다음날 딸기 비탈을 헤집어놨을 땐 '진짜, 을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여느 개처럼 땅파는 걸 좋아한다.)
올해는 서둘러 정월장(음력 1월15일, 양력 2월24일)을 담갔다.
지난해 벌레가 생겨 거의 다 못쓰게 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장을 갈라놓고 익히기 위해서다.
올해는 날도 따뜻하여 4월 17일에 장을 갈랐다.
역시나 장은 쉽지 않다.
곰팡이를 떼어내니 메주 두 말에서 반정도 남았을까?
[지난 대보름 장담그던 모습]
곡우 즘 볍씨넣을 못자리 만들었다.
먼저 염수선해 고른 튼실한 씨앗을 몇날동안 물에 담갔다 빼주길 반복하며 싹을 틔웠다.
그리고 밭에 풀을 뽑고 싹정리한 뒤 산에서 퍼온 부엽토를 까는데 다른 씨앗이 들어가지 않도록 체를 쳐준다.
곱게 깔린 부엽토 위로 볍씨를 떨어뜨리고 다시 체 친 부엽토를 덮는다.
그 뒤 풀덮개를 하고 이삼일은 천으로 덮어 습기를 머금게 해주면 뾰족뾰족 싹이 올라온다.
못자리 내는 일은 적어도 하루에서 이틀 온종일 써야한다.
저정도 못자리라니, 누가보면 엄청 많이 심나보다 하겠지만 텃밭 이랑 수준이다.
적어도 할 일은 똑 같으니 올해는 심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일이 고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텃논에 쫙 퍼진 미나리!! 덕분에
그냥 미나리꽝으로 놔두고 편히 가자 싶어서...
어차피 도정 귀찮다고 미루다보니
지난해, 지지난해 낟알도 거의 그대로다.
그래도 꼭 하게 되는 건, 쌀도 그렇지만 볏짚 때문이다.
메주 쑬 때, 묶어 걸어놓을 때, 청국장 쑬 떼도
볏짚이 불러오는 착한 곰팡이가 있어야 하기에 꼭 필요하다.
이리하여 올해도 또 벼를 심는다.
사실, 미나리는 핑계고, 올해 새로 밭을 얻어 더 주저했다.
강아지가 밀싹을 정말 좋아한다. 고라니만큼이나 맛나게 먹는다.
겨울에 심어놓은 밀싹 옆으로 빈틈없이 풀들이 자라고,
마늘밭은 환삼덩굴 밭인지라 이걸 어찌 감당할 지 겁이 났다.
걍 하면 되는데, 괜히 하지는 않으면서 마음에 부담만 커져 산으로 나물하러가는 기쁨을 놓칠 뻔도 했다.
(사실 언제부턴가 나물에 맘이 식었다.)
지천에 새로 올라오는 생기넘치는 뫼들나물을 뒤로 한채,
김치와 김만으로 밥을 먹는 나를 보며 문득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래! 밭은 되는 만큼 하면 되는거지! 하고
이 맘때 놓치면 일 년 기다려야하는 산나물 찾아 산으로 갔다.
이웃 어르신께서 우리 뒷산에 고비가 있다하여 가보니 정말 몇 개가 보였다.
몇 해 전 고모댁에 갔다가 엄청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따왔다.
고비는 고사리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래, 맨 왼쪽사진에서
위에 것은 숫고비, 아래것은 암고비라고 한다.
삶으면 저렇게 진한 분홍색 물이 나오는데
이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물을 계속 갈아주며 담가두어야 독성이 빠진다고 한다.
고사리 삶은 물이 벌레끼는데 좋다하여
(고사리에는 벌레가 끼지 않는다.) 고비삶은 물도
과일나무에 뿌려주려고 저렇게 모아두었는데 저런 색이 나오는 나물은 처음 본다.
마지막으로 올해 좋아하게 된 음식 몇가지 소개한다.
(씨 심은 하늘땅살이 사진이 거의 없다...)
어린 쑥을 잘라 밥솥에 얹어 지으면 맛난 쑥밥 완성이다.
꽃나물이라고도 하는 삼잎국화는 꽃피기 앞서 세 번 정도 베어 먹을 수 있다.
데쳐서 소금,기름에 묻히면 시금치랑 비슷한데 무척 맛나다.
김밥에 시금치 대신 넣어도 좋다.
겨우내 소금물에 절여 둔 무를 잘라
물에 담가서 먹거나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정말 좋다.
지난해에는 흰골마지가 나서 먹으면 안돼는 줄 알고 버렸는데
물에 헹궈서 먹는거라 해서 그리 해보았다.
얼추 어머니가 여름에 보내주시던 무짠지랑 비슷한 맛이 났다.
한여름 삼복 더위에 밭일하고 점심 생각 안날 때
물말은 밥에 저거 얹어먹으면 최고다.
직접 만들어보니 냉장고없던 시절 조상님들이 왜 짠지를 해먹었나 알겠다.
무짠지말고 오이짠지도 하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데
워낙 오이를 좋아해서 (나오는대로 그자리서 다 먹기 때문에) 할 수 있으려나 싶다.
또 하나는 새 밭에서 캔 어린 고들빼기로 담근 고들빼기 김치다.
여지껏 여름에 왕고들빼기 잎으로 담근 잎김치만 먹어봤다.
역시 이웃할머니가 밭뒤집기 앞서 고들빼기를 캐시며 김치담그면 좋다하시길래 소금물에 이삼일 담가 쓴 맛을 빼고 담가 보았다.
쌉싸름한 게 이 역시 밥도둑이다.
지난해 강아지가 알려준 더덕자리를 기억했다가 다시 가보니 새 더덕이 올라와 있었다.
파는 것에 비하면 새끼손톱 만한 게 보잘 것은 없지만
향도 살아있고 맛도 좋고 약성도 좋을 듯하다.
쿵쿵 찧어 살짝 구었다가 고추장 양념에 발라 먹거나
그마저 귀찮을땐 그냥 생으로 먹는다.
오른쪽 사진 윗쪽에 푸른게 보이는 삼잎국화인데 맛이 좋다.
역시나 김장김치 떨어진 뒤 무짠지는 늘 밥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더덕도 고들빼기도 작은 뿌리를 하나하나 씻어 벗기며 흙 벗겨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결코 만만한 반찬이 아니다.
나물도 비안오는 건조한 날씨 놓치지말고 종류대로 말렸다가 뒤집어주는 수고를 반복해야한다.
뭐든 그냥 되는 건 없다.
그러느라 요새 우리집 뒷창고는 이 글 제목대로다.
나는 나물다듬고 박새는 벌레주어다 새끼들 먹이고, 강아지는 땅파다 잠자고...
별 것 아니지만 평화롭고 소중한 나날.
고추싹과 상추싹, 오른쪽은 잘자라고 있는 마늘
그러는사이 고추도 감자도 상추도 싹을 냈다.
입하에 내리고 있는 이 비는,
밭에다 또 어떤 기적을 뿌려놓을까.
첫댓글 아가 새의 콧구멍과 입. 참 귀엽네요.
어린 생명의 공통점이에요. 존재만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글 읽으며,
밭에서 못자리 내는 일, 고비 또는 고사리 삶은 물 활용법 배워요.
새들은 이렇게 다 큰 뒤 독립해 훨훨 날아갔어요.
다음 날적이에 올릴, 새들이 뒷통수 친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승화 다음 날적이 기다리리다~
이렇게 재미있게 사시는군요?
무 짠지 여름에 시원하게 한 사발 좋고,
향긋한 미나리 무침도 봄 입맛을 돋우고^^
우와, 며칠 전 고비라는 걸 처음 보고, 물이 빨갛대서 엄청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났네요!
무근 오미자청 인줄 알았어요~~~ !
하얀 꽃잔디가 참 예뻐요.
참 평화롭고 소중한 나날~
글과 사진으로 맛보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