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4박 5일간의 수도지맥종주(2007년 5월 28일부터6월 1일까지)
修道支脈 이라함은 白頭大幹 대덕산(1209m)아래 968.0m봉에서 분기하여 국사봉(875.1m)
수도산(1316.8m) 단지봉(1323.7m) 의상봉(1046.2m) 오도산(1133.7m)을 거쳐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인 뒷감나루터 펌푸장까지 105.8km의 산줄기를 말함인데 실제거리는 150km이상이라 보아진다.
1차 수도지맥 종주는 3번에 걸쳐 12일간 夫婦山行으로 2005년 10월 달에 비박 및 텐트로 마친 적이 있으나 이번 지맥 탐사 팀의 要請으로 그 길을 다시 역주행하여 종주 하게 되어 그 감회가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만남의 날 (5월 28일 맑음)
3일간의 백두대간을 마치고 부산에 도착하니 11시다.
남해로 올수도 없거니와 내일부터 시작되는 수도지맥에 참여 하기위해 영도 처갓집에서 자고 8시 30분 동래 명륜 지하철 역 앞에서 부산팀을 만나기로 했기에 7시 20분 집 을 나섰다.
平生休家를 받은 후 첫 산행은 백두대간으로 시작했다.
12시경 경북 고령 군청에서 춘천의 김우항씨를 만나기로 했다.
서울의 박성태씨는 사정으로 6시 도착 하겠다기에 우리는 고령의 진산인 美崇山(733.5m)과 불당산(459.0m) 주산(310.3m)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내 상설시장을 둘러보고 돼지국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인절미 10.000윈 어치를 사서 간식으로 준비했다.
고령읍 학생체육관아래 공영 주차장에 차 한대를 주차해 놓고 중화 저수지 옆으로 한참을 오르니 신리 저수지를 왼쪽에 끼고 도는데 작은 고기떼가 물 위로 뛰어 오르는 모습이 너무나도 浪漫的이었다.
조금 오르니 임도 포장공사로 인해 경북과 경남의 도계이자 합천군 야로면과 고령군 쌍책면의 면계이기도 한 라상치 까지는 못 가고 약 500여m아래에서 걸어 올라갔다,
미숭산 등산은 1시 13분에 시작 30여분 오르니 아래 신리 저수지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땀을 닦았다. 農村의 아름다운 風景이 저수지 물에 반사 되는 거 같아 눈 아래 깔린다. 산딸기가 제법 익어 우리를 유혹 한다, 크고 잘 익은 놈 몇 개씩만 따 먹으면서 계속 전진. 이산 저산 에서는 할딱 벗고 새가 메아리를 주고받는다.
50여분 만에 정상에 도착 정상석 남서쪽엔 산불 감시 초소가 있고 가까이 보이는 가야산(1432.0m)을 바라보고 미숭 산성을 따라 주산을 향해가는 산길이 아주 좋다.
미숭 산성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인 상원산에 위치한 것으로 고려 말 정몽주의 문인 안동장군 이미숭이 이태조군과 접전하여 상원산에 石城을 쌓고 대항하다 순절한 곳으로 이후 미숭산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望鄕臺. 將軍水, 동,서 남문등 그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고 1960년 고령 보존회서 갑검릉을 발굴한바 갑의창, 고려자기 등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1.7km정도 내려오면 반룡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나무 의자도 여러개 있으며 완전 소나무 산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렇지만 바르게 자라는 나무는 잘 안 보이고 꼭 국수 삶아놓은 것 같은 꾸불꾸불한 나무지만 시골사람 마냥 된장 맛이 풍기는 덧 한 기분에 정감이 간다,
3시 35분 팔각 정자가 있는 곳이 지도상 불당산(459.0m)이며 오래되어 철거할 계획으로 있어 오르지 못하게 계단을 잘라 버렸다. 넓은 등산로엔 벚나무를 심어 버찌가 새까맣게 익어 있어 나이와는 상관없이 너도 나도 입술이 검게 변하도록 따 먹기도 했다.
벚나무의 굵기로 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등산로를 잘 가꾸어 온 것이다. 높은 곳 까지 飮水臺도 멋지게 만들어 놓고 이용하는 사람도 제법 될것 같았으며 가까운 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 한다고 한다.
4시 50분 主山(310.3m)에 도착 했다 높은 산은 아닐지라도 가팔라서 힘이 제법 든 다
간단한 운동 시설과 나무 의자도 여러 개 보이며 산뽕나무의 야생 오디가 새까맣게 달려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어찌하여 안 따 먹는지 이해가 안 간다,
창녕 301 1981재설 삼각점이 어느 郡守의 기념식수한 나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청소 해 놓고 왔다. 그 옆에는 제 93호인 고적 고령 主山城碑가 뿌리 채 뽑혀 넘어져 딩굴고 있는데 반해 기념식수한 표석은 잘 박혀 있었다.
내려오는 길엔 이상한 삼각점 같은(상형문자 같은 방향 표시물 같음)것이 있어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3.1정신 기념탑과 부도가 있는 영천 샘터 아래로 내려오니 충혼탑도 있고 내려오는 포장길은 폐타이어로 꽃을 심어 깨끗하게 해 놓으니 이색적이고 보기도 좋았다.
고령군 사적 안내소가 있는 공영 주차장에 내려오니 G.P.S가 11.2km를 걸었다고 표시해 준다, 손자 손녀들의 수상소식도 들어오며 아울러 박성태 씨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그린 목욕탕 여관 큰방을 하나 빌려 40.000\에 들었다.
수도지맥 종주 첫날 (2007년 5월 29일. 맑음)
구 간 : 청덕교 -성산(250.7m) - 솜등산(270.5m)-기미재
起床이나 宿食 모두는 전과 같다.
수도지맥 종주는 夫婦山行으로 이미 마친 후 이지만 다시 하려고 준비하니 두려움도 생기고 상당한 기대감도 있지만 당근 갉아 먹다가 놀란 토끼처럼 움 추렸던 몸을 다시 펴 보기도 한다.
移徙(이사)한다고 근 한 달 동안 산을 멀리하고 살다가 산을 간다니 염려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 5月을 잔인한 달(月)이라 했다. 정말 나에게는 와 닫는 말이었다.
30여년을 해오던 사업을 그냥 두고 접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슴 아픈 일이였고 신체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과 出血이 있었다.
家族과 社會에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다. 이제 모두 남에게 빚 진거 전부 갚아버리고 무거운 짐 내리고 가볍게 살고 싶어 그랬다.
백두대간에 연 이어 수도지맥에 들어가는 종주자의 마음이 가볍지 만은 않다.
지난 4월 11일 처음으로 재선충 병에 感染된 소나무가 발견됨에 따라 서울시도 방제 비상이 걸렸다.
山林廳은 이날 서울 노원구 공릉2동 태릉의 소나무 고사목 가운데 12그루가 재선충에 감염되었다고 밝혔다.
또 사적 207호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지역에서도 소나무 52그루와 잣나무 12그루 등 모두 64그루가 재선충 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 되었다.
산림청에서는 5~8월 사이 재선충을 媒介하는 솔수염 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 중 감염된 23만 그루 중 9만 그루를 매개충이 우회하기 이전인 4월 말까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방제작업을 완료하겠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이 防除事業에 적극 협조해야 할 줄 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기본 수종인데 만약 재선충병의 확대를 막지 못 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따라 정부에서도 營林計劃 을 좀 더 확대 편성하여 수종갱신과 아울러 경제수종으로 천천히 교체시도 하여야 할 시기라고 여겨진다. 이미 이곳 합천군 쌍책면과 청덕면 일대에도 많은 감염목을 벌목하여 훈증처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을 뒤로하고 지난날 우리 부부가 더듬어 내려왔던 길을 오늘은 종주군 5명이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그때는 왼쪽 황강의 모래톱에 뿌리내린 나무가열대지방의 우림 지역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전부 河上 정비하여 한그루도 안 보인다.
청덕교 橋脚 양쪽에 박혀있는 다리이름이 적혀있는 동판이 없어졌다. 황강도 푸르고 5월의 신록도 푸르러 나의 몸과 마음에도 푸른 물이 들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을 뒤로하고 지난날 우리 부부가 더듬어 내려왔던 길을 오늘은 종주군 5명이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그때는 왼쪽 황강의 모래톱에 뿌리내린 나무가열대지방의 우림 지역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전부 河上 정비하여 한그루도 안 보인다.
청덕교 橋脚 양쪽에 박혀있는 다리이름이 적혀있는 동판이 없어졌다. 황강도 푸르고 5월의 신록도 푸르러 나의 몸과 마음에도 푸른 물이 들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묵은 녹 그릇을 다시 닦아두는 뜻과 같이 다시 걸어보는 수도지맥은 지난번 걸어둔 나의 시그널이 나를 반겨준다. 돼지 목욕탕을 지나 288봉을 오르는 길이 힘이 꽤 나 든다. 우측으로 보이는 진양기맥의 한우산(836m)과 우봉지맥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4그루의 소나무 가있는 산불감시초소 옆에서 점심을 먹은 후 도로를 따라 1km이상 가게 되며 고개아래엔 환경위생사업소가 있는 기미재에 2시 34분 도착하고 차량 회수 시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이 있는 취수탑에 도착하니 3시 28분이다. 사실상 오늘의 산행을 마친셈이다.
수도지맥종주 둘째날 (2007년 5월 30일, 맑음)
구 간 : 기미재(907지방도로)-시리봉(408.0m)-지랫재-萬代山(688.1m)-매화재-산주리
5층 複合建物 그린레져회관 5층 여관에서 일찍 나와 옛 가야 古墳群이 있는 곳을 지나 쌍림면 귀원리 삼거리를 통과하여 海印寺 가는 길로(26번국도)가다보면 왼쪽으로 큰 돌비석이 서있다.(高嶺申氏始祖碑)여기서 마을길을 따라 5분정도 차를 타고가면 고령신씨 세덕비가 있는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는 다시 돌아 나와 기미재로 갔다.
1차 종주 때 잘못 내려와 다시 올랐던 기억이 나는 구간이다. 6시 54분 309.0m봉에 올랐다.
합천 306 1981재설의 삼각점을 확인하고 돌아 나오는데 길이라곤 하나도 없다.
1시간정도 운행하자 임도가 끝나는 지점이다. 고령군 쪽은 임도가 닦여 있으나 합천군에서는 아직 연결을 못하고 있다.
8시 50분 시리봉(408.0m)이다. 바위 전망대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직접 느낄 수 없고 돌아 내려오면 바위 절벽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간벌한 나무가 걸리적 거리는곳을 40여분 내려오면 큰 재인데 이곳이 전두환 대통령의 부모님 묘소가 있는 소공원 지역이다. 헬기장도 3개나 되며 산 전체를 조경도하고 오솔길마다 아스콘으로 포장 했으며 지금도 2명의 인부가 기계로 제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옛날의 榮華를 마음속으로 느껴보며 희미한 迷路 같은 길을 요리조리 빠져 나오자 지랫재에 내려섰다.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뚫여 오가는 차가 없지만 우리가 소공원에 텐트 했던 곳을 한번 바라보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쉬지도 않고 바로 올라갔다.
12시 34분 노태산(498.0m)에 도착 했으나 아무 특징 없는 그저 그런 산이었다.
궂이 있다면 옻나무가 많다는 것뿐이다. 벌써 옻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걸 보면 강력한 번식력에 오히려 두려움이 생길 정도이다.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나무 의자도 중간 중간 있고 길도 아직 탄력이 있는 거 같아 걷기가 수월한 느낌이다.
만대산(688.1m)과 노태산을 도는 회기산행 코스인 모양이다. 만대산 에서 조금 내려오자 바로 눈앞에 오도산이 멋지게 보인다. 두무산 역시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으나 마음씨 좋은 사람 같이 모가 없어 산 맛이 날 것 같지 않은 펑퍼짐한 산이다.
합천 24 88 복구 삼각점을 본 후 1시 50분 통과했다. 매화재를 거쳐 고령신씨 세덕비가 있는 이곳에 내려오니 3시 4분이다.
거북등에 세운 큰 비석도 웅장해 보이지만 거북이 살아있는 느낌이드는 아주 잘 다듬어진
조각 작품이었다. 건너 쪽은 重裝備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사방 사업인지 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장비 소리만은 대단하게 울린다. 3시 40분 오늘의 산행은 이곳에서 마치고 차량회수를 위해 또 떠나야한다.
종주 3일째(2007년 5월 31일 맑음)
구 간 : 산주리-마령재-싸리터재
오늘의 일과도 전과 동일하다. 최 회장님께서 저녁에 슬쩍 나가시더니 큰 수박 한통을 사 들고 오시면서 우리들에게 부담 안 주시려고 여관 주인이 주더라면서 쟁반과 칼까지 챙겨서 들고 오셨다. 그러냐 고는 했지만 우리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인가 눈치만 남아있는우리가
아닌가 !
감사히 잘 먹었다. 당분과 수분 섭취는 충분 할 것 같다, 덕분에 여관일 보는 중국 아가씨까지 충분히 나눠 먹었으니까. 첫날은 비가 많이 왔다 천둥번개를 치며 쏟아지는 소낙비를 우리는 다행히 산행을 마치고 이동하는 그 시간에 국지적으로 온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고랑물이 불어날 정도이며 뒤 따라오는 김우항씨는 가만히 서있으면서 세차했다고 자랑한다.
합천을 넘어오니 고령에선 조금 오다가 말았다고 하는데 소나기의 위력이 대단했다.
한 여관에서 3일을 계속 이용했다. 목욕탕을 겸 한곳 이라 몸 닦기가 좋았고 동시에 같이 들어 갈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산주리에서 매화재로 가는 중간 암자 앞엔 아주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암자를 지나자 진입로엔 풀이 높게 자라 많은 이슬을 머금고 있어 들어서자 말자 바지는 물이 줄줄 흐르며 신발이 벌적 거린다.
산 다래와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며 짙은 향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토곡산(644.0m)정상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다. 꺽 이는 지점마다 내 시그널이 잘 걸려있어 마음 흐뭇하다.
先踏者로서의 임무를 톡톡히 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雲海로 인한 아래 세상과 위 세상이 구분되어있으나 우후죽순처럼 운해를 뚫고 올라온 오도산이 고개를 살짝 내 밀었다가 다시 구름 속으로 숨바꼭질하는 연출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신비스러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토곡산에서 잘나있는 등산로를 따르니 산불감시 초소 가있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초소 지붕엔 피뢰침도 설치되어있고 잠궈 놓은 자물쇠는 비닐로 감아서 빗물이 못 들어 가겠끔 세심한 관리 상태를 보면 근무자가 상당히 사려 깊은 사람인 것 같다. 자칫하다가 관기리로 직진할 뻔 했다. 수정하여 길을 찾는데 G.P.S가 없다면 아주 힘들 뻔 했다.
그래도 내려가니 아름다운 강산 시그널이 고생했다며 맞아줄 때는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생기는 거 같았다. 드디어 마령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비가 올 것 같아 승강장에다 텐트한곳이라서 기억이 새롭다. 비가 오진 않았지만 좀 아늑한 맛은 있었으나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시끄러워 혼났다. 오름길이 어지럽다. 수풀이 짙어 앞이 잘 안보이니 길 찾아 가기가 힘이 든다. 옻나무와 가시는 사람을 자꾸만 위협하고 그중 잘 익은 딸기는 날 잡수시요 하니 자꾸만 운행이 느려질 요건뿐이다.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일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날씨가 상당히 무덥다. 우리부부가 종주 할 때는 10월이라 그런지 이렇게 숲이 짙질 않았는데 그사이 정말 대단하게 많이도 달라졌다. 그래도 그 숲속에 간간히 나타나는 나의 시그널이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기쁨까지 주는 것 같다. 길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하긴 해도 3시 10분 싸리터재에 내려와 오늘의 산행을 마쳤다. 시간의 여유가 좀 있어 합천댐 상류를 한번 돌아보고 차를 회수하러갔다.
수도지맥 마지막 날(2007년 6월 1일. 맑음)
구 간 ; 싸리터재-오도산(1133.7m)-두무산(1038.4m)-산재치
오늘은 5월 정기산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 밤부터 일요일까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는데 혹시나 싶어 일찍 서둘렀다. 묘산면 사무소 앞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을 겸한 집에서 방 2개 에다 40.000\에 들기로 했다. 길은 잘나있다. 오른쪽 석산에서도 일찍부터 작업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처 난 산줄기가 보기는 싫었지만 저기서 생산되는 골재가 우리지역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950봉 직전 바위 전망대에서 미녀봉과 숙성봉을 바라보다 박성태씨가 G.P.S가 없어졌다며
찾는데 우리도 같이 뒤졌지만 결국 못 찾고 말았다. 그동안의 산행 자료가 입력되어 있는데 본인은 얼마나 서운하며 갑갑하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찾는 것을 포가하고 운행을 시작했다.
미녀봉 아래 휴양림에서는 많은 자연을 훼손하고 있었다. 절개지 를 손질은 했지만 뭣 때문에 산을 깍 아서 또 집을 짓는지가 의문스럽다. 자연을 보호하고 등산객 출입은 막으면서 앞과 뒤가 같을 수는 없지만, 행정의 질서는 같아야한다고 보아진다.
9시 18분 오도산을 오르는 콘크리트 도로에 내려섰다.
오도산 정상은 K.T부산통신망 오도산 중계소이며 무인 시스템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어 그 앞에서 빵으로 간식을 먹은 뒤 사면 벼랑길을 돌아 내려가는 길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맨 후 겨우 바로잡아 내려오는 헤프닝도 있었다.
오를 땐 하나도 고생 안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12시 25분 두무산 정상에 올랐다.
그전에는 거창군 극동점이라해서
E 128도 05분55초
N 35도 41분28초
1038.4m 無心 이란 표지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된 건지 흔적만 있고 찾아 볼 수가 없어 서운했다.
비계산(1125.7m) 가야산(1432m) 의상봉(1046.2m)의 정상만 구름위로 올라온 천상의 세상이었다. 합천엔 양파가 많이 생산된다. 우리 남해의 마늘처럼 많지는 않아도 아무턴 많다. 한창 공사가 종반에 들어있는 골프장을 어수선하게 지나 1시 40분 도로개통 기념비 가있는 산제치에 내려섰다. 금년 10월 준공을 한다는 아델스코트 칸츄리클럽 골프장도 마무리 공사인 잔디 작업이 한창이고 일부는 아주 좋은 그린이 되어있는 곳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지나온 곳은 88고속도로위를 통과했다. 이로서 1차 수도지맥종주 정기산행을 마친 것이다. 이번에 경비는 다른때보다 10.000\을 더한 110.000\씩을 부담했다.
40년 만에 전면 개방된 청와대 뒤 북악산(백악산342m)이 지난 4월 5일 10시를 기해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구간은 창의문(자하문)에서 백악나루, 곡장 숙정문을 거쳐 와룡공원(홍련사)에 이르는 북악산 4.3km전 구간이다. 북악산은 경복궁 뒤쪽에 위치 일명 백악, 면악(面岳), 공극산(控極山)이라고도 하는 서울의 主山이다.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사건인 1.21사태이후 40년 동안 출입이 전면 통제 되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열리게 되었다고 말 했다.이렇게 굳게 닫힌 높은 벽도 헐리는데 어찌 백두대간은 마음대로 갈수 없단 말인가. 국립공원이라고 막고, 사찰이라고 막고, 휴식년제라고 막으며 대간종주 하는 사람을 무더기로 범법자 취급하니 어찌 보면 한심한 法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청와대도 전면 개방이 아닌 이상 백두대간도 종주길만 개방하면 될 것 아닌가. 어찌 생각해 보면 곰만도 못한 산줄기 찾는 종주자 같지만 우리 모두 힘 냅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