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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알바트로스
제51차 정기합평회
(2023. 5. 18.)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삶과 죽음의 경계 | 이미란 | 김미숙 |
2 | 갈림길 단상 | 채정순 | 김영희 |
3 | 녹 | 서소희 | 김정래 |
4 | 신선놀음 | 이시언 | 김정실 |
5 | 사흘의 청춘 | 김 경 | 김현지 |
6 | 찬란한 해넘이를 위하여 | 김미숙 | 노아영 |
7 | 저지르다 | 노아영 | 백금태 |
8 | 찢어지겠다/쌍코피 터지겠다 | 엄옥례 | 변미순 |
삶과 죽음의 경계 / 이미란
시월 마지막 토요일은 친정 산소 성묘 가는 날로 정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오빠 내외와 함께 선산을 오른다.
선산에는 어귀에 둥그런 잔디 묘원을 만들어 증조부모, 고조부모, 산소를 모셔놓고 있다. 들머리 아래쪽 구석에 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엄마,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 떠난 큰오빠 산소가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다. 동생도 지난 삼월 앞지르기를 하여 산 중턱에 일찌감치 한자리 차지하고 누워있다.
마을의 경계를 올라와 그 묘원에 발을 내딛는 순간 침묵의 공간이 펼쳐진다. 오빠와 언니도 자기들 생각에 빠져들어 침묵이다. 주위에는 산새 울음소리조차 뚝 거치고, 산바람이 잠들어 나뭇잎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 정지 상태다. 죽음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사방이 적막강산이다.
마을에서 산으로 한 발짝 들여놓았을 뿐인데 주위에 무덤만 여기저기서 동그랗게 마을을 이루고 있다. 동그란 침묵의 집들이 죽음의 세계에서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동네 법대로 침묵으로 대답하며 산꼭대기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라가는 길옆에는 동그란 이글루 같은 산소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저승 마을을 지난다. 길 가장자리에는 밤이 수두룩하다. 구두약으로 윤기를 낸 듯이 빤짝이는 벌거벗은 갈색 알밤, 밤송이를 업고 숨어 있는 조신한 밤, 지천으로 깔려있다. 아무도 줍지도 않고 관심이 없다. 다람쥐도 이 동네는 움직이지 않고 먹지도 않나.
어릴 때는 알밤 한 톨 발견은 행운이었다. 알밤이 가시밭에 있어도 손이 찔려 피까지 흘려가며 주웠다. 그냥 맨땅에 저렇게 떨어져 널브러져 있다니. 살아 움직이는 삶의 세계 속이 아닌 정지 상태인 죽음이 여기저기서 좌정하고 있어서 그런가.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서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다.
어떠한 소리도 없는 침묵의 세계 속을 초로의 세 노인이 묵언 수행하고 있다. 앞서간 분들의 죽음의 세계를 생각하는지, 앞으로 다가올 본인들의 죽음의 세계를 그려보는지 말이 없다.
한참 오르니 부모님 산소의 봉분이 댕그라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반긴다. 외출 잦으신 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두 손 꼭 잡고, 두문불출이다.
“엄마, 아버지를 꼭 붙잡고 있으니 반분은 풀렸겠어요.”
이 집도 무단으로 들고 날 수 없다. 멧돼지 공격을 막으려고 쇠창살로 둘레를 빙 둘러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대문을 열 듯 빗장을 열고 들어간다.
준비한 주과포 酒果脯를 차려놓고 인사를 올린다. 무뚝뚝하던 엄마가 외로웠던지 반갑다고 상냥스레 웃으며 인사를 한다. 잔디와 봉분은 주위의 울타리 덕분에 깨끗하게 품새를 자랑하고 있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득하다. 멧돼지라도 왔으면 하는 듯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조용하고 우아한 천당에 지내던 분이 왁자지껄한 지옥을 가 보았다고 한다. 유황불이라도 좋으니 사람 사는 것 같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옥을 가겠다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외로움이 담배를 피우는 것 보다 몸과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던데. 너무 조용하다.
여기는 예전에 매일 소 떼를 풀어놓고 소를 먹이러 다니며 소몰이로 시끌벅적하던 장소였다. 동네 소들을 함께 먹이러 다녔다. 그때는 살아있는 장소로 아이들 웃음소리와 소의 워낭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감자 사리와 밀 서리로 얼굴에 검정으로 칠하고서도 맛있게 먹으며 행복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 살아있는 삶의 장소였다. 지금은 아이 소리는 고사하고 소의 워낭소리도 없는 침묵의 늪인 죽음의 세계다.
어릴 때 소몰이를 하여 소란스럽게 뛰어가는 소들의 뛰는 소리, 심하게 흔들리는 워낭소리, 시끌벅적 따라 뛰어가던 친구들 고함이 환청으로 들린다. 몇 십 마리 소를 아이들이 뒤에서 회초리로 휘몰고 소는 요란스러운 소리와 먼지를 내며 우르르 뛰어 집으로 가던 그 길이다.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소리의 주인공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조부모님, 종조부모님들 산소를 뵙고 내려오니 아직 잔디도 영글지 않은 동생 묘가 있다. 상석에는 먼지 앉은 반병 남은 소주병과 종이컵이 우두커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동생 친구들이 왔다 갔구나. 친구들의 방문에 즐거웠던지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던 아이가 묵언 수행 중이다.
코로나로 발병으로 마지막 여행길을 배웅도 못 했다. 앉으나 서나 막내아들을 걱정하던 엄마가 자기 옆에 두고 보살피고 싶었나 보다. 아직은 이 동네 오기는 이른데. 엄마, 아버지, 조부모님들, 큰오빠, 그 외 여러 친인척이 반가워했겠다. 인정스러운 아이였으니까. 힘들고 어렵던 이생의 시간은 잊고 편안하게 영면하거라. 자네가 술 마시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지만, 술 한 잔 올리니 마시고 편히 쉬거라.
마지막으로 큰오빠께 눈물로 술잔을 올린다. 오빠는 생각만 해도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오빠야, 오빠야가 그리워 가슴을 치던 엄마, 아버지, 동생까지 모여 외롭진 않나?”
젊은 군인 아저씨 우리 오빠가 늙으신 부모님과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동생을 알아나 보았을까. 이 걱정 저 걱정 오만가지 걱정으로 머리를 흔들며 이 침묵의 동네를 떠난다.
묘원에서 딱 한 걸음 밖으로 걸어가니 마을이다. 낯선 사람이라고 개들이 기를 쓰며 요란스럽게 짖는다.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른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울고 아기 엄마가 고함을 친다. 삶의 세계다. 소리는 살아 있음의 표시다.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 경계는 뚜렷하다. 멀고 아득하게 여겨지는 두 세계의 경계선이 단지 한 발짝 차이인 것이 많은 생각을 불러와 머리가 복잡하다. 이 시끄러운 소리들은 침묵 중이던 죽음의 세계 경계를 떠나 소리가 요란한 삶의 세계로 왔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저 울음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왜 이리 반가울까. 나는 아직 삶의 세계 여행을 더 하고 싶은 모양이다. (15)
갈림길 단상 / 채정순
1사뭇 퍼붓던 소나기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갈 방향을 잡느라 이리저리 찢어진다. 걸어서 사십여 분 거리를 어떻게 갈까 재는 내 마음과 닮았다. 길을 나설 때마다 늘 맞닥트리는 갈등이다.
2주로 운동 삼아 걸어간다. 때로는 대중교통도 이용한다. 무엇으로 가느냐는 그날 몸을 살핀다. 지금은 시간은 넉넉하지만 팔다리가 말썽을 부린다. 다리가 어제 종일 밭일을 시켰다고 천근만근이라고 부은 소리를 지른다. 팔도 과일 몇 개 든 가방이 무겁다며 보챈다. 오늘은 팔다리의 고생을 들어주려 차를 타기로 한다.
3먼저 요금이 비싼 택시는 제친다. 버스와 지상열차의 정거장은 같은 방향으로 오 분쯤 걸어가면 나온다. 걸리는 시간은 둘 다 비슷하다. 버스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열차는 요금이 무료이다. 거기까지도 두 갈래다. 하나는 느티나무가 우람한 길이고, 또 하나는 건물이 즐비한 길이다.
4가로수 길로 향하려니 건물 쪽이 돌아 보인다. 건물 길로 가려니 초록 잎들 몸짓이 눈에 삼삼하다. 이사 와서 처음에는 공기가 맑고 소음도 줄여 주는 가로수 길만 다녔다. 햇살이 쬘 때는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주고 비가 와도 반쯤은 우산 역할을 해 주었다. 한겨울 추위도 건물 숲 보다 나았다. 가을날에는 낙엽이 신발 코끝에 자박자박 차인다. 그 운치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5차츰 시간이 지나자 눈이 열렸다. 자동차가 골목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 신경을 곤두세워도 건물 길 장점이 보였다. 새벽이나 밤에는 불빛이 훤하다. 사람이 쉼 없이 다녀서 무섭기가 들 하다. 또 반찬이 떨어지거나 생필품을 살 때도 편하다. 오가는 길에 시장에 들리니 시간이 절약 되었다.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다르다.
6찌는 더위나 맹추위가 찾아와도 건물 길로 간다. 마트나 무인 뱅크 오아시스에 들려 체온을 갈무리한다. 큰비나 천둥번개가 몰아쳐도 건물 길로 다닌다. 계단이나 가게 차양 밑에서 피하거나 우산을 사기 위해서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나무 갱이나 이파리들이 떨어져도 가로수 길로 간다. 건물 길에는 난데없이 공사 용품이나 간판이 떨어져서 위험하다.
7구름은 이제 제각각인 방향으로 신나게 퍼진다. 회백색 덩이들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하늘의 살점이 새파랗다. 나도 질세라 얼른 나무 밑으로 스며든다. 상쾌한 바람 향을 맡으며 사붓사붓 걷는다. 인도 블럭이 은은한 미소를 보낸다. 가까이 가서 탈 차를 정하자 마음먹는데 웬 주르르 소낙비가 쏟아진다. 화들짝 놀라 담벼락에 다가가 풀썩 주저앉는다.
8졸지에 물 폭격을 맞은 인조 원피스로 생쥐 꼴이 된다. 풋 서리 길을 걸은 듯 신발 또한 질척거린다. 이건 분명 하늘의 짓은 아니라 올려다본다. 바람에 가로수가 이파리에 머금었던 빗물을 털어내고 있다. 언젠가 새똥을 맞은 적은 있어도 이런 헤프닝은 처음이다. 나뭇잎이 우산 역할을 하고 난 다음의 빗물을 짐작하지 못한 탓이다.
9하인리히 법칙이 떠오른다. 그는 보험회사란 직업상 수많은 사고를 접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큰 사건은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오지 않는다는, 반드시 크고 작은 조짐을 보임을, 나도 여태껏 삶의 마디가 생길 때마다 암시를 받았다. 수호천사가 부지런히 꿈과 환영으로 여러 번 일러 주었다. 하지만 아둔한 내 머리는 늘 당하고 나서 깨우친다.
10전쟁이 일어나려면 그 징후가 있다. 멀쩡하던 비석이 눈물을 흘리고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고, 가만히 보면 지진이나 큰비가 오는 자연 현상도 전조 증상을 보인다. 지진이 나려 할 때는 화산이 폭발하거나 땅이 부풀어 오르며 큰 비가 닥칠 때도 굴뚝 연기나 잠자리, 제비가 땅 가까이로 날고 민들레도 꽃잎을 열지 않고 개미도 줄을 지어 바삐 이동한다.
11갈림길에서 갈등할 때 마다 로버트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을 읊조린다. 그 길이 있어 내가 가고 그 길들 또한 나를 부른 셈이다. 오늘은 더더욱 선택의 중요성과 다른 기회를 포기하게 된 회한을 겪는다. 이 길로 가면 저 길의 좋은 것을 놓칠 것 같고 저 길로 가면 이 길의 위험을 피할 것 같으니까
12건물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경황으로 미루어 이 그림은 운명 같다. 운명이란 신의 그물망은 비켜 갈 수가 없다. 그러기에 건물 길로 들어섰어도 별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 불행을 피했다 싶지만, 피한 길에 더 큰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니까.
13길은 수십 가지지만 그 길을 지나 목적지까지 가자면 고난은 겪어야 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기다린다. 바람과 먼지, 눈비가 몰아치는 것은 타고난 원죄로 기본이다. 문제는 필연인 죽을 지경인 운명이다.
녹 / 서소희
1) 창고 구석, 컴컴한 곳에 낡은 자루가 놓여있다. 자루를 풀자 까맣게 녹을 입은 놋그릇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하다. 녹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릇은 황금색일 때보다 더 당당해 보인다. 그리고 찬란하다.
2) 유기는 자주 닦아주고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세 표면에 산화가 일어난다. 또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도 쉽게 녹이 쓴다. 녹 쓴 놋그릇은 어머님이 사용했던 제기다. 어머님을 처음 본 것은 사진을 통해서다. 아니다, 결혼식 날을 잡고 꿈에서 먼저 만났다. 짧은 파마를 하고 나타나 ‘아들과 결혼해줘서 고맙다’ 했다. 정말 영혼이 존재하는 것일까. 꿈은 마치 생시 같았다. 빼곡히 녹이 쓴 놋그릇에서 어머님의 삶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3) 삶에는 분명 복병이 있다. 복병의 기습은 순식간에 삶을 허물어 버린다. 어머님에게 복병은 불이었다. 당신은 살아생전 전 재산이 소멸되는 두 번의 화재를 겪었다. 절망의 나락에서 당신이 몸을 일으켜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상이었다. 하루를 살기위해 꼬박 하루를 걸어야했던 삶이다.
4) 행상이 잘되는 날은 약간의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그 돈을 악착같이 모아 계를 만들었다. 계주가 되어 첫 번째로 계를 탔고 불탄 집을 고쳤다. 비바람이나 피하고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 그나마 사는 것에 힘이 났다.
5) 살아가는 게 마음먹은 것처럼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계를 탄 사람이 나머지 돈을 넣지 않고 가끔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계를 부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달려들었다. 당신은 사는 게 길고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6) 그런 당신에게 누군가가 담배를 권했다. 그러면 잠시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 속삭였다. 쓴맛의 담배는 어머님에게 편안함을 주었던 것일까. 아니면 독이 되었던 것일까. 담배연기는 놋그릇의 녹처럼 당신의 폐에 차곡차곡 달라붙었다.
7) 녹이 생기면 놋그릇의 표면은 거칠어지고 광택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부식 이 시작된다. 어느 날부터 어머님 얼굴의 거칠어지고 광택을 잃어갔다. 그리고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가져다주었다. 잃어버린 광택을 찾고 그릇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는 녹을 제거해야 한다.
8) 녹은 먼지처럼 닦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놋그릇을 닦는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거친 물질로 표면을 마모시키는 행위다. 녹이 제거되면 그 만큼 그릇은 상처를 입는다. 어쩌면 녹이 그릇을 부식시키는 것보다 녹을 제거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그릇을 더 빨리 부서지게 만들 수도 있다.
9) 당신은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그리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에 맞추어 몸은 가파르게 야위어 갔다. 결국 어린 자식들을 남겨놓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만약 폐암이란 것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또 어땠을까. 하지만 삶에는 가정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진행형이이기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다.
10) 일곱 자식 중 셋은 아직 어렸다. 당신은 눈을 감으면서도 어린 자식들이 가장 눈에 밟혔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 어렸던 자식 중 하나와 결혼했다. 신혼시절 남편은 혼수처럼 놋그릇을 챙겨왔다. 일찍 보내야만 했던 어머님을 기억하려 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리움이라기보다는 회한이었을 것이다.
11) 놋그릇이 남편의 손에 들어왔으니 버릴 것이냐 역할을 찾아 줄 것이냐는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남편은 그것에 밥과 국을 담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남편의 심장에 무엇이 자리하는지 몰라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다.
12) 일단 놋그릇의 쓰임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녹을 제거해야 했다. 남편은 거친 수세미로 유기를 닦았다. 투박한 손길에 검은 녹이 쓰윽쓰윽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러나 깊숙이 박힌 녹은 아무리 닦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녹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13) 녹이 쓴 유기는 쓸모가 없다. 결국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한 어머님의 놋그릇은 존재의 필요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버리기는 아쉬웠는지 남편은 다시 낡은 자루에 담아 왔던 모습 그대로 창고 구석에 놓아두었다. 시댁 창고에서 우리 집 창고로 자리가 바뀌었을 뿐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4) 나는 놋그릇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미련도 애착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딱히 추억이 없으니 애착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날의 시간을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고 우리부부는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렇게 무심히 십 수 년을 흘러 보냈다. 그것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15) 세월이 흐르다보면 어떤 물건은 버리지 않았는데 없어지기도 한다. 신기하게 기억에서 지워졌던 놋그릇은 현실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있었다. 아! 누군가의 영혼이 나를 놋그릇에게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운명이 또 한 번 우연을 만든 것이다.
16) 낡은 자루 밖으로 놋그릇을 꺼낸다. 그릇 전체가 새까맣게 변해 있다. 마치 박물관의 오래된 유물 같다. 나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오래된 것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색깔과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 혹은 질박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7) 녹이 가득한 제기에 마음이 쉽게 빼앗긴다. 어쩌면 무심했던 내 마음을 훔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황금색에서 까만색으로 탈바꿈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삶의 행로는 너무나도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18) 결혼 전 꿈속에서 어머님과의 만남과 놋그릇의 존재는 우연처럼 나에게로 왔다. 당신의 삶 어디쯤에서 나는 태어났고, 당신이 생을 마감할 때 우리는 타인이었다. 그리고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남편이라는 매개체로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라고 정의 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서로를 기억할 추억 또한 갖지 못했다. 추억이 없어도 당신은 며느리의 애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19) 녹에는 생각지도 못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물건을 부식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녹을 가득 생기게 하여 물건을 더 강하게 보호하기도 한다. 땅속에 묻혔던 유물이 천년이 지나고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녹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천년의 불상, 혹은 향로 그리고 유기를 보라. 모두 녹이 가득 쓸었기에 멀고 먼 시간을 통과하고도 원래의 모양으로 세상 밖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니 녹은 생존을 위해 때로는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20) 놋그릇은 어머님이 조상을 위해 밥을 담고 국을 담던 용기였다. 그것이 유산처럼 나의 차지가 되었다. 어쩌면 물건도 아껴줄 사람을 아는 모양이다. 그러니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악착같이 남아있었는지 모른다. 신기하게 놋그릇과 나는 긴 세월을 통과하면서 적당하게 끌어당겼다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서로를 놓지 않았다. 마침내 두터운 녹을 피우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해후한다.
21) 폐부가득 숨을 들여 마셔본다. 비릿한 쇠 비린내가 난다. 해묵어 쌓이고 쌓인 시간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천에 들기름을 묻힌다. 조심스레 놋그릇을 닦는다.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까만 윤기가 반질거린다. 아, 창연蒼然함이여!
22) 까만 녹이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잡다한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추억도 사연도 필요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착이 생긴다. 곁에 두고 싶은 집착이 생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이 조상을 위해 정성을 담았던 제기는 빈틈없이 녹을 피우고서야 다시 쓸모를 찾은 것이다.
23) 나는 놋그릇에 아무것도 담지 않을 작정이다. 그곳에는 이미 녹이 한 가득이다. 뿐만 아니라 존재의 끈질긴 잉걸 같은 것도 함께 담겨있다. 사람이 남기고 간 물건은 사람처럼 남아서 속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까만 놋그릇을 보면 꿈속에서 보았던 뽀글 파머를 한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맙다” 꿈속에서 남긴 말이 녹 속에 함께 묻어 있는 것 같다.
신선놀음 / 이시언
1. 언니부부가 낚시를 가자고 했다. 뜬금없는 제안에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내가 머뭇거린다고 생각했는지 형부는 낚시터를 무릉도원에 낚시꾼을 신선에 비유하였다. 과장된 비유에 말이 되냐고 웃었지만 낚시가 얼마나 신나고 좋으면 저럴까 싶어 솔깃해졌다. 고단한 일상에 찌꺼기처럼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는데도 낚시가 최고라는 설명에는 호기심까지 일었다. 물고기를 낚는 손맛은 경험한 사람만 아는 신세계라며 예전에 잡았던 물고기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도 떨린다고 했다. 어른 팔뚝만한 잉어를 보자 나도 설레었다.
2. 다음날 새벽 나는 언니부부를 따라 나섰다. 이른 아침인데도 호수 가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강태 공들은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세상의 잡념을 다 잊고 오로지 찌만 바라보는 저 모습이 신선의 경지인가. 그들은 새로운 경쟁자가 오든 말든 곁눈도 주지 않고 낚시에 몰입 중이었다.
3. 차에서 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떠들던 형부도 낚시터에 도착하자 묵언수행에 들었는지 말수를 줄였다. 꼭 해야 할 말은 입만 달삭달삭하며 속삭이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렸다.
4. 낯선 환경에 어색하게 서있는 내게 언니는 접이 의자를 건넸다. 이것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삐거덕거리자 건너에 앉은 강태공이 귀에 거슬렸는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인사가 아니라 굳게 다문 입술이 조용하라는 눈치로 느껴져 주눅 든 표정을 지으며 목례를 했다.
5. 간이 의자는 엉덩이 사이즈보다 작았다. 커다란 덩치가 등받이도 없는 조그만 의자에 앉기란 불편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질 것처럼 건들거렸다. 평평하지 않은 바닥이라도 중심을 잘 잡아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기란 신선의 경지에 들어가는 또 다른 과정이라 여겼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여 안정된 자세를 잡으려 애썼다.
6. 자리를 잡은 형부는 가짜 미끼를 낚싯대에 달았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본떠 만든 가짜미끼는 물고기들을 바보로 여기고 나온 상품이었다. 언뜻 보기에 살아있는 피라미로 보였지만 작은 마네킹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물고기가 바보여도 이깐 가짜 미끼에 유혹될까 싶었다.
7. 형부의 손놀림이 능숙했다. 여봐란 듯 막힘없이 낚싯대를 던지는 숙련된 강태공 폼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언니에 이어 내게도 낚싯대가 마련되었다.
8. 입질이 오면 어쩌나. 강태공 노릇을 제대로 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찌만 바라보고 앉은 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당기는 힘은 전혀 없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 찌가 가볍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물고기의 입질과는 달랐다. 그럼 그렇지. 가짜 미끼를 무는 어리석은 물고기가 어디 있을까.
9. 그렇게 한 시간이 더 흘렀다. 종아리가 위축되어 쥐가 났다. 일어나 다리를 뻗어 몸을 풀었다.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슬쩍슬쩍 강태 공들의 면면을 훔쳐보았다. 숙련된 강태공이나 초보 강태공이나 지루해 보이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거북하다고 자리를 뜨는 강태공은 없었다. 흔들리림없이 초지일관하는 강태공들이 신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10. 집을 나설 때 품었던 호기심도 설레임도 곤두박질 치듯 사라졌다. 엉덩이도 베기고 허리도 아팠다. 한마디로 주리가 비틀려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뭐냐는 물음표가 가슴 깊숙이에서 끓어 올랐다. 양은 냄비와 매운탕 거리를 준비하며 허둥대던 나를 비웃는 또다른 나의 속삭임이 머릿속에서 부글거렸다.
11.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언니와 형부는 어떤가 곁눈질했다. 침묵도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 과정인지 그들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설마 득도하여 신선의 경지에 올랐나 싶어 자세히 보니 언니의 얼굴 근육에 살얼음이 낀 것처럼 비장해 보인다. 집에서 저 얼굴을 봤다면 ‘형부와 대판 싸웠나. 왜 화가 났을까.’ 하고 괜시리 눈치를 봐야 할 얼굴이다. 얼핏 봐도 측은할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12. 언니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가자고 입모양을 연속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언니의 혀는 내가 원했던 답을 비켜갔다. 붕어든 가물치든 한 마리는 잡아야 일어날 거라며 오기를 드러냈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덜컥 겁이 났다. 세시간째 이러구 있는데 더 버틴다고 물고기들이 ‘네’ 하고 미끼를 물거 같지 않았다.
13. 해질녘까지 집에 못갈 수도 있다. 재수 없으면 밤을 샐 수도 있다. 더 무겁고 괴로운 시간을 맞이 할수도 있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다. 그야말로 나를 초월하여 신선이 되어야 했다.
14. 시계를 다시 꺼내 보았다. 오전 10시 30분. 시계조차 더디고 지루하게 움직였다. 낚싯대를 접고 물고기들에게 항복을 외치고 싶었다. 묵직한 입질을 기대하는 마음을 접고 근처 매운탕 집에 가자고 할까.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저들은 웅녀의 자손이 아닌가. 쑥과 마늘만 먹는 시련을 묵묵히 견뎌낸 독한 유전자를 몸속에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15. 찌가 흔들릴 거란 기대를 비웠다. 욕심을 내리고 절제하여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에 헛것이 보이나 싶어 눈을 비볐다. 찌가 흔들렸다. 지나가는 바람의 장난이 아니었다. 묵직하게 손에 닿는 느낌이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심장이 벌떡거릴 정도로 나는 흥분했다. 허탕치고 있는 형부를 불렀다. 초짜인 내게 입질이 오자 형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부러움이 섞인 음성으로 비아냥거렸다. 어느 눈먼 고기가 젖내 풍기는 낚싯대를 물었냐고 놀렸다.
16. 미끼를 덥석 물다가 낚싯바늘에 찔린 붕어가 올라왔다. 아가미에서 붉은 피가 베어났다. 애처로워 바늘을 빼주려는데 형부의 투박한 손길이 무서웠던지 푸덕거리며 반항했다.
17. 물끄러미 붕어를 보았다. 붕어와 나의 거리는 한 뼘으로 가까워졌지만 작고 검은 눈동자에 두려움이 엿보인다. 조금 전까지 물속을 유영하며 자유를 누렸는데 순식간에 물밖으로 끌려와 많이 놀라고 당황했을 게다.
18. 물밖 세상 이란 붕어에겐 가늠조차 불가능한 공간이다. 지글거리는 태양은 끊임없이 공기를 갈 군다. 날 선 공기는 촉촉한 아가미로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어 붕어의 숨을 조일 거다. 수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가시 돋힌 이곳은 붕어가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다. 이곳에 사는 나도 숨을 옥죄는 뉴스들에 놀라 살얼음판을 딛듯 조심스레 움직인다.
18. 붕어는 점점 숨이 가빠질거다. 처참한 상황에 몰린 붕어는 당장 물로 돌아가야 할 긴급한 상황이다. 일분일초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붕어를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은 폭력이다. 나의 동정은 위선의 또 다른 위장이다. 아량이니 용서니 하는 단어들은 붕어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이라 애당초 어울리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극도의 이기적 포식자라 놓아 주나 잡아 먹나의 갈림길에서 망설인다.
19. 바늘을 아가미에서 뽑자 붕어는 한결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붕어에게 자유를 주려한다. 이제는 가짜 미끼에 유혹되지 마라 . 나는 형부가 통에 던진 붕어를 꺼내어 호수로 힘껏 던졌다. 신선놀음 이란게 이것인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 하는 갑의 자리에 올랐다는 착각.
사흘의 청춘 / 김 경
1. 드디어 그날이 왔다. 새벽잠을 설친 친구들이 속속 집결 장소에 모여들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공항을 향해 껌껌한 길을 달렸다.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까지 38명의 완전체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이번 환갑여행을 축복했다. 수백 명의 졸업생 중 동기회를 이끌고 가는 얼굴들은 거의 다 모인 셈이었다. 짐을 부치고 남은 시간에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거나 비행기 멀미를 빙자한 애주가들은 몰래 알코올 한 잔을 들이켰다.
2. 비행기가 이륙하자 우리 앞에 펼쳐질 꿈이 훨훨 하늘을 날았다. 뜬눈으로 달려와 놓고도 뒷좌석에 무리 지어 앉은 우리는 연신 하하호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제주도까지 눈 붙일 짬이 어디 있으려고. 초등학교를 나와 함께 중학교까지 다녔으니 죽마고우나 다름없어서 가스나야, 자스가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3. 한순간, 모두의 얼굴이 잿빛이 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난기류 속을 헤쳐가던 비행기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모두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것이다. 우주의 포로. 그때 문득 든 생각은 그래선 안 되겠지만 행여 어떤 불행이 덮친다 해도 우리는 38명이 아닌가. 사흘간 동고동락을 함께할 전우애로 똘똘 뭉친 마당에 두려울 게 뭐냐고 조금은 과대포장을 하니 묘한 의지와 위로가 되어주었다.
4. 일각이 여삼추, 계속되는 기체의 흔들림에 우리의 영혼은 그대로 실종되는 듯하다가 가까스로 평정을 찾았다. 그때 비행기는 우당탕 소리도 요란하게 활주로에 착륙했다. 모든 승객이 파도치듯 한바탕 출렁거렸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래도 노후 된 비행기이거나 조종사가 초짜임이 틀림없다고 투덜거리며 제주 땅에 발을 디뎠다.
5. 역시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공중에서의 불안감은 육지에 닿자마자 씻은 듯이 사라졌는데 ‘환영 화원초 53회’ 피켓이 결집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랐고 능수능란한 여자 가이드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늘 가고, 누구나 즐기는 제주도 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초등학교 동기생들만의 단결된 회합이기 때문이었다. 우스운 것은 이런 단체 여행을 와서 꼭 30년 전 얘기로 인해 싸움이 나더라는 가이드 말이었다. 그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그럴 일 절대 없다고 큰소리쳤다.
6. 첫날 예정되어 있던 가파도는 파도가 높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 청보리 밭에서의 추억은 물 건너 가버렸다. 하지만 가파도가 아니면 어떤가. 우리가 걷는 길은 무조건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을. 용두암 유채밭에서 함께 웃고, 새별오름을 줄지어 오르고 오메기떡을 나누어 먹는 사이 제주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갔다.
7.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흑돼지구이로 저녁 만찬을 즐긴 뒤 홀을 통째로 빌린 주점으로 이동했다. 대구에서 미리 준비해 간 갖은 과일,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떡과 케이크를 상 위에 차리자 누가 준비했는지 꽃잎처럼 펼쳐진 촛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벽면을 다 차지하는 화려한 현수막을 걸고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동네별로, 모임별로 사진은 끝없이 이어졌다. 누군가 노래하고, 누구는 춤을 추고 그러다 모두가 한바탕 어울린 후 야심한 제주 시내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8. 동백정원과 마상공연을 즐기고 아름다운 둘레길들을 걸으며 우리는 이틀을 더 제주에 젖어 지냈다. 아니 오래된 우정에 빠져 지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다를 안고, 한라산 기운을 장착하며 앞으로 맞이할 인생길도 이 같기를 고대했다. 동백기름과 상황버섯을 사고, 녹차 족욕을 즐기고, 통 갈치와 회를 먹는 사이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야금야금 다가왔다. 사흘은 얼마나 짧은가. 비행기가 결항 되길 바라는 속삭임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는 강풍 속에서 고심하느라 한참 연기되었다. 나 역시 공항 로비에서 하룻밤을 경험해 볼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속으로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9.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도시로 가는 비행기들이 모두 멈추어 있는데 유독 대구로 가는 비행기만 탑승을 시작해서 불안감이 여간 아니었다. 밤은 깊어가고 한 시간의 모험은 다시 첫날의 비행기를 떠올리게 했다. 이륙과 동시에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려는데 이내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또 강풍인가. 불안감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이 비행기는 곧 대구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사흘간의 피로가 단 한 시간에 몰려왔는지 비몽사몽 간에 대구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번엔 베테랑 기장이 분명하다고 옆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아, 여행이란 우리네 인생처럼 오락가락의 연속인 것을.
10. 지난 일은 기억이다가 머지않아 추억으로 바뀐다. 기억이 추억이라는 이름을 얻을 때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한다. 하룻밤을 자고 건강상 이유로 먼저 집으로 가 버린 친구도, 마지막 날 송악산 둘레길에서 30년 전 이야기로 주먹다짐을 할 뻔한 취중 우정의 두 친구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로또복권 한 장씩을 선물로 받은 것이 두 밤 내내 비밀 놀이를 했던 몇몇 친구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안다. 우리는 두고두고 꺼내 볼 특별한 추억을 가졌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을 마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언제라도 웃음을 짓게 하는.
11.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 행보가 전체 동창회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역시 단합 잘 되기로 소문난 53회라는 인사가 많이도 들려왔다. 무엇보다 동기회를 위해 선뜻 마음을 내어준 의리파 친구들 덕에 더욱 순조롭고 풍요로운 여행이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보니 가슴 부풀어 기다리던 시간과 밀도 높게 짰던 여정들이 자꾸만 미소짓게 한다. 이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 사흘의 청춘. 그 힘을 장착하고 다시 또 뚜벅뚜벅 인생길을 걸어가자.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영원한 우리들의 블루스여!
찬란한 해넘이를 위하여 / 김미숙
우리 부부는 삼십 년 전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결혼식을 올렸던 친구는 곧바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얼마 전에 그들과 연락이 닿아 남미의 페루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급한 일이 생겨서 올 수 없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아닌가! 머나먼 타지에서 길잡이가 될 그들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인해 당황스러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인천에서 비행기에 올랐고 멕시코를 거쳐 이틀 만에 페루에 닿았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는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기사는 지도를 보여주며 와카치나 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고속도로 양옆으로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곳은 페루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달궈진 모래 언덕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팍팍했다.
여행은 고생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빵 한조각 살 만한 마트도, 밥한 끼 먹을 만한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말도 통하지 않았고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다 보니 배낭여행의 어려움이 폐부 깊숙이 와 닿았다.
결혼 초, 우리의 삶도 팍팍했다. 얇은 월급봉투로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껴야 했다. 재래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빵 한 조각 덥석 바구니에 담지 못했고 마음 놓고 외식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혼수품이니 예물 같은 것들은 다 생략해도 좋은데 신혼여행만큼은 제주도로 가자고 졸랐다. 돈이 없었던 그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나 몰래 돈을 빌려서 제주도의 여행을 성사시켰다. 그 경비는 몇 달 동안 월급을 쪼개가면서 갚아야 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돌아오는 공항에서 결혼 30주년엔 남미 여행을 하고 싶다며 지나가는 말로 던졌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세상 모두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내 등줄기에서 서성거릴 때쯤 와카치나 사막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보이는 모래언덕의 능선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자 신비로운 모래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양팔을 벌리자 바람이 불어와 몸의 열기를 훔쳐 갔다. 사막 한가운데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도 있었다. 호수 위로 잎이 풍성한 야자수들과 작은 배가 유유자적 떠다녔다.
사람들이 바다 사막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때처럼 비닐 포대기를 배에 깔고 모래사막을 타고 미끄러져 갔다. 남편도 포대기에 몸을 맡긴 채 저 아래 블랙 홀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블랙홀에 도착한 그가 한 알의 점처럼 보였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손짓하는 그의 모습은 모래 알갱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았다.
그는 올해 환갑이 되었다. 숲을 이루었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다 빠져나갔고 흘러내린 은빛 곱슬머리 몇 가닥이 봄 응달의 잔설처럼 남아 있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지 젊은 사람도 두렵다는 모래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내려가다니 아직도 열정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뭐든지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일궈내는 그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껏 좋아하는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하고 살았던 그였다. 친환경농자재 영업과 판매를 하느라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들어오곤 했다. 전국을 헤매다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돈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삼십 년 동안 조금씩 몰래 적금을 부었다고 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렵던 시절에도 해약하지 않았던 적금이었다.
창문 없이 뻥 뚫린 버기카에 올라탔다. 버기카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높은 언덕에 단숨에 올랐다. 쭈-욱 언덕에 오르다가 경사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다. 마치 롤러코스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결혼 삼십 주년을 돌이켜보니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이 버거워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고 잔잔한 파도가 이어지던 때도 있었다. 어떤 해는 한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막장에 닿는가 싶다가도 수면 위로 천천히 해가 뜨는 날도 있었다. 삶은 수시로 낭떠러지로 떨어뜨렸다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어느 해 삶이 힘겨워 무작정 서해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할미 바위와 할배 바위가 물속에 잠기고 있었으며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해가 솟아오르는 광활한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해가 넘어갈 때의 찬란한 분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해넘이도 해돋이 못지않게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음에 감동했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보자고 새롭게 출발했던 날로 기억된다.
버기카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어딘가로 달렸다. 해넘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붉게 물든 사막에 앉아 언덕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해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계곡을 넘고 또 넘었다. 사구의 능선들을 온통 주황빛 붉게 물들이며 서녘으로 해는 천천히 넘어갔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봤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재설계한다. 삶이란 길을 여행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할 길잡이가 없어도 우리의 인생은 넘실넘실 잘도 세상을 물들이며 기울어간다. 그때마다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갈 것이다. 찬란한 인생의 해넘이를 위해서.
저지르다 / 노아영
막상 예약 해놓고 보니 덜컥 겁부터 났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지만 딸이 도와준다기에 얼떨결에 일을 저질렀다.
몇 차례 행사를 주관한 경험자라도 행사당일 손님이 적으면 참여업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업체모집은 잘될지, 얼마나 홍보를 잘해서 손님을 모을 수 있을지, 작품구매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기에 겁이 나는 것이다.
이미 선택이 한 가지 뿐이라면 내가 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해마다 대구화랑협회가 주관하여 엑스코에서 아트페어를 년1회 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미술시장이 성황을 이룬다는 소문이 돌면서 새로운 기획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그래, 대구에서 1년에 두 번은 열려도 괜찮지’ 하며 용기 있게 일을 추진하는 새로운 기획사를 보며 순간, 호텔아트페어의 꿈을 펼쳐보고자 언뜻 용기를 낸 것이다.
주변의 다른 호텔에 견주어 볼 때 P호텔은 낡고 주차공간이 좁아서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손님들의 접근성으로 볼 때는 최고라 여겨졌다. 호텔 한 층을 다 빌리자면 많은 돈을 계약금으로 걸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호텔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딸은 한 푼의 돈도 건네지 않고 예약해 주었다.
호텔 아트페어는 예약한 객실을 작은 갤러리로 꾸며서 손님을 맞이하고 밤에는 적절히 치우고 그 룸에서 잠을 자며 숙박을 해결한다. 외부 전시장보다 좁긴 하지만 구매자에겐 객실에 전시된 그림을 보며 집에 두었을 때의 느낌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호텔 페어라 해도 해야 할 일은 똑같다. 일정을 정한 후 참여업체를 모집하고 홍보를 하자면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3월 행사가 두 달 남짓 남아 빠듯한 일정이었다. 짧은 기일 안에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하자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스스로 잘해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가장 먼저 관련업체들에게 행사를 알리자면 아트페어 이름부터 지어야 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몇몇 지인들과 의논한 결과 ‘라움’으로 결정하였다. 이름을 지어준 친구의 말에 의하면 ‘라움’은 순우리말로 아름다움을 뜻하고 영어(RAUM)로는 가능성을 뜻한다고 했다. 다음순서는 행사명으로 로고를 만드는 일이다. 알고 지내던 광고사의 디자인 팀장에게 부탁을 했더니 며칠 후에 시안을 보내왔다.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일정이 급해서 그냥 쓰겠다고 했다.
라움 아트페어 참여신청 문서를 작성하여 여러 갤러리에 메일을 보냈다. 이럴 때는 타 아트페어의 도록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가여부의 결정을 좀 더 빨리 해주길 바라며 조기 신청 시에는 고급 사은품을 증정한다는 내용도 첨부했다.
그들이 나를 얼마만큼 믿느냐가 중요하다. 메일을 보내도 응답이 없으면 평소 눈인사라라도 나누어 안면을 익힌 갤러리 위주로 전화를 돌렸다. 일면식도 없는 서울의 한 갤러리가 메일을 보고 전화한다면서 그중 큰방을 쓰고 싶다고 했다. 평소 친구처럼 지내던 갤러리도 본인은 물론, 다른 업체도 소개해 주었다. 뭔가 일이 잘 풀리려나 했지만 전화를 받고 연락을 주겠다던 여러 갤러리들이 좀 더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만 하고 선뜻 답변을 주지 않았다. 좀 야박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나 역시 상대방의 입장이 되었을 땐 똑같을 것이다. 성공사례가 없는 처음행사를 주관하는 기획사의 말을 선뜻 믿기가 어려울 터이다.
갤러리 모집이 다되어야 홍보에 주력할 수 있는데 전전긍긍하다보니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그때부터는 모집과 홍보의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다. 19개 룸이라면 숫자도 많지 않고 해서 금방 다 모집 될 줄 알았는데 착오가 생겼다. 머리가 지끈해도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지금 못해보면 평생 못해볼 것 같아 모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라 생각하니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 일이 잘못되어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겠다싶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배짱은 좋다’는 엄마의 말처럼 살아가면서 배짱하나는 두둑이 늘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업체들을 한 번 더 설득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한번만 도와 달라고, 후원업체의 지원도 있으니 잘될 것이라며 목소리에 더 힘을 실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일 때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여 참여업체 모집을 끝내고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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