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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클릭한 아이콘 하나가 행방불명이다.
핸드 폰 메인의 바탕화면에 자리 하나가 비었다. 확인을 하니 전화. 카톡. 메세지등 내 연결의 고리들은 제자리에 남아있다. 새의 노래와 개울물 소리까지 시시때때로 담아둘 수 있는 녹음파일도 있다. 하루 종일 클래식을 들려주는 kbs콩도 남아있다. 스크린 골프의 대문도 그대로 있는데 그럼 무얼까? 카메라와 갤러리는 물론 이 세상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는 인터넷의 아이콘도 선명한데 빈자리 하나가 무엇인지 통 생각이 안 난다. 언제나 나를 스쳐가는 모두를 메모하는 메모장도 노트를 펼쳐놓고 얌전히 앉아 있다. 일정을 체크하고 약속을 메모해 두는 캘린더도 나와 눈 맞춤을 하는데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잠에서 깨어나는데 무엇인지 안내 문자가 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클릭을 한 때문인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내 화면에 가득 채워진 열 세 개의 아이콘은 나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일어나고 잠든다.
오래지 않아 떠오른다. ‘콕’이다. 아이콘 아래에는 ‘농협콕뱅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졌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이 아이콘은 나의 전 재산을 쥐고 있는 때문이다. 쥐꼬리보다도 작은 나의 자산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의 전부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 이 창구하나로 연금이 들어오고 자동이체 되어있는 금액들이 빠져나간다. 어느 날 문득 생기는 지출의 통로이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수입의 입구이기도 한 이 아이콘이 사라졌다. 생각은 마냥 부풀어 오른다. 아이콘만의 부재가 아니라 나의 전부를 들어가 버린 듯 불안하다.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생각들이 실오라기 끄나풀처럼 풀린다. 앞에 나가 전화 대리점으로 가야할까? 아니면 농협 창구로 가서 문의를 해야 할까? 이리 저리 실 꼬리를 흔들다가 내 손이 먼저 움직인다. 뒤지기 시작해본다. 어디엔가 숨었겠지 하며 찾아보는데 없다. 이름도 용도도 모르는 많은 그림의 아이콘들이 주인의 방문에 오늘은 웬일인지 모르겠다고 수선거린다.
잊혀졌던 친구들의 웃음이다. 미안하기도 겸연쩍기도 하다. ‘사실 내가 찾는 것은 너희들이 아니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나치는 손가락 끝이 부끄럽기는 하다. 쓸데가 있는지도 모르는 많은 아이콘들을 열고 닫고 뒤지고 지나도 없다. 초록의 칼라만 기억되는 나의 분실물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저장소가 있나 앱을 또 뒤져보지만 허사다. 이참에 쓸데없는 것들을 모두 쓸어내 버리고 싶은 유혹을 참는다.
계절이 바뀌면 정리를 하다가 옷 뭉치를 한 아름씩 내어다 버릴 때가 있다. 찬장을 뒤지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그릇장을 뒤져내어 텅 빈 공간을 만들 때도 있다. 그 후에 물론 후회는 없다. 비어있는 공간이 파란 하늘마냥 편안해서 한 점 구름이 되어 마구 떠돌고 싶어지는 시간이 된다. 그렇지만 꾹 참는다.
이 시간이 나에게 어쩌면 불운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운명론적 생각이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들이 모두 절대자의 축복일 수는 없다. 어떤 불운을 싣고 오는 시간의 끝자락도 처음 만났을 때는 아름다움 꽃의 가지 끝처럼 보일수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잡고 놓지 못하여 불행한 사건들을 겪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럴 줄 몰랐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면 내가 왜 그때 그랬을까?’ 후회의 뒤안길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때에 펼쳐지고 그 수습은 어려워서 통회라는 쓴 눈물을 자아내는 것도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겠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다. 잠에서 채 못 깨어난 손가락이 누른 그 무엇인가가 분명 이 아이콘을 지워버리겠느냐는 물음이었을 것 같다. 그냥 밟고 건너던 돌다리가 비틀거리고 물에 빠진 듯 한 기분이다. 오늘은 발만 적신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축복이다. 더 이상 다른 것을 건드리지 말아야지.
집을 나설 것도 없이 플레이 스토어로 찾아간다. 잃은 것은 다시사면 된다는 정답이 있다. 무엇이든지 있는 저장소다. 이 세상 모든 것의 편의점이다. 문턱에 들어서며 농협이라는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콕 뱅크가 얼굴을 쏙 내민다.
여행길에서 잃었던 친구의 얼굴보다 반갑다. 두 손을 잡아 쥐고 내 집으로 모셔온다. 여행을 떠났던 남편이 들어선 것처럼 절차는 쉽다. 한 번 웃어주면 그만이다. 내 손 안에서 길들여진 프로그램은 삐거덕거리지 않고 잘도 돌아간다. 이것저것 다시 한 번 시험 운행을 하고 나니 집을 나갔던 것도 잊은 듯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내 일상을 이곳저곳에서 꼭꼭 채워주고 있는 것은 이 아이콘만은 아니어서 그 시간동안 쌓여있던 카톡도 문자도 나를 부른다. 이제 집 나갔던 아이콘 하나를 제자리에 모셔 놓았으니 밀린 일을 하러 나선다. 카톡을 확인하고 답장을 하고 그리고 점심도 챙겨야지.
톱니처럼 채워져 돌아가는 인간사회나 작은 폰의 바탕화면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콘들이나 한 순간도 숨을 멈출 수는 없는 오늘이 현실인가 보다. 이렇게 무생물인 것 같은 아이콘 하나도 제자리를 잃으면 한 동안 비틀거리는데 제자리에서 매 순간을 채울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큰 축복의 시간인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정을 짚으며 여유를 부려본다. 어제보다 더 큰 웃음을 웃는 마당의 하얀 진달래랑 이제 하나 둘 꽃잎을 떨구는 영춘화랑 담으러 나서는데 폰 안의 카메라 아이콘이 자랑스럽게 활짝 웃는다.
2012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아동문학. 시인. 시조시인
수상: 춘천여성문학상. 강원아동문학상. 전국여성환경백일장 장원. 백교문학상등 다수
저서: 사진 수필집 ‘두 번 울던 날 ’외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