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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앞 뒤로 충분한 비가 내렸다. 알맞은 때, 충분한 양이다.
그리고는 매주 한 번씩은 비가 와주었다.
봄 씨앗 부지런히 넣고, 또 넣는다.
청치마상추와 담배상추, 가랑파, 밭벼,
토종붉은땅콩과 새로 받은 나주땅콩, 도라지, 당근,
인제할머니오이, 인제할머니긴호박, 사과참외, 토마토, 수세미, 박,
생강, 토란,
줄콩들, 동부콩, 꽃들~
남사차수수, 황차조까지 넣고 나니,
이제야 한 주 정도는 씨앗 넣기를 쉬어간다.
그리고는 입하 절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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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스스로 가진 씨알과 하늘과 땅의 기운 속에 싹이 움튼다.
나는 이 씨앗이 발아하는 조건을 돕는 일을 잘해보고 싶다.
싹이 나지 않으면 시작도 못해보니까!
씨앗 하나하나 적절한 온도, 습도, 빛의 양, 땅에 머무는 기간... 모두 다르다.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는 고추, 가지, 박, 목화가 있는가 하면,
싹도 빠르게 나고 왠만한 온도는 견디는 오이도 있다.
해를 적당히 봐야 싹이 더 잘 트는 상추, 우엉도 있다.
가물면 아예 싹을 안보여주는 파, 천일홍, 당근도 있다.
이런 경우는 흙을 깊이 판다거나 씨앗을 넣고 풀덮개를 해준다.
그리고는 싹 나올 즈음 한 번씩 들춰본다.
늦게 들췄다가는 웃자라기도 한다.
부지런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때부터는 경험해 보며 생기는 감각도 생겨서,
자연스레 싹 나올 때를 만나기도 한다.
반대로 흙이 약간 건조한 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땅콩이 그렇다.
귀한 작두콩을 얻었는데, 모종내는 중에 모두 썩었다.
내 생각에는 너무 습하게 해서 썩은 것도 작용한 것 같다. 여튼 좀 건조해도 되는 씨앗도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을 동원해서 발아조건을 돕는다.
올 해는 어떻게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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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는 5월 초에 서리가 내리지 않으려나 보다. (대신 차가운 기운의 날씨가 길게 갔다.)
서리 피해에 안정적인 때가 되면, 모종도 밭으로 옮겨가고, 풀덮개 살살 걷어주는 일을 한다.
감자, 강낭콩, 오이 심으며 풀덮개를 해주었다.
혹시 이르게 싹이 나왔다가 서리가 내려도 피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서리가 안 오겠다 싶어서, 풀덮개 걷어준다.
이 일을 하는데 ‘줄탁동시’가 떠올랐다.
싹을 제 힘으로 내고, 나는 그것을 돕고..
풀덮개를 열어보며 마주한 나와 싹은, 반갑게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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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봄은 가물게 느껴진다.
실제 봄 가뭄이 어느 해든지 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봄 새싹에게는 촉촉한 상태가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싹을 잘 내고도 흙이 너무 메마르면 싹이 마르기도 한다.
파, 당근, 쪽, 밭벼는 특히나 그렇다. 내 경험에서는 오이도 토마토도 그렇기도 하다.
입하 시작되면서는, 씨앗을 넣으면서도 싹 돌보는 일을 함께 한다.
흙을 가꾸는 일과도 연결되는 일이다.
풀 덮개를 해주고, 생활에서 나오는 허드렛물을 모으고 주는 일도 한다.
밭을 둘러보는 일은 (가능한) 날마다 한다. ^-^
첫댓글 하늘 땅 기운과 계절과 비 무수한 조건과 씨앗^^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는 헛 이야기도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
마르면 늦게 싹트고, 마른 땅에서 더 잘 자라고,
잘 자란다 싶으면 먼저 캐 먹는 자연의 섭리^^
마늘주아가 보기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