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75 졸업 35주년 기념 제주도 여행을 마치며.
임 혜원
이화여고 졸업35주년 기념여행을 계획하면서 첫 번째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즐거운 여행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행지의 선정이 중요했는데, 우리는 최근 2-3년 동안 제주에 생긴 올레길과 오름을 따라 걸으면서 그 어디보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느끼고 우리의 삶도 돌아보며, 친구들과 놀며 쉬며 걸으며 지내다 오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더구나 최근의 삶의 trend는 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위한 ‘걷기’를 중시하지 않던가.
첫날
5월26일 떠나기 전까지도 전국의 날씨는 이상저온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비도 많이 오고 추워서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와우! 그날 참 화창했다. 우리가 서울로 돌아올 동안 내내.
9시 55분 김포공항 출발, 11시 제주 도착하여 식당에서 오분작뚝배기로 중식 후 절물휴양림과 비자림에 갔다.
40~50년생 방풍림인 삼나무가 수림의 90%이상인 절물 휴양림,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비자림에서의 3시간 여의 삼림욕은 잠시나마 우리를 정신적, 신체적 피로에서 회복시켜 밝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매일 이런 곳을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숲에서 자연과 마냥 어우러지고 싶은 미련을 뒤로하고 숙소인 해비치리조트로 이동, 인근에서 맛있는 회정식으로 식사후 각 방에 4~5인 씩 투숙, 본격적인 만남의 시간, 수다의 시간을 가지며 회포를 풀었다.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 창밖에 펼쳐진 환상적인 view에 감탄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식당에서 조식 후 간단히 주변 산책.
제주 올레길 체험을 위하여, 외돌개에서 월평포구까지 이어지는 해안올레 7코스 출발지인 외돌개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중간지점인 9km거리의 강정올레쉼터까지만 가기로 하였다. 이 코스에서는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를 만날 수 있다. 수봉로는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 씨가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란다. 곳곳에 엉겅퀴며 인동초, 찔레꽃 또 이름모르는 야생화들이 소박하게 피어있었다.
해안올레답게 좌측으로 바다가 보이며 펼쳐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아 감동과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 곳에 서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문득 가슴이 뭉클해왔다.
<놀멍 쉬멍 걸으멍>의 저자인 서명숙은 제주 올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구상하는 (제주의)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걸으멍(놀다가 쉬다가 걷다가) 가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갈치조림으로 중식 후, 이중섭 미술관으로 갔다. 이중섭 화가의 작품 8점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현대 화가의 작품 52점 등 모두 60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중섭 화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도 몇 편 소개되어 있다. 화가의 그림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는 듯 하다. 그의 지난했던 삶 때문일까, 그림마다 예사로 보이지 않고 숱한 사연이 있어 보인다.
석부작 테마파크로 옮겨(석부작은 거친 돌위에 야생초의 뿌리를 내려 아름답게 조화시킨 작품)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한 후, 방주교회로 가서 이인실 회장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국가와 이화여고와 자신과 가정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예배드린 방주교회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물로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이다. 마치 물위에 방주가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텔로 이동하여 각 방에서 잠시 쉰 후 만찬장으로 옮겨 만찬에 들어갔는데, 그새 멋진 옷들로 치장하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어떤 동창은 과연 이화졸업생은 다르구나 생각했단다. 식사후 사회자인 최은숙의 세련된 진행으로 여러 게임을 즐기며 열일곱 소녀들처럼 맘껏 웃고 놀았다.
셋째 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인 거문오름을 탐방하였다.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용암협곡-알오름전망대-동굴진지- 숯가마터-풍혈-화산탄-병참도로-수직골로 이어지는 약 2시간 소요되는 분화구코스로 올랐는데,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여 나무데크를 땅위에 띄워 만든 길로 다니게 된다. 오름에는 일색고사리, 큰잎천남성 같은 꽃들이 보이고 식나무, 붓순나무, 칡, 자귀나무, 보리수나무 등에서 나오는 향기와 숲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로 머리가 맑아지고 숨쉬기도 편안했다.
보기 어려운 자연원시림에서 맑은 공기로 심신을 재충전한 뒤 내려와 흙돼지구이로 중식 후, 섭지코지의 안도타다오(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의 명상공간, Genius Loci로 향했다.
그 곳은 ‘정원과 입구, 건축물에서의 자연에 대한 공간체험과 그 기억을 다시 전시공간에서 문경원 작가의 작품-digital image-으로 체험하게 하는 공간’이라 함이 옳겠다. 특이하고도 명상적이며 철학적인 어떤 세계를 체험하고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환상적인 공간이어서 모두들 잘 왔다고 기뻐하였다. 안도타다오의 또 다른 건물 안의 민트 레스토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Earl Grey Tea 한 잔의 깔끔한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그 후 전복죽으로 석식, 공항으로 이동. 밤 10시 20분 서울 도착. 해산.
재미있고 재치있고 똑똑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가이드 언니, 우리를 젊은 언니들로 봐주어 버스 안에서 ‘비’의 공연을 틀어주었던 기사아저씨, 임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낱낱이 들어준 씨티항공여행사의 남 과장님, 모두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여행인원이 예상했던 숫자에 많이 못미쳐 안타까움이 남지만 참 즐겁고 알찬 여정이었다. 다음기회에는 더 많이, 좋은 곳으로 함께 여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3일간 친구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한명 한명이 어쩌면 그렇게도 개성이 넘치며 지적이며 유쾌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다정한지. 왜 그렇게 재주들이 많은지, 마음이 넉넉한지.
여행을 통해 친구들을 재발견하면서 이화의 동창인 것이 다시 한 번 자랑스럽다. 행복하다.
첫댓글 후기를 생생하게 올려주어서 가본 듯 하구나~~
혜원아! 수고했어. 정말 너에게로 넘긴게 너무너무 잘했어. 다시 여행을 한 느낌이다.
응, 맞아. 나도 후기를 쓰면서 여행을 다시 하는 기분이 들더라구.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긴다는게 참 중요하지?
기록은 무조건적으로 해야한다고 본다..ㅎㅎ 특히나 우리 같은 또래의 여성들에게는..언제고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고 그때의 추억의 순간들은 지나가면 그뿐이잖아 언제나 글이나 사진으로 남겨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