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옷을 오래 입어 헤지면 다른 옷으로 갈아 입듯 이 육신 또한 오래 사용해서 병들고 지치면 또 벗어놓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실체하지 않는 마음의 형상만이 남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육신을 형상화하고 마음을 실체로 보아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없는데 어떻게 남과 둘일 수 있으며 또한 분리로 인한 괴리감에 빠져 살 수있겠습니다.
노자는 처음에서와 같이 이름 붙이는 것을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없음(無名)은 하늘과 땅의 비롯함이라 말했습니다.
또 언제나 무욕(無欲)으로써 그 오묘함을 보고, 유욕(有欲)으로써 그 가장자리를 본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것인데, 다만 그 이름이 다를 뿐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하나이며 이름없는 상태..
즉 정지된 필름을 보는 것처럼 세상을 관찰하고 감응하는 것이 바로 진리요 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나 노자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나 도라는 것은 어떤 <모양>이나 형상에 있지 않으며, 시간의 연속선상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매일 매일 되풀이 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상(日常) 바로 거기에 道가 있고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이러한 뜻이 아닌가 싶군요.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은 시간이다'와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라는 개념은
결국 현재의 감응 상태-즉 지금 이순간을 바로보는(알아채기) 것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문제를 바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원본 메세지] ---------------------
다음 카페 노자선양회 운영자 노자선의 글입니다
이 글을 올리니 한 말씀해 주시면 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어쩌면 잘못 알았는지 모른다(2002.5.13) 노자선
하느님이 자신과 똑같은 마음을 준 것인데
그들은 무식하여 그것이 형상을 준 것으로 잘못 알았다
하느님이 너무 좋아 참으로 감격하였다
역시 하느님은 인간을 이처럼 너무 사랑하는구나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형상을 닮았으니
세상 만물들아 너희는 우리한테 까불지 마라
우리가 같은 피조물이지만
너희는 인간을 하느님 모시듯 해야한다
또한 세상 만물들아 내 말을 잘 들어라
우리는 너희를 지배할 권한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 복종할지어다
그러면서 그들은 문명을 인간 중심으로 개척해 나가고
인간에게 유익한 모든 것이 선(善)인 줄 알더라
그런데 지금 보니 자신의 모습처럼
하느님이 똑같이 생긴 줄 알았는데
역사학자들이 인간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보다 더 오래된 것이 북경원인이니
그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하느님이냐고 되묻는다
아니면 발견되지 아니한 더 미개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닐 걸 하다가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깨달은 것이
하느님이 준 것이 그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인 것을 알게 되더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시 보니
하느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마음의 눈이 열리더라
너와 내가 남이 아니라 한마음이니
인간과 만물은 같은 피조물로서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듯
그 마음으로 세상만물을 사랑하게 되니
세상에 온통 착한 기운으로 가득 차더라
그럴 때 천지가 화합하여
하늘에서 단 이슬을 비처럼 뿌려주는 것을 보니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형상(形象)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