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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난 운전하면서 클락션은 절대 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클락션 그거 옛날 시골길 가다가 시골노인 열대여섯 분 뒤에서
한번 눌렀다가,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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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몇십 년 지난 나의 총각 시절에 겪었던 케케묵은 경적 금지 진술서이다.
그 날 나는 본사 소속 자재 조달의 책임자로써 고압 철탑 부속 자재 몇 개를 트럭에
싣고 회사의 공사가 있는 하늘 아래 첫동네로 배달해주러 가던 길이었다.
그 상황의 그 길 중간 어디 쯤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잠시 차단이 되어버렸다.
시골노인 열대여섯 분들이 먼지 풀풀 나는 그 시골길을 아예 전세 내어 가시는지,
그 길을 꽉 채워 나와 똑 같은 진행방향으로 가고 계시던 것이었다.
잠시 그 분들의 행색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추측컨대 아마 누구네 결혼식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읍내 사는 천석꾼 최 서방네 외동 손자 백일잔치 쯤이라도 갔다들
오시는지, 내가 뒤에서 보는 그 분들의 걸음걸이는 팔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그재그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난 그 때도 클락션을 잘 누르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느긋한 마음을 가지려
애쓰며 그 고물 짐차를 살살 몰아 따라가면서, 그러나 어쨌든 앞에 계신 분들이 똥줄
타는 이내 사정을 빨리 눈치채고 알아서 비켜 주시려니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경주 오릉의 제사를 땡볕에 반나절씩이나 지내는 경주 김가 대안공파
48세손의 은근과 끈기로도, 그것은 십분 정도는 그럭저럭 가능한 일일런지 모르나,
날씨는 푹푹 찌며 무더운데다가 가뜩이나 에어컨은 없지, 창문은 핸들이 고장나서
눈곱만큼 열리고는 더 이상 내려가지도 않고, 해는 점점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며
물건 줄 시간은 촉박하여 바쁘기도 엄청 바쁜데, 졸리기는 자꾸 졸리니 발걸음 느리신
그 어르신네들 걸음을 뒤따라가며 열 받는 건,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연세들이 많으시니, 탱크 구르는 소리 나는 그 요란한 고물 짐차 소리 정도도
거의 매미소리 정도로 들리시는지, 누가 뒤돌아보시기는커녕 어느 누구도 아는 척을
하지 않으신다. 그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급한
마음이 들어 자연적으로 가속 페달에 발이 살살 올라가면서, 엔진 공회전 소리를 좀
부릉부릉 냈다.
그러면서 앞을 보니 그래도 누가 놀라거나 뒤돌아보는 기색은커녕, 아무도 콧방귀도
안 뀌시는 것 아닌가? 드디어 나의 인내심은 다 바닥나고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해서
급기야 에라 모르겠다, 하고 클락션을 슬쩍 한번 눌렀다.
클락션을 눌러보지 않았으니 그런 줄 몰랐는데, 그게 개조한 클락션이었는지 내 딴엔
살짝 한 번 눌렀는데, 바로 뿌아아앙! 하는 큰 외항선 뱃고동 소리 같은 엄청나게 큰
소리가 그 너른 벌판에 쩡ㅡ 울렸다. 내가 눌러 놓고 내가 경끼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 대신 그에 대한 효력은 즉시 강력하게 발생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제서야
한 분이 갑자기 휙, 뒤를 돌아보시더니, 어메 차여! 차! 비키랑께, 비켜! 어따~ 저
영감은 얼루 비키는거여? 이 짝으루 오랑께! 아녀~ 그 짝이 아녀, 아따~ 저 할망구는
시방 워디루 가능겨? 아, 언능 이 짝으루 안 와?
한동안 우왕좌왕, 좌충우돌, 설왕설래, 와글와글, 시끌시끌, 하여튼 한 십분 동안 시골
노인 열대여섯 분들께서 그 길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시더니, 그래도 나중에는 결국
한두 분 자리바꿈을 하시고는, 드디어 자리를 다 잡으셨는지 그 길이 조용해졌다.
그렇다. 그제야 자동 교통정리가 다 된 듯, 먼지 한 줌이 바람에 휘익 날아갔다.
처음부터 짐차 안에서 턱 괴고, 오만 세상 짜증스럽다는 투의 시건방이 뚝뚝 흐르는
얼굴에, 생산회사 이름도 없는 시커먼 싸구려 색안경을 끼고 답답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내가, 점심 먹고 이 쑤시다가 차 틈새에 꽂아두었던 이쑤시개를 다시 꺼내어
송곳니에 삐딱하게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차에서 내린 건 바로 그 때였다.
내린 다음 무슨 서부의 사나이처럼 한쪽 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꽂고서는 반대쪽
다리를 건들거리며 오만 똥폼 다 잡으며 서 있다가 침을 찍 도로에 뱉고서는
시골노인 열대여섯 분들을 향해 말론 블란도의 그것처럼 쉰 듯한 걸걸한 목소리를
내어 한 마디 툭 던졌다.
에 또, 가설라무네, 제가 시방부터 여러분들께 한 말씀을 드리것는데요잉.
시골노인 열대여섯 분들께서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줄을 똑바로 맞춰 서서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고 계신 가운데, 그러나 나는 그 분들의 그런 모습을 가볍게 일별하고
혹시 만에 하나 가는귀 먹으셔서 잘못 들으실지 모르므로, 쉰 듯한 목소리에서 갑자기
목소리 톤을 한껏 드높여 그 넓은 들판과 길을 향해 쩌렁쩌렁하고 낭랑한 고성으로
바꿔서 일장 연설을 했다.
만약에 이렇게 가시는데 앞에서든 뒤에서든 차가 오면 말입니다아. 그 차가 어떤 차든
절대 놀라시지 마시고 말입니다, 또는 가고 싶으신 곳이 좌측이든 우측이든, 논둑이든
논 가운데건 구분 하시지 말고 아무 데나 도로가로 빨리 피하셔서 가만히 서서 계시며는
되는 겁니다아. 아시것심니까아?
특히 술을 너무 많이 잡수셔서 걸음이 헛짚히시는 분들, 또는 본인은 절대 안 취하셨는
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별로 없으신 분들은, 반다시 현실적으루다가 술
안 취하신 다리 튼튼한 분들이 손을 꼭 붙잡고 가만히 서 계셔야 되는 겁니다아. 이거
무슨 소린지 아시것심니까아? 모두들 잘 아시것지요잉?
그 말에 얼른 술 취한 영감님 손을 잡는 할머니들이 줄잡아 대 여섯 분은 족히 되셨다.
거 봐라. 내가 아무 데나 가서 서 있으면 된다는디, 너는 왜 꼭 오른쪽이랴? 으따,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하시며, 또 와글와글 시끌시끌 이시다.
아까부터 논둑에서 시끄럽게 울어쌓던 개구리들이, 자기들 보다 더 떠드는 이 시골
노인들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근디, 그 짝 잘 생긴 총각은 시방 워디로 가시는 중이신감?
그 중 상당히 똑똑하게 보이시는 할아버님 한 분이 앞에 나서서 나에게 갑자기 뜬금
없는 질문을 하셨다.
아, 저 말입니까? 저어짝 논배미 돌아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데요, 첩첩산중
오리무중에 있는 아주 깡촌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하늘이 생긴
이래 첫 번째 생긴 동네인데, 초촌리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엄청 깡촌이긴 매 마찬가지지요.
엉? 그려? 자네가 시방 그 짝으로 가신다고? 아니 근데 이게 무신 조화라냐? 우리가
전부 거기 산당께? 어이 모다들 나 좀 보더라고. 이 잘 생긴 총각이 시방 우리 사는
동네 초촌리엘 가신다는구만, 응? 시상에 이런 횡재가 어딧남? 아, 여보게들! 안 그려?
시방 내 말이 틀렸능감?
엉? 정말이여 그 말이 시방? 아니 이 먼 길에 요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여? 정말로
좋은 일일세,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고!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덩 덩 덩더꿍…….
말자 어멈! 시방 거기서 입 쩍 벌리고 뭐 허고 있는겨? 챙겨온 부침개 하고 쐬주병부텀
빨랑 꺼내 보더라고오.
그리하여 그 날, 안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자꾸 퍼져쌓는 고물 짐차에 술 억병으로
취하신 시골노인 열대여섯 분들을 뒤에 태우고, 만약에 일어나 춤추시다가 넘어지면
정말 큰일난다고 가만히 앉아 계시라고 그 만큼 당부를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일어나 노래 부르며 춤추시는 어르신네들 때문에 정말 열대여섯 번은 얼굴 노랗게 떠
차를 급히 세워놓고 각별한 주의를 준 후,
그래도 안 되어, 나중에는 기어이 차를 길 중간에 세워놓고는 키를 빼어 논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리며, 더 이상은 절대 못 간다고 논둑에 퍼질고 앉아 강짜를 한 두어
번 부린 후, 어찌어찌 간신히 하늘 아래 첫 동네 초촌리에 진땀 빼며 간신히 해질녘
쯤 도착을 하였던 것인데,
하여튼 그 몇 십년 전 경험을 생각해 보자면 지금도 끔찍하게 땀나는 악몽의 기억
때문에, 요즘도 내 앞에 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밀려 터지다 터지다 나중엔 차로
길 위에 뗏장을 쌓는다 해도, 그래도 난 클락션은 절대 누르지 않는다.
- 音 폴 사이먼 '이 모든 날이 지난 후에도 미칠 수 있을까?’
첫댓글 참 순진무구한 노인들이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