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접근성이 좋은 국립공원 중 하나인 계룡산에 가다
계룡산 국립공원은 내 고향과 가까운 한려해상 국립공원, 지리산 국립공원, 가야산 국립공원, 경주 국립공원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방문한 국립공원이다. 경상도에 위치한 국립공원에서 영역을 넓혀 다른 지방의 국립공원에 가보자라고 결심했을 때 발걸음이 닿은 곳이 바로 계룡산 국립공원인 것이다. 계룡산을 택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한다. 바로 교통이 편하다는 것이다.
산악형 국립공원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 또는 도의 경계가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산의 능선인 경우가 많으며, 계룡산은 충청남도 공주시와 대전광역시의 경계가 되고 있다. 대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심당이라는 유명한 빵집과 함께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다. 교통이 가장 편리한 국립공원은 북한산 국립공원이지만 경상도에 살았던 나에게 더 편한 곳은 북한산이 아니라 계룡산이었다. 북한산보다 계룡산을 먼저 찾은 이유는 내가 수도권에 살지 않는 촌뜨기였기 때문이었다.
계룡산을 등산하기로 결심했을 때가 겨울이 다 끝나가는 2월 중순이었다. 지금이라면 등산을 가급적 하지 않을 시기였지만 당시엔 등산 초짜라 아무것도 모른 채 등산 코스만 세웠다. 체력이 넘쳐나던 시절이라 동학사에서 등산을 시작해 갑사까지 넘어간 다음, 갑사에서 남매탑을 지나 다시 동학사로 내려오는 종일 코스를 계획했다. 거리는 16㎞ 정도, 시간은 9시간 걸리는 난코스였지만 겁이 없는 등산 초짜가 뭘 알겠는가. 계룡산을 한 번에 다 보겠다는 일념 하에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했다.
국립공원 이야기 91 - 계룡산 (鷄龍山)
계룡산국립공원은 지리산에 이어 1968년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남 공주시에 주로 위치하면서 일부가 대전광역시와 논산시, 계룡시에 위치한다. 다양한 야생 동 · 식물과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의 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계룡산국립공원 및 주변은 장석 화강암, 편마상 화강암, 화강섬록암 등 화강암 계열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급애, 절리, 토르(tor), 암석 돔(dome) 형태의 다양한 화강암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계룡산이라는 산 이름이 갖는 의미는 조선조 초기에 이태조가 신도안(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은 847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16개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등 10개소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자태와 경관이 매우 뛰어나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널리 중국까지 알려졌으며, 신라통일 후에는 오악(五嶽)중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중 중악(中嶽)으로 봉해질 정도로 이미 역사에서 검증된 명산이다.
명성에 비해 볼 게 없었던 계룡산
대전역에서 내리면 계룡산의 세 명찰 중 하나인 동학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대전에서 가장 가까워서 그런지 주말 동학사 계곡은 등산객들로 인해 발디딜 틈 없이 빼곡하다. '춘동학 추갑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동학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벚꽃이 만발한 봄이라고 한다. 늦겨울의 동학사 가는 길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로 가득 차 볼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동학사는 또한 한국전쟁때 모든 전각이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문화유산 답사 측면에도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동학사의 역사는 의외로 꽤 오래 되었다. 724년(성덕왕 23) 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 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동학사의 옛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동림당·조사전·숙모전·육화당·염화실·강설전·화경헌·범종각·실상선원·동학강원(東鶴講院) 등이 있다. 이 중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동학사에서 계룡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으로 가는 코스와 남매탑을 지나 삼불봉으로 오르는 코스로 나뉜다. 나는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에 먼저 오르기로 했다. 은선폭포는 옛날에 신선들이 숨어서 놀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의 물줄기가 낙차되어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7경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높이가 46m나 될 정도로 웅장한 폭포라고 하지만 막상 방문하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은선폭포는 계룡산의 정상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장마철이 아닌 갈수기에는 바위 위에 실개천같은 물줄기가 흘러내릴 뿐이다.
관음봉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계룡산의 능선이 그나마 볼 만하다. 서쪽으로 향해 연천봉까지 오르면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이 보인다. 천황봉으로 가려면 관음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가면 되지만 천황봉이 삼군본부인 계룡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방문하는 건 불가능하다. 관음봉과 연천봉에서 보는 계룡산의 경치가 훌륭하긴 하지만 천황봉에 오르지 않는 이상 계룡산에 올랐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계룡산 국립공원을 국립공원 여행기 가장 마지막 주제로 정한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것 때문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 그가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악행 두 가지를 꼽으면 무주리조트 건설과 계룡대 건설이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국립공원에 스키 리조트를 짓는 어이없는 짓에 이어 방어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수도로 삼을 뻔 했던 자리에 삼군본부를 만들었다. 덕분에 아름답게 보존되어야 할 계룡산 최고봉 천황봉 위에 쳐다 보기도 싫은 통신시설이 자리하였고, 삼군본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는 이상 계룡산의 원래 모습은 찾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연천봉에 올라 천황봉을 바라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나 커 계룡산 국립공원을 마음 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천황봉에 올라 능선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 곳이 왜 명산인지 알 수가 없다. 치악산이나 덕유산은 이름난 사찰 하나 가지지 못 한 대신 고도가 높고 웅장한 자연 속에 폭포나 계곡, 숲의 경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높이도 낮고 면적도 좁은 계룡산이 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풍수지리를 볼 수도 없다는 건 국립공원으로서의 가치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계룡산을 충남 제일의 명산이라고 하지만 내 첫 번째 계룡산 여행기는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없는 동학사에서 실망하고, 폭포도 아닌 은선폭포를 보고 실망하고, 연천봉에 올라 최고봉인 천황봉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에 또 실망했다. 이후에 갑사와 남매탑을 보며 계룡산이 품은 문화유산을 두루 보았지만 계룡산이 명산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국립공원 중 제일 별로인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난 자신있게 '계룡산'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후 계룡대에서 군생활을 하며 천황봉에 올라갔을 때서야 계룡산이 왜 계룡산이라 불리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계룡산이 지닌 산세를 보고나면 조선이 이 곳을 도읍으로 삼으려 했던 이유와 왜 그동안 무속인들이 계룡산에서 굿을 벌이려 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천황봉에 오를 수 있는 때는 일 년에 한 번 계룡군문화축제가 열릴 때뿐이다. 천황봉이 개방되지 않는 이상, 계룡산은 가까운 도립공원인 대둔산이나 마이산보다도 못한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