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사람들 | |||||||||||||||||
여학생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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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향 |
남자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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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한 |
박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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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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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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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
남자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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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헌 |
여자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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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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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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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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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
여자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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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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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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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
관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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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ok |
남학생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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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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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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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욱 |
관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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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원희#ok |
남학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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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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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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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 |
고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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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웅#ok |
군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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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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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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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한#ok |
남자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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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혁 |
군인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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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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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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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욱#ok |
여자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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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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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널 + 타이틀
<효과> (편의점, 사람들 북적대는) BG
여학생1 어, 너희들~. 나 화장실 간 새에 나만 쏙 빼놓고 편의점에 와서 컵 라면을 먹고 있다 이거지~?
여학생2 (라면 후룩거리고 먹다가) 미안해. 니가 안 보이길래….
너도 컵 라면 하나 가지고 이리 와.
여학생1 (걸어가서) 아줌마 여기 컵 라면 하나요. (아줌마: 응~!)
(뜯으며) 그런데 더운물 어딨어?
여학생2 온수기 저기 있잖아. (라면 국물 마시며) 어, 국물 한 번 시원하다. <해설> 24시간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나온 학생들은 물론이고, 거리 청소를 하던 미화원도 잠시 빗자루를 세워둔 채 컵 라면 하나로 허기 를 채운다. 야간근무 중에 잠시 빠져나온 직장인은 연신 시계를 들여 다 보면서, 아예 선 채로 그 꾸불꾸불한 국수 가락을 후루룩 소리를 내가면서 먹는다. 국물 있는 음식을 유달리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 에게, 짧은 시간에, 먹는 맛과 마시는 맛과 포만감까지 다 안겨줄 수 있는 음식은 아마 라면말고는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값은 또 얼마나 저렴한가. 그러나 이 라면이라는 식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시절에 따라 달랐다.
<효과> (부엌 솥뚜껑 젖히고)(봉지 뜯어 라면 넣는)
남아1 (부엌문 열고) 엄마, 배고파. 나도 라면 먹고 싶어.
여자1 쉿, 그런 소리말고 밖에 나가서 놀다와.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배고프다고 그래.
남아1 라면 먹고싶단 말이야.
여자1 인석아, 손님 드릴라고 끓이는 것이여. 저리 가지 못해.
<해설> 라면이 처음 선보였던 60년대에는, 그것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나 내놓을 수 있는 특별난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형편이 어려운 자취생 이나 저소득층 사람들이 밥 대신에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천한 음식 취급을 받기도 했고,
<효과> (음식점, 사람들 웅성대는) BG
남자1 (국물 떠먹다가) 그런데, 부대찌개에 뭐가 한 가지 빠진 것 같은데?
남자2 맞어. 라면이 없잖아. 아줌마! 여기 라면 사리 하나 넣어줘요!
<해설> 이제는 부대찌개나 떡볶이, 그리고 심지어는 민물고기 매운탕에까지 라면을 함께 넣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라면은 그 자체로 독립된 요리이면서, 한편으론 다른 요리의 보조재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라면은,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전 국민의 기호 식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라면이라는 식품이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누구에 의하여,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됐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사람 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다행히 그런 얘기를 들려 줄만한 사람이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있었다.
<음악> (브리지)
<해설> 서울특별시 하월곡동의 삼양식품 본사.
* 인서트-1. 54:42 - 55:12 0030-0100 30초
(40개국에서 1년에-463억 식-중국이 159억 식, 인니 92억 식, 일본 52억 식, 한국이 4위 37억 식-러시아 5억 식.)
<해설> 이 회사의 설립자로서 40년이 넘게 라면을 생산해서 팔아온 전중윤 회장은, 취재팀과 마주앉자마자 여든 네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국가별 라면 소비량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4위의 라면 소비 국으로서 연간 37억 식(食), 즉 37억 봉지를 소비한다는 얘긴데, 남한 인구를 4천만으로 치면 한 사람이 1년에 90봉지가 넘는 라면을 먹는다는 계산이다. 1963년에 최초로 라면을 생산한 이래 그 동안 약 180억 봉지의 라면을 만들어 팔았다는데, 그 면발을 모두 한 줄로 이으면 지구와 달 사이를 5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 전 회장의 설명이다. 이제 그의 증언을 토대로, 그 길고도 구불구불했던 우리나라 라면의 역사를 함께 더듬어보기로 하자.
<효과> (50년대 말 남대문 시장-사람들 북적거리는) BG
<해설> 1950년대 말 서울 남대문 시장.
전중윤 (걸어가며) 으음? (킁킁거리며) 그런데 김전무, 이게 무슨 냄새지?
김전무 글쎄 말입니다. 저 쪽 시장통 한복판에서 나는 냄새 같은데요?
전중윤 거 참, 냄새 한번 구수하구먼. 우리도 기왕에 점심 먹으러 나왔으니 냄새나는 쪽으로 한 번 가보자구.
김전무 예, 사장님.
<해설> 당시 전중윤은 보험회사를 차려 꾸려가던 사장이었다는데,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다가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남대문시장 통 한 복판으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효과> (사람들 양은그릇 등 딸깍거리며 북적대는) BG
남자3 (막대기로 드럼통 두드리며) 자, 자, 한 줄로 쭈욱 서요!
음식 받은 사람들은 5원씩 내고 저 쪽 공터로 가서 먹으세요!
복잡하니까 다 먹은 사람들은 좀 비켜주세요!
김전무 저 드럼통에다 무슨 죽을 끓여서 5원씩 받고 파는 모양인데요?
전중윤 글쎄 말이야. 냄새는 좋긴 한데…
*인서트-2. 04:11 - 04:54 0120-0203 43초
(하루는 그 낮에 점심시간에-남대문 시장 가-구수한 냄새-노동자들이 오륙십 명-도라무를 몇 개-끓는 냄새가 그렇게 구수해요)
<해설> 시장 노무자들이 5원씩을 주고 양철냄비에 받아먹고 있던 그 음식이 바로, 6.25를 겪었던 세대가, 당시의 피폐한 경제사정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곧잘 들먹이는 일명 꿀꿀이죽이었다.
미군들이 먹고 버린 음식찌꺼기를 미 8군에서 가져다가, 그 중에서 먹다 남은 고기뼈다귀 따위를 골라 배추시래기와 함께 드럼통에 넣고 끓인, 그야말로 돼지에게나 줘야 마땅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인서트-3. 05:34 - 06:16 0220-0302 42초
(왜 그래도 5원짜리 그걸 사 먹냐 하면-미국에서 밀가루는 무진장 줘 -하루 두 끼 정도 수제비 먹어-어려운 사람은 두 끼도 채 못 먹죠.)
<해설>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기관이었던 유솜(USOM)에서 밀가루 원조 는 비교적 풍족하게 해줬으나, 그렇다고 날마다 수제비만 먹고 살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도시 빈민들에게 그 꿀꿀이죽은 그나마 기름기를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은 6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음악> (브리지) - 짧은
<해설> 1960년대 초 일본 도쿄의 한 호텔. 당시 전중윤은 보험회사 사장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일본에 들렀었다는데,
전중윤 (호텔방 문 열고 들어와서) 자, 이게 어떤 물건인지 어디 좀 보자.
(라면봉지들 바닥에 내려놓는)
남자4 아니, 전 사장, 애들처럼 무슨 과자를 잔뜩 사다가 호텔 방에 늘어 놓는 거요?
전중윤 (라면 봉지 하나 집어들고) 허허허, 김사장 눈에는 이게 애들 먹는 과자로 보입니까?
남자4 아니, 어디 (라면 봉지 집어들고) 일본말로 ‘라멘’이라…
무슨 튀김국수 같은데…
전중윤 (라면봉지 만지작거리며) 여기 보세요. 포장지에 재료에다 조리법이 다 나와있지 않습니까. 국수를 기름에 튀긴 건데, 더운물에다 담갔 다가 그냥 먹으면 되는 신발명품 음식이라니까요.
남자4 아무 양념도 안 하고 무슨 맛으로 멀건 국수만 먹는다는 거요?
전중윤 허허허. (스프 꺼내들고) 이게 스프라는 것인데, 이 속에 양념이 다 들어있습니다.
남자4 전 사장, 내 호텔 측에 부탁해서 더운물을 좀 갖다달라고 할 테니까 당장에 한 번 시식을 해봅시다.
*인서트-4. 08:45 - 09:04 0320-00339 19초
(설명을 보니깐-수제비는 문제가 아니지요-양념을 넣었기 때문에.)
<해설> 일본에서도 초기에는 스프를 따로 만들어 넣지 않고, 라면을 튀기기 전에 면발을 양념국물에 담갔다 빼는 방식으로 제조했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양념이 잘 배어들지 않아서 나중에는 별도의 포장을 해서 봉지 속에 끼워 넣었다고 한다.
라면의 매력은 단순히 수제비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국수를 기름에 튀김으로써 모자란 지방분을 함께 섭취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었다. 전중윤은, 뜻한 바가 있어 그 일본 라면을 넉넉하게 사 가지고 귀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효과> (비행기 이륙하여 날아가는)
아나운서 (F) 다음은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발표한 혁명공약을 낭독해 드리겠습 니다. 혁명공약 1.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쳐온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해설> 1961년,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무엇보다 열악한 경제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지가 그들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였다.
더군다나 그들이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건 이른바 혁명공약의 제4항은 이렇게 돼 있었다.
아나운서 …4.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해설> 자주경제재건이야 먼 뒷날의 얘기고 우선은 국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 터에, 혁명주체세력 몇 명이 모인 자리에 처음 보는 음식 한 그릇씩이 차려졌다.
<효과> (사람들 라면 먹는) BG
관리1 맛이 제법 괜찮구먼.
관리2 전중윤 사장, 이게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전중윤 한자로 비단 라(羅)자를 써서 라면입니다. 일본말로는 라멘이고….
관리1 그런데, 이 튀김 국수가 어떻게 아녀자들 빠마머리 해놓은 것처럼 꾸불꾸불하게 생겼소?
전중윤 그렇게 해야 한 봉지 속에 많은 양이 들어가고, 또 통풍효과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관리2 수제비보다는 훨씬 먹을만하구먼 그래.
*인서트-5. 10:23 - 10:52 0350-0419 29초
(그땐 5.16이 났잖습니까-먹는 게 걱정-이만큼 가져가서 먹었지요)
관리1 라면공장을 차려서 이 꼬불꼬불한 튀김라면을 생산하면 식량난을 크 게 덜 수 있을 것이라 그 얘긴데….
전중윤 지금 유솜에서 오는 원조 밀가루는 많지만, 그걸 가지고 단순히 밀 개떡 쪄먹고 수제비 해먹는 방식으론 국민영양에도 문제가 있습니 다. 라면을 만들어서 공급하면 식량난을 크게 덜 수가 있습니다.
제가 보험회사 정리하고 그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관리2 좋은 얘긴데, 일본에서_라면 만드는 기계를 사오려면 돈을 달러로 바꿔야 할 것 아니오.
전중윤 예, 6만 달러 정도가 필요합니다.
관리1,2 “뭐요? 6만 달러?” “그렇게 많이 바꿔줄 달러가 어딨어요”
전중윤 그렇다고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는데,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관리1 (라면 수저 놓고 일어서 나가며) 라면인지 튀김국순지 그거 한 그릇 잘 먹었수다.
관리2 (은밀하게) 내가 방법을 한 가지 일러 주리다. 저기, 남산에 한번 가 보시오.
전중윤 나, 남산이오? 남산엔 뭣 하러…
관리2 중앙정보부 말이오. 그 쪽이 끗발 있는 동네니까 또 압니까, 없는 달러도 어디서 바꿔다 줄지.
*인서트-6. 12:54 - 13:38 0430-0514 44초
(달러를 6만 불 좀 할당해 달라-돈 없어-농림부에 미국관계로 10만불 들어온 게 있어-남산에서 5만 달러를 할당을 받았어요)
<해설> 그러니까, 당시의 라면사업은, 한 개인의 신규사업추진 수준이 아니 라, 국가적 과제였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 (브리지)
<해설> 비록 당시 한일 간에는 국교가 정상화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손에 달러를 쥐었으니 라면 기계를 사오는 것은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라면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함께 가져오지 못하면 그 기계는 아무 짝 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김평진이라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 교포 실업인을 우선 찾아갔다는데.
*인서트-7. 16:21 - 17:03 0530-0612 42초
(라면 기계 맹그는 사람을 김평진 씨가 소개-라면회사를 소개해달라- 묘죠 본사 갔더니-사장이 고쿠이라고-한지가 3년 4년 됐는데)
고쿠이 (앉으며) 앉으시죠. 저는 묘죠 라면 사장 고쿠이입니다.
전중윤 (앉고) 지금 우리나라 식량사정이 대단히 시급합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도 이번 라면공장 설치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라면 제조기술을 습득해 가는 문제가 시급한데…
고쿠이 우선 신용장부터 보십시다.
전중윤 (서류 봉투 내미는) 아, 예, 여기 5만 달러 L/C를 받아왔습니다.
고쿠이 아 그래요? (서류 꺼내보고) 이 돈 가지면 두 개 라인을 구입하고도 달러가 남습니다. 라면제조 기계 두 개 라인을 구입해서 설치하는 데에는 3만 달러가 채 안 들 겁니다. 그럼 우리 묘조 라면에서 기계 를 구입해서 한국으로 가져다 설치해주는 것으로 하지요.
전중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고맙지요.
고쿠이 우리 일본 기업들이 한국전쟁 때 군수품 조달사업을 해서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지요.
*인서트-8. 19:29 - 20:03 0630-0704 34초
(라면 공장 하나 하려면-기계업자 두 회사가 필요-오퍼 내라고 그래- 2만7천 달러-2만3천불이 남아-L/C명의 변경해서-묘조에다 주고)
고쿠이 우리 묘죠 라면에서 기계 일체를 한국에 갖다가 설치까지 해 드리겠 습니다. 기계 설비를 구입하고 남은 달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돈으로 다른 물품을 수입 해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전중윤 지금 나라 안에 달러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돌아가는 길로 상공부에 반납하겠습니다.
고쿠이 허허허, 애국자시로군요.
전중윤 그건 그렇고, 라면 만드는 기술 전수는 어떻게 도와 주시겠습니까?
고쿠이 저희 라면공장에다가 얘기해 놓을 테니까 한 보름 동안 아예 우리 라면공장으로 출근을 해서 전 사장이 직접 배워 가십시오.
전중윤 좋습니다.
<해설> 그렇게 해서 전중윤은 일본의 묘죠 라면, 우리식 발음으로 명성라면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는데,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 식품 만드는 기술을 단기간에 익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효과> (라면공장- 기계 돌아가고 사람들 물건 나르는 등) BG
전중윤 그러니까 여기다 밀가루를 퍼 넣고 물을 섞은 다음 반죽을 한다…
(걸어가서) 저쪽에서 국수 가락이 뽑혀 나오고…아하, 여기서 면발이 꼬불꼬불해지는 거로구나…그 다음에 한 봉지 분량이 되게 절단기로 자르고…어이고 고거 참 꽤 복잡하구먼. (걸어가서) 으음, 그런데… 여보세요, 기술자 양반! 이 라면 한 개 분량을 잘라내는 데에 뭔가 기준이 있을 텐데, 가령 몇 그램 기준으로 한다든가….
이런 귀가 먹었나, 도대체 들은 체를 해야 뭘 배우든 말든 하지.
*인서트-9. 20:33 - 21:14 0720-0801 41초
(거기 가니까 큰 공장-여관에서 자면서-전연 가르쳐 주질 않아-그림 도 그리고-몇 십 번 반복-내가 할 수 있어요 그걸 대강.)
<효과> (위 공장 소음) UP-BG
전중윤 으흠, 라면 한 개 무게가 85그램이라 이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워낙 배고픈 사람이 많으니까 좀더 늘려서 100그램 짜리로 만들면 되겠군 그래. 스프 20그램까지 합하면 120그램 짜리로 한다 이거야. 좋았어!
<해설> 그러나, 다른 기술이야, 눈으로 보고, 직접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서 익힐 수가 있었으나, 문제는 스프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스프는 애당 초 만들어져서 포장이 된 것을 공정에 투입을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스프에 어떤 원료가 들어가고 그 배합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중윤 이게 뭐야. 스프 만드는 기술을 못 배워 가면, 용 그림을 그려놓고 눈을 못 그린 셈인데…
<해설> 그러나, 기술을 무상으로 전수 받는 처지에, 왜 스프 만드는 기술은 안 가르쳐 주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기계설비에 대한 계약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네다 공항에서 여객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효과> (일본 공항, 사람들 북적대는) BG
전중윤 뭐? 6.25 때 군수물자 조달해서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빚 갚는다는 차원에서 도와주겠다고? 안 가르쳐 줄 거면 말라지, 까짓 것. 된장가루를 빻아서 만들든 멸치가루를 넣어서 만들든 스프 고거 하나 못 만들 줄 알고? (걸어가며) 좋다 이거야.
남자5 (헐레벌떡 뛰어오며) 전중윤 사장님!
전중윤 아, 묘죠라면의 하시모토 상무 아닙니까?
남자5 (서류봉투 건네며) 여기, 저희 사장님이 갖다 드리라고 해서…
전중윤 (건네 받으며) 이 서류봉투에 뭐가 들었는데요?
남자5 스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전중윤 예?
남자5 미리 가르쳐 드리면 기밀이 누설될까봐 이제야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 기술이 외부에 알려지면 절대 안 됩니다.
*인서트-10. 37:42 - 38:30 0820-0908 48초
(스프는 여러 가지를 배합해서-동경 하네다 공항-비행기 출발 10분전 -비행기 안에서 뜯어보라고-절대 알려주면 안됩니다)
<해설> 이제 기계도 구입했고 기술도 배웠으니 한국에 돌아가 라면을 만들어 공급할 일만 남은 셈이었다. 물론 차질 없이 제대로 가동을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하다는 얘기였다.
<음악> (브리지)
<해설> 성북구 하월곡동, 그러니까 지금 삼양식품 본사건물 자리가 예전에는 허허벌판이었는데 그 곳에 라면공장이 들어섰다. 당시에 150여명의 생산직 종업원들을 모집했는데, 밥벌이할 자리가 태부족이던 시절인 지라 자리다툼이 대단히 치열했을 건 당연한 일.
<효과> (라면공장, 기계 돌아가는) BG
(밀가루 포대 나르는 등 작업중인) BG
전중윤 (공장 안으로 들어와서) 별 이상 없이 작업이 잘 되고 있나?
김전무 예, 사장님.
전중윤 (걸어가서) 1인분으로 잘라져 나온 라면의 양이 어때? 일본보다는 15 그램을 더 늘렸는데…
김전무 그 정도면 한 끼 식사로 적당합니다.
전중윤 우리 종업원들 점심식사는 전부 라면으로 주고, 배고파서 더 먹겠다 는 사람 있으면 얼마든지 더 먹게 하라구.
김전무 알겠습니다.
<해설> 그럼 여기에서_라면 제조 공정을 대강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가장 먼저, 밀가루를 용기에 붓고 반죽하는 게 첫째 공정인데, 요즘이야 모두 자동화시스템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 이 삽으로 밀가루를 일일이 퍼부어야 했다.
*인서트-11. 24:56 - 25:41 0920-1005 45초
(면대라고 해서-반죽해서 반대기를 만들어-기계로 해서 갈라져서 꼬 불꼬불해져-스프 20그램 해서 우린 120그램이 됐어요.)
<해설> 한 봉지 분량씩의 국수가 잘라져서 라면 한 개 용량 크기의 납형에 담긴 다음 팔팔 끓는 기름가마로 들어가서 튀겨진다. 튀김장치 즉, 프라이어에서 나온 국수는 냉각장치로 들어가 식혀진 다음 포장대로 옮겨져 포장이 된다. 말은 쉽지만 그 공정이 13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단 그렇게 생산을 시작하긴 했는데, 생산에 돌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가 멈추고 말았다.
전중윤 (급히 공장으로 들어와) 문제가 뭐야?
김전무 국수를 튀길 기름을 갈아줘야 하는데 기름 충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중윤 (막대기로 기름 저어보며) 이게 뭐야, 이 기름은 다 굳어버리고 색도 변질됐잖아. 아니, 저기 마장동 도살장에 쇠기름 돼지기름 구해오라 고 했는데 어떻게 됐어?
김전무 구해올 수 있는 기름의 양이 워낙 미미해서 들기름을 사용해봤는데 이틀도 못 가서 변질돼버리는데요.
전중윤 허허, 이거 문제로군 그래.
밀가루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서트-12. 26:58 - 27:46 1020-1108 48초
(그런데 기름이 있어야지요-돈지나 우지는 그래도 오래가-들기름은 이틀도 못 가-일본은 우지를 써-우지수입이 참 어렵데요.)
<해설> 일본에서도 라면 튀김용으로 소기름, 즉 우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전 회장의 설명이다. 우지 얘기가 나와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1989년 이른바 공업용 우지를 라면 제조과정에서 사용했다는 매스컴 의 대대적인 보도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해당 라면제조업체 대표들이 기소 된지 8년여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일단락 됐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막대했다는 것이 전 회장의 주장이다. 여기서는 그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게 목적이 아니니 이쯤 해두기로 하고.
어쨌든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름 정제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정제된 소기름을 드럼통 째로 수입해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음악> (브리지)
<해설> 라면 생산이 본궤도에 올랐으나, 문제는 사람들이 도무지 라면을 사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라면이 무엇인지를 도통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 였다. 관철동에 있던 삼양라면 사무실.
<효과> (길거리, 버스들 지나다니는) BG
전중윤 자, 자, 조심해서 올려! 줄 놓치면 안 돼!
김전무 됐다, 됐어, 전신주에다 단단히 묶으라고!
<해설> 서울도심 하늘에 대형 애드벌룬이 떠올랐다. 이 때가 1963년이었는데 풍선을 띄워 광고에 이용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전회장은 얘기 한다.
<효과> (사무실, 전화벨 울리는)
김전무 예, 삼양라면 사무실입니다.
여자2 (전화) 여보세요? 그런데 거기서 나온 라면인가 하는 거 동대문시장 포목점에 가면 살 수 있나요?
김전무 예? 라면을 포목점에서 사다니요?
여자2 아, 참, 그럼…실_파는 가게에서 취급하나요?
김전무 그런 게 아니고요. 라면은 간편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아주 맛있는 신제품 음식이에요.
여자2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는 또 면이라고 해서…
*인서트-13. 32:11 - 32:40 1120-1149 29초
(종로 관철동에-첨에 애드벌룬 띄워-그걸 보고 여기저기서 전화-옷감 이오, 실이오, 이렇게-아, 그래 먹는 거라고.)
<해설> 그런 지경이었으니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라면이 식품이라는 사실부터 알려야 할 형편이었다.
박부장 (사무실문 열고 들어오며) 아이고, 이거 큰일났는데요.
김전무 어, 박 부장, 대리점들 좀 돌아보고 왔어?
박부장 돌아봤는데 라면을 상자 째로 그냥 싸놓고 있더라고요.
찾는 사람이 없대요.
전중윤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 되겠어. 김전무!
김전무 예, 사장님.
전중윤 비상홍보활동에 들어가야겠어.
팔리지도 않는 라면, 만들어 봤자 소용없는 일이고, 종업원들 전부 데리고 서울역하고 시내 극장으로 가서 홍보활동을 하라구.
김전무 어떤 식으로 홍보를….
전중윤 서울역에서 고향 가는 사람이나, 극장에서 활동사진_보고 나오는 사 람들한테 라면 한 봉지씩을 공짜로 나눠주란 말이야.
집에 가서 끓여 먹어보고 맛있으면 사먹으라고.
김전무 알겠습니다.
전중윤 박부장은 말이야, 요즘 이런 저런 부인단체들 많이 있잖아. 그 부인 네들 찾아가서 즉석에서 라면을 끓여서 시식을 하도록 해봐.
박부장 알겠습니다 사장님.
*인서트-14. 34:11 - 34:31 1200-1220 20초
(그래서 할 수 없이-서울역에 가서 기차 타는 사람들-극장에 가서도 주고-부인단체-끓여서 먹여보고 그걸 오래 했지요)
<해설> 그리고 처음으로 라디오 광고도 하게 됐는데 남자 성우가 “후루룩, 후루룩”이라고 하면 여자 성우가 “냠냠”하는 식이었다. 삼양라면이 맨 처음 출시 됐을 때의 포장 디자인은 주황색 바탕에 수탉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 냈던 신문광고의 문구를 읽어보면, 초 창기에 라면이 우리 식생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다.
아나운서 (신문광고 카피 낭독) “오늘의 화제, 우리의 식생활 해결됐다!” 라면 의 특징 첫째, 끓는 물만으로 3분이면 OK! 둘째, 영양가가 풍부하고 셋째, 손님접대용으로 유용하며, 넷째, 하이킹 및 야외에 나갈 때 간편하게 지참할 수 있어 좋다!
<해설> 대개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엔 다른 생산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라면 이라는 말 자체가 고유상품명처럼 쓰였고, 삼양라면이라는 말 자체가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어쨌든 그런 홍보활동의 영향 탓으로 라면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서트-15. 34:54 - 35:32 1240-1318 38초
(맛있거든 사실-수제비에다 댈 바가 아니니까-먹어보고 사가고-이익 을 남기는 게 아니라-식량문제 해결-이걸로 해야 되겠다.)
<해설> 그런데 라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서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기 시작하자, 라면을 만들어 팔겠다는 후발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럭키에서도 한 때 라면을 만들었고, 언론사인 조선일보사 에서도 ‘내외라면’이라는 상표를 내걸고 라면사업을 시도했었다는 사 실은 일반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다.
전윤중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인서트-16. 35:57 - 36:53 1330-1426 56초
(조선일보가 라면공장을 차려-뚝섬에다-내외라면이라고-군납한다고- 럭키, 동방유량, 최씨라는 분이 또-조선일보가 달라붙어도 군납 안 돼-기계를 우리가 샀어요 사달라고 해서.)
<해설> 그들 업체가 1년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린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초기에 삼양라면이 워낙 가격을 싸게 매겼기 때문에 타산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 전회장의 주장이다.
*인서트-17. 40:08 - 40:40 1440-1512 32초
(그러니까 그 때 값을 10원-10원 팔면 50전 정도 남아-나는 값을 너 무 싸게 했거든-기술과 이익이 없던 거지요.)
<해설> 그리고 우리보다 3년 일찍 라면을 개발해 공급했던 일본의 회사들이 기술제공을 철저히 꺼렸던 것도 후발업체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게 전회장의 분석이다.
<음악> (브리지)
<효과> (회사 마당-수백 명의 남녀 종업원들 웅성대는) BG
박부장 (호루라기 불고) 자, 오늘 새로 온 종업원들은 내 말 잘 들으세요!
여러분들이 라면공장 직공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있어요. 첫째도 청결이고 둘째도 청결이에요.
지금부터 남자들은 저쪽 천막으로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여자들은 여자 인솔자를 따라가서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에 회사에 나눠준 옷 으로 갈아입으세요!
<해설> 생산규모가 커지자 도봉동 쪽에다 새로 공장을 마련했는데, 그곳에는 서울시내에서 화재나 수재를 만나 갈 곳이 없어진 이재민들, 그리고 도심지에서 철거당한 이주민들이 그 부근에 집단으로 이주해 천막을 치고 살고있었다. 그 이주민 가족 중에서 한 사람씩을 라면공장 직공 으로 뽑은 것이었다.
*인서트-18. 42:53 - 43:25 1530-1602 32초
(한 5백 명을 모집해-경찰서에 얘기해서 천막 한집에 한 사람씩-장교 출신들이 훈련을 시켜-목욕-옷은 다 주고 신발 다 주고)
<해설> 1년쯤 있다가 그 천막촌에 가보니 천막들은 대부분 판잣집으로 변해 있었고, 또 얼마 있다 가보니 집집마다 페인트가 칠해져있더라고 했 다. 가족 중에 고정수입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당시의 그들에게는 대단한 힘이 됐을 것이라고 전 회장은 회고한다. 이후 많을 때는 종업원이 2천 명이 넘었다고 하니, 라면이 극심하던 식량난을 더는 데 공헌을 했다면, 라면공장은 대책 없이 밀려난 그 도시빈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을 것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그런데, 초창기 적의 라면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여자3 60년대 그 때 라면 첨 나왔을 땐 말이야, 라면을 솥에다 끓여놓으면 기름이 동동 뜬 게 아주 맛이 그만이었는데…
여자4 내 말이 그 말이야. 노릇노릇~한 기름이 동동 뜨는 게 아주 먹음직 스러웠는데 요즘 라면 맛은 영 아니라니까.
<해설> 요즘 라면과 초창기 라면이, 우선 끓였을 때 기름이 많이 뜨고 적게 뜨는 차이가 있다는 얘긴데, 40년 간 라면사업에 종사해온 전윤중 회 장은, 그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이스크림이 훨씬 더 잘 팔렸다는 이색적인 얘기도 덧붙 인다. 무슨 영문일까?
*인서트-19. 59:30 - 1:00:17 1620-1707 47초
(뱃속에 기름이 없으니까 허하지 않습니까-지금은 11%인데 그 때는 20%-아이스크림 먹게 됐다고-아이스크림 회사가 나보고 그랬어요)
<해설> 당시에는 워낙 체내에 지방분이 모자라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뱃속 이 차가워서 부대끼기 때문에 잘 안 사먹었는데, 라면으로 기름기를 보충하고부터는 잘 사먹게 됐다는 얘기다.
6-70년대에 라면 먹던 추억을 더듬어 가노라면 라면을 기름에 오래 튀겨만든 라면과자를 빼놓을 수 없다. 삼양라면의 ‘뽀빠이’, 그리고 농심의 전신인 롯데라면의 ‘라면 땅’이 그것이다.
군것질 거리가 궁하던 시절 그 라면과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던 주전부리 식품이었다.
<음악> (브리지)
*인서트-20. 1:21:10 - 1:21:36 - 최남석 1720-1746 26초
(큰솥에다 국수 끓여 가지고-온가족이 국수 먹어-거기다 라면 한봉지 넣어-형제들이 서로 그걸 건져먹으려고 다투던 기억이.)
<해설> 삼양식품 최남석 홍보팀장의 얘기다. 그 때 시골집에서, 국수 가락 사이에 숨어있던 라면 면발을 서로 건져먹으려고 다투던 아이가 지금 은 라면회사의 홍보책임자가 됐다는 얘기다. 6-70년대에 소년기를 보 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음직한 일이다.
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5분 동안 끓이다가 스프를 넣고 다시 2,3분을 더 끓이라고 나와있지만, 그런 조리법을 우습게 여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로 남학생들이었는데,
<효과> (중학생들, 매점 앞에서 북적대는) BG
남학생1 야, 너 매점에서 뭐 샀어?
남학생2 응, 라면.
남학생1 라면을 어디서 끓여먹으려고 사?
남학생2 짜식, 꼭 끓여야 라면이냐. (손바닥으로 라면봉지 때리며) 요렇게 일단 박살을 낸 다음에, 스프를 꺼내서 섞어 먹으면 되는 거지.
남학생1 야, 나도 조금만 줘!
*인서트-21. 1:22:19 - 1:22:47 1800-1828 28초
(중학교 때는 한창 성장기니까 배고파-생 라면 봉지를 착! 눌러서-가 루를 낸 다음에-스프 넣어-짭짤해 가지고 아주 많이 먹었어요.)
<해설> 라면 얘기를 하면서 군대 얘기를 빠뜨리면 안 된다.
군대 라면은 아주 맛이 없기도 하고 또 아주 꿀맛 같기도 하다.
<음악> (군대 일과 끝 사이렌 소리)
군인1 자, 점심 먹으러 가자!
군인2 야, 김 상병! 오늘 일요일이니까 메뉴가 라면 아냐.
군인1 에이, 그 불어터진 걸 또 어떻게 먹지.
<해설> 매주 일요일 점심거리로 라면이 제공됐는데 수백 명이 먹을 분량을 한꺼번에 끓이다보니, 대부분 면발이 불어있기 일쑤였고, 어쩌다가 보초 근무를 마치고 취사반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 그건 숫제 라면 가락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꿀맛 같은 라면 역시 군대에 있었다.
*인서트-22. 1:24:05 - 1:24:46 1840-1921 41초
(내무반에서 사실은 라면을 많이 끓여먹어-주전자에다 끓여-쟁반에다 확 부어-고참들 먹고-졸병은 손 못 대고-나중에 건더기 남은 거하고 국물하고 나눠 먹지요 두 명이서.)
<해설> 라면을 끓이는 장소가 꼭 내무반일 필요도 없었다.
군인1 (은밀한) 야, 최상병 우리~ 라면 끓여먹자.
군인2 초소에서 라면을 끓인다고? 그러다 순찰 나오면 영창 갈라고?
군인1 순찰은 조금 전에 왔다 갔잖아. (라면 꺼내고) 야, 거기 탄약통 뒤 에 반합 꺼내. 내가 고체연료를 준비해 왔거든.
군인2 야, 불빛 안 새게 판초 우의로 가리고 해.
<해설>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할수록 라면 맛은 더욱 기가 막혔다. 덜어먹을 그릇은 따로 필요치 않았다. 라면봉지를 왼손 바닥에 놓은 다음에, 그 위에 건더기를 건져 올려놓고 먹다보면, 얼었던 손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그런데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전윤중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인서트-23. 56:13 - 56:55 1940-2022 42초
(첨에는 스프에 계란을 넣어-면 반죽 물에도 넣고-계란 들어가니 끈 기가 덜해-그래서 스프에만 넣어-요즘은 영양과잉-요새는 계란을 쪼 끔 넣습니다)
<해설> 그러니까 초창기엔 반죽을 할 때 아예 계란을 넣었는데, 결국 찰기가 떨어져 계란을 넣지 않게 되면서부터, 라면회사에서는 겉 봉지에다 “계란을 곁들여먹으면 더욱 맛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넣었다는 것이 다. 결국 ‘우리가 못 넣었으니 당신들이 넣어서 먹어라~’ 이런 의미 였던 것이다. 물론 군대에서야 라면 봉지 겉봉의 계란노른자가 그림 의 떡이었지만.
<음악> (브리지)
<해설> 우리는 지금도 라면을 먹는다.
하지만, 먹고살기 곤란하던 시절 라면으로 자주 끼니를 때웠던 사람 들 중에는, 라면만 보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라면 한 봉지를 앞에 놓고도 떠올리는 추억들은 각각 다르다. 한자말에서 온 보통명사이면서도 두음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은 채 ‘라면’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그 튀김국수는, 단순한 음식이나 식품이 아니라, 우리네 지난 시절의 애환을 읽어낼 수 있는, ‘추억으 로 통하는 코드’ 같은 것이다.
<음악> (엔딩)
* 시그널 + 클로징
▶ 면발의 제조공정
※ 면발의 제조공정은 크게 7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① 배합공정 : 소맥분과 배합수를 혼합하여 반죽을 만든다
② 제면공정 : 반죽된 소맥분을 롤러를 이용해 얇게 눌러 펴서 면대를 만든다. -> 압연된 면대를 제면기를 이용하여 국수모양 (국숫발)을 만든다. ->이어서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조절하여 라면 특유의 꼬불꼬불한 면발 형태를 만들어준다.
③ 증숙공정 : 스팀박스를 통과시키면서 국수를 알파화 시킨다. (소화가 잘 되는 알파호화전분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100℃ 이상의 스팀을 사용한다)
④ 성형공정 : 증숙된 면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납형(納型) 케이스를 이용한다.
⑤ 유탕공정 : 알파화된 증숙면을 정제유지로 150℃ 정도에서 튀겨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알파화 상태를 계속 유지 및 증가시켜주는 것이 가능하며, 면의 수분을 휘발시키는 한편 면에 기름을 흡착시켜 준다.
⑥ 냉각공정 : 유탕에서 나온 면을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이동시켜 가면서 상온으로 냉각시켜 준다.
⑦ 포장공정 : 냉각된 면에 포장된 수프를 첨부하여 자동 포장기를 이용, 완제품 라면으로 포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