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 130(129),5)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공통되게 위기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모습을 전합니다.
우선 오늘 독서의 말씀은 구약의 예언자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말씀이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음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 악행을 일삼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을 무거운 징벌을 냉혹히 예고하십니다. 사실 여기까지의 독서 말씀만을 읽다보면 아모스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엄벌의 하느님, 냉혹하게 정의의 잣대로 판단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늘 독서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죄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니, 이스라엘아, 너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아모 4,12)
이 같은 하느님의 말씀 가운데 마지막 말씀, ‘준비를 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 말은 군사동원(에제 38,7), 또는 전례 소집에 쓰이는 동사라고 합니다(탈출 19,11; 2역대 35,4). 그런데 여기에서는 심판자이신 분과의 인격적 만남을 앞두고 회개의 결심을 촉구하는 호소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석 성경은 말합니다. 곧, 악행를 일삼아 벌을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주시면서 그들이 더 이상 악행이 아닌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 말씀 역시 오늘 독서와 같이 위기에 처해 있는 제자들을 구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있던 제자들과 예수님에게 위기 상황이 닥칩니다. 호수에 풍랑이 일었던 것입니다. 호수에 웬 풍랑이냐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건넜던 갈릴래아 호수는 그 호수의 총 둘레만도 45K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서, 당시 유다인들은 그 호수의 크기의 방대함으로 인해 그곳을 갈릴래아 바다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정도로 규모가 큰 갈릴래아 호수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마치 바다와도 같이 풍랑이 일었고 오늘 복음의 상황이 바로 딱 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자 제자들은 허둥지둥 잠들어 있던 예수님을 깨우며 구해달라고 호들갑을 떱니다. 제자들의 다음의 말이 그들의 다급한 심정을 잘 드러내 줍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ㄴ)
제자들의 이 말을 곰곰이 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풍랑으로 인해 죽게 될 자신들을 구해 줄 능력이 있는 분임을, 그까짓 풍랑쯤은, 죽은 이도 살리시는 예수님께서 충분히 잠재우고도 남으실 분임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은 깨우고 그분께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런 능력의 분으로 믿고 있던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들의 믿음에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예수님을 그런 능력의 분으로 믿으면서도 그들은 행동으로는 온갖 호들갑을 떨며 허둥지둥 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같은 능력의 분이심을 믿었다면, 제자들이 허둥거릴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그 분께 도움을 청하면 그만일 것을, 그들은 마치 예수님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그들 모두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ㄱ)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단 한 마디 말씀으로 풍랑을 잠재우고 제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순식간에 없애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이 저의 마음 안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 안에는, 그리고 그들의 믿음 안에는 여전히 세상의 온갖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세상이 주는 기쁨과 유희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쾌락의 유혹에 마음이 설레며 순간순간 흔들리며 마치 호수에 풍랑이 치듯 그들의 마음 안에서 유혹의 풍랑이 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분을 주님이라고 믿어 고백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항상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음의 풍랑이 일고, 세상의 갖가지 유혹에 또 풍랑이 일어 그들의 삶이라는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단 한 마디 말씀으로 제자들의 마음 안의 모든 풍랑을 잠재우시고 그들에게 굳은 믿음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ㄱ)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지만, 실상 우리는 믿음이 약해, 겁을 내며 두려움에 떨고 세상의 갖가지 유혹에 마음의 풍랑이 일어 그 풍랑의 파도에 어쩔 줄 모르고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독서의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고 세상의 온갖 것들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오늘 말씀으로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의 그 말씀을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이 잘 표현해 줍니다.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 130(129),5)
복음환호송의 이 말씀처럼 우리가 그분께 바라며 하느님 말씀에 우리의 희망을 둘 때, 우리 삶은 세상이 주는 온갖 시련과 유혹,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마음의 풍랑을 모두 잠재울, 단 한 마디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잠재울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단순히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의 능력을 보고 그저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만 바라며 그 분 말씀에 우리 희망을 둠으로서 우리가 굳은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 믿음의 보상으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그러하셨던 것처럼 놀라운 당신의 기적을, 매 순간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를 당신의 능력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하느님 말씀 안에서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며 그 말씀에 우리 희망을 두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시편 130(1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