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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미움을 받아도 행복한 사람들 / HUMANITIES_인문학 산책. 아들러 심리학
ysoo 추천 0 조회 51 16.01.30 23: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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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_인문학 산책

 

미움을 받아도 행복한 사람들

 

백억을 가진 사람은 천억을 못 가져서 불행하다


인생의 가장 큰 주제는 누가 뭐래도 행복이다. 철학적인 화두로 삼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행복을 원하는 본능이 있고, 그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에 대한 가르침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행복론이 전파돼왔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행복을 갈구하고, 그것에 대한 지혜를 설파했지만 아직도 인류 대부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억을 가진 사람은 천억을 못 가져서 불행하다고 한탄할 것이니 물질우주에서 행복의 척도를 제시한다는 건 요원하거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 자체를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되어있다. 참으로 모호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만족과 기쁨은 수시로 우리를 스쳐간다.
친구를 만나거나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것도 충분한 만족과 기쁨의 조건이 된다. 그래, 그런 순간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행복은 그런 찰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요컨대 지속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는 지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조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돈이 없어 불편하다면 돈을 벌면 행복해질 것이다. 얼굴이 못생겨서 고민이라면 성형해서 미인이 되면 행복해질 것이다. 직장이 없어 고심하는 사람은 취직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요컨대 A라는 불편 사항을 A’라는 충족 사항으로 대체함으로써 마음의 불편을 해소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내세우는 조건 대부분은 삶의 불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의 갈망이다. 하지만 A를 A’로 대체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해결되면 B가 생기고, 그것이 해결되면 C가 생기는 식으로 죽는 날까지 불편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뭔가 뿌리를 찾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욕망의 굴레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자기 계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목적론을 제창했다. 주어진 인생의 조건을 리콜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용도에 맞게 고쳐가는 것,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의 요체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 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이라는 대목이었다.

역으로 말해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한없이 불편한 인생을 살고, 불편한 인생을 사니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인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남에게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살라는 요지다.


인간의 고민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는 설파는 명료하고 명쾌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숲에서 살다 간다. 그 울창한 숲에서 우리는 ‘나’를 나타내기 위해 고심하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고뇌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남에게 무시당할 거라 두려워하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거라 두려워한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떠올리고, 그것이 두려워 포기할 때가 훨씬 많다. 내가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남을 위한 ‘맞춤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난을 즐기는 취향의 계보


베르나르-앙리 레비(Bernard-Henri Levy)는 프랑스의 철학자다. 작가, 영화감독, 저널리스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대표적 지식인이다. 미셸 우엘베크(Michel Houellebecq)는 소설 <소립자>로 전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대표 작가다.

68세대의 산증인이자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로 떠오른 베르나르-앙리 레비와 부모 세대인 68세대를 겨냥한 비판으로 프랑스 문학계에 파장을 몰고 온 미셸 우엘베크가 6개월 동안 주고받은 편지 28통을 엮어 <공공의 적들(Public Enemies)>을 출간한 적(2008년)이 있다.

미국의 <타임(Time)>이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끔찍한 쇠퇴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로 두 사람을 선정했을 뿐 아
니라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욕을 먹고 미움을 사면서도 자신들의 주장과 개성을 꿋꿋하게 지켜가는 두 명의 ‘공공의 적들’은 편지에서 프랑스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자신의 전기를 쓴 작가에게 한 말 -“당신이 내 명예를 실추시킨다 해도, 그로 인해 나는 성장할 겁니다”-을 인용하거나, 니체를 인용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자기 당대와 불화했던 샤를 보들레르, 장 폴 사르트르, 장 콕토, 에즈라 파운드, 알베르 카뮈를 불러내 ‘비난을 즐기는 취향’의 계보를 형성한다.

아무려나 공공의 적임을 자처한 두 인물이 대단한 강단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누리는 삶의 자유가 바로 그와 같은 비난과 미움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대단한 용기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요컨대 진정한 자유인의 초상을 목도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 몇몇 사람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상상해보라. 모두 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가운데 몇사람이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매일 사형에 처해진다.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도 그 동료들과 같음을 깨닫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중

 

 

파스칼은 남들의 이목에 사로잡혀 불행한 인생을 사는 인간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인간의 심장을 쪼아대는 여론, 평판, 평가, 험담, 소문, 비난, 미움, 증오, 악플 따위에 얽히고 설킨 채 인간은 파스칼의 묘파처럼 누구나 잠재적인 사형수로 살아간다.

남의 이목과 비난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사람도 이와 같은 여론 사형 제도의 피해자다.

21세기, 우리가 살아가는 SNS 감옥은 <팡세> 시대의 비유가 무차별하게 팽창하고 또한 극대화된 세상이다. 날마다 무차별하게 처형하고 또한 처형당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날이면 날마다 무수한 사람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아이러니가 온 세상에 만연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셸 우엘베크는 베르나르-앙리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팡세>를 읽은 뒤에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힘겹지만 세상 사람의 이목에서 벗어날 용기를 선택한 것이다.

남의 눈치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온갖 비난과 미움을 받으면서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오늘날 가장 개성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베르나르-앙리 레비 역시 마찬가지다.


남에게 잘 보이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듯 남에게 욕먹는 일 또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자유의 길이고 행복의 길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평가받는 것은 타인을 위한 삶이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평가를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시선과 입장이 존재하니 그런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욕먹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곧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글 박상우(소설가) 일러스트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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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시대…또다시 주목받는 아들러 심리학

 

미생들이여, 인생에 상처받지 않을 용기를 가져라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버텨내는 용기 :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엑스오북스

 

나를 미치게…  가타다 다마미 지음. 홍성민 옮김. 청림출판사

관계수업 : 데이비드 번즈 지음. 차익종 옮김. 흐름출판

 

 

미움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 나를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 관계수업 …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심리학책들이다.
2000년대말 서점가에 불었던 심리학 바람이 불안한 개인을 다독이거나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바쳐졌다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심리학은 개인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타인의 시선이나 외적인 요소에 흔들리지 않는 나 를 부각하며, 내가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고 추동한다는 점에서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을 관통하는 심리학의 중심에는 알프레드 아들러가 있다.

 

'미움받을 용기' 와 '버텨내는 용기' 는 20년 넘게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해온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쉬운 해설 덕에 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 가 세상에 부정적이고 열등감이 많은 젊은이와 철학자의 만남을 통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면, '버텨내는 용기' 는 아들러의 생애와 이론, 자녀교육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관계심리학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아들러 심리학은 타자와의 관계를 성격형성과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으로 본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달리 인간의 보편성보다 개개인의 상황을 중시한다.

 

여기서 아들러는 결정론과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아들러는 어떤 경험도 그 자체로는 지금의 성공 혹은 실패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신이 경험한 소위 트라우마라는 충격 때문에 지금 고통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트라우마는 나중에 갖다 붙인 핑계거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의미를 붙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말하자면. 외적요건에 의해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여기 있다는 게 아들러의 핵심이론이다. 따라서 미래의 삶 역시 지금 나의 선택에 의해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과거로부터 병적 증세의 원인을 찾은 것과 달리 아들러의 목적론은 미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지금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아들러는 원인을 과거와 타인에게서 찾았다고 해서 현실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한다.
한발을 내딛는 행동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로 이어진다.

여기서 아들러의 독특한 용어인 '공동체감각론' 이 들어선다. 아들러는 타자를 적으로 보느냐, 친구로 보느냐에 따라 삶이 바뀐다고 말한다. 적으로 보는 순간 신경증적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게 된다. 스스로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회피하거나 역으로 공격적 행동으로 욕구를 표출하는 것이다. 공격적 폭력적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려 듦으로써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려하는 행위로 읽힌다.


아들러가 제시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인관계는 타자를 친구로 여기는 것이다. 타자를 적대적 관계로 보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 기대가 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는 본질적 나를 깨닫는 것이다. 이는 성격형성의 주요인인 열등컴플렉스를 넘어서는 길이다. 아들러가 강조한 공동체 감각은 타인을 대등한 관계로 보는데 있다. 우월적 지위나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아들러는 타자와의 협력, 타자에의 공헌이 더 나은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이런 아들러의 가치 중심적, 목적론적 심리학은 당대엔 배척당했지만, 요즈음 훨씬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번 주에 나온 또 다른 심리책 '나를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 은 공격적인 유형의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함으로써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느냐에 집중한다.

를 힘들게 하는 인생 파괴자들의 공격에서 내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본 정신과 전문의인 가타다 다마미는 공격적 성향의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잘못된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고 상대의 지적을 무시하고 타인의 가치를 무시하고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며 죄책감을 부추기는 이런 성향은 대화로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질적인 대처법을 찾으라는 것.

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알아야 하며,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두면 상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다음 행동이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소극적인 대안처럼 여겨지지만 마음의 호신술 정도로 익혀둘 만하다.

 

 

불편한 관계는 자기선택의 결과물
공격적 타인엔 근원적 이해로 접근
관계회복 위해 자기성찰 필요
쉽게 푼 자기개발론 젊은층에 인기

 

스탠퍼드 의과대 심리행동과학과 데이비드 번즈 교수의 '관계수업' 도 25년 간 불편한 인간관계로 고통받는 수천명의 상담자들을 연구하고 치료한 결과를 토대로 관계회복의 열쇠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랜 임상치료 결과를 토대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 원인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떤 치료 기법을 동원해도 절대로 상태를 개선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즉 문제가 있을 때 자기 책임을 돌아보며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다고 느끼는 사람은 보람되고 성공적인 관계를 이룰 가능성, 계속 성공적인 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효과적인 의사소통 비결 5가지, 남 탓하기의 손실-이득 분석표, 관계만족도 측정표, 의사소통 진단표, 친밀감 훈련 등 저자가 직접 고안한 기법들도 소개돼 있다.


이들 심리학책의 공통점은 인간관계를 행복의 조건으로 본다.

불편한 인간관계는 몸과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건 경험칙이다.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를 입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는 나름의 통찰이 매일 힘든 숙제로 끙끙대는 현대인들에게 힌트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

 

/ 헤럴드 WEEKEND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책 소개

일본 최고의 아들러 심리학 권위자가 안내하는 아들러 심리학의 세계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우연히 만나게 된 아들러 심리학에 빠져들며 깨닫게 된 지식과 통찰, 그리고 수많은 상담을 통해 얻은 임상 경험과 사례들 중에서 독자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정수(精髓)’만을 정리해서 명쾌하게 설명한 역작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는 이 책에서 알프레드 아들러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는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꼭 필요하고 유익한 통찰과 사례가 담뿍 담겨있다. 저자 역시 자신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들러 심리학을 만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아직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이 책을 통해 반드시 아들러 심리학을 한 번쯤 만나 보길 권한다.

 

■ 저자 기시미 이치로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했다.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온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들러 심리학에서 찾게 됐다. 이후 아들러 심리학 연구에 깊이 파고들어, 왕성한 집필 및 강연활동과 수많은 청년들을 상대로 왕성한 심리 상담 활동을 펼쳤다. 그는 현재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이며 일본 최고의 아들러 심리학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2014년 일본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미움 받을 용기』와 『아들러_인생을 살아가는 심리학』 『불행의 심리 행복의 철학_사람은 왜 고뇌하는가』 『곤란할 때의 아들러 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실천 입문』 등이 있다.


■ 역자 박재현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상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외국어전문학교 일한 통·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현재는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니체의 말』 『괴테의 말』 『이성의 한계』 『뇌, 새로고침』 『뇌는 0.1초 만에 사랑에 빠진다』 『하루에 한 번, 마음 돌아보기』 『선을 넘지 마라』 『머리 청소 마음 청소』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들러 심리학은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제1부 아들러에게 듣는 용기의 심리학


제1장 미움 받을 용기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 |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 | 나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 인생의 거짓말 | 타인은 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 홀로 선다는 것 | 알아차림과 배려의 세계에서 벗어나라 | 원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라 |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창조하라 | 낙천주의와 낙관주의 |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라


제2장 평범해질 용기
반드시 특별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자신감을 갖는 유일한 방법 |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는 이유 | 원인은 없다, 목적이 있을 뿐이다 |
주목을 끌고 싶은 아이들?행동 목적(1) | 실제보다 커보이고 싶은 아이들?행동 목적(2) | 문제의 원인을 찾지 마라 | 벌주지 마라 | 적절한 행동에 주목하되 칭찬하지 마라 | 용기가 꺾였을 때 | 우월 콤플렉스와 열등 콤플렉스 | 평범해질 용기 | ‘고맙다’는 말의 힘 | 그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라 | 이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과제 분리 |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 | 결말을 체험하게 하라 | 지켜보라 |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제3장 행복해질 용기
바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모든 사람은 대등하다?수평관계 | 말로 하라 |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편안해 진다? 수직관계 |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자기 수용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는 행복해질 수 없다?타자 신뢰 |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때 행복해진다?타자 공헌 | 행복의 세가지 조건 |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

 

 

제2부 아들러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제4장 용기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의 생애 배경 |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과 결혼 |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 개인심리학의 탄생 | 군의관으로서 참전 | 교육에 대한 관심 | 미국으로 | 그의 죽음 | 아들러 심리학 그 이후 | 보통사람을 위한 심리학자, 아들러 보통 사람에게 관심을 | 아들러의 저서 | 아들러의 영어


제5장 아들러 심리학 강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 행동 목적으로서의 선 | 우리는 각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살고있다 |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칠 때 | 결정론에 반대한다 | 자신이 정한다 | 개인의 주체성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들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 마음이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해 고민과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트라우마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심리학에서는 인과관계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한다. 트라우마 이론이 대표적이다. 아들러는 그런 인과관계 대신에 목적론을 내세웠다.


아들러 심리학이 다른 심리학과 크게 다른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들러는 병이 낫거나 혹은 이상이 없어지면 정상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끊임없이 ‘정상이란 무엇인가?’ ‘건강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이런 물음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정상 혹은 건강한 모습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런 상태를 목표로 스스로를 훈련해나가야 행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러 심리학은 바로 그 목표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까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철학자인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전공인 철학 연구와 함께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대해 아들러 심리학으로부터 들은 대답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 질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답을 찾아갔는지를 살펴보고, 그 결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에 대해 어떤 지침을 내놓았는지,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미움받을 용기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49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는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는데도,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아이들이 다 크면 그때 마음껏 여행을 다니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단둘이서 여행을 떠났던 건 한 번뿐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두 분이서 도쿄에 다녀왔던 적이 한 번 있었던 것이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아마도 당신은 아이들이 커서 자립을 하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반신불수가 됐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머니가 인생을 누리려고 계획했던 그 시기에 거꾸로 인생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었다. 서서히 당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어머니는 공황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만약 사실대로 알리면 불안하고 우울해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나와 아버지께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못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당신의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안 좋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해 들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 나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어머니의 과제였다. 그것이 나나 아버지의 과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됐다. 그때는 내가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어도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꿈쩍도 못 하고 하물며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어머니의 머리맡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 돈이나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인생에 그 어떤 의미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어머니는 지금 의식조차 없다. 그렇기에 건강이라는 것도 어머니의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비로소 깨달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나 행복에 있어서 외적인 조건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쓰러져서 돌아기시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명예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명예조차도 내가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야만 했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간병으로 몇 개월간 대학에 다니지 못하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이미 그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
용기 부여에 대해서 강의를 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강의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너무도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늘 그런 걱정을 달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늘 신경 쓰고 살다보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강요받게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늘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고 미움받지 않고 사랑해주길 바라기만 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 애써 노력한 결과,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늘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경우 우리는 스스로가 인생의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적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건 처음부터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원래 열 명이 있다면 그중에는 내가 무엇을 해도 나를 싫어할 사람이 한명은 끼어 있다.

반면 열 명 중에서 최소한 두 명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이해하고 좋아해준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이 두 사람이다. 나머지 일곱 명은 그때그때 태도가 달라진다. 그 사람들의 입맛을 일일이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한 명은 내가 뭘해도 나를 싫어한다. 그러니 그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끙끙거리며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업무상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업무상의 대인관계를 교우관계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업무상의 관계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옛날에는 한 직장에서 평생을 얼굴 맞대며 근무하는 업무상의 인간관계들의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그러니 업무상의 관계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교우관계처럼 여기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은 친구로서 관계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업무상의 인간관계와 교우관계를 구별하는 것은 유용하다. 어쨌든 업무상의 관계에서 역시 남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는 불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미움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만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비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부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롭게 튀어오르는 벼룩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벼룩을 유리병에 가두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이전처럼 높이 뛰어오르지 못할 겁니다. 유리병의 높이만큼만 튀어오를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유리병에 갇힌 벼룩은 유리병 높이만큼만 튀어오르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벼룩을 유리병 밖으로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벼룩은 유리병에 갇히기 전처럼 자유롭게 높이 튀어오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갇혀 있을 때처럼 유리병의 높이만큼만 튀어오를 뿐입니다.

벼룩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유리병 안에 스스로의 몸을 가두고 있는 겁니다. 한심해 보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면 간혹 우리도 이 벼룩과 같다고 느끼지 않나요?“


『갈매기 조나단』을 쓴 리처드 바크는 “당신은 행복한가요?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제 마음대로 살아가도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온당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제각각 머릿속에 거피 새끼들처럼 어떤 범위나 제한을 그려놓고 그 범위나 제한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스스로를 설득한다.

 ‘모두가 자기 좋을 대로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워질 거야. 한사람 한 사람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나를 억제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춰야지.’ 이렇게 마음먹는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려야 해. 친구들에게 인정받아야지. 내 아내를 실망시킬 수 없어. 우리 아이들의 날 원망하지 않을까?’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가상에 지나지 않은 ‘유리병’ 안에 자신을 가둔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완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의 어느 제자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한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딸의 진로에 대해서 몹시 걱정하면서, 딸에게 어느 대학이 좋다, 이 대학은 형편없다 등등을 이야기하며 잔소리와 설교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 제자는 어느 날 도저히 아버지의 간섭을 참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께 참았던 한 마디를 전했다는 것이었다.


“제 인생이니 제가 결정하고 싶어요. 만일 제가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이 대학에 가고 4년 뒤에 ‘이 대학에 다니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저는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래도 좋으세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덕분에 그녀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대신 그녀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됨으로써 겪게 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게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것에 동반하는 책임까지 같이 짊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스스로 진로를 선택했기에, 그로 인한 결말을 스스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라.

대신 그렇게 살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일들을 감내해 나가면 된다. 주변 사람들이 찬성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용인해줄 경우에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선택지는 단언컨대 없다고 보는 것이 낫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평범해질 용기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는 이유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모두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아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개인은 단지 사회적인 (대인관계적인) 문맥에서만 개인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아무도 없는, 소위 진공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말과 행동에는 ‘상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대로부터 어떤 응답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아이가 숙제하지 않는 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두 가지 경우 모두 아이의 행동이 누구를 ‘상대’로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기분인지를 물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 드나요?”
“화나죠.”


아이가 상대인 선생님에게서 ‘화난다’는 응답을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꾸짖었어요. ‘잘 듣고 있니?’라고요.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은 제 앞에 와서 앉는데, 몇몇 아이들은 (이중에 내 아들도 있다) 교실 가장자리에 앉아요. 눈에 띄죠. 가끔이라면 상관없지만, ‘늘’ 그래요. 오랜시간 유치원에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집중력을 키울 수가 없어요. 저로서는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수업 참관을 하러 갔을 때, 칠판에 아이의 이름이 많이 적혀 있더군요.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아, 그건 제가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가 너무 많아 누가 무슨 숙제를 안 했는지 저도 기억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칠판에 적어둔 거예요.”


그러나 만일 선생님이 말한 목적 때문이라면 특별히 칠판에 이름을 적지 않고 자신의 노트에 메모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칠판에 이름을 적으면 어떻게 될까?

숙제를 하지 않아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이 칠판에 이름이 적힌 내 아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시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집중력이 없고, 게으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고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선생님과 자기 사이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여겼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지 마라


아이의 행동 목적이 상대를 짜증 나게 하거나 화나게 함으로써 주목을 끄는 것이라면 그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의 ‘원인’을 찾기에만 급급하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벽을 돌아앉는 행동의 ‘원인’으로, 여동생이 태어나 정신적으로 불안전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면?


사실, 문제는 사랑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 보통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금방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있기에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태어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원활한 대인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다.

사랑을 배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나 외적인 데서 찾는다면 , 그 문제 행동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 행동을 일으킨 아이의 부모가 어린 시절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도 소용없다. 또한 부모의 육아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봐야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해소하거나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가정환경이나 학교 체제, 교육정책 때문이라 한다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이의 행동 목적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대처법이 나온다.

목적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라고 말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외적인 원인은 바꿀 수 없지만 목적은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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