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의 해후(邂逅) 근처는 아주 조용했다. 무천룡이 선마와 음마를 쳐 죽였기 때문에 그렇게 조용한 것이다. 칠마전의 무수한 마두들은 무천룡이 심마 다음 가는 고수이던 음마를 죽이는 순간 놀라 모두 다 도망친 후였다. 비마도 원래는 도망가려 했었다. 그는 음마와 합공을 펼칠 수도 있었지만 굳이 모험을 하지 않았다. 구차하나마 도망쳐 목숨을 보전하려는 속셈에서였다. 그러다 무천룡과 음마와의 싸움을 지켜보며 느낀 예감으로 급히 뇌옥 안으로 달려갔었다. 비마 뒤에는 있는 거대한 누각이 바로 칠마전의 뇌옥이었다. 비마는 목숨을 건 도박을 걸기로 했다. 물론 구 할의 승산이 있는 도박이기에 가능했다. 도박으로 내 건 대상이 바로 대검제였다. 지난 칠십 년 동안 칠마를 중원에서 도망치게 한 정의무성을 대신해 칠마전에 죄값을 치르고 있던 대검제를 내세운 것이다. "하하하…!" 비마는 자신의 짐작이 맞아떨어지자 득의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님, 소자입니다!" 무천룡이 버럭 소리치며 달려들려 하자 비마가 언제 빼들었는지 서슬이 퍼런 단검 하나를 들어 대검제의 목에 갖다 댔다. "멈춰라! 다가서는 순간 네 애비의 수급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무천룡은 그의 위협에 질겁하며 우뚝 멈춰 섰다. 비마는 비수를 대검제의 목에 대고 자를 듯한 태도를 취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무천룡! 네놈은 네 아비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겠지?" "으음… 비열한 놈!" 무천룡은 격분에 젖어 숨을 몰아쉬었다. "카하하… 네 아비는 네 할애비 대신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실 네 아비는 달포 후 지존마궁(至尊魔宮)에서 벌어지기로 되어 있는 칠존관의 중원개단식 날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다." 무천룡은 뒤통수에 쇠망치를 맞는 듯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놈이 지옥갱 안에서 다시 살아나다니 진정 놀랍다. 하여간 대무신국의 무공에 감탄을 보낸다." "노마, 어서 뒤로 물러가라. 그러면 살 기회를 주겠다." "카하하…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 네 아비의 목숨이 내게 있는 이상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무천룡은 당장이라도 비마를 때려죽이고 부친을 구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비마,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 널 쫓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개수작 마라! 죽어야 할 놈은 너다!" 비마는 다른 한 손으로 대검제의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목에 바싹 비수를 들이댔다. "크흐흐…네놈에게 무수한 신비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이 네놈을 죽인다는 것이 아주 힘들다. 네 몸은 금강불괴 이상으로 단단하다. 노부가 수백 번 친다 해도 네놈은 끄덕도 않는다. 그러기에 노부는 네게 네 아비의 목숨을 대가로 한 가지를 요구하고자 한다." 비마의 눈빛이 아주 흉흉했다. '아버지를 풀어주는 대신 내게 자결을 명하려는군.' 무천룡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꼭 구해야 한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부친을 죽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 아버님!' 무천룡은 삶을 포기했다 .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도 죽음이 무섭지 않았다. 분하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강직한 음성이 그의 나약해지는 마음을 뒤흔들었다. "마도란 상대가 강하면 누그러지고 상대가 약하면 더 기승을 부린다. 그러니 언제나 강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마도가 발호하는 것을 미리 예방하는 길이 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래 전에 죽은 정의무성의 목소리였다. 외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뇌리 속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는 무천룡에게 세찬 의지를 전해 주었다. '아아…할아버님의 영령께서 굽어 보고 계신다.'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 놈이 나보다 강하다면 죽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내가 저놈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요사한 마두의 간계에 쓰러질 수는 없다.' 무천룡은 무엇인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니었다. 커다란 도박을 벌인다. 그것만이 최후의 방법이었다. 물론 실패한다면 부친을 잃고 그는 평생토록 괴로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비마의 지시에 따른다면 구천에서 지켜볼 조부를 대할 면목이 없는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묘안을 강구했다. 비마는 그의 고뇌하는 표정을 즐기며 잔혹한 지시를 내렸다. "카하하…무천룡!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느냐? 네 아비를 살리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죽이지 못하는 네 몸뚱이를 네 손으로 죽여라!" 무천룡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일수유의 침묵이 흘렀다. 칼자루를 손에 쥔 비마였지만 사태가 어떻게 바뀔 줄 몰라 입안이 바싹바싹 달라붙었다. 그는 긴장과 두려움에 젖어 무천룡의 반응을 기다렸다. "후우…어쩔 수 없군." 무천룡은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입술을 열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구하는 길이라면 어찌 목숨을 아끼겠느냐?" "흐흐…의당 그래야지. 네놈이 승낙할 줄 알았다." 비마가 겨우 안도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도박에서 이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훌륭한 판단을 자화자찬하면 위대한 업적을 미리 꿈꾸었다. "아…아버님이 살아 계신 줄은 정말 몰랐다. 너무도 감격스럽다. 내가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은 없다." 무천룡은 기쁜 듯 처량한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천천히 쳐들었다. 그의 눈길이 대검제의 몸뚱이에 집중되었다. 문득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아… 아니?"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돌변하자 비마가 눈을 찡그렸다. "무가 애송이야! 왜 그러느냐?" "으하하…!" 무천룡의 돌연한 광소가 비마의 고막에 통증을 전했다. "이 간악한 놈아! 감히 누구를 속이려는 것이냐?" "네…네놈이 갑자기 실성을 했느냐?" 비마는 그의 느닷없는 돌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천룡은 두 눈에서 살광을 폭사해 내며 손을 들어 대검제를 가리켰다. "가짜를 두고 어찌 나를 속이려 하느냐? 고약한 노마! 네놈은 내가 역용술의 천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가…가짜라고?" "하하하…하마터면 네놈에게 속을 뻔했다. 가짜를 만들어 나를 속이려 하다니… 내 너를 갈기갈기 찢어야만 분이 풀리겠다!" 무천룡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이 놈이 아비도 몰라보는군. 하기는 사 년 동안 기억이 상실되었으니 몰라볼 수도 있지. 으음, 이것 큰일이구나!' 비마는 애간장이 타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무천룡이 지옥갱에 던져지면서 지난 기억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낙헌지라는 인물로 행세해 왔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듯 당황한 것이다. 무천룡은 그가 달리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어디 네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겠다!" 무천룡이 벼락처럼 치솟으며 비마를 향해 쌍장을 내갈기려 했다. "어엇…?" 비마는 더 이상 대검제의 목숨을 위협의 도구로 삼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적의 방패가 사라진 것이다. 콰르르릉―! 노도와 같은 황금 기류가 몰아치자 무천룡이 선마와 음마를 일초로 죽였다는 것을 상기하며 바싹 얼어붙었다. '기회다!' 무천룡이 양손으로 각기 다른 초식을 시전했다. 그의 오른손에서 회선마강(廻旋魔 )이 펼쳐져 비마를 공격하는 동시에 왼손은 대무신공을 일으켜 대검제를 휘어 감았다. "허억, 네… 네가…?" 비마는 그제서야 무천룡이 대검제를 구해내려는 의도임을 깨닫게 되었다. "으으……, 독한 놈!"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비마는 대검제의 목을 향해 비수를 휘둘렀다. 위기일발(危機一髮)! 무천룡의 장력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날아들어 그의 손목을 정확히 강타했다. "아― 악―!" 비마는 손목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끼며 힘겹게 좌수를 뻗어 대검제의 머리를 노렸다. 순간, 회선마강의 강기가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날아들며 그의 옆구리를 호되게 강타했다. 콰아앙―! 비마는 화영마공(化影魔功)을 익혀 어지간한 장력 아래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무천룡의 장력은 마공과 극성이었기에 화영마공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크아아―!" 비마는 실 끊어진 연처럼 오 장 높이 퉁겨져 날았다. 무천룡은 그 틈을 이용해 아버지 대검제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부친을 방어했다. "하하하… 과연 돌대가리로다. 세상에 아버지를 몰라보는 아들이 있을 수 있겠느냐?" 무천룡의 웃음소리가 비마의 얼굴을 사색으로 만들었다. "으으…내가 애송이한테 당하다니!" 비마는 워낙 경공이 뛰어나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무천룡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강렬한 분노가 물씬 치솟았다. "네놈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네 덕에 아버님을 다시 모시게 되었으니 고통 없는 죽음을 안겨주겠다." 무천룡은 유연하게 치솟았다. 비마는 잔뜩 겁에 질려 잠영술(潛影術)을 일으켰다. '도망갈 수밖에 없다.' 그는 비전의 잠영술로 모습을 감추며 십 장 밖으로 내달렸다. 삶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다. 하지만 어느새 무천룡의 냉소가 바로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엇? 네놈의 신법이 노부를 능가한단 말이냐?" "바로 능운식(凌雲式)이다. 노마의 신법에 극성이 되는 것이지." 무천룡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비마의 몸뚱이를 휘감는 한 줄기 금빛 기류가 있었다. 콰류류류―! 비마는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되었다가 한순간 전신이 폭발하는 아득함을 느꼈다 .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퍼엉―! 둔탁한 폭음과 함께 혈우(血雨)가 쏟아져 내렸다. 비마의 몸은 무수한 핏방울로 화해 주위에 뿌려졌다. 무천룡은 고통 없이 죽이겠다는 약속을 지닌 셈이었다. 이로써 칠마전 칠대사마 중 셋이 소탕되었다. 그로서는 절반쯤 복수를 셈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아… 아버지의 목숨으로 승부를 내려 했으니 불효도 이만저만한 불효가 아니다.' 무천룡은 심하게 자책하고는 대검제 앞에 섰다. 부친을 대하자 가슴에 세차게 뛰었다. 절로 눈물이 솟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난 기쁨은 지난 사 년 간의 어떤 기쁨보다도 컸다. "아버님, 소자입니다." 무천룡은 대검제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대검제는 대나무보다 말랐고 수백 군데 상처로 얼룩졌다. 내공은 잃은 지 오래 되었고, 사물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허탈감에 의해 귀머거리 상태였다. 대검제의 눈이 실명에 가깝게 된 이유는 자책감에 의한 자해(自害) 때문이었다. 그는 심마의 탈백마안에 걸려 무천룡을 칠겁관 안에서 불러내는데 이용당했다는 죄의식을 이길 수 없어, 지난 사 년간 수천 번 손가락으로 눈을 찔렀던 것이다. 사 년간의 고행(苦行)은 대검제를 현 나이보다 오십 년 늙게 만들었다. 그래도 무천룡에게는 과거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천룡은 아버지의 맥(脈)을 짚어 본 다음 무서운 분노를 느꼈다. "천하의 고약한 자들. 아버님께 음식을 하나도 드리지 않았군. 아버님이 대무신공를 삼 성 정도 익히지 않으셨다면 벌써 삼 년 전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만일 주변에 칠마전 마인들이 있었다면 무천룡의 손에 피박살이 났을 것이다. "아버님, 이제 안심하십시오. 소자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무천룡은 장작처럼 마른 부친을 감싸안고는 한참 동안이나 가슴 저린 감동에 젖었다. 아무리 시체처럼 변해 있다 하여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좌화된 정의무성의 시신을 볼 때에 비한다면 천만배나 나은 상태였다. 무천룡은 십절(十絶)의 기예와 오마(五魔)의 무수한 재주를 한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답게 아버지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반시환생대법(返屍還生大法)을 쓴 다 음 열다섯 가지 영단(靈丹)을 조제해 복용시키면 아버지는 거뜬한 몸이 되신다." 무천룡은 소년 같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실낱같은 숨결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지." 그는 무엇보다 부친의 따뜻한 한 마디가 그리웠다. "대무신공의 요상대법으로 아버지의 심맥을 치유한다면 아버지는 곧 나를 알아보실 것이다." 무천룡은 기뻐하며 아버지의 천령개에 손을 댔다. 그의 몸은 곧 금무에 잠겼다. 그는 진기의 소모를 아끼지 않고 운기행공을 십이주천 시키며 대무신공의 기운을 대검제의 몸 안에 불어넣었다. "으음…!" 영원히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대검제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 그는 대검제가 몸을 꿈틀하며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진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뉘… 뉘시오? 어… 어떤 기인이오?" "크으… 아버님!" 무천룡은 오체복지 하며 이마로 바닥을 찧었다. 비마와의 심기 싸움에서 부친을 위험에 빠뜨릴 뻔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버님, 소… 소자 천룡(天龍)입니다." "천… 룡? 천룡이라고…?" 대검제가 아연실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었나 보군…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버님, 천룡이 여기 있습니다." "으응…?" 대검제의 표정이 점점 기이하게 변했다. '꿈치고는 너무 또렷하다. 혹 칠마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무천룡의 손이 그의 마른 손을 굳게 쥐었다. "아버님, 소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살아 계시듯 저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소자를 쓰다듬어 주십시오, 아버님!" 무천룡이 울부짖자 대검제는 그제서야 무천룡이 바로 앞에 있음을 사실로 여기게 되었다. "오…진정 천룡이란 말이냐? 여… 여기가 저승이냐 이승이냐?" "흑… 아버님. 분명 현실입니다." 대검제는 자신의 손을 쥔 따뜻한 손을 매만지며 격동에 젖었다. "그… 그럴 리가! 네가 어떻게 살아 있단 말이냐?" 무천룡은 부친의 손을 감싸쥐고는 자신의 볼에 댔다. "제가 아버님을 두고 어찌 먼저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할아버지의 영혼이 지켜주는 덕에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아버님, 소자는 지금 칠마 중 셋을 죽인 직후입니다. 대무신국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신공을 얻었습니다. 흐흑…!" "오오…하늘이시여! 천룡아, 꿈이라도 좋다.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대검제는 겨우겨우 눈을 뜨며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체온이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두 부자가 나눠야 할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너무도 많은 사연이 있고 너무도 큰 혈육재회(血肉再會)의 기쁨이었다. 무천룡과 대검제는 서로 지난 이야기를 하며 울다 웃다가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해후의 시간을 너무도 빨리 흘렀다. 저녁에서 밤이 될 무렵의 당고라산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높은 산이 먹물보다 짙은 야음에 묻혀 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아버님, 우선 여기를 떠나야겠습니다." 무천룡이 대검제를 업고 일어섰다. "그래, 이 더러운 곳을 떠나자꾸나. 한데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어떤 일입니까?" 대검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애비와 같은 신세이던 사람들이 뇌옥 안에 백여 명이나 갇혀 있다. 칠마전의 혹독한 고문에 무공이 전폐되고 거의 죽기 직전인 사람들이다. 그래도 과거 서장(西藏)과 서역(西域), 관외(關外)에 협명(俠名)을 날리던 일세기인들이고 과거 대무신국 사람도 있다." "아… 아버님 이외에 죄수들이 또 있었군요?" 대검제는 다소 무거운 어조로 답했다. "심마는 평소 네 할아버지 정의무성을 존경했다. 그래서 적들을 죽이는 대신 다시 나오지 못할 함정 안에 빠뜨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고약한 자군요." "그에게 잡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무공을 되찾게 해준다면 장차 대무신국의 신민이 급증하리라." "아버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무천룡은 웃으며 누각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로부터 두시진 후 무천룡은 뇌옥 안에 갇혀 다 죽게 된 이백여 강호인들을 구해 어둠에 잠긴 칠마전으로 걸어나왔다. "와아―!" "대무신국 만세―!"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간 뇌옥에 갇혀 살던 사람들은 무천룡과 대검제를 뒤따르며 감루를 끊이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쇠약했다.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도 몸이 좀 나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때로는 더러는 눈알이 빠진 사람과 사지 중 하나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신체가 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칠마를 몰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귀중한 일이다. 일단 이들을 구할 영단을 만들어야겠군.' 무천룡은 일단 대무신국으로 되돌아가 약고를 열어 영단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돌아보니 대검제가 웃으며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무신공의 진기를 받아 한결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룡아,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몸이 낫는 것이 아니다." "예…?" "허허…아버지로서 너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나를 비롯한 병자들을 구하기 보다 칠마를 쓰러뜨리는 일이 더 급한 일임을 말하는 것이다." 무천룡은 대검제의 깡마른 손을 감싸쥐었다. "아버님, 하오나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천룡아, 네가 우리들을 구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면 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지 않느냐?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 우리들을 안전한 곳까지 바래다 준 후 곧장 중원으로 떠나거라!" 대검제는 과연 대무신국의 국왕으로 손색이 없었다. 비록 무공이 부족해 칠마의 손에 포로가 되었지만 그의 기개와 협심은 누구보다 뛰어났던 것이다. "아버님…!" 무천룡으로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넓은 숲만 있으면 되겠다 . 어느 한 군데를 정한 후 기문진(奇門陣)을 치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다 . 맑은 공기와 깨끗한 먹게 된다면 몸은 절로 나을 것이다." 대검제는 무천룡의 내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이었다. 무천룡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임을 알고 굳이 고집을 내세우지 않았다. *** 울창한 수림은 천연의 요새처럼 둘러져 있었다. 무천룡은 당고라산에서 가장 깊숙한 곳을 골라 기인들을 모셔다 두고 근처에 오묘한 기문진 하나를 설치했다. 칠마전의 잔당이 발견한다 해도 파괴하지 못할 아주 신비한 기문진이었다. 기문진학의 대가인 그가 설치하는 데에도 꼬박 반나절이나 걸렸다. 무천룡은 해가 저물 무렵에야 홀가분한 몸이 될 수 있었다. "아버님, 설치가 끝났습니다." "오냐, 어서 중원으로 가거라. 심마의 수급을 갖고 돌아온다면, 허허…모든 병이 씻은 듯 나을 것이다." 대검제는 아들의 어깨를 툭 친 후 기문진 안으로 사라져 갔다. "반드시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무천룡은 힘있게 외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의 몸이 흑선을 그으며 나는 가운데 금시단정학을 부르는 호각소리가 구중천(九重天)에 메아리 쳤다. 삐― 익―! 무천룡이 금호각을 두 번 불었을 때 하늘에서부터 금시단정학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끼르르― 륵― 금시단정학은 무천룡이 예정보다 늦게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 야속하다는 듯 더 크게 울부짖었다. 그래도 날갯짓은 반가움에 찬 것이었다. "하하… 중원으로 가세. 제일 먼저 남천관(南天觀)으로 가봐야겠네." 무천룡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유연하게 하강하는 금시단정학의 등 위로 내려섰다. 금시단정학은 무천룡이 가뿐히 내려앉자 기뻐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위로 힘차게 날아 올라갔다. 무천룡과 금시단정학의 모습은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름 위로 날아올라 다시는 내려오지 않을 듯 아주 높이 날아가 버렸다. 다시 중원(中原)으로. 계 속 |
첫댓글 ㅅㅅㅅㅅㅅㅅ
감사 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셔요♬
잘 읽어 보았어요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