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먼 이웃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자신에겐 그런 날이 없을 것처럼....
운이 좋아 내노라하는 직종일수록 워라벨타령 하며 그 많은 시간 다 흘려보낸다. 그나마 그 워라벨이 술과 잡기 등에 탕진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퇴직순간이 다가와도 100세 시대 관점에서 보면 턱없이
부족한 연금과 배우자 몰래 챙겨둔 비자금으로 위안삼으며 평생 익숙해진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퇴직후 몇년을 폼나게 보내다 결국 "노인전철투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눈이 침침해서 책보기가 힘들다며 책을 덮은지 오래다.
장시간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고 누워있기 일쑤고 눈이 침침하다면서도 스마트폰은 걸어가면서도 들여다 보고 독수리타법으로 별소득 없는 댓글달기에도 적극적이다.
쓰잘데기 없는 정치애기에 열올리며 격분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곧 쓰나미처럼 닥쳐올 '고난의 파도'는 모르쇠다.
여전히 일찍 끝나 남아돌아 가는 시간을 자신과 취향이 같은 동족들을 불러 또는 찾아다니며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사 잡담으로 귀중한 워라벨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는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 첫 직장에서 떠나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그래도 여전히 퇴직후의 삶이 지금과 같을 거라는 '거대한 망상"을 멈추지 않는다.
비자금 통장의 알량한 잔고는 몇 년은 마누라 눈치 안 봐도 충분할 것처럼 든든하다고 느껴지는지...여전히 취향동족들과 더 많아진 시간들을 국내에서도 모자라 긴 가방 둘레메고 필리핀 들판으로 원정까지 간다.
"좋다.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라며 후회도 하며 지금이라도 멋지게 살자고 여기저기 국내외 놀이터를 기웃거리며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열정적이다.
퇴직후 그렇게 몇 년을 황홀하게 지나는 사이에 비자금 통장은 가뭄에 말라 바닥이 드러나는 저수지같고 여전히 건넌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기를 고수하는 취업준비생 자식은 떠날 줄을 모른다.
마누라는 더 쪼그라지는 생활비에 말끝마다 독침이다.
비자금이 여유있을 때는 집밖에 나가는 것이 폼이 났다.통장잔고가 쪼그라드니 이제서야 당장 코앞의 현실은 현실대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눈앞에 보이는 고속도로처럼 확연히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에게 만나자는 전화걸기도 쉽지 않다. 어쩌다 걸려온 전화조차 그냥 의미없는 대사를 읇는다. 전에는 말끝마다 해대던 "언제 만나서 소주한잔 하자"는 소리도 목구멍에 걸린다.
아파트 정문을 드나들때 내게 깍듯이 경례를 부치던 늙은 경비가 떠오른다. 나도 뭐든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기고 밤에도 잠을 설친다. 구직센터에 전화하고 함흥차사같은 무소식에 답답해서 찾아도 가본다. 100만원 벌이도 구하기 힘들다는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
귀여운 손주가 오랫만에 찾아와도 내 손이 비어 있으니 딱히 귀엽다고 말하며 안아주지만 마음한편이 허랑하다. 예전처럼 애들 손에 쥐어줄 용돈이.....
긴가방 둘러메고 푸른초원에서
"굿샷"이니
"나이스샷"이니
들뜬소리 치던 날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엊그제 퇴직한 것 같은데....
이젠 '삼식'이라며 날로 커져가는 바가지에 어쩔수 없이 집에서 밀려 나와 공짜인생의 첫도전인 '노인전철투어'에 합류한다.
오늘은 춘천행,
내일은 아산행,
모래는 인천 제물포.....
이산 저산 다녀도 본다. 어느날 스틱이 지팡이로 변해가고 몇 미터 못가 숨이 차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앞으로 살 날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100세 시대라는데.."
"죽고 싶어도 의학이 발달되어 죽지도 못한다는데..."
"이런 식으로 산송장처럼 살다 가야하나...? "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며 젊은 날에 더 좀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만 늦은 것 같기만 하여 절로 탄식한다.
이 이야기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어느 뒷방 늙은이의 퇴직후의 삶에 대해 첫 직장에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본것이다.
나는 준비하지 못한 세대인 할아버지와 11년을 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할아버지를 부양해야 했다. 평생 시골 외딴집에서 자유인으로 사시던 할아버지가 아파트 8평도 안되는 방에서 도저히 못살겠다고 엄마를 구박해대서 어쩔수 없는 선택을 했다.
내 50대 전부를 할아버지와 따로 나가 살았다. 멀리 울산으로 가까이 평택 , 천안에서... 너희들은 엄마손에 맡겨두고.... 그 기간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산이 하나 있다.
"나처럼은 살지마라" 는 생활속 무언의 유산인 셈이다.
아버지는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안했지만 아버지의 11년간 내게 보여진 삶은,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물려받은 물질적 재산은 미비하나 아버지가 자신을 통해 11년간 내게 뼛속까지 새겨준 '노년의 준비'에 대해 나는 상시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텐데..."
아버지 덕분에 남들보다 노후준비에 먼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가족과 함께 워라벨을 즐길 수 있고 친구들과 세상돌아가는 잡담도 퍼지르며 살 수 있었을 11년 세월동안 아버지의 '살아있는 유언'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사무직이라 퇴직 후에 공원 급식소 줄에 설지도 모를 내 모습을 몸서리치게 상상하며 첫 번째 도전인 '전기기사' 자격증을 1년만에 땄다. 퇴직하기 7년 전이다.
이때부터 따기 시작한 자격증이 8개.....남들은 그만하면 평생 먹고 살겠다며 이젠 그만 놀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자격증들은 나이가 더 들면 젊은이들에게 밀려나는 것들이라서 늘 '똘똘한 한개'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소방시설관리사'였다.
어렵다고 한다.
몇 년 용만 쓰고 대부분 마음을 접는다고 한다.
"힘든만큼 따면 그만한 보상이 있을 것 아닌가? "
하며 결기를 다졌다. 이삼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일년이 더 걸려 땄다. 4수를 한것이다.
합격자 발표하고 2주일 후쯤에 바로 '기술이사'로 재취업했다. 처음에 '기술이사 최인식 소방시설관리사'란 명함을 받아들고 한참을 만지작 댔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4년동안 원없이 공부했다. 연거푸 세번 떨어질 땐 그저 기존에 딴 자격증으로 재취업하여 고문명함 받고 한달에 두서번 나가는 것에 만족하려고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앞에 들은 애기들이 내 미래가 될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들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11년간 모습이 떠올랐다.
치질초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을 만큼 하루에 15시간 이상 공부했다. 4년동안...
난 지금 중2때 가출한 이후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즐기고 있다. 새로운 일, 소방점검이 너무나 재미있다. fire doctor(소방닥터)란 생각으로 테스터기(측정기)를 의사의 청진기처럼 소방시설에 대보고 상태를 진단하고 분석한다. 내 자식보다 나이가 젊은 동료들과....
현장에서 퇴근할 때는 귀가시간이 빨라 아하 퇴원할 때 기다렸다가 빼빼로도 사러간다. 날로 이뻐지는 셋째손주 예원이에게 얼랑이 꼴랑이 재롱도 피운다. 애들보느라고 고생하는 아내에게 조금은 보탬이 되보려고....
내 나이 내년이면 65세다. 첫직장 동기들 퇴직후 첫모임에 20%남짓 참석했다. 퇴직후 4년인데 이렇게 줄었다.
그들중에 딱히 정규직으로 재취업한 임원급은 손꼽는다. 그날 거금의 밥값은 내가 계산했다. 평생 한번도 안해 본 내 인생사에 역대급 사건이다.
나이들면 입닥치고 지갑을 풀으라고 했다. 난 올 1년 그러기로 했다. 그럴만한 능력이 생기니 자신감도 생긴다. 문밖에 나가는 것리 즐거워진다.
토요일이면 새벽같이 엄마와 여행을 떠난다. 살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산좋고 공기좋고 물좋은 곳으로 1박도 한다. 1박하니 니들 엄마가 행복해 한다. 앞으로는 1박2일을 늘려가려고 한다.
나는 내 50대를 늙은 아버지와 살아야 했다.
너희들은 결코 나와 네 엄마때문에 신경쓰이게 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면 정신적으로 독립세대가 된다. 부모의 안위때문에 뒤돌아 보지 마라.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날은 내가 살아왔던 날보다 더 힘겨울 수 있다.
지금부터 첫직장 이후의 삶에 대해서 10%만 고민하고 준비해라. 미루지말고....제2모작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면 지금 누리는 행복은 죽어야 끝난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소방기술사가 되어 활약할 또 다른 미래를...
하루살이 들풀도 그냥 피는 게 아니다.
겨우내 눈에도 보이지 않을 작은 씨앗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뿌리를 내리고, 전력을 다해 흙을 밀어올려 새싹을 세상에 내밀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첫직장을 떠나 이모작 인생에 연착륙,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비는 마음 뿐이다.
아들아 며늘아 큰손녀 둘째 손자야
딸아 사위야 셋째 손녀야
그리고 11년간 내 없이도 애들 잘 키워준 아내야
다들 오늘처럼 행복하자.
2023.5.8. 어버이날 아침에
첫댓글 어버이날 독립선언서이군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모를 둔 자식들도 부모를 거울삼아 잘 하겠지요.
늦기는 했지만 큰 성취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