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4일. 며칠간 읽던 책을 버렸다. 술 취해 집에 오던 길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잠시 쉬려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은 부슬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는데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벤치에 물기가 배어 있었다. 마침 그 책의 겉표지가 비닐포장이 되어있는 걸 생각해내고 가방에서 꺼내 깔고 앉았다. 다음날 아침 놀이터 벤치에는 비에 흥건히 젖은 책이 참 안쓰럽게도 앉아 있었다. 아쉽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쓴 단편이 담긴 다른 책을 구해서 읽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
1938년 영국 출신이다. 로이터와 BBC에서 일했으며 냉전과 제3세계의 갈등, 그리고 유럽 도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를 목겼했다. <자칼의 날>, <전쟁의 개들> 등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는 독자적인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둡시다. 난 북부 인도의 펀잡 출신입니다. 난 또 크사트리야 계급이오. 우리 카스트 제도에서 왕족, 전사 계급에 속하는 것이지요. 나는 지금 내 의학 공부를 할 학비도 제대로 댈 형편이 못 됩니다. 하지만 당신들 조상이 짐승 가죽옷을 입고 네 발로 기어다닐 때, 내 조상들은 군인이었고, 왕자였고, 통치자였고, 학자였소. 더 이상 나를 모욕하지 말기 바랍니다."'
'람 랄은 햇빛을 쳐다보았다. 거인은 주먹을 꽉 쥔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람 랄은 자기가 이 북아일랜드 출신의 사람과 싸워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치감이 그의 온 몸을 뒤덮었다. '나의 조상들은 칼과 창을 들고 말을 몰아 이 아일랜드 여섯 고을의 백 배나 되는 넓은 평원을 휩쓸었다. 이 족속들보다 훨씬 먼저 그 드넓은 땅을 정복했던 것이다.''
'람 랄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시 후, 그 거인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람 랄은 수치감 때문에 솟구치는 눈물을 막으려고 눈을 꽉 감았다. 그 감은 눈으로 펀잡의 뜨거운 평원과 그 위로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만만하고 격렬한 사나이들이었다. 구부러진 코에 턱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둘렀으며 검은 눈을 가진 사나이들이었다. '다섯 강의 땅'에서 온 전사들이었다.'
'스물 네 시간 후 람 랄은 서인도 봄베이의 찌는 듯한 더위와 만날 수 있었다.'
'교과서에는 에키스 카리나투스라고 나와 있었다. 물론 교과서는 영국인이 쓴 것이고, 영국인은 라틴어로 된 학명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영어로는 톱니 독사라고 하며, 뱀 가운데서 가장 작고 가장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매우 경계심이 강하며 성급하다', 이것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영국인 교과서 저자가 애키스 카리나투스에 대한 항목을 끝마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예고도 없이 재빨리 물어버린다. 물린 자국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안 띈다. 마치 작은 가시에 찔린 두 점과 같다. 통증도 없다. 하지만 반드시 죽는다. 희생자의 몸무게와 물린 당시의 신체 조건에 따라 두 시간에서 네 시간이 걸린다. 사인은 항상 뇌출혈이다.'
'톱니 독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햇다. 아니, 들었지만 모르는 체 하는지도 몰랐다. 뱀은 람 랄의 발 아래 따뜻한 모래 밑의 구멍 속에서 람 랄에게 대꾸할 여유가 없이 바빴다. 자연이 뱀에게 명한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댓글 처음에 크레타섬이 뭐지? 그랬는데, 혹시 그리스신화의 그 크레타섬을 말하는 건가요? 크놋소스 궁전? 영웅이 미로를 빠져나와 여왕을 구한다는 그리스신화가 있는곳...
제가 좋아하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그의 묘비가 있답니다. 언제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이건 책과 별로 상관없는 예기인데, '크레티섬'님은 글제목 앞에 항상 '중독의 권리' 라고 쓰시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듯말듯하네요.^^ 저와는 달리 해외소설들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나도 다양한 소설들을 접해야 할텐데... 글 잘 읽었어요.
예..감사합니다. 음....[중독의 권리]는 뭐든 중독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글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