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덕회는 호남성(湖南省)출신으로 모택동과 동향사람이라고 한다
청렴정직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불의를 보고는 참지못 했던 팽덕회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
십자령 전투 에서 조선 의용대 윤세주와 진광화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생환했다고 하는 인물이다
십자령전투 - 1942년 6월 일본군은 태항산(泰行山) 자락에 주둔해 있던 팔로군 사령부와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공격하기 위하여 대규모 육군부대와 공군 전투기까지 동원한다.
팔로군사령관 좌권(左权)장군과 조선의용대 석정 윤세주(尹世冑 )선생, 진광화(陳光華 )선생은 팔로군과 함께 있던 중국 지도자 등소평(鄧小平)과 팽덕회 등을 탈출시키기 위하여 십자령에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팔로군 사령관 좌권(左权)장군, 조선의용대 윤세주, 진광화 선생등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중국정부는 훗날 윤세주, 진광화선생을 혁명전사로 추대하고 허베이 한단 서현에 혁명열사능을 세운후 윤세주, 진광화선생을 모시게 된다.
아래 영상자료 출처 ; 유튜브. 웹게시자 무한무량
※시간없으신 분은 33분 부터 보십시요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fpFB4gy_dY
웹상에 조금 소개된 팽덕회 자서전을 참조해보면
"나는 1898년 음력 9월10일 하농에서 중농 정도 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6살때 공부시작, 8살때 모친이 돌아가시고 부친의 병환으로 가세가 몰락
어린동생이 굶어죽고 점 점 더 가난해져 동냥질하기도하고
수치스러운 동냥질을 하기 싫어서 산에서 나무해다 팔고 겨울에 맨발로 다니며 병약한 부친 대신 소년가장이되어 식구들을 부양하느라 갖가지 극심한 고생을 했다.
※9세부터 소년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야했다
할아버지가 태평천국운동에 참가했다가 생환하신 분인데 태평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고 한다. 가령 가난한자를 구휼하고, 여자의 전족을 금한다 같은 거..
16세에 군대에 들어가서 빠르게 출세했다.(정부군에 입대한 게 아니고 군벌의 사병으로 들어간 것)
사진보면 아시겠지만 우직한 성품에 군대가 체질에 맞았을것이다
어렸을때는, 할머니의 아편 그릇을 발로 차 엎어버리는가하면
자신을 맥락없이 구타하고 학대하는 선생을 의자를 들어서 쳐버리기도 했다는데 ※아마 16세 이후에 군대안에서 교육받다가 일어난 일인듯..
의협심이 강해 구빈회를 조직해서 악질지주를 처단하기도 했다
팽덕회의 4명의 여인에 대한 일화가 웹상에 소개돼있는데 재미있다. ※출처는 모르는데 아마 팽덕회 자서전이 아닐가함
네 명의 여인중에서, 한 여인은 팽덕회가 술집여자를 빚을 다 갚아주고 빼내주었다.
(돈을 빌려서 여자의 빚을 갚아준것이다.)여자가 우직하기만한 팽덕회에게 호감을 못느끼자 팽덕회는 또다시 돈을 빌려서 그여인에게 고향에 내려가 자유롭게 살라고 여비를 마련해주었다
육이오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이 치고올라오자 모택동은 팽덕회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백만대군을 출정시켰다
이때 함께 데리고간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毛岸英 )이 1950년11월25일에 미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사망해버리는 일이 있었을 뿐,
※팽덕회는 모안영의 전투참가를 반대하였으나 본인이 극렬히 원하였다
팽덕회의 전쟁수행은 대성공적이었다. ※우리에게는 통일의 기회가 물거품이 되어 통탄함
전쟁에서 복귀하여 국방장관이 되었다
웹상에서 얻은 자료에 의하면
팽덕회는 멕아더를 한큐에 잡아버리려고 유도작전을 썻다고 한다
연합군 몰래 야음을 틈타 낭림산맥 일대에 대규모병력을 잠복시켜 놓고서 ※낭림산맥 ; 함경남도와 평안남북도의 경계를 따라 형성된 남북 방향의 산맥
전선은 완전히 개방하여 연합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까지 진군하게큼 충분히 끌여들인다음 포위를 해 버렷다.
장진호 전투 가 이러한 중공군의 포위망을 뜷고 나갔던 미해병대의 무훈으로 유명하다. ※장진호전투 ;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근처에 매복해있던 중공군의 포위망을 뜷고 후퇴작전에 성공한 미해병대의 무훈이 서린 전투
팽덕회의 적수로, 아군에는 유재흥장군이 있었다.
팽덕회와 맞서는 국군의 유재흥(劉載興)준장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이분은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통제권 을 상실하게 되는데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이분으로 인해 한국전쟁의 판도가 결정되었다 해도 될것이다
이분이 한국전쟁당시 아군의 7사단(최정예 수도방위사단)과, 2군단, 3군단을 모두 멸망시킨 인물이라고한다
현리전투 에서 비행기타고 혼자 도망가서 (자신이 군단장으로 지휘하던) 3군단을 괘멸시켰다
※현리전투 ; 1951년5월16일~ 1951년5월22일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의 전투. 한국전쟁에서 최악의 패배를 기록. 결과적으로 [3군단]이 해체되고 국군의 작전통제권 이 상실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적 최악의 3대 패전 ;
1)임진왜란의 칠천량전투
2)병자호란의 쌍령전투
3)한국전쟁의 현리전투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 과 유재흥준장의 유명한 대화라고 소개돼있다.
밴플리트: "유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유재흥: "잘 모르겠습니다." 밴플리트: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유재흥: "그런 것 같습니다. 밴플리트:"유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시오
이와같은 일이 있은후 한국군은 (미군의 신뢰를 완전히잃고) 군사 작전통제권 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재흥준장은 일본말을했고, 우리말을 못해서 일본말 우리말 통역관을 대동하고다녔다고 한다
박정희전대통령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를 낸, 제주4.3항쟁(1948년4월3일~ 1954년9월21)에 진압부대 지휘관으로 임하신 이력이 있다
각설하고
팽덕회는 1959년 기해년62세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가 모택동이 대노 삭탈관직되었다
1966년 병오년69세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홍위병들로부터 폭행과 조리돌림을 당하는등 심한 고초를 당하였다
팽덕회의 4명의 여인 중에서 부부답게 산 마지막 여인마저 팽덕회가 삭탈관직당하고 홍위병에게 조리돌림을 당하자
이혼을 요구했다고 하고 팽덕회는 재산을 주고 이혼해주었다고 한다
※팽덕회는 여자복이 없다
1974년 갑인년77세 종명
양력 1898년 10월 24일 음력 1898년 9월 10일
戊戌년
壬戌월
庚申일
戊寅시
무진대운(54~ ) 기해년62세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에 대해 직언했다가 국방장관직에서 실각.
기사대운(64~ )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1966년 병오년69세모택동을 신앙하는 홍위병들로부터 폭행과 조리돌림을 당하여
경오대운(74~ ) 갑인년77세 종명
등소평이 정권을 잡고 명예가 회복됨.
(목)
戊 庚 壬 戊
寅 申 戌 戌 (명궁 ; 丙辰)
무진대운54~ 기사대운64~ 경오대운74~
평생을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살았고 중국의 국가 원수까지 되었지만 말년이 불행했던 팽덕회.
※ 아래의 명반도 참조해서 생시가 맞나 확인해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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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덕회
木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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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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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인적 의견을 적어 봅니다. 이분도 신약. 인비겁을 희용. 재관은 기신으로 보여집니다.
...대운이 계해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수목화 식재관대운흐름속에서 승승장구 햇으니.. 신강사주로 볼경우도 잇겟는데...
목어님이 글 말미에 평생을 고생하며 살앗고 국가원수도 돼엇으나 말년이 불행햇던...이라는 말슴은
관직은 높고 유명세를 떨쳣으나.
당사자 본인은 열라 고생하면서 살앗다.. 불만족스럽게 살앗엇다...행복햇다...???는 아닌듯한 근황이시네요.
개인적으론 신약사주라도 식재관운에 승진잘하고 돈도 잘 벌수 잇다. 그러나. 높은 자리 올라갈수록 힘들어 지고.
돈 크게 벌수록 오히려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경우에 해당하는 걸로 보여집니다.
보는 관점따라 겟는데. 이분 54세부터의 무진대운 무토편인운에 국방장관직에 올르셧다는점. 그러나 무진대운 9년차 기해년에 실직. 대운 바뀌어 기해대운 병오년에 홍위병들에게 곤욕을 치루고.. 부인과 이혼. 부인은 남자에게 재성.
재관이 희신보단 기신으로 보여지는 근황,
그러면 초년 병인 정묘대운에 승승장구한 이유는.?
사주팔자 명리학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빈부귀천수요를 따져보는 학문이지, 도를 논하거나 개인적인
사상철학 관점느낌을 논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개인적 경험입니다만. 젊어서.그리고 군이나 경찰등의 험한직종에 잇을경우 재관운에도 승진하고 잘 나가 보이는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열라 힘들어 하는거 같더군요.
승진하고 잘나간다 운이 아닌데 잘나간다 그러면 그 댓가를 치루고 잇는거 같더군요. 일차 가정사 등으로 치루시는거 같던데...
이분 4차레나 결혼햇다가 그나마도 이혼하셧다는 근황은 젊어 승승장구햇던 근황도
역시 그 댓가를 치루시면서 살앗던게 아닐가 싶습니다.
//해인철학님.께서 댓글을.,..사주 팔자 명리학이.. 세속적 빈부귀천을 가리는 학문이라...본다구요.....
....
왕자와 거지도 동일 사주일수 잇다는거 아실겁니다.
동일사주지만. 왕자이므로.,. 귀격이다..
거지라구.? 허어 천격이구만...
그러실건가요?
운명의 신은 인간들의 부귀 빈천 따윈 별 신경 안쓴다고 알고 잇는데.
해인철학님은 운명의 신이 인간들의 부귀 빈천에 열라 관심많다고 보시는군요.
동일 사주는 없습니다. 시간적인 그리고 공간적인 모든 요소들을 엄밀하게 따져볼 때는......
해인찰학님은 위; 평덕회님 사주에 대해 어찌 보이시는지 고견을 적어 줄수 잇으신가요.
제 글내용중 어색하고 조잡한 부분 보이시면 구체적 내용을 지적 해주셧으면 합니다
걍 이유 없이 태클햇어,,,식의 어린애같은 댓글이 아니시라면 한수 보여주셧으면 합니다.
아참.. 신강 사주 흔하게 보셧을거 같으니 확실하게 신강사주 인걸로 한두개만 올려줄수 잇으신지요.
운동의 영향
우좌~
좌우~
하루의 영향력이 일련의 과정
사주팔자는 개인의 윤리철학 정신적인 만족감등을 논하는 학문이 아니고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보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면 탈세를 했건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건 득재를 햤으면 좋은 운이라 할수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만족했니 힘들었니 하는건 횡설수설입니다
난강망님에게... 재다신약사주가 돈을 많이 벌면 단명한다..이말은 많이 들어보셧을겁니다.
재다신약사주가 돈많이 안벌면?? 가늘고 길게..오래산다고 합니다...
돈많이 벌어 부자인데. 갑자기. 생생한 나이에 죽는다면.....세속적 부귀영화를 누렷으니.행복햇어라..보시는지..궁금해지는데.. 이런경우 어찌 보시는지요...
죽은 사람에게 무슨 (행 ,불)이 있겠습니까 ^^
단지 살아 있는 자들의 평가가 그리 말할 뿐이겠지요
그래서
살아 있을 때에 행, 불이 당사자에게 중요할 뿐이겠지요
그래도 속담하나가 마음에 걸립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
잘살아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