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http://www.greendayauthority.com
"모든 노래, 모든 단어, 내가 쓴 모든 것들, 음악의 모든 부분들에 철저하게 내가 투영되어있어요" 빌리 조 암스트롱이 그의 집 지하에 있는 그 만의 보금자리에서 쇼파에 앉은채로 말했다. 그린데이의 기타리스트 보컬이자 메인 작사작곡가인 그는 오클랜드의 시내 동쪽에 살고있다. 테라스 창문을 열면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골드 게이트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그림같은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빌리는 딴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선홍빛 벽에 걸린 큰 액자를 응시했는데, 그 곳엔 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가 60년대에 기타를 부수는 사진과 굉장히 어려보이는 비틀즈의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 그리고 오리지날 베이시스트였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건 머리속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죠." 빌리는 총 쏘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게 바로 락큰롤이에요.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멋진일 아닌가요? 그리고 난 그걸 내 인생을 걸고 하고있죠. 그게 나에요"
영원히 펑크보이처럼 보일 것 같은 37살의 기타리스트가 말했다. 헤어 스타일때문인지 그는 별로 22살을 넘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2살의 그는 그린데이의 [Dookie]를 발매했고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장이 팔려나가며 그들을 단숨에 펑크팝 스타로 등극시켰다.
전날 밤 그린데이는 오클랜드 폭스 극장에서 공연을 했었다. 2005년 이후 처음으로 가진 일종의 준비운동같은 공연이었다. 두시간 반 동안 그린데이의 새로운 락 오페라 앨범인 [21st Century Breakdown] 전곡을 연주했다. 이 앨범은 마치 클래쉬의 [London Calling], 후의 [Quadrophenia], 허스커 두의 [Zen arcade] 같은 것들이 18곡의 노래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빌리는 '21st century breakdown'을 연주할 때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기타를 높이 들어올리기도 했고, 타운센드의 '풍차돌리기' 처럼 팔을 힘차게 흔들며 파워코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Know your enemy' 에서는 행진곡 같은 비트에 맞춰서 콩콩 뛰었다. 'East jesus nowhere' 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하늘을 향해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날렸다. 'Horseshoes and Handgrenades'의 'I'm not fucking around!' 부분을 내지를 땐 관객석의 어린이와 눈을 맞추었다. 마이크는 'Christian's Inferno'와 'Muder City'를 훌륭하게 받쳐주었고, 트레는 모든 것을 키스 문이나 찰리 와트처럼 이끌었다.
사실 상 [21st Century Breakdown]의 많은 부분을 작사한 빌리는 [Dookie]의 히트곡들부터 2004년을 강타한 시사적인 앨범 [Amrican Idiot]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마치 멈추지 않는 거대한 핵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쇼가 끝난 뒤, 무대 뒤 대기실에서 많은 친구들과 관계자들이 마이크와 트레를 에워싸고 축하를 했다. 그러나 빌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드레스 룸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탈진했을꺼에요" 그의 엄마 올리가 말했다. 그녀는 아담한 체구에 70년대 식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빌리는 6남매 중 막내였고, 그의 아버지 앤디는 빌리가 10살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녀가 말했다. "빌리가 참 걱정됐었어요. 빌리는 음악과 공연에 너무 많이 자신을 쏟아부었거든요." 잠시 후, 빌리는 역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누나 안나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괜찮은거지, 네 건강은 꼭 알아서 챙겨야해" (빌리는 누나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난 괜찮아'라고 보냈다.)
이번에 [21st Century Breakdown]를 프로듀싱한 부치 빅은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도 프로듀싱 했었다. 그가 커트 코베인을 언급하며 말하길 "난 무슨 커트를 보는 것 같았죠. 빌리가 연주를 할 때 그는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리고 빌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면, 난 자유로워요. 생각이 필요 없죠"
빅이 말했다. "그들이 음악 작업을 할 때, 별로 함께 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았어요. 빌리는 무척 힘들어했어요. 그는 기타를 내려놓고 '나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는 그렇게 가끔 마이크와 트레를 남겨두고 가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빌리는 기준을 높게 잡았죠. 다들 자신만큼 서둘러해주길 바랬어요. 그리고 마이크와 트레는 여전히 빌리와 함께하죠. 그들이 어느 날 문을 닫고 들어가 연주를 했을 때, 그들은 내가 그동안 함께 작업한 어떤 밴드들과도 다르더군요."
트레는 빌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천부적인 동시에 고뇌에 몸부림치는 놈이에요(gifted and tormented). 빌리의 머리 속에서는 동시에 18개의 곡들이 연주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동시에 나랑 마이크나 아내 에이드리안과 대화하길 원하죠. 빌리한테 '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어보면 빌리는 눈을 쳐다보면서 '뭐?' 라고 할거에요"
마이크도 빌리를 비슷하게 묘사했다. "빌리는 지 머리 속에 있는 여섯개의 라디오를 어떻게 끄는지 몰라요" 그들은 5학년 때 오클랜드 남부 캘리포니아의 Crockett 학교에서 만났다. 빌리는 로데오 근처에서 왔고, 마이크는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오랫동안 함께 했다. 그린데이의 모태가 되었던 스위트 칠드런은 그들이 15살일 때 시작되었다. (마이크의 본명은 마이클 라이언 프리차드이다. 던트는 친구들이 그의 베이스 연주 소리에 맞춰 지어준 이름이다.)
"우리는 리더를 민주적으로 뽑았어요" 마이크와 트레가 말했다. "빌리를 잘 지지해줘야 했어요. 거의 미칠려고 했거든요. 우리는 '우리는 너의 심복이야. 니가 하는 일들을 절대로 우습게 보지 않을거야'라고 했었죠."
이제는 누구도 의심할여지 없이 '락의 대부'가 된 빌리는 평범한 가정 생활을 위해 몹시도 고군분투 한다. 그와 에이드리안은 오클랜드의 아토믹 가든이라는 오가닉 의류와 가구점의 주인이다. 둘은 1994년에 결혼해서 지금은 두 아들을 낳았다. 빌리는 그동안 가장 처음으로 했던 일과가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보내기'라고 했다. 야구 시즌에는 소년 야구 리그의 코치도 맡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가 인정했다. "어느날 에이드리안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일에만 몰두했다는 거 알아. 지난 15년동안 그린데이로만 살아서 미안해'"
"빌리가 곧 음악이에요" 마이크가 주장했다. 마이크와 트레도 각각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만약 빌리한테서 음악을 뺏어간다면, 빌리는 여전히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로 남아 가족을 보살필거에요. 하지만 남은 것은 빌리의 빈 껍데기일 뿐이죠."
벽에는 밥 딜런의 1970년도 앨범 [Self Portrait]의 커버가 걸려있고, 비틀즈의 [Abby Road]를 재현한 그린데이 멤버들과 유투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들은 2006년 런던 스튜디오에서 함께 자선 앨범을 제작했었다. 그리고 이 보금자리의 한 쪽에는 빌리의 홈 스튜디오가 자리해있다. 그는 여기서 [21st Century Breakdown] 앨범의 노래들을 작업했고, 후의 미니 오페라 'A Quick One While He's Away'를 혼자서 노래하고 모든 파트를 연주하며 녹음했었다. "그 노래는 정말 완벽해요. 'Tommy'보다도 더 영감을 주죠" 그는 이렇게 격찬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2% 부족해했다.
빌리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밴드는 허스커 두도 있지만 베이지역의 스카펑크 그룹인 오퍼레이션 아이비도 있다. 그는 15살 때 그의 누나 안나가 레플레이스먼츠의 공연에 데려간 것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지난 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빅과 함께 녹음을 했던 그린데이는 Amoeba 레코드샵에서 싼 턴테이블을 사서 틈틈히 레코드판을 틀었었다고 한다. 빅이 스튜디오에와서 기타 부분 작업을 하려고 빌리를 찾으면 그는 Beat이나 Pilmsouls같은 80년대 파워팝 LP들을 듣고 있었다.
"다들 자신만의 영감을 얻는 곳이 있어요." 빌리가 조금은 들떠서 말했다. 그는 [21st Century Breakdown] 작업을 할 때 Pretty Things의 1968년도 컨셉 앨범 [S.F. Sorrow], 킹크스의 레이 데이비스, Doors의 앨범 [Bat Out of Hell] 같은 앨범이나 아티스트를 접했다고 했다.
[21st Century Breakdown]는 반-부시적이고 신랄한 비평을 했었던 [American Idiot]와 비슷하다. 크리스찬과 글로리아가 등장하고, 그들이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새로운 세상에 맞써 싸우는 내용이다. "우리는 변화 속에서 살고 있어요. 뭐든지 새로운 것을 위해 파괴해버리는 시대죠. 무서운 일이에요."
대포같은 기타소리와 힘찬 노랫소리에 담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이번 앨범은 빌리가 그동안 썼던 어떤 앨범들보다 개인적이다. 그는 자신의 가정에서 많은 것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예를들면 '21st Century Breakdown' 에서 언급되는 'the Class of '13'은 빌리의 첫째아들 14살의 조셉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013년도를 가리킨다. 또 'Born into Nixon, I was raised in hell'은 빌리가 태어난 시대(1972년)를 뜻한다. 그리고 마이크는 'Last of the American Girls'는 빌리가 에이드리안을 염두해두고 썼을거라 말했다. "그녀는 강한 신념을 가졌고, 그 신념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자에요.". 'Before the Lobotomy', 'Christian Inferno', 'Peacemaker' 에서는 버려짐과 복수에 대해 노래하고, 바로 빌리 자신이 이런 노래들의 가장 첫번째 주인공이다. 빌리는 '내가 견뎌온 게 놀라울거다' 라고 노래한다. 'Restless Heart Syndrome'은 70년대 존 레논의 발라드스타일과 비슷하다.
"어떻게 처리해야될지 정말 모르겠더라구요." 빌리가 고백했다. 그린데이가 오클랜드의 880 스튜디오에서 한달동안 녹음을 하고 연습을 하는 시간동안 빅은 프리프로듀싱을 했었다. 하지만 마이크와 트레는 빌리가 도대체 무슨 가사를 썼는지조차 몰랐다. "어떤 가사를 썼는지 말하지 않았었어요." 그가 말했다. 빌리의 데모작업은 누구의 도움없이 진행됐다. "노래하는걸 반 밖에 못 알아 듣겠더라니까요." 트레가 말했다. 마침내 작년의 어느 날 빌리는 마이크와 트레와 빅을 앉혀놓고 그들에게 전 곡을 순서대로 읽어주었다.
"크리스찬과 글로리아를 썼는데, 그게 곧 나에요. 글로리아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위해 애쓰는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 그리고 크리스찬은 그런 것들 때문에 내면 깊은 곳에서 상처를 받아, 악마가 등장하게 되는 인물이죠." 빌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혹시라도 조셉과 10살 제이콥이 들을까 속삭였다. "가끔은 우리 아이들한테서 지켜야될 건 내가 아닌가 싶다니깐요." 하지만 그들은 에이드리안과 함께 오클랜드 체육 대회에 갔다. "'Christian Inferno'나 'East Jesus Nowhere'는 내가 쓰면서도 애들이 가사를 볼까봐 무섭더라구요. 에이드리안이 봐도 애들한테 '얘들아, 아빠 괜찮은걸까?'라고 할 것 같았어요." 빌리는 'East Jesus Nowhere'을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노래라고 했다. 그는 친구 아기의 세례식에 참석하고 나서 이 곡을 썼는데, 나중에 친구는 '세례식이 그렇게 별로였어?' 라고 물었다고 한다.
마이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관둔 빌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빌리는 항상 개인사나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다뤘어요. [Dookie]의 'Basket Case'도 집나간 정신 붙들려고 애쓰는 사람에 대한 곡이구요."
트레는 자신의 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서 해군 헬리콥터 조종사였다고 했다. 그는 빌리가 [American Idiot]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에서 그런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표현했었다고 회상한다. "빌리는 정말 동요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엄마와 똑같이 말이죠. 부모님은 신혼부부였고, 심지어 엄마는 임신도 한 상태였는데 아빠가 그렇게 배를 타고 베트남으로 가버린거에요. 빌리는 이 러브스토리에 빠졌어요."
빌리가 그의 '불만의 뿌리'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빌리의 가족들에겐 일종의 '단절기' 같은게 있었다고. "문제는 내가 다섯명의 부모를 가졌었다는거였죠. 형들과 누나들 말이에요. 그들은 각자 상처를 극복하기도 벅찼는데 나까지 있었던거에요. 우리 엄마는 웨이트리스일을 하면서 야간 교대를 돌았어요. 힘들게 자랐죠. 난 가족에게 짐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막내동생이고 싶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같은 악마에게서 태어나더군요." 그가 주장했다. "공연장에서 그린데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아이는 무슨 일이 있을까? 무슨 일을 겪고 있는걸까?'. 사회의 암적인 부분은 우리의 내면에 항상 도사리고 있어요. 우리는 사회에 딱 들어맞지 않아요. 사람들의 화를 돋구게 할 뿐이에요. 난 그런 엿같은 일을 내면화시켜서 밖으로 다시 내뱉죠."
빌리가 역설했다. "나에게 출발선은 언제나 펑크락이에요. 난 그림도 엿같은 걸 좋아해요. 할 수 있는 한 가장 엿같은 것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날 흥분시키죠." 그리고 그는 미소지었다. "유전자가 그런가봐요."
빌리에게 마침내 조셉이 신보를 들은 순간을 물었을 때 그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에이드리안이 진짜 웃겼다고 하더라구요. 조이랑 조이 친구가 차로 가는 내내 헤드뱅잉을 했대요. 그래도 가끔은 불안하기도 해요. '크리스찬의 지옥'이 우리집이면 안되잖아요. 조이가 그 노래 속에 숨은 뜻을 모두 알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마 그냥 거친 노래라고 생각할꺼에요." 그리고 빌리는 조금 움츠러들며 인정했다. "하지만 이제 몇 년만 지나도 조이는 확실히 알게되겠죠."
"저기있는 거리를 다 말해줄 수도 있을거에요." 마이크가 부엌 옆에 있는 테라스의 유리문을 내다보며 말했다. 마이크는 지난 5월에 결혼한 아내 브리트니와 새 아들 그리고 전부인과 낳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집은 자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그래서인지 마이크는 가끔 코요테, 여우, 살쾡이마냥 맨발로 언덕을 오르내린다고 했다.
마이크네 집 전망도 빌리네 전망 못지 않았다. 그리고 마이크는 눈 앞의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조망할 뿐만 아니라 그린데이의 초창기 생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타덤에 오르기 전에 빌리와 트레와 함께 파티와 공연을 일삼았던 버클리의 클럽, 소극장, 싸구려 술집 등등에대해서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안가본데가 없어요. 난 저기서 태어났었죠." 그가 왼쪽을 가리켰다. "오클랜드 하이랜드라고 불리는 시내 남동쪽의 작은 곳이에요. 요즘에 만약 술 한잔 걸치고 싶으면 저기 오클랜드 하이랜드로 가면되요. 저긴 항상 그런 아픔들이 깃들어있는 곳이죠."
그린데이는 글로벌 락스타다. 그들은 지난 2005년 12월 마지막 투어를 시드니의 크리켓 경기장에서 5만 관중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그린데이는 여전히 자신들을 지역 밴드라 생각한다. 빌리와 마이크는 East Bay 지역에서 자랐다. 트레는 17살에 멘도시노 카운티에서 버클리로 이사를 왔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전설적인 펑크 밀집지역인 버클리 924 길먼 스트리트 프로젝트에서 그들은 그저 평범한 관객이자 연주자였다. 빌리는 [Dookie]의 상당부분을 버클리 애슈비 길과 엘스워스 골목에 있는 보금자리에서 썼다. 그 곳은 그와 트레 그리고 다른 뮤지션들이 오며가며 함께 이용했던 곳이다. 마이크는 그와 가까운 샌 파블로 길 쪽에서 살았는데, 빌리가 말하길 "마이크는 온 동네를 다 살아봤어요. El Cerrito, El Sobrante, Rodeo, Crockett, Albany, Berkeley. 걘 안 살아 본데가 없어요."
빌리는 오클랜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스프링스틴에게 뉴저지가 집인 것 처럼, 유투에게 더블린이 집인 것 처럼 우리는 이곳을 대표해요. 우리도 그럴려고 노력하구요." 빌리와 마이크와 트레는 서로 차로 15분이면 닿는 거리에서 살고 있다. 트레의 집은 한적하고 가로수가 많고 바다에 가까운 쪽에 있다. 그는 여자친구 루리와 십대소녀 딸, 어린 아들과 함께 산다. 그들이 투어를 돌지 않을 땐, 보통 880 스튜디오에 함께 모여있다. [21st Century Breakdown] 작업을 하기 전에 60년대 개러지 락 스타일의 폭스보로 핫 텁스의 곡을 쓰고 녹음을 했었다.
사람들이 마이크에게 "우리 아들이 밴드를 하겠대요. 조언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항상 같다. "친구들이랑 하렴."
빌리와 마이크는 뗄어낼래야 뗄 수 없는 막역한 사이다. 빌리는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 당시에 우리는 둘 다 우리의 삶을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빌리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마이크는 이혼한 부모님 사이에서 입양되었다. 후에 마이크는 빌리네 집으로 이사를 왔다. "마이크는 엄청나게 신경질적인 놈이었어요. 끝없이 말하고 사람들 욕을 해댔죠." 빌리가 말했다. 빌리의 누나 중 한 명은 마이크를 처음 봤을 때 식칼을 들고 부엌을 뱅뱅 돌면서 마이크를 죽어라 쫓아다녔다고 했다. "그건 '이제 넌 우리가족이다'라는 뜻일꺼에요." 빌리가 말했다.
1992년 트레가 원 멤버 존 키프메이어를 대신해서 드러머로 들어왔을 때, 그는 그린데이 중에서 가장 경험많은 뮤지션이었다. "처음 빌리한테 낚인 건 빌리의 멜로디때문이었어요. 약간 비틀즈 분위기가 풍겼죠." 트레가 말했다. 그는 처음 그린데이의 멤버로 들어올 때 약간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마이크랑 빌리가 무슨 폴 매카트니랑 존 레논 같았거든요." 그에게 누가 누구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트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직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아마 빌리가 폴이고 존인 것 같아요."
마이크가 트레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이제와서 말이지만, 우리가 투어를 돌 때 트레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끄럽게 떠들기였어요. 트레가 어렸을 땐 지금보다 더 톤이 높았다구요. 그래서 내가 맨날 '야, 쫌 닥칠래? 죽는다 진짜?' 그랬었죠." 그러자 트레도 질세라 마이크에 대해 털어놨다. "마이크는 잠버릇이 진짜 고약했어요. 걜 아침에 깨울라치면 어찌나 진이 빠지는지. 아무도 마이크를 깨우고 싶어하지 않아했어요. 마이크를 깨우려면 일단 도망갈 문을 확보해놓고 그 다음에 기다란 막대기로 찔러줘야돼요."
빌리는 그린데이의 메인 작곡가이다. 하지만 그들의 앨범 크레딧 라인에는 'ALL MUSIC BY GREEN DAY' 라고 쓰여있다. 빌리는 마이크와 트레가 모든 것을 함께하기도 하고 또 결과가 잘 정돈되어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그들은 정말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서 모든 감정을 서로 공유할 정도에요." 빅이 말했다. 그는 [21st Century Breakdown]가 그린데이와 작업한 첫번째 앨범이다. 그전엔 보통 워너 브라더스의 롭 카발로와 프로듀싱을 했었다. 하지만 빅이 그린데이를 처음 본 건 그의 밴드 Garbage와 그린데이를 같은 유럽 페스티발 포스터에서 봤을때였다.
빅이 말했다. "셋이서 무리를 딱 지었어요. 말을 해도 서로 상대방의 말을 끝맺어주죠. 정말 놀라운 연주자들이에요. 그들이 그린데이스러운 업템포 박자에 특유의 리듬으로 연주를 할 때면 빌리는 거의 기계같다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목이 부러져라 달려요. 기다릴거 뭐 있나요." 마이크가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는 각자 내면에 아이같은 면이 있어요. 그건 아주 중요하죠. 만약 어떤 사람이 행운의 숫자나 좋아하는 색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내면 속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에요. 그리고 난 아직 그런것들을 갖고있죠. 내 행운의 숫자는 11이고, 제일 좋아하는 색은 진한 파랑색이에요."
"아, 이 놈에 인터뷰 왜이렇게 오래걸려!" 빌리가 소리쳤다. 폭스 극장에서의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 그린데이는 업타운 바의 작은 무대에서 다시 공연을 가졌다. 그 곳은 약 220명 정도되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부빌정도로 빽빽했다. 그들은 [21st Century Breakdown] 을 다시 한 번 연주했다. 빌리는 공연을 반 정도 했을 때, 잠시 공연을 멈추고 버즈콕스나 데이빗 보위의 커버곡을 연주했다. 빌리가 "우리는 어떤 곡이든 연주할 수 있어요!"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떤 관객이 '칩트릭!' 이라고 소리쳤고, 그린데이는 바로 'Surender'와 리플레이스먼츠의 'Bastards of Young'의 후렴구부분을 왔다갔다하면서 환상적인 메들리를 연주해냈다.
"지난 3년동안은 나는 내 즐거움을 모두 박탈당한 기분이었어요." 공연을 하기 전 오후 쯤에 빌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무대에 서면 온전히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더없이 행복하죠. 난 이렇게 살아야되요." 빌리와 그린데이는 이제 당분간은 그렇게 될 것이다.
사실, 빌리를 잘 구슬려서 그린데이의 다음 앨범에 대해 털어놓게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발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중국에서 녹음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마이크가 지금보다 더 작사작곡에 힘썼으면 좋겠어요. 다음엔 좀 더 어쿠스틱하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잔잔한 곡에서도 충분히 극적이고 파워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빌리는 지금 저주에 걸렸어요. 머릿속에서 새로운 노래가 맴도는 저주죠." 트레가 말했다. "빌리는 머리속에 흐르는 그 노래들을 끄질 못해요." 여기엔 빌리의 지속적인 자극상태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빌리는 그의 학교 동창인 제임스 와쉬번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제임스는 그린데이가 첫 앨범을 갓 발매했을 때, 그 앨범의 카피본을 들고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미 학교를 관뒀을 때였죠." 빌리가 말했다. "그리고 제임스가 선생님한테 '선생님, 빌리가 이런걸 했어요.' 라고 하자 선생님은 그걸 보고 그제서야 내 이름 철자를 똑바로 쓰던데요." 빌리가 킬킬거리고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약해지는것때문에 도전을 안하는 걸지도 몰라요. 자신의 꿈에 대해서 두려워하죠. 대담하고 무모해야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나 조 스트러머처럼 훌륭하게 될 수 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도 훌륭하죠. 그들을 보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요."
빌리가 명랑하게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과거의 것들과 싸워야해요. 자만하고, 쓰레기같은 것들만 잔뜩 생산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무언가 열심히하고는 있지만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있는거에요." 빌리는 그린데이의 다음 앨범이 또다른 괴물의 등장이 될지 아니면 그저그런 펑크모음집이 될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언젠가 나올 것이다. "그럴땐 마치 1톤의 벽돌더미가 내 머리위로 쿵하고 떨어지는 거 같아요. 그럼 그건 이제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고, 날 완전히 지배하게되겠죠."
쬐까 길죠?...
사실 번역은 예전에 해놨었는데 올릴까말까하다가 이제 올리네요
번역의 시작은 단지 저놈에 귀여운 몹쓸 커버때문에!!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슴당 :)
|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감사해요!! '마이크를 깨우려면 일단 도망갈 문을 확보해놓고 그 다음에 기다란 막대기로 찔러줘야하죠'에서 빵터졌어요ㅋㅋㅋ
아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두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잼있었어요
아ㅏㅏ 정말 좋은자료 감사합니다ㅏㅋㅋㅋ
5월 달꺼네 ㅠㅜㅠ
사고 싶다.......
잘읽었습니다!! 번역힘드셨겠어요 ㅠ.ㅠ 헤헤, 그래도 재밌게 읽었다는ㅎㅎㅎㅎ
와~ 정말 잘읽었어요!! >ㅅ< 킹왕짱짱!!
우와.... 번역 진짜 감사해요!! 짱 수고하셨어요!
너무너무 감사드려요ㅎㅎ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아 너무 재밌어ㅠㅠ
머릿속에 울리는 노래들을 끄질 못한다니ㅜㅜ 언제까지나 그린데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사랑해줄꺼에요 히ㅋㅋ
아 진짜 재밌네요ㅠㅠ 넘 잘 읽었어요!!
잘 읽었어요!
와 이인터뷰 짱이네요ㅋㅋ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귿귿~~
잘 읽었어요 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