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지하철 |
구대환 교수(서울대 법대) |
아침저녁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27개의 지하철노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본 지하철을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기 시작했다(서울지역의 지하철은 인천지하철까지 포함해서 10개 노선으로 알고 있다). 이곳 지하철에는 매표원이 없고 매표기만 있다(매표기뿐 아니라 역마다 개찰구 앞에는 정산기도 마련되어 있다.
승차권을 잘못 구입했거나 구입한 가격보다 더 먼 거리를 오게 된 경우 추가된 요금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다). 1만 엔짜리 지폐까지 처리해서 거스름돈을 챙겨주는 이 영리한 매표기가 도입되기 전에 근무했을 그 많던 역무원들은 모두 어디로 전직했을까? 대부분의 집표기 앞에는 상자 같은 사무실에 관리인이 근무한다. 이 사무실에는 지하철 노선도나 역 주변지도가 비치되어 있다.
동경에 처음 도착해서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방향조차 몰라서 길을 물은 적이 있다. 주소를 알려주니까, 역 주변이 상세히 나와 있는 지도를 가져와서 빨간 펜으로 가장 빠른 길을 표시해 주었다. 시원하고 공기가 맑았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는 사회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이보다 에너지가 훨씬 더 드는 에스컬레이터를 항상 가동하는 역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보고 이들은 이미 우리가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장애인에 대한 승무원의 작은 배려였다. 어느 날 지하철 승강장에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고 그 오른편에는 딸처럼 보이는 여인이, 그 왼편에는 역무원이 서있었다.
역무원의 손에는 접힌 쇠판이 들려져 있었다. 열차가 구내에 멈추자 역무원은 재빨리 쇠판을 펼치더니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걸쳐서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작은 ‘경사길’을 만들어 주었다. 손쉽게 지하철에 오른 모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하철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목적지가 되니 내릴 준비를 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이때였다. 휠체어가 내릴 위치에 또 다른 역무원이 똑같은 쇠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쇠판을 정성스럽게 깔아서 역시 경사길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몇 정거장 더 가야 했으므로 그 할머니께서 다음에 어떻게 목적지까지 가셨는지 볼 수 없었다. 그 역무원의 태도로 미루어 편안하게 가셨을 것 같았다. 장애인을 위해서 할머니께서 타신 역과 내리실 역 사이에 이처럼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매우 꼼꼼하다. 작은 일조차 대단한 일인 양 토론하는 모습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어린 ‘시스템’ 속에서 장애인들이 덜 힘들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당당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노인들이나 장애인들도 그렇게 당당했으면 좋겠다. |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