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모더니즘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시의 경우, 모더니즘 미학이 다시 강조되는 것은 50년대 <후반기> 동인과 60년대 <현대시> 동인에 의해서다. 서준섭 교수는 80년대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문학의 모더니즘을 세 시기로 나눈 바 있다. 30년대를 전기 모더니즘, 50년대를 중기 모더니즘, 80년대를 후기 모더니즘으로 정의하면서 그 사회적 기반을 일제시대, 미국 원조경제 시대, 한국적 자본주의 시대로 요약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 문학의 일종으로 현실의 반영보다는 미적 가공 기술의 세련성, 실험성과 시인의 내면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50년대는 한마디로 6.25동란으로부터 시작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족 정체성의 혼란기로 이른바 분단 문학이 고착되는 시기다. 이 시기의 문학적 특성에 대하여 권영민 교수는 전쟁과 피난과 수복으로 이어지는 참극 속에서 새로운 민족문학을 꿈꾸던 희망도 사라지고 문학 자체에 대한 열망마저도 상실되었다고 말한다.김춘수 시인은 전후 15년의 한국시를 트레이닝의 시대라고 명명하면서, 이 시기의 특성을 <한국시의 여태까지의 타성에 대한 반성과 반발이 일어나게 되어 상당히 과격한 운동이 일시적이기는 하난 있었던 일>로 요약한다. 그것은 피난지 부산에서 조직된 <후반기> 동인 운동을 의미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후반기> 동인은 당대 우리 시단의 중심을 형성한 문협 정통파, 말하자면 유치환, 서정주 등의 인생파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청록파에 대한 비판을 공식화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조지훈이 주장한 순수시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하지만 50년대 중기 모더니즘은 피난지 부산에서 조직된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꽃핀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하지만 <후반기> 동인이 보여준 두드러진 특성은 반전통성, 도시성, 그리고 서구 모더니즘 기법의 수용이다.
<후반기> 동인이 우리 시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시사적 의의는 <청록파>에 의해 계승되던 전통 미학을 부정한 점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우리시의 경우 도시 미학이 드러난 점, 문명에 대한 불안이 본격적으로 노래된 점, 이런 불안이 동기가 되어 현대인의 내면이 노래된 점 등은 시의 미학적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긍정할 부분이다. 대체로 모든 동인이 도시를 노래한다는 점, 그것도 6.25동란을 계기로 하는 도시를 노래한다는 사실은 30년대 김광균의 <와사등>에서 읽을 수 있었던 모더니즘 미학을 심화시킨다는 의의를 띤다.
아무 잡음도 없이 도망하는/ 보시의 그림자/ 무수한 인상과
전환하는 연대의 그늘에서/ 아 영원히 흘러가는 것/ 신문지의 경사에 얽혀진
그러한 불안의 격투
- 박인환, <최후의 회화> -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 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피 묻은 육성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 김규동, <나비와 관장> 부분 -
오늘도/ 성난 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가고
- 김경린,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 부분 -
박인환의 경우 강조되는 것은 도시가 아니라 도시의 그림자다. 인용시에서 도시는 그 정체가 잡히지 않는, 따라서 무수한 인상으로 얼룩지는, 흘러가는 삶을 표상한다. 그리고 이런 삶은 불안을 표상한다. 무엇보다도 모더니즘 미학이 강조하는 도시는 자본주의와 관련되고, 그런 점에서 박인환은 6.25동란을 매개로 하는 그런 도시 미학을 보여준다.
김규동은 인용시에서 바다에 앉으려다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오는 <나비>를 일제 식민지 지식인의 초상에 비유한 바 있다. 여기서 ‘나비’는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린 자아를 표상한다. 활주로에 잇는 나비를 노래한다는 것은 충분히 현대성을 띤다.
김경린의 경우 강조되는 것은 <국제 열차>이며, 이 열차는 세계성과 과학과 문명을 표상하는 바 , 시인은 그것을 성난 타자기에 비유한다. 그가 강조하는 도시미학은 군중 속의 고독이나 이방인의 불안이라기보다는 도시의 활력, 변화, 역동성이다. <후반기> 동인이 보여주는 도시미학은 김기림의 모더니즘이 지향하던 문명비판을 심화 육화한다는 의미를 띤다.
<후반기> 동인 가운데, 조향은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19세기 시학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초현실주의 미학을 방법론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띤다.
낡은 아코디옹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 여보세요!
뽄뽄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 왜 그러십니까?
- 조향, <바다의 층계> -
데뻬이즈망이란 자리 바꿈, 곧 전위를 의미한다. 조향에 의하면 전위시키는 방법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글을 한데 갖다 붙이는 빠삐에 꼬레, 이것이 발전된 꼴라쥬, 살바돌 달리의 편집광적 기법 등이 있다. 이 시의 경우 <뽄뽄따리아> <디이젤 엔진> <들국화> 같은 시어들은 일상적 합리적 문맥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오브제가 된다. 이런 오브제 미학이 6.25 이후 우리 시에 소개되고 실천된 것은 현대성의 확보 측면에서 의의를 띤다.
<후반기> 동인의 특성은 박인환과 조향을 두 축으로 한다. 박인환의 시는 소재주의적 한계를 보여주고, 조향의 시는 방법론적 한계를 보여준다. 전자가 현실, 특히 도시에 대한 인식은 강하지만 방법론이 약하다면, 후자는 방법론은 강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조향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방법론을 통해 현대인의 의식을 내면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50년대 시인인 계묵용 역시 비슷한 미학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전통적 수사법의 해체를 통해 현대인의 병들어가는 의식을 노래하며, 내용은 다르지만 이런 전통미학의 해체는 전봉건의 경우도 나타난다. 신동문도 현대시 자체에 대한 지적 회의를 노래함으로써 일종의 반미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시는 의식의 편차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통 시학, 전통적인 시문법에 대한 부정이라는 공통점을 드러낸다.
김춘수는 50년대 시인 가운데 개성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50년대 시인 가운데 누구보다 앞서 시의 현대성을 주장하고 실천한다. 이 시기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흔히 <존재의 탐구>로 요약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부분 -
이 시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꽃>과 <이름>의 관계, 말하자면 사물과 언어의 관계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명제다. 이런 명제는 전통적인 언어인식을 부정한다. 김춘수의 현대성은 그런 점에서 본질주의에 대한 미적 비판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50년대 시인 가운데 김종삼, 김광림 등은 존재에의 탐구라는 점에서 김춘수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의식의 수준에서 김춘수가 과격했다면, 과격하고 치열했다면, 이들은 한결 온건했다. 김종삼의 시 특성은 이른바 이미지의 자율성이다. 이미지가 비유적인 속성을 띤다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거느린다는 전통시학을 부정한다. 이와는 달리 김광림은 사물의 의미를 추구한다. 그에 의하면, <꽃>은 인간에게 들켜 놀란 눈이며, 안에서부터 터지는 울음소리로 인식된다. 김종삼은 <있음> 자체만 노래한다. 의미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일종의 허무주의적 미학을 보여준다.
김수영은 동란 1년 전,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시를 발표한다. 그의 현대성은 6.25를 계기로 역사에의 부정, 도시적 삶의 피로, 시민으로서의 삶이 힘겹다는 인식으로 요약된다. <책>을 모티프로 하는 시에서는 그의 이성 비판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오 죽어 있는 방대한 책들
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일지도 모른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로 창이 난 이 도서관은
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느지 모른다.
- 김수영, <국립도서관> 부분 -
김상환 교수는 모더니즘을 책과 관련시켜 해석한 바 있다. 책은 의식의 자율적 내면 공간의 표현이자 외면과 대립된 무한한 허구 가능성의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근대, 혹은 현대성을 표상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모더니즘은 계몽적 이성의 불신, 전통에 대한 회의, 인문주의적 허위에 대한 비판을 지향함으로써 이성의 아이러니를 노래한다. 이런 아이러니는 60년대 참여시로 발전한다. 50년대의 모더니즘은 김수영과 조향의 초현실주의의 편모가 보였을 뿐, 전반적으로는 모더니즘은 일방적으로 이미지즘에 경도된다. 50년대 중심적인 모더니스트들로는 김규동, 이봉래, 김수영, 송욱, 김춘수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