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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법 - ⑥ 참신한 주제와 소재 찾기 방법/ 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이철호
수필작법
⑥ 참신한 주제와 소재 찾기 방법
좋은 주제와 그 주제에 아주 적합한 소재, 또는 어떤 소재 속에서 아주 멋진 주제를 찾아내는 것은 수필 작품의 가치와 문학성을 높이고, 작품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또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이나 공감, 신선한 충격, 또는 수필을 읽는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놓고 고뇌와 안타까움에 빠질 때가 많다. 특히 경수필을 주로 써온 수필가들은 보다 멋지고 참신한 주제나 소재를 찾기 위해 더욱 많이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멋지고 기발한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주제에는 어떤 소재가 좋을까? 이 소재 속에서 좀더 참신한 주제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며 고심해 보았을 것이다.
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 안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공연히 창밖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밤을 하얗게 밝히며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거나 종이에 무수한 낙서를 하며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들을 뒤적거려 보거나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바깥 풍경이나 행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거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원고지나 종이 같은 것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다 보면 좋은 주제나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그야말로 번개처럼 번뜩, 좋은 주제나 소재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의 그 기쁨과 통쾌함.
그것은 실로 감격과 환희의 순간이다. 또한 이 감격과 환희는 직접 그것을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어쩌면 수필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처럼 오랜 고뇌와 인고(忍苦) 끝에 맛보는 이 가슴 벅찬 감격과 환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가슴 벅찬 감격과 환희를 맛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빈번히 낭패감과 좌절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무능력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수필에 대한 초보자들은 참신한 주제와 소재를 찾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필 초보자들이 써놓은 수필 작품을 보면 대개 비슷한 주제, 비슷한 소재로 쓰여진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수필을 쓰는 사람이나 이제 새로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평범한 발상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감히 ‘발상법의 전환’이나 ‘사고(思考)의 변혁’ 또는 ‘고정관념의 탈피’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관점, 착상이나 발상, 사고와 상상, 추리와 판단, 결합과 분석, 재치와 유머 감각 등에 있어서 평범함이나 고정관념에서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 남들과 똑같은 ‘눈과 귀’, 또는 같은 생각으로는 참신하고 훌륭한 수필 작품을 쓰기가 어렵다. 뭔가 남들과 다르고 독창적인 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신한 주제 찾기에 대해 이유식(李洧植)은 그의 「수필의 벽과 그 극복의 길」이란 글 속에서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참고로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설(假設)에 입각한 착상 : 가령 석굴암을 둘러 볼 때 동해를 바라다보고 있는 대불(大佛)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왜 대불의 체형(體形)이 정신형의 가냘픈 심성질(心性質)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營養質)일까? 만약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다.
첫째, 그 당시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면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 계급이었던 석공이 가령 못 먹어서 빼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체형이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다면 그 욕구 충족(wish fulfilment)의 투영현상이 그 조각에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이런 가설을 세워 상상과 추리를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유사(類似) 착상 : 이른바 아나로지(Analogy)에 의한 착상법인데, 자연계를 잘 살펴보면 그럴 듯한 풍부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형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은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없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으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한 가지씩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겠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 ‘인체 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망원경, 다리→비행기, 귀→음파 탐지기 등으로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설도 결국은 유추 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 하겠다.
(3) 대비(對比) 착상 : 가령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어 밀면서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 사용에 있어서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어떤 이치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4) 어떤 사실이나 형상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보는 착상 : 가령 왜 예수의 제자는 12명인가 라는 데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유대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정(正 )과 부(副) 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 본다면 그런 착상에서 한 편의 흥미로운 수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 역(逆) 사고의 착상 :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착상법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즈음은 자가용 홍수 시대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고로 자가용의 불편성이나 위험성에다 초점을 맞추다 보면 ‘무자가용 상팔자’란 수필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또 ‘돈이 많으면 좋다’라는 물질만능 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한편 떼강도들의 침입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역사고에서 「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사고법에 착안하여 흥부와 놀부를 두고 이미 ‘흥부 격하론’이나 ‘놀부 변호론’이 나왔으며,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악처로 소문나게 된 ‘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왔던 것이다.
(6)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 보는 착상 :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법인만큼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노력도 열심히 하고 보아야 한다.
(7)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보는 착상 :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 없다.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중 그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 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쁨과 희망의 계절’에다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런 대로나마 참신한 착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8) 시점(관점)을 바꾸어 보는 착상 :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 관찰도 있을 것이고 측면·후면·수직·수평·입체 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착상법은 한 우물을 계속 깊게만 파고 들어가는 ‘수직적 사고’가 아니라 여러 개 우물을 동시에 파 보는 것이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라는 이른바 ‘수평적 사고’와도 통한다 하겠다.
(9)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착상 : 낡은 지식이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전통 사고나 사상, 그리고 낡았다 싶은 민속이나 풍속 및 생활 습관 등에다 깊은 통찰력과 창조력으로 그것을 새롭게 조명해 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분만 시 통각의 붉은 머리댕기를 복부에 얹어 놓으면 순산한다는 속신을 단순히 속신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통분만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이 그 예일 수도 있다.
(10) 하아브리드(Hybrid)에 의한 착상 : 이런 사고법은 이것저것 서로 다른 이질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다 전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 둘러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위에서 열거해 본 10가지의 착상법으로 비록 참신하게 주제가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워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주제로서 가치성이 없다 하겠다. 참신한 주제일수록 가치성·시대(시기)적인 필요성·보편타당성·독창성·개성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 ‘수필 창작의 이론과 실기(이철호, 도서출판 한국문인, 2016)’에서 옮겨 적음. (2020.11.11.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