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슬프고, 새로운 – 정양의 「내 살던 뒤안에」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면 소재지 장터에 영화가 들어왔다. 그 시절에는 공터에 포장을 둘러치고 만든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그렇지만 입장료가 상당해서 어린이로서는 감히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 내가 그 시절에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큰고모님 덕분이었다. 큰고모님께서는 장터에서 큰 음식점을 하셨는데, 영화를 상영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 고모님 댁에서 숙식을 했기 때문에 나는 다행히도 고모님을 통해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런 영화 중에 「진달래꽃」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포스트에는 만발한 진달래 숲에서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있고, 그 사진 위에 무슨 글이 적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그 글이 참 신기하게도 마음속에 쏙 들어왔다. 그것이 시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전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어느 날 하숙집 마루 위에 굴러다니는 다 떨어진 책 한 권을 주워 뒤지다 보니, 그곳에 뜻밖에도 「진달래꽃」이라는 시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포스트에 적혀 있던 바로 그 글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 글이 바로 김소월이라는 시인의 시 「진달래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시를 즉시 외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몰랐지만, 기가 막히게 술술 잘 읽히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다. 이별하는 남녀의 이야기 같은데, 애절한 두 사람 마음이 언뜻 잡힐 듯도 하였다. 이 시가 지닌 가치, 특성, 구체적인 시어의 의미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도 왠지 모르게 좋았다.
대학에 가서 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읽은 시 중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시는 서정주의 「자화상」이었다. 서정주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지금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때는 그 문제가 아직 부각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대시인으로 행세하던 시절이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은 충격적이었다. 자기 아버지를 ‘애비’라고 낮추어 부르면서, 아버지가 ‘종’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무섭도록 처절한 절망이 젊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시 속에는 참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많았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라는 구절 등은 마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내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대학 다닐 때 나를 제일 괴롭힌 것은 박인환의 시 한 구절이었다. 나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론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김춘수가 쓴 『시론』 책을 샀다. 김춘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인환의 다음과 같은 윗트는 구문을 보다 미묘하게 해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언어가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는 것이 된다.
……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술병’과 ‘별이 떨어진다’의 과격한 연결은 자연발생적으로 유로된 구문이 아니고, 지적인 구성이 엿보이는 구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시구는 전후 시인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있는 부분인데,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이 시가 주는 건조하고 쓸쓸한 느낌이 좋아서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잘 다니는 술집 벽에 더러 붙여 놓기도 하는 그런 시였다. 그런데 김춘수는 밑도 끝도 없이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라는 구절이 “언어가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어째서 언어가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서너 달은 이 구절 때문에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밥 먹을 때도, 버스를 타고 갈 때도, 쉬는 시간에도 이 구절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따를 때 술병(아무 소주병인 듯)에서 술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별은 별이 아니라 술의 은유였던 것이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는 구절도 소주를 마실 때 뱃속에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에서 별이 떨어지고, 상심한 별이 가슴에서 부서진다는 표현으로 얻어지는 것은 산산조각 난 꿈에 대한 상실감이라는 또 다른 의미였다. 술과 별과 절망을 연결시킨 이 표현은 그야말로 언어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것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이 되겠다고 시를 쓰기 시작한 후에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시는 정양 시인의 「내 살던 뒤안에」였다. ‘내 영혼을 뒤흔든 한 편이 시’를 들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시를 들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나는 습작 노트를 들고 정양 선생을 찾아갔다. 정양 선생은 그때 전주신흥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계셨다. 마침 전주신흥고등학교를 나온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가주었다. 첫 대면인데도 정양 선생은 내 습작시를 자세히 봐 주시고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당신의 시를 보여주셨다. 독서 카드에 볼펜으로 적은 시 몇 편이었는데, 나는 그 시들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특히 「내 살던 뒤안에」라는 시가 준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시가 이렇게 아름답고, 슬프고, 새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참신한 비유였다.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햇볕이 익는 흙담”,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와 같은 표현은 예전에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참새, 구렁이, 감꽃, 몰매, 실개울, 보리밭, 둔덕길, 햇볕, 흙담과 같은 대상들은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보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대상들이 연결되어 구축된 시세계는 완전한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시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란 생각도 이때 비로소 생기기 시작했다.
또 이 시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는 서두의 상황 제시에 이어, ‘있었다’로 끝나는 급박한 객관적 상황 묘사가 반복되면서 시적 상황과 정서가 고조된다. 고조되던 갈등적 상황은 ‘나’의 등장과 함께 시인의 내면으로 전환되어 절정에 이른다. 절정에 이른 시인의 내면은 다시 ‘있었다’로 끝나는 객관적 상황 묘사로 대치되고, 서서히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상황이 정리되고 고조된 긴장이 풀리면 시가 끝난다. 정교하게 계산된 이러한 구성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정서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 시의 큰 감동과 충격은 이러한 극적인 구성에도 기인하는 듯한다.
그러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이 시를 이야기로 바꾸면 이렇다. 감꽃이 핀 감나무에 구렁이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참새떼들이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가운데 구렁이가 햇빛을 쬐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환성을 지르며 구렁이에게 돌팔매질을 한다. 돌팔매질을 당하며 구렁이는 서서히 감나무를 내려와 흙담을 끼고 사라진다. 대개 이런 내용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대상은 구렁이다. 구렁이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벌이는 행동이 이 시의 내용인 것이다. 구렁이는 무엇인가? ‘구렁이’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대상이다. 그러니까 악 혹은 증오나 기피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구렁이가 본래부터 악 혹은 증오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객관적으로 본다면 구렁이는 그저 파충류에 속하는 동물일 뿐이다.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대상이다. 아이들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도 구렁이에 대한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무심코 늘 해왔던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구렁이는 아이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함으로써 인간과 함께 존재해서는 안 될 악이 된다. 아무 죄도 없는 구렁이는 인간이 악의 굴레를 씌움으로써 악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화자는 두려워하면서도 돌팔매질을 당하는 그 구렁이가 되고 싶어 한다. 이 피학적인 수난의 의지는 부당하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구렁이에 대한 강력한 옹호와 저항의 소극적 표현이다. 이 시의 화자가 구렁이에게 갖고 있는 이와 같은 강한 정서적 유대감은 「모과나무」에서 표현된 죽은 모과나무에 대한 은밀한 애착과 같은 것이다. 구렁이에게 쏟아지던 돌팔매질은 곧 내 청춘의 몰매로 전화된다. 구렁이와 나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상처가 바로 이유 없이 악 혹은 증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영원히 고통받거나 추방된 것들로부터 연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양 시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소설가 윤흥길은 정양 선생의 첫 시집 『까마기떼』의 발문에서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여놓고 있다.
“사실 간난 많던 그의 유년을 회억하는 과정에서 밤과 그 밤의 어둠이 주는 의미는 그에게 아주 중요하다. 어둠을 뚫고 집안으로 핑핑 날아들던 마을 사람들의 돌팔매를 그는 잊지 못한다. 김제평야에서 행세하는 대지주이자 개명 양반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6.25 직전 콩깍지가 콩을 삶는 저 비극적인 혼란의 와중에서 좌우익의 사상싸움에 쫓기다가 끝내는 실종되고 만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점장이가 예언한 바로 그날 그의 시골집 마당으로 아버지 대신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든다.”
그러니까 구렁이는 좌익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상징한다는 말이다. 「장마」라는 소설의 끝부분에 나오는 구렁이와 이 시 속의 구렁이가 닮은꼴일 정도로 문학적 상상력마저 유사한 친구간인 윤흥길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개인사일 따름이다. 일단 시로서 완성되고 나면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렁이를 꼭 ‘아버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낙인찍혀 추방된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 이 작품에 표현된 아픔을 보편적이며 역사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악과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사라져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멀리는 묘청이나 민적으로부터 가까이는 임꺽정이나 전봉준에 이르기까지, 강고한 지배체제에 도전하며 세계의 변혁을 도모한 사람들을 지배세력은 늘 악의 딱지를 붙여 제거하였다. 그리기 때문에 이들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온한 것이며, 위험한 것일 수밖에 없다. 모과나무에 대한 애착이 늘 은밀하고 조심스러우며, 돌팔매질을 당하는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이 두려움을 동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양 시인은 이제 팔순이 넘었다. 나도 어느새 고희를 바라보게 되었다. 노인이 되어 이제는 청춘의 뜨거웠던 정열도 식어버린 듯하다. 그 동안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그러나 지배체제 혹은 기득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몰매를 당하는 상황은 어제도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내 살던 뒤안에」는 과거의 시가 아니라 현재의 시가 된다. 강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이 시는 늘 누군가의 영혼을 뒤흔드는 작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 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볕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 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정양, 「내 살던 뒤안에」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내 영혼을 뒤흔든 14편의 시(이종민, 모악, 2021.)’에서 옮겨 적음. (2024. 1. 9. 화룡이) >
첫댓글 소년 시절 우리동네에도 구렁이는
있었지요...
도망을 가던 그런 소재로
구렁이가 되고 싶다고 표현을 하니
시인은 다르기는 다릅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잖아요.
의초 시인님의 구렁이도
시의 옷을 입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