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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0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넋두리 한 자락
요즘은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글도 잘 안 써지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고, 건강이 자꾸 나빠지니까 자주 혼자 중얼거릴 때가 많습니다. “주님, 저는요, 주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고생도 많이 하고,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도 열심히 살았는데 어째서 돈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고, 바쁘게 뛰어 다녀도 별 소득도 없고,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말만 많이 듣고, 외톨이로 외롭습니까? 매일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면 주님 생각보다 속상한 일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데 당신께서는 아예 저를 잊어버리신 것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의 눈길 한번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기도가 부족하고, 성의가 없다고 정말 모른 체 하시는 것입니까? 열심히 노력해도 성사되는 일은 없고, 당신의 뜻을 알다가도 모르겠고, 정말 첫 째 간다고 설쳐대지만 꼴찌가 되어 빌빌대는 모습이 정말 속이 시원하십니까?
주님께서 당신과 복음 때문에 사사로운 정과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라고 하시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잘 아십니다. 그런 것을 모두 버리면 세상에서 바보가 되어 복음은 전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죽습니다. 당신께서는 백배나 많은 갚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제 마음에 드는 것은 극소수고, 언제나 허탕만 치는 것 같고, 험악한 세상에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골육지친도 잊고, 무조건 죽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해서 죽어라고 희생하고, 목소리 죽이고, 하고 싶은 말도 하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살고자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면 모두 백배 천배의 상을 주신다고 하시지만 이제는 저도 지쳤습니다. 그런데도 나 몰라라 하십니까?”
그런데 주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이러시는 것입니다. “얘야, 실컷 욕했느냐? 아니면 푸념을 다했느냐? 속이 시원하냐? 더하고 싶으냐?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느냐? 더 하고 싶으면 더 하렴, 내가 언제 못하게 했느냐? 네 맘대로 해봐라, 지금까지 넌 네 맘대로 하지 않았느냐? 그러고 왜 내 핑계를 대며, 내가 모른 체 한다고 하느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하고 싶으면 실컷 해보아라. 누구든지 욕먹는 사람이 있어야 한단다. 나는 욕먹고 멸시당하고, 매 맞고, 죽는 일은 이골이 났단다.”
내가 어이없어 하면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너희 나라에서 전체 인구의 15%가 아주 잘사는 사람이란다. 또 0.18%의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이 가진 돈만큼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아주 못 살아서 지금 죽고 싶은 사람들이 50%가 넘는단다. 넌 말이다 그냥 사는 사람들 속에 포함된단다. 너는 공부도 많이 하고, 먹고 살만하고, 집도 있고, 또 사람들한테 사랑도 받고, 나한테 사랑도 받고 있어서 너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뭐가 그리 불평이 많으냐? 오늘 내가 말하는 것은 세상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대의멸친은 바라지 않아도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하는데 조금만 더 애쓰라는 말인데 그 말이 그렇게 싫으냐?”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조(隱公條)에 나오는 말입니다.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때의 일인데, 위(衛)의 장공(莊公)은 충의지사 석작(石碏)이 군신간의 대의를 위해 아들까지도 죽인 고사를 일컬어 생긴 말입니다. 춘추좌씨전에는 석작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군자가 말하기를, ‘석작은 두 마음이 없는 충신이다. 그는 주우와 자기의 아들인 석후가 올바르지 않으니 군신의 대의를 다하기 위하여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렸다.(大義滅親)’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대의멸친이란 이와 같이 올바르고 큰일을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도 희생시킨다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입씨름을 하고 삐죽대며 중얼거리면 언제나 완패라는 것을 알면서도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결국은 밑져봐야 본전이니 주님께서 제 볼기라도 치시고 멱살을 잡기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갑자기 정색을 하시면서 살며시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얘야, 너 ‘패션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 봤니? 너 거기서처럼 나 죽을 때 그렇게 죽었느냐?” 는 말씀에 그만 할 말을 잃고 찍소리 못하고 앉아서 다시 주님의 말씀을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살면, 현세에서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도 주님께 궁시렁 거린 것을 용서해 주시길 청하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꼴찌만은 면하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넋두리를 하여도 우리가 구원될 것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주님께서 당부하시는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푸념을 늘어놓을 때에는 푸짐하게 늘어놓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부지런히 또한 중단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5,1-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3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6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
7 사실 이 모든 것은 계명에 따른 것이다.
8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9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10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첫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11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12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13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14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15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축일5월 30일 성 요셉 마렐로 (Joseph Marello)
신분 : 주교, 설립자
활동 지역 : 아퀴(Acqui)
활동 연도 : 1844-1895년
같은 이름 : 마렐루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마렐로(Josephus Marello)는 1844년 12월 26일 이탈리아 북서부의 토리노(Torino)에서 아버지 빈첸초(Vincenzo)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마렐로(Anna Maria Marell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은 토리노에서 아스티(Asti) 근방의 산 마르티노 알피에리(San Martino Alfieri)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그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동정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고, 이 신심은 후에 그가 성소를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충실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12살 때 아스티의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그의 선한 품성과 거룩한 생활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다. 19살에 발진티푸스에 걸렸을 때 그는 살려주시면 꼭 사제가 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했고, 무사히 병이 나아 1868년 9월 19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을 다해 사제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처음에 그는 아스티 교구에서 주교의 비서로 일했고, 이어 교구청의 행정을 조정하는 사무처장의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사목직 안에서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와 교리교육에 헌신하며 젊은이들의 윤리와 종교 교육을 충실히 도왔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맞은 교회를 위해 교황과 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통해 평신도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면서 그는 카르투지오회에 들어가 전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에 대해 고심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일깨우며 단념하도록 설득했다. 주교는 성 요한 마렐로의 전인적인 헌신과 열망이 새로운 수도회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당시 혁명 법의 여파로 아스티에서 질식하다시피 쇠퇴한 남자 수도회의 소생을 알리는 시작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성 요셉 마렐로는 1878년 3월 14일 하느님 말씀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돌본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는 ‘성 요셉의 봉헌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새로운 수도회의 신부와 수사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성 요셉의 헌신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지역 교회의 직무를 충실히 돕는 임무를 맡겼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그는 자신의 주교를 돕는 비서로 동행했는데, 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된 조악키노 페치(Vincenzo Gioacchino Pecci) 추기경은 이때 그의 덕성과 재능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에 즉위한 레오 13세는 그를 아퀴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그는 1889년 2월 17일 주교품을 받았다. 성 요셉 마렐로 주교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의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교리교육과 젊은이들의 신앙교육 그리고 본당사목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 선종 3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보나(Savona)에 갔다가 1895년 5월 30일 선종하였다. 1993년 9월 2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아스티에서 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애덕의 모범으로, 젊은이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꾸준하면서도 소리 없이 노력한 모범으로 그를 제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사목자와 전 세계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그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2001년 11월 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축일5월 30일 성녀 잔 다르크 (Jeanne d’Arc)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아르크(Arc)
활동 연도 : 1412-1431년
같은 이름 : 요안나, 요한나, 잔, 잔느, 잔다르크, 잔다크, 쟌, 쟌다르크, 쟌다크,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일명 오를레앙(Orleans)의 처녀로 불리는 성녀 잔 다르크(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Arcensis)는 1412년 1월 6일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Champagne) 근처에 있는 동레미(Domremy)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농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시기는 백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고, 당시 동레미는 영국군의 침략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했던 그녀는 1425년 13세가 될 무렵에 대천사 미카엘(Michael, 9월 29일)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11월 25일)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7월 20일)와 함께 나타나 부친의 집을 떠나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을 찾아가고 나아가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군대를 몰아내라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 ‘음성’의 지시에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표시로 순결 서약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 5월에 그녀는 샤를 7세(Charles VII)를 도와 부르고뉴(Bourgogne)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영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오를레앙 지역을 탈환하고, 내전으로 분열된 프랑스를 국왕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샤를 7세가 보쿨뢰르(Vaucouleurs)에 파견한 장군을 찾아가 프랑스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언대로 샤를 7세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져, 1428년 10월 12일 그의 거점 지역인 오를레앙이 포위되었다. 1429년 프랑스군이 오를레앙 교외의 헤링 전투에서 영국군에 의해 패배하자 그녀는 3월 시농(Chinon)에 피신해 있던 샤를 7세를 찾아갔다. 샤를 6세의 아들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가 못된 인물인줄 알았으나 계시에 따라 그에게 순종하였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인정하게끔 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군사 작전에 나서기 전 푸아티에(Poitiers)로 가서 주교와 학자들 앞에서 최종적인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음성’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그 ‘음성’은 사실로 인정되었고, 그녀의 주장에서 이단이나 미신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하느님이 파견한 예언자이자 투사로 알려졌고, 그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흰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1429년 5월 7일 오를레앙에 입성하고 5월 8일에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프랑스군에 최초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1429년 7월 17일 샤를 7세는 랭스(Reims)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 때 그녀는 왕 옆자리에 앉았으나 그때부터 왕은 더욱 방자해져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활동하다가 1430년 4월에 위험에 빠진 콩피에뉴(Compiegne)를 구하기 위해 출정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이단으로 모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틈새에서 자신이 들은 계시가 마귀의 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기극을 벌인 당시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끝내 화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1431년 5월 30일 루앙(Rouen)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해서 조사한 결과, 1456년 7월 잔 다르크에게 화형 판결을 내린 재판을 폐기하고 무효화하는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그녀의 명예 역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는 1909년 4월 18일에야 비로소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셉 마렐로 (Joseph Marello) 형제들과 잔 다르크 (Jeanne d’Arc)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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