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치매 전조를 보이는 아버지는 점심마저 거르고
누우셨다
불린 쌀을 끓여 짓이겨 체에
걸렀다
종유석 빛 밥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숟가락 떠서 드리자 틀니
어긋나는 소리 뒤로 넘기셨다
구할 수 없는 기도를 뒤로
하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걸어도 걸어도 계단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드셨을까
새벽 내내 아버지는 화장실을
서너 번 들락거리셨다
주춤거리는 발걸음과 가래 섞인
숨소리가 입 벌린 문틈으로 들려왔다
한 손에 창을 들고 짐승을 쫓던
아버지는 어디 가셨나
한 동굴의 족장은 이대로 막을
내리는가
나를 지나친 사람들이 저만치
내려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 혼자 거꾸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이
눈초리가 되어 싸늘했다
아버지의 동굴에서 멀리 빠져나와
허둥거리다 실족했다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찾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