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방해하는 핑계들
티스토리/ 글쓰기를 방해하는 108가지 핑계들
⑥ 쓰다 보면 내용이 산으로 간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론, 본론을 거쳐 깔끔하게 결론에 이른다. 군더더기도 전혀 없고 논증과 예시를 적절히 섞어가며 쓴 그들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당연히 재미도 있다. 문장은 눈에 쏙쏙 들어오며 전체적인 문맥이 오직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글쓴이의 의도와 생각, 철학과 주관이 충분히 이해되면서, 그가 왜 이 글을 썼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글재주를 타고난 천재 작가들일까?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천재 작가가 전혀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빼어난 글쓰기 역량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써내는 천재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작가가 몇이나 될까?
처음부터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기승전결이 완벽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무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산도 바다도 등장하게 되고, 계속하다 보면 내 마음이 나무보다도 바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시인이 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유명한 소설가가 된 사람도 있고, 소설에 뜻을 두던 사람이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도 한다. 천하장사였던 사람이 연예인이 된 후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하고, 투수로 야구를 시작했던 사람이 홈런왕이 된 경우도 있다.
나만의 글쓰기는 내면에 잠재된 목소리를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로의 일관성이나 문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평온을 얻은 수도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마음속에 수십 수백 가지의 갈등과 번뇌가 교차한다. 글을 쓰다가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시 내려오면 그뿐이다.
글이 의도대로 써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만큼 내 마음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거나 글 쓸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뜻으로 해석해보자. 아니면 차라리 그렇게 엉뚱하게 흘러가는 글을 열 편 정도 써보자. 어쩌면 당신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낸 선구자가 될지도 모른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초강력 풀을 만들려고 하다가 자꾸만 떨어지는 풀에 그쳤던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포스트잇으로 재탄생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정해진 주제를 절대로 벗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기를 쓰든 편지를 쓰든, 또 글의 내용이 바다로 가든 산으로 가든 그것은 지금 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쓰는 글은 결국 우리의 삶 그 자체다. 정해진 목표는 오직 글을 써야 한다는 것뿐이다. 밥상을 앞에 놓고 무슨 반찬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한 숟가락도 뜨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짓 아닌가. 일단 먹기 시작하면 어떤 반찬이든 먹게 되기 마련이다. 고기를 먹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김치나 상추, 마늘, 고추, 미역국까지 먹게 되었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여러 반찬을 고루 먹어가며 내 입맛에 가장 맞는 음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반찬이 많을수록 좋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쓴다 해도, 매번 의도한 방향과 달리 흘러간다 해도 결국 글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글을 쓴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니 뜻한 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며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 말자. 우리를 가로막는 상념과 부정은 더 힘차게 펜을 놀리는 것으로만 물리칠 수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 ‘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은대, 슬로래빗, 2018.)’에서 옮겨 적음. (2024. 1. 9. 화룡이) >
첫댓글 뜻한 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며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 말자.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쓴다고 해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글을 쓴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을
죽비소리로 간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죠. 열심히 창작해서 실패한 것은 안하고 가만있는 것보다 낫잖아요
그냥 쓰는 겁니다. 생각이 날 때 마다.
내 생애 최고의 시를 쓰려고 기다리면
한 편도 쓸 수 없다는 거.
'자꾸 쓰다 보면
그 속에서 좋은 시도 나올 수 있다'는 말씀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