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행아소(我行我素)
나는 나의 본래대로 행한다
我 : 나 아(戈/3)
行 : 갈 행(行/0)
我 : 나 아(戈/3)
素 : 바탕 소(糸/4)
퍄오정씨, 진종미, 따치우, 칭조우, 야뤼쟝.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정희(朴正熙), 김종필(金鍾泌), 대구(大邱), 경주(慶州), 압록강(鴨綠江) 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발음하는 대로 적어 본 것이다. 중국어를 능숙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알아듣기는 커녕, '퍄오정씨'라는 발음을 듣고 '박정희'를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나 일본(日本)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을 자기네 발음 그대로 발음한다. 심지어 서양의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도 자기네 식의 한자로 바꾸어 발음한다. ‘러시아’를 ‘어러스[俄羅斯]’, ‘스위스’를 ‘루이스[瑞士]’, ‘아이슬랜드’를 ‘삥따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정한 외국의 표기 및 발음 기준은 현지의 발음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강택민(江澤民), 주용기(朱鎔基), 무석(無錫),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발음하거나 표기하면 안 되고, 쟝쯔민, 주롱지, 우시, 헤이롱쟝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어도 우리 식으로 발음하면 안 되고, 동경(東京)을 ‘도쿄’, 전중(田中)을 ‘다나카’로 발음하도록 원칙을 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그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일본어는 모르겠지만, 중국어의 경우는 사성(四聲)이 있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대로 발음한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성조가 약간만 달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확하게 현지발음대로 한다고 애를 써서 발음해도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다.
등소평(鄧小平) 같은 사람은 워낙 알려졌기에 ‘등소평’으로 발음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인지 다 알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거나 새로 등장한 사람일 경우, 중국어 발음을 따라서 우리 글자로 표기하면, 머리에 그 사람의 상(像)이 고정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발음을 보고서 어떤 한자를 쓰는지를 유추(類推)해 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시진핑’이라는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政治局 常務委員)에 임명된 사람이 ‘습근평(習近平)’인 줄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성(姓)이 될 수 있는 ‘시’자 발음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잘하는 것과 외래어를 현지 발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외래어를 현지 발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한다고 해서 전 국민의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사용해 오던 한자(漢字)의 발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 버리고, 현지 발음을 따라서 발음하고 표기하라고 강요하니, 정말 주체성이 없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중국어 일본어 전문가가 되어야만 중국이나 일본의 지명이나 인명을 발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디까지는 중국어 원음대로 하고, 어디까지는 우리 한자음으로 발음할 것인가 하는 명확한 경계선도 없다. ‘중국국무원(中國國務院)’은 ‘쭝꾸어꾸어우위엔’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중국국무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무원이 있는 지점인 ‘중남해(中南海)’는 ‘쭝난하이’라고 발음한다.
이래저래 국민들의 정신적 부담을 주는 ‘현지음대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왜 고수해야 하는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전혀 고려해본 적도 없는 자주성 없는 언어정책을. 우리도 우리의 길을 가야지, 중국 사람, 일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 또는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의 공평함을 이르는 말을 아심여칭(我心如秤), 자기네 편의 무위가 드날림을 이르는 말을 아무유양(我武維揚),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어떤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를 잊고 다른 사물을 돌아보지 않거나 한 가지에 열중하여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림을 일컫는 말을 무아몽중(無我夢中), 자기 때문에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유아지탄(由我之歎), 인신人身에는 항상 정하여져 있는 주제자 즉 아我가 없다는 말을 인아무상(人我無想),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이르는 말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일컫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일컫는 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
▶️ 行(행할 행, 항렬 항)은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彳(척; 왼발의 걷는 모양)과亍(촉; 오른발의 걷는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좌우의 발을 차례로 옮겨 걷는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네거리, 굽지 않고 바로 가는 일, 나중에 가다, 하다란 뜻과 항렬(行列), 같은 또래란 뜻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❷상형문자로 行자는 '다니다'나 '가다', '돌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行자는 네 방향으로 갈라진 사거리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行자를 보면 네 갈래로 뻗어있는 사거리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나 마차가 다니던 사거리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行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길'이나 '도로', '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行자는 한쪽 부분이 생략된 彳(조금 걸을 척)자가 쓰일 때가 있는데, 이는 彳자 자체가 별도의 부수 역할을 하는 경우로 역시 '가다'라는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行자가 '항렬'이나 '줄'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항'으로 발음을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行(행, 항)은 (1)글의 세로 또는 가로의 줄 (2)길을 감. 군자(君子)는 대로(大路) (3)행동(行動) (4)한시(漢詩)의 한 체 (5)당(唐) 나라에서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동업 상점의 조합, 또는 도매상, 중간 업자 혹은 단순히 상점을 가리킴. 은행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음 (6)어떤 지명(地名)이나 시간 아래에 붙이어 그리로 감, 어떤 곳으로 감의 뜻을 나타내는 말 (7)일체의 유동(流動), 제행(諸行)하며 변화하는 존재. 현상 (8)십이 인연(因緣)의 하나. 과거세(過去世)에서 신(身), 구(口), 의(意) 세 업(業)으로 지은 선악 일체의 본원적 생명 활동. 십이 인연(因緣) (9)수행(修行) (10)실천. 행위. 인간적인 행동(知, 智) (11)칠사(七祀)의 하나. 도로와 행작(行作)을 주장하는 궁중의 작은 신(神) (12)조선시대 때 관계(官階)가 높고 관직(官職)이 낮은 경우에 벼슬 이름 위에 붙여 일컫던 말. 가령 종1품(從一品) 숭정 대부(崇政大夫)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2품(正二品)의 관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면, 숭정대부 행 이조판서(崇政大夫行李曹判書)라 했음 등의 뜻으로 ①다니다, 가다 ②행하다, 하다 ③행하여지다, 쓰이다 ④보다, 관찰하다 ⑤유행하다 ⑥돌다, 순시하다 ⑦늘다, 뻗다 ⑧장사(葬事)지내다 ⑨시집가다 ⑩길, 도로, 통로 ⑪길, 도로를 맡은 신(神) ⑫고행(苦行), 계행(戒行) ⑬행실(行實), 행위(行爲) ⑭여행(旅行),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 ⑮행직(行職: 품계는 높으나 직위는 낮은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⑯일 ⑰행서(行書), 서체(書體)의 하나 ⑱시체(詩體)의 이름 ⑲장차, 바야흐로 ⑳먼저, 무엇보다도 그리고 항렬 항의 경우는 ⓐ항렬(行列)(항) ⓑ줄, 대열(隊列)(항) ⓒ열위(列位), 제위(諸位)(항) ⓓ항오(行伍), 군대의 대열(隊列)(항) ⓔ순서(順序), 차례(次例)(항) ⓕ같은 또래(항) ⓖ직업(職業)(항) ⓗ점포(店鋪), 가게(항) ⓘ깃촉(항) ⓙ의지(意志)가 굳센 모양(항) ⓚ늘어서다(항) ⓛ조잡하다(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할 위(爲), 옮길 이(移),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지(知), 말씀 언(言), 말씀 어(語)이다. 용례로는 길 가는 사람을 행인(行人), 동작을 하여 행하는 일을 행동(行動), 여럿이 벌이어 줄서서 감을 행렬(行列), 가는 곳을 행선(行先), 물건을 가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파는 일을 행상(行商), 실지로 드러난 행동을 행실(行實), 정치나 사무를 행함을 행정(行政), 체면에 어그러지도록 버릇 없는 짓을 함을 행패(行悖), 법령의 효력을 실제로 발생 시킴을 시행(施行), 관례대로 행함을 관행(慣行), 앞으로 나아감 또는 일을 처리해 나감을 진행(進行), 계획한 대로 해 냄을 수행(遂行), 일을 잡아 행함을 집행(執行), 약속이나 계약 등을 실제로 행하는 것을 이행(履行), 절뚝거리며 걸어감이나 균형이 잡히지 않음을 파행(跛行), 자기의 거주지를 떠나 객지에 나다니는 일을 여행(旅行), 방자하게 제 멋대로 행함 자행(恣行),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아울러 행함을 병행(竝行), 차량 등이 정해진 노선에 따라 운전하여 나감을 운행(運行), 출판물이나 돈이나 증권 채권 따위를 만들어 사회에 널리 쓰이도록 내어놓음을 발행(發行), 강제로 행함을 강행(强行), 몸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이르는 말을 행동거지(行動擧止), 지식인이 시세에 응하여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처신의 신중함을 일컫는 말을 행장진퇴(行藏進退), 길을 가는 데 지름길을 취하지 아니하고 큰길로 간다는 뜻으로 행동을 공명정대하게 함을 비유하는 말을 행불유경(行不由徑),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다른 힘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유히 움직이는 모양 곧 자연에 맡기어 행동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행운유수(行雲流水), 타향에서 떠돌아 다니다가 병들어 죽음을 일컫는 말을 행려병사(行旅病死), 길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행로지인(行路之人), 걸어가는 송장과 달리는 고깃덩이라는 뜻으로 배운 것이 없어서 쓸모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행시주육(行尸走肉), 그 해의 좋고 언짢은 신수를 일컫는 말을 행년신수(行年身數), 간 곳을 모름을 일컫는 말을 행방불명(行方不明), 일을 다하고도 오히려 남는 힘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행유여력(行有餘力),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남쪽으로 날아감을 일컫는 말을 행안남비(行雁南飛) 등에 쓰인다.
▶️ 素(본디 소/흴 소)는 ❶회의문자로 빨아 널어 드리운(垂) 명주실(糸; 실타래 部)이 깨끗하다는 데서 희다를 뜻한다. 아직 물들이지 않은 흰 명주, 희다, 또 물건의 시초, 바탕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素자는 '본디'나 '바탕', '성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素자는 사물의 가장 원초적인 속성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素자는 糸(실 사)자와 垂(드리울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素자는 실타래를 뜻하는 糸자 위로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누에고치에서 갓 뽑은 실타래를 묶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素자는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실을 표현한 것으로 가장 순수하고도 원초적인 것을 뜻하고 있다. 그래서 素(소)는 (1)음식에 고기나 생선 따위 고기붙이를 쓰지 아니함 (2)기중(忌中)에 고기나 생선 따위 비린 음식을 먹지 않는 일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본디 ②바탕 ③성질(性質) ④정성(精誠) ⑤평소(平素) ⑥처음 ⑦흰깁 ⑧희다 ⑨질박하다(質樸: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⑩넓다 ⑪부질없다 ⑫옳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탕 질(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현(玄)이다. 용례로는 예술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를 소재(素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움을 소박(素朴), 구체적인 어떤 종류의 양의 최소 단위를 소량(素量), 흰 옷이나 상복을 소복(素服), 개인의 개성을 특징 짓는 경향과 태도를 소질(素質), 평소에 닦아 쌓은 교양을 소양(素養), 본래부터 품은 뜻을 소지(素志), 평소의 행실을 소행(素行), 칠 따위를 입히지 아니한 흰 널판을 소판(素板), 평소에 늘 원하는 마음을 소원(素願), 본래부터의 희망을 소망(素望), 평소의 마음을 소심(素心), 평상시나 생시 또는 지나간 적의 날을 평소(平素), 공기의 주 성분인 원소의 이름을 산소(酸素), 해롭거나 나쁜 요소를 독소(毒素), 치레하지 않고 수수함을 검소(儉素), 간단하고 수수함을 간소(簡素), 담담하고 소박함을 담소(淡素), 수수하고 검소함을 박소(朴素), 가난하나 깨끗함을 한소(寒素), 검은 것과 흰 것을 현소(玄素), 채식만 하던 사람이 고기를 먹기 시작함을 개소(開素), 바탕이 되는 자료를 물소(物素), 차분하고 꾸밈새가 없음을 한소(閑素),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빈소(貧素), 아래 위를 하얗게 입고 곱게 꾸민 차림을 일컫는 말을 소복단장(素服丹粧), 결백하고 허례허식이 없는 선비를 일컫는 말을 청소지사(淸素之士),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손질한 이후에 채색을 한다는 뜻으로 그림을 그릴 때 흰색을 제일 나중에 칠하여 딴 색을 한층 더 선명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회사후소(繪事後素), 재덕이나 공적도 없이 높은 자리에 앉아 녹만 받는다는 뜻으로 자기 직책을 다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시위소찬(尸位素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