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생명체입니다
Daum카페/ '우연하다'와 '우연찮다'
⑨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를 구분해 쓰라고? 왜?
인터넷의 글이나 우리말글 관련 책에 엉터리가 많은 것은 해마다 표준어가 바뀌고 있는데도, 옛날의 규정만 알고 계속해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탓입니다. 특히 출간된 지 좀 오래된 책 중에는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말은 생명체입니다. 오늘 태어나 성장하고, 내일은 죽기도 합니다. 어제 태어난 것이 오늘 죽기도 하죠.
따라서 수시로 사람들의 말과 글 씀씀이를 살펴 생명성을 따져야 합니다. 특히 우리말의 바른 씀씀이를 알려 주려고 쓴 글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표준어가 바뀐 것도 모르고 10여 년 전의 주장을 반복하는 글은 우리말글을 살리는 글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글입니다.
우리말과 관련한 엉터리 주장에는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다른 말이니 구분해 써야 한다”라는 식의 내용도 있습니다. 뭔가 대립하는 느낌의 말이나 표현 중에서 한쪽만 옳다고 주장하는 거죠.
‘우연하다’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어떤 일이 뜻하지 아니하게 저절로 이루어져 공교롭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논리대로 한다면 ‘우연하지 않다’는 “필연적”이라는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연찮다(우연치 않다)’ 역시 “뜻하지 아니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거든요.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의 말 습관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를 같은 의미로 쓰는 사정을 감안해 국립국어원이 두 말에 비슷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우연찮다’에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라는 뜻풀이를 달아 놓은 거죠.
이처럼 글 꼴이 대립적이면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은 적지 않습니다. ‘엉터리’와 ‘엉터리없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글자만 놓고 본다면 반대의 의미가 돼야 하지만 두 말의 의미는 똑같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질없이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를 구분해 쓰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니 구분해 써야 한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무조건 믿지 말고, 우선 국어사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다만 오래된 종이 국어사전은 과거의 ‘우리말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장 최근의 ‘우리말 정보’를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그렇고요. 이밖에도 “‘으로부터’는 영어 ‘from’에서 온 말로 ‘에게서’의 의미로는 쓸 수 없다” “‘장본인’은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 “‘후덥지근하다’는 ‘후텁지근하다’의 오자다” 등등 할 얘기가 무척 많은데, 이쯤에서 접을게요.
제가 그분들과 싸움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또 제가 아무리 떠들어도 쉽게 고쳐질 내용이 아니잖습니까. 더욱이 그 잘못이 글을 쓴 분에게 있다기보다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잘못된 부분을 주정하지 않고 찍어 내는 출판사에 있으니, 그냥 빈 메아리에 그치기 십상이지요, 뭐.
하지만 이런 내용을 제 블로그에 꾸준히 올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궁금한 게 더 있으면 제 블로그에 자주 들어와 보세요.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 어휘편(엄민용, EBS BOOKS,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1.10. 화룡이) >
첫댓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우리말을 잘 모른다'는 책 제목에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는
정말이지 반대의 의미같은데 똑같다니
잘 이해가 되지않는
어려운 우리말쓰기 입니다.
순 엉터리 같습니다.
그럼 엉터리라는 얘기인가요?
엉터리가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저는 띄어쓰기를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엉터리다'와 '엉터리없다'는 같은 뜻이지만
'엉터리다'와 '엉터리 없다'는
서로 다른 말로 보고 싶은 거죠.
그러나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