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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피 쿠 로 스
류소희님(misy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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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유일한 선이며 고통은 유일한 악이다.
학문이건 도덕이건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쾌락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슬기로운 쾌락주의자는 무작정 모든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성에 의하여 쾌락과 고통을 비교,선택함으로 영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
-- 에피쿠로스 저서 중 --
에피쿠로스 #5
이 세상에 종말이 지금 당장 와도 칠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희준의 말을 듣는 일일지도 모른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칠현의 천부적인 낙천적임은 이런 순간 더할나위 없는 힘이 되어주고 용기가 되어주어
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날려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자존심이란 현실앞에선 한낱 부질없는 쇼맨쉽의 연장.
칠현은 식구들을 구해준 희준을 위해서라면
어떤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이미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와요!"
미용실 문을 나서며 칠현의 등뒤로 미용실 언니들이 합창하듯 인사를 했다.
칠현은 해맑은 미소로 허리를 살짝 굽혀 그녀들의 인사에 답했고
그 얼굴엔 쑥스러움이 묻어났다.
칠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몇가닥을 끌어당겨 눈가로 가져다댄다.
색깔이 변해있었다.
평범한 갈색에서 묻어날것 같은 화사하고 찬연한 오렌지색으로.
입 속에 넣으면 바로 혀와 동화되어 그리 마법처럼 사라져버릴 듯한 가느다란 색의 오렌지다.
희준은 오늘 저녁 7시까지 홍대입구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 전에 미용실을 들러 머리를 오렌지로 물들인 다음 오라고.
염색하는데 쓸데없는 돈이 들어가니 집에서 약 사다하면 어떻겠냐 묻다가 살벌하게 째려봄을 당했다.
"미용실 솜씨가 아니었다간 바로 삭발 당한다."
특별히 여자처럼 헤어스타일에 신경쓰는것은 아니었지만
삭발은 원치않는 스타일이라 그는 희준의 돈을 꺼내다 미용실에 갔다.
"염색만 하지말고 스트레이트 코팅, 그리고 영양까지 함께 해."
"알았어."
칠현에겐 희준에게 항거할 힘이 없었다.
희준은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그리 칠현에게 다짐하듯 눈동자를 빛내며 학교로 갔고
남은 칠현은 청소를 하고 시장을 봐놓고 미용실로 가는것으로 하루의 반을 짰다.
이제 미용실에서 나오니 6시가 되어간다.
홍대입구는 멀지않으니 앞으로 30분만 소비하면 그가 말하는곳에 도착할 것이다.
아직까지 그 근처를 가본 적 없어 헤매이긴 하겠지만 아직 시간이 충분하므로 괜찮을것이다........
착각이었음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홍대입구는 굉장히 붐볐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마치 명동처럼 사람들이 넘실거리는 판에
간판도 모두 놓치고 이리저리 고개 돌리느라 아플 지경이었다.
무슨 대학교 앞이 이렇게나 붐비는거야?
은근한 짜증을 내며 시간에 혹시라도 늦을까 노심초사하는 칠현의 정성이 뻗쳐 하늘에 닿았는지
간신히 그의 시야에 희준과의 약속 장소가 거짓말처럼 들어왔다. 아마 못 봤을 확률이 컸다.
[라이제이]
커피숍 간판이 왜 그리 작은지........
간판만 보고 들어가는 일행들이라면 아마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컸다.
칠현은 감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와 있었구나?"
희준의 모습을 찾는것은 금방이다. 저토록이나 선명한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아마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물감을 칠해놓은듯, 그러나 약간의 햇빛을 받으면 바로 스러져 버릴듯 위태위태한 보라색.
흰 얼굴과 매치되어 어쩔땐 숨막히는 긴장감으로, 어쩔때는 당장 죽어버릴만큼 위험하게도.
"나가자."
칠현이 도착하자 마자 희준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버렸다.
남이야 땀을 흘리던 말던 자기만 시원한 에어콘 나오는 곳에서 쉬면 그만이란듯.
"어디 가려고?"
몸은 힘들어도 시간을 맞췄다는 다행함으로
그는 이마의 땀을 손목으로 닦아내며 희준을 따라나섰다.
희준은 계산하는 그 잠깐동안 칠현의 머리카락을 들여다보며 그 색을 감상했다.
"잘했군............"
"좀 비쌌어. 7만원이나 해."
비싸다는 말은 한귀로 흘려버린 무심한 희준이 잔돈을 받아가지고 밖으로 먼저 나왔다.
그때서부터 희준은 말이 없었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칠현은 오렌지색 머리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받는것을 느끼면서 그저 고개를 숙인채
희준의 넓은 등을 따라가고만 있다.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보라색 머리의 뒤엔 오렌지색 머리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으니.
보라색 머리를 가진 남자는 상당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지만 뒤의 오렌지색은 부드럽고 착한 인상.
그리고 예쁜 얼굴을 하고 있어 또한 대비가 되었다.
어지간하면 도착할 장소가 금방 나타나주었으면 좋으련만 무정한 장소는 멀기만 하고
희준의 무덤덤한 태도는 등만을 보여주는 행동으로도 족했다.
앞선 희준이 15분만에 걸음을 멈춘곳. 그곳은 나이트 클럽이었다.
"들어와."
"으응."
비록 넉넉치 못한 집안에 태어나기는 했어도 나이트클럽 한두번 못 가 볼 정도는 아니었던 칠현은
망설임 없이 희준의 뒤를 따라 클럽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열댓번은 갔었나보다. 그러나 이처럼 휘황찬란한 곳은 처음이다.
기껏해야 기본료 55000원짜리 대수롭지않은 나이트 일변이었던 그의 일생에
이처럼이나 호화롭고 넓으며 장치가 잘 되어있는 곳은
아마 두번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않게 할 수 있었다.
거기엔 맥주를 마시는 테이블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맥주 테이블도 없는것은 아니었으나 처음본 상표들로 장식되어 있어 차라리 모르는편이 나을뻔 했다.
아마 유학생들이 어디에서 줏어다가 들은 것이 이런 장소에 제대로 포장되어 나오는거겠지.
그 맛이야 일반 맥주와 별 다를것 있을까?
남녀 불문하고 잘빠지고 잘생겼으며 돈푼 깨나 만질듯 생긴 얼굴들 일변도.
본인은 잘 모를테지만 남들의 눈안에 들어있는 안 칠현 역시 동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저 불타오를듯 환한 아름다운 머리카락,
꽤 생긴 얼굴과 함께 그의 앞으로 바리케이트처럼 다가선 범상치 않은 보라색의 주인을 함께 보면 말이다.
"뭘 보고있어? 여기야."
그 테이블은 춤추는 플로어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해 있었는데 이미 세 명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그러나 희준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참석해 둥지를 틀었고
칠현은 그의 옆 쪽으로 엉거주춤 파고 들었다.
먼저 와 있던 세명은 희준이 친구들인것 같다.
제법 수수한 분위기지만 립스틱 색깔이 엄청나게 진한 긴 머리의 여자와 약간 놀았음직한 남자 두명.
"어서 와. 니가 요즘 희준이랑 같이 산다든 안 칠현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다.
난 이 교석이라고 해. 같은 학교 친구지."
이 교석이라 자신을 소개한 갈색머리 남자가 칠현에게 악수를 청했고 칠현은 그 손을 받았다.
잠깐 생각에 잠긴다. 존댓말을 해야하나? 반말을 해야하나?
"그, 그래 반가워....."
"난 성 경유라고 중학교때 희준이 동창이었어. 지금은 시덥지 못한 3류 대학에 적을 두고 있구.."
수수하지만 긴 머리 하나만큼은 눈부신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다.
"난 재수생이야."
"재수생이나 3류 대학생이나 처지는 같아."
칠현의 무던한 답이 자기비하같다는 기분을 받았는지 여자쪽은 재빨리 말을 수습하여
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 했지만 그럴것도 없이 칠현은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다.
사실 대학에 못붙어서 안 갔다기 보다 붙어도 돈이 없어 못간 것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 못갔다는 사실은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의 그임을 감안하더라도
어지간하면 모른척 돌려버리는것이 수 였다.
있는 사람들의 여유란 것이다. 별로 많이 있지는 않지만.
".........안칠현. 오랜만이다........"
마지막 한명이 가장 나중에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나 앞의 두 명과는 달리
이미 면식이 있는 사이처럼 말하는지라 칠현은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굴이 희고 눈매가 날카롭다는것을 배면 전혀 알바가 없는 얼굴인데 어디서 봤지?
"미안하지만 날 아나본데.........."
"고등학교 동창이야. 아마 날 잘 모를것이다. 2학년때 구미에서 전학을 와서 같은반이 된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래도 네 얼굴쯤은 알고 있지..........난, 장우혁이다."
아직 테이블이 많이 차 들어가진 않았다.
그래도 이들이 있는곳은 플로어와 떨어진 곳에 위치되었기에 얘기하는데 엄청난 방해는 받지 않는다.
희준은 가운데서 묵묵히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누구의 것인지 모를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있었다.
이미 플로어의 노래는 엄정화에서 티티마로, 티티마에서 임창정으로 빠른 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자. 소개팅 집어 치우고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우리 술이나 한잔 빨자."
갈색머리의 제법 놀만하게 생긴 이 교석이 늦게온 두사람의 잔에다 넘치게 양주를 따라 주고
물주들이 당연히 얻는 주인공처럼 먼저 잔을 들었다.
그러자 긴 머리 여자가 재빨리 잔을 들어 응수를 하고 멋도 모르는 칠현이 덩달아 잔을 들었으며
희준은 담배를 끄는 약간의 지연행동을 보이다 바로 그들과 합세를 했다.
"자. 위하여!!"
잔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다섯개가 부딪쳤고
그 붉그스름한 액체는 휘청거려 잔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위태로웠다.
황홀할듯 아름다운 색깔이 오색의 나이트 불빛에 반사되어 그 진위를 알수없을만큼 영롱해 보인다.
그리고 그 술을 스트레이트로 즐기는 이 교석의 호쾌함도,
진저를 섞어 우아하게 마시는 성 경유의 지적임도,
그저 분위기만 맞추기위해 술잔을 들었다 입 언저리만 적신채 내려놓는
안칠현의 멋쩍음도 모두 커버할듯 여유로웠다.
이런 나이트에서조차 튀는 분위기의 문희준......
그 현란한 머리카락이 비오는 듯 아래로 쏠려 있었다.
칠현은 잠깐 생각했다.
저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살아나 잔에 들은 술을 마시기위해 꿈틀대며 내려오는것 같다고.
메두사의 머리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위험한 요소가 들어있는 문희준이라고.
희준이 흘킷 고개를 들어 칠현과 시선을 마주했다. 멀거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눈이 마주쳐버리자
무안해진 칠현은 억지로 웃어보이려 했지만,
그보다 앞서 희준의 신음소리 같이 흐릿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마셔......."
"응?"
"..........이 술의 유래를 잠깐 말해줄까? 위스키는 연금술의 일종이야.
옛날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 금속변성작업을 했었지.
그러기 위해 사용된 도구가 증류기야.
1천년전부터 증류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불로불사의 효과가 있는 영약으로 추대되어 라틴어로 생명의 물이라고 불리웠지.
오늘 이 술은......
널 다른 사람을 만들어 줄거야. 그러니 마셔."
"그, 그래.......불로불사라면 독이라고 마셔야지."
술을 못 마시진 않지만 그렇다고 탁탁 엎어놓고 마시는 체질도 아닌 칠현이었지만
분위기가 나이트인데다 주인격인 희준이 마시라도 하니 억지로라도 마셨다.
그가 목구멍 안으로 천천히 술을 흘려보내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관찰하는 희준의 입술이
차가운 잔과 부딪쳐 빙긋이 웃었지만 정작 미소가 쏘아진 상대는
술이 넘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싸아한 통증을 느끼며 잠시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희준의 눈이 흐린듯 맑게 개여있었다. 안개에 싸인듯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중심선에 위치한 동공의 확대는 고양이처럼 밝게도 보였다.
"진짜야 희준아?"
아까 칠현에게 말하는 위스키론을 들은 성 경유가 손가락을 머리를 꼬아 귀 뒤로 넘기면서 물었다.
"뭐가?"
칠현에게만 신경을 쓰다 갑자기 당한 질문이라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못한 희준의 음산한 의문.
"위스키가 불로불사의 명약이라는 거."
"그래."
"하여간에 희준인 모르는것이 없어. 어디서 그런것들을 줏어 들었을까?"
그녀는 고동색에 가까운 검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는데 괜찮을듯 한 얼굴이
안 어울리는 진한 립스틱으로 인해 약간 망가진 상태다.
눈 화장 피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아 그것을 커버하려 진한 립스틱을 선택했나보다.
희준이 눈을 약간 내리깔고 자신의 맞은쪽에 앉은 경유를 그리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넌......그게 뭐야......."
"응? 왜?"
"전혀 안 어울려."
칠현도 느끼고, 우혁도 느꼈지만 차마 본인앞에서 말을 못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뭐가?........아. 립스틱 색 말야?"
"섹시하지 않냐? 내가 아까 사 줬어. 기집애가 화장도 제대로 안해서 말야........
나이트를 간다면 그 정도는 하고 와야지."
누가 대신하라고 한것처럼 교석이가 나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아무도 어울려 찬성해주질 않았다.
물론 그런 먹구름 낀 번개속의 하늘같은 색을 사준 이교석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진한것 같은데........"
우혁은 그나마 순화된 어조로 말했지만 희준은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것은 칼 같이 자르고 마는 습성 때문에 늘 어딜가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는 한쪽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다 조난 당해 얼어 죽은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
"아우........너무했다."
그는 친구의 얼굴을 얼어 죽은 죽은 인간의 모습에 잘도 비유해댔고,
그 낯뜨거운 발언에 상관 없는 칠현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가는 부분으로 경유는
힘없는 외마디 반항과 함께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지워.........."
딱 그것 한마디로 경유는 놀랍도록 신속한 행동을 개시 했다.
립스틱을 사줬다는 교석의 허락도 받지않고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약간 물에 적셔 입술을 닦아내기 시작했지만 그 색이 얼마나 진한지 어지간히 해서는
제대로 지워지지도 않아 그녀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닦아내야만 했다.
희준은 그녀가 거의 완벽하게 지워냈다 싶을때까지 눈을 떼지않고 지켜보았고,
원래의 입술색이 드러나자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
마치 자신의 여자나 되는 듯 한 행동에 칠현은 약간 거부반응을 일으켰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무발언 없는데다가 지켜보는 두명의 남자들까지 별 말이 없었기에
그저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희준은 약간의 편집증세가 있는 사람처럼 한번 물고 늘어지면 마음에 들때까지
집요하게 구는 좋지않은 정신적인 하자가 있음을 칠현은 안다.
똑같은 번호가 새겨진 책꽃이에 교과서를 칼같이 꽃아 넣는 일과
미강 식품의 덮밥을 2분만 렌즈에 데워 갖다줘야 하는일.
1인용 쇼파외엔 절대로 다른곳에 주저앉으려 하지 않고 주변에 그 어떤것도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 싶으면
가차없이 처리해버리고 마는 인간.
그런 문 희준의 깊은 사고의 장소를 같이 살기까지하는 칠현이 모른다면 말이 안된다.
인간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은밀한 정신적인 세계가 무방비한 상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은
외부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내부적인 장소, 마음을 편히먹고 발 뻗을 수 있는 장소에서만 불을 뿜듯, 둑이 무너지듯 발산되는 것.
경유의 입술이 지워지고 청초해보이는 얼굴이 나타나자 희준의 관심은
그녀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다시금 아까의 일로 돌아가버렸다.
"생명수........"
누구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 혼자만의 중얼거림.
"다른 말로 '위스 게버'.......아쿠아 비테를 만들기 위해 발아대맥을 수도사에게 준다.
그 수도사는 증류를 시키고.........타인에겐 생명수가 되는 것이 수도사에겐 독이 되는 셈이지."
그 말들은 강타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경유는 립스틱을 지워 입술이 아픈지 손을 만져 댔고,
우혁은 교석의 잔이 빈것을 보고 병을 들어 술을 따라주었으며,
교석은 술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 그것을 살살 흔들어 또 한번 단숨에 마셨다.
그는 영국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즐기는 것을 선호했다.
틀린점이 있다면 영국인들은 위스키의 맛과 향을 소중히 여겨 그것을 음미하기위한 스트레이트로
천천히 혀로 그 술의 진미를 충분히 느끼며 조금씩 넘기는 것이고,
교석의 주법은 톡 쏘는 감각과 비릿한 뒷맛을 동시에 느끼기 위한 소주처럼 단숨에 털어버린다고나 할까?
그에 반해 우혁은 미국식으로 하이볼이나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을 좋아 했다.
위에 부담이 가지않는 것을 선호하는 우혁이었다.
희준은 술을 한모금도 입에대지 않고 그저 빙빙 돌리면서 얘기를 한다.
"...........오늘은 니가 주인공이야 강타. 넌 오늘 연금술사의 마법처럼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될거야."
그러나 칠현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대사를 듣지 못했다.
"조심해. 진정한 독은 물처럼 생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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