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시간예술이다. 규격화된 박자 안에 작곡자는 감정을 표현한다. 감정뿐 아니라, 정신을 이입할 때도 있다. 음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오선지 언덕을 빠른 속도로 올라갈 때가 있다. 현란한 감정으로 사람을 제삼 세계 계단을 오르게 하기도 한다. 바이올린이 이런 일을 잘한다. 반면, 음표가 오선지 내리막을 내려갈 때면 세상사에 지쳐 파편이 된 무의식의 불안 속에서 평온을 의식하게 한다. 첼로가 이런 일을 잘 담당한다. 악기 왕으로 불리는 피아노는 어떤가. 88개의 건반으로 연주하지 못하는 곡이 없다. 원래 이름이 피아노포르테였다고 한다. 피아노는 여리게, 포르테는 세게라는 뜻이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강도에 따라 강하고 약한 소리를 낼 수 있다. 강, 약, 중강, 약의 소리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어떤 악기보다 더 세밀히 표현할 수 있다.
성경의 한 책인 전도서에 인생사의 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다. 자신감이 넘칠 때가 있고, 한없이 무기력할 때가 있다. 강할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다는 뜻이리라. 우리는 강, 약, 중강, 약의 삶을 직면하며 살아간다. 인생은 샘여림표처럼 다이나믹하다.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약할 때이다. 의지했던 부모가 돌아가시고 같이 자란 형제가 불의의 사고로 인생이 뒤틀리는 것을 볼 때 나는 한 없이 약해졌다. 누군가의 도움을 당겨 위로받고 싶을 때였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일주일 전, 친구의 장례를 치렀다고 슬퍼하고 있다. 23년의 짧은 세월을 살다 간 친구는 어릴 때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친구였다는데.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딸이기도 하다. 내게 그녀의 부고를 보여 주었다. 가슴에 흐르는 흐느낌을 여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7살 때 베타 물고기를, 네 마리의 기니 돼지를, 그리고 코카푸를 기르면서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면 누구든 느낄 수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동안,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한 마음을 선물로 받게 된다. 얼마나 애정이 많은 아이였을까. 마음이 애잔해진다.
사람이 약해질 때,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힘을 당겨서라도 예전처럼 다시 일어나고 싶어 한다. 약함을 이기고 강함을 표현하는 음악적 기호가 있다. 당김음(Syncopation)이라고 한다. 당김음이 일어날 때는 강박과 약박의 위치가 바뀐다. 강박을 일으키는 음의 길이가 약박의 위치에 있는 음의 길이보다 짧을 때 약박이 강박이 된다. 즉, 앞에 있는 강박의 위치에 있는 음에서 길이를 당겨 약박이 강박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강박을 연주할 수 있을 때 약한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긍휼함으로 다가가면 당김음이 주는 매력 있는 생의 음을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김음이 일어나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강박의 위치에 쉼표가 있을 때 약박의 위치에 있는 음은 갑자기 힘을 받는다. 쉼표 때문에 약박이 강박이 되는 것이다. 내 소리를 내고 싶을 때 옆에 있는 사회적 약자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내 주장을 죽이면 강하게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당김음이 일어나려면 강한 자들이 포용력 넘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약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힘의 이동이 자유로울 때 음악은 생동력이 넘치게 된다. 그런 연주를 듣는 동안 눈물이 나기까지 한다. 비록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지만 가슴을 공명시키기 때문에 실제로 이 눈물의 출처는 심장이다. 심장의 리듬은 삶의 굴곡을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당김음의 역동성을 연주하는 곡을 듣게 되면 감동이 되는 것이다.
이런 당김음은 남녀 간의 사랑도 잘 전달할 수 있다. 생생한 표현 때문에 슈만은 당김음을 그의 작품에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클라라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성년자인 딸이 슈만을 만나는 것을 반대해 그를 고소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슈만은 결국 이런 반대에도 그녀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하루 전날, 슈만 환상곡 다장조 Op. 17을 작곡해서 시와 함께 그녀에게 선물한다. 이 곡은 강박과 약박의 위치 변화로 그녀와의 이별이 주는 고통을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한 그의 대표작이다.
옷깃을 자연스럽게 여미게 하는 가을에 들판을 본다. 허허롭다. 자기 것을 다 내어 주고 누렇게 창백하지만, 그 빈 곳에서 왠지 평화로움을 느낀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 자신은 평안히 쉼표를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있는 붙임줄을 들판에 걸치니 당김음이 생긴다. 육체는 점점 약해지지만, 내게 당김음으로 힘을 준 소중한 가족들이 생각난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게 헌신한 소중한 아내, 아직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서 있는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 생전에 기도 소리를 유언으로 남겨 주신 아버지, 세약한 기억으로라도 아들의 이름만은 잊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미소에서 당김음을 느낀다.
딸의 친구, 그녀의 욕실 거울에 붙은 스티커 메모에 그녀가 약할 때 누군가에게 힘을 구하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시편 118: 6, 개역한글). 이 메모가 딸에게 당김음이 되었으면 한다.
대구 출생 Temple 대학교 약학과 졸업 2020년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시 부문 수상 2021년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