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써 태어나 누구나 한번 쯤 생각하게 되는 지상 최강의 남자...그래플러란 지상최강을 목표로하는 격투가를 말한다..."
그래플러 바키 애니판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조잡한 그림과 지명도 낮은 작가 등의 이유로 초반에는 엄청나게 고전했지만 어느새 일본 최고의 격투만화로 자리를 잡아버린 바키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격투만화의 최고봉이다.
주인공인 한마 바키는 지상 최강의 생물인 자신의 아버지-한마 유지로를 쓰러뜨리기 위해 하루 하루 엄청난 단련을 소화하며 살아가는 파이터. 이 만화는 이 소년의 싸움을 축으로 오로지 격투 장면에만 치중되어 있다. 물론 나름대로의 스토리 전개가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 다음 싸움을 위한 연결 고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 만화는 스토리 전개에 그 진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만화의 진가는 실존인물들의 등장과 또 독특한 성격을 지닌 무도가들의 대결구도에 있다. 스토리는 그 다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전개만으로도 이토록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은 바로 이타카키씨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힘이 아주 크게 작용한 것이다.
작가인 이타카키 케이스케씨는 자위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지닌 만화가.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만화 스타일은 일본의 그 어떤 만화가와도 전혀 닮아있지 않다.
그는 그냥 그만의 만화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 자체는 굉장히 조잡한 그림체이지만 격투동작과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파워가 넘치는 펜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굉장한 박력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배경이나 얼굴 생김새 등의 처리에 있어서는 다른 만화가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격투 동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의 묘사는 그 어떤 만화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 (국내의 한 만화가가 이 그래플러 바키의 캐릭터를 그대로 베껴서 만들었던 모 만화의 경우, 베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카키씨의 박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었다.)
또한 이 만화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존인물들이 가명으로 등장한다. 오로치 돗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가라데 고수는 실제로 전설의 파이터 최영의 선생과 최영의 선생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일본 가라데계의 최고수 나카무라 히데오 권도회 총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굉장히 괴짜스런 면이 있는 것은 최영의 선생과 판박이라고 불릴 정도이며, 수도관을 맨손으로 때려 부숴버린다든지 하는 장면은 나카무라 총사의 격파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물론 실제의 격파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카무라 히데오 총사는 조총련계 동포로써 일본에서는 권성으로까지 추앙받는 인물. 특히 서까래를 주먹으로 일격에 격파해 보이면서 가라데 역사상 최강의 격파명인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이 만화에는 안토니오 이노키를 모델로 한 이가리 겐지. 그리고 자이언트 바바를 모델로 한 마운트 토바와 같은 캐릭터들도 등장하며, 아이키도 역사상 최고의 명인이라고 까지 불리는 요신칸 아이키도의 도주, 시오다 고조 선생도 역시 가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캐릭터들의 대결구도를 통해 전설의 명인들의 대리전을 치루게 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계속해서 불러일으켜왔다. 그래플러 바키라는 만화의 인기에는 이런 요소가 상당히 작용했음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영의 선생과 안토니오 이노키가 싸우면 누가 이길것인가?], [전설의 가라데 명인은 아이키도의 살아있는 신화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등과 같은 아주 단순하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만화를 통해 실현시켜온 것이다.
실제 일본쪽의 바키 팬페이지를 가 보게 되면 단순한 만화 팬들의 모임이 아니라 무도 대백과 사전, 혹은 명인 대백과 사전처럼 되어 있다. 실제로 이런 명인들의 대결 구도는 작자인 이타카키씨를 굉장히 곤혹스러운 입장으로 몰고가기도 했는데, 특히 극진회관의 항의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최영의 선생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패배하고 눈을 잃는 등의 일을 겪게되자 극진회관에서는 굉장한 분노를 표출했으며 이타카키씨는 이것은 무마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고 한다.
이 만화는 전체적으로 진행이 빠르고 호쾌하며, 강렬한 격투장면으로 단순하기 짝이없는 스토리 구성을 덮고도 남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만화에는 스토리와 그림수준 외에도 단점이 많이 존재한다.
우선 중국 권법을 다룰 때 다른 격투기 만화들도 흔히 저지르는 치명적인 미스인 [신비주의의 강조]가 이 만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중국 권법의 경우, 문파도 많고 일부 문파의 권법은 제대로 외국에 전수가 안된 경우가 많다보니 격투기 만화에서 다룰 경우 굉장한 신중을 요구한다. 또한 그 원리나 동작도 만화로 재현하기 상당히 까다롭기에 더욱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권아]와 같은 전철을 그냥 밟게되는 것이다. 권아는 팔극권 붐을 일으키며 굉장한 힛트를 했지만, 권아의 실제모델이자 스토리 작가인 마츠다 류지씨의 실제 팔극권 연무가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엄청난 실망을 한 일이 있었다. (필자가 직접 팔극권을 수련하셨던 분과 대담을 하면서 마츠다 류지씨의 실력에 관해서 여쭤봤던 일이 있었다. 당시 "그냥 그럭저럭 팔극권을 비슷하게 하기는 하지만, 고수라고 하기에는 많이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교류가 적어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잘 모르기에 자연적으로 신비주의에 빠져버리는 경향이 많은 일본인들의 중국권법에 관한 묘사는 이 만화에서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으며, 레츠 카이오(열해왕)의 움직임과 동작 묘사는 중국 권법의 움직임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타격기를 좋아하고 타격기 수련에 치중했던 작자의 취향이 만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유도나 주짓수 그리고 삼보 파이터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타격계 파이터들에게 패하는 장면이 너무 많다.
작가는 실제 MMA에서 타격 중심의 파이터들보다는 그래플러가 큰 힘을 쓴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제목이 그래플러 바키이자만 만화에서의 바키는 그래플러 보다는 스트라이커에 훨씬 가깝다.(물론 그래플링도 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을 다 고려해도 이 만화는 분명히 재미가 있다. 이 만화만의 파워가 폭발하는듯한 격투묘사는 그 어떤 만화도 따라갈 수 없으며, 속이 확 뚫리는 듯한 호쾌한 느낌의 전달도 충분한 수준이다.
격투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도, 캐릭터도 아니다. 바로 이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격투신의 전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바키가 최고의 격투만화로 인정받는 이유이고, 필자가 다음권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