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농구는 멘탈게임(mental-game)이라는 말이 있다. 농구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물론 선수들의 육체적인 능력과 농구 기술이 좋아야하고 전술도 좋아야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수들은 경기에 임할 때 이 모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또 한 선수들은 상대선수와 상대 팀을 정신적으로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경기에서 상대선수의 정신력을 무력화 시켜 상대선수가 주눅이 든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 팀이 손쉽게 승리 할 수 있는 것이다.
NBA의 스타 선수들은 물론 뛰어난 농구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선수의 정신력을 꺾는 일에도 전문가들이다. 그들에게 농구경기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전쟁터와도 같기 때문이다.
NBA에서 마인드 게임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일화를 시리즈로 소개 하기로 한다.
■ 마이클 조던
조던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농구선수이다. 하지만 그도 게임에서 상대선수를 제압하기 위해 갖가지 트래쉬 토크(trash talk)를 했다. 그의 트래쉬 토크는 단순한 욕지거리가 아니라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던은 6번의 우승경험이 있지만 84년 입단한 후 91년 첫 우승을 하기 전까지는 항상 디트로이트 피스튼스의 '배드 보이즈'에 덜미를 잡히고 있었다.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빌 레임비어, 아이지아 토머스, 데니스 라드맨, 조 두마스 등을 축으로 격렬한 경기를 보여줬다.
조던에 대한 수비는 항상 아이지아 토머스가 맡았는데 그는 항상 조던을 '애송이'라고 부르며 거친 파울을 했다. 이 때문에 조던도 평소와 다르게 쉽게 흥분하며 경기를 망치곤 했다. 심지어 필 잭슨 감독은 경기 후 토머스를 폭력혐의로 고소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토머스는 자신이 드림팀1에 선발되지 못한 것은 조던 때문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로 조던과 토머스는 앙숙이었다.
하지만 90-91시즌 조던은 냉정하게 경기를 이끌며 피스튼스에 4전전승을 거두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고 LA 레이커스에 4승1패로 승리하며 첫 NBA 우승을 맛보았다. '배드보이즈'에게 뼈아픈 좌절을 맛보았던 조던이였기에 더욱 값진 우승이었다. 결과적으로 조던은 토머스에게 냉정하게 싸우는 법을 지도 받은 셈이 되었다. 즉, 마인드 게임을 배워 팀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조던의 마인드 게임은 단순히 상대방과의 경기에서만 보여진 것은 아니다. 팀 동료들을 상대로도 마인드 게임을 했다. 그는 연습에 강렬함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동료들을 자극했고 경기 중에도 실수를 한다든가 자신에게 패스를 잘 하지 않을 경우 갖가지 발언으로 자신 스타일대로 경기를 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조던의 마인드 게임은 불스에게 보약이었다. 불스의 6차례 우승은 실력+마인드게임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92시즌 NBA 결승전에서 시카고 불스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당연히 시리즈의 초점은 양팀의 에이스 불스의 마이클 조던과 블레이저스의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대결로 집중 됐다. 당시 드렉슬러는 시리즈 전 가진 인터뷰에서 "조던에게는 3점슛이 없다. 나는 그의 돌파만 막으면 된다."며 조던을 자극했다. 마인드 게임을 시작 했지만 이는 조던에게 오히려 도움을 줬다.
하지만 조던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1차전 후반전에서만 6개의 3점슛을 꽂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자 드렉슬러는 '이봐 조던 내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고.' 라고 말하며 조던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결국 조던은 상대편 에이스의 기를 납짝하게 눌렀고 불스는 시리즈에서 4승2패로 승리하며 2연패를 이루었다.
■ 찰스 바클리
'코트의 난폭자' 찰스 바클리는 뛰어난 실력은 물론, 거친 입담과 험악한 플레이로 상대편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클리는 자신이 마음 먹은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으면 거침없이 욕을 내뱉었다. 또 동료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그 자리에서 동료들을 모욕해서 자존심을 자극함으로써 분발을 요구했다.
상대편 선수로서는 오히려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선수가 그를 거친 플레이와 트래쉬 토크로 제압하려고 하면 바클리는 그 선수보다 더욱 심한 욕을 퍼부었고 더욱 거친 플레이로 그 선수에게 부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클리는 페어 플레이어(fair player)에게는 절대로 시비를 걸지 않았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만큼 되돌려준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팔꿈치 후리기(elbow-swing)이다. 그는 볼을 리바운드 한 이후에 두 손으로 볼을 잡고 팔꿈치를 마구 휘두르며 상대편 선수들을 위협했다. 실제로 한 선수는 바클리가 휘두른 팔꿈치에 턱을 맞아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바클리가 리바운드를 잡고나면 그의 주위에 다가가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바클리는 은퇴 후에도 '절친한 친구' 조던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조던과 워싱튼 위저즈에 도움이 됐다. 정규 시즌이 시작됐을 때 바클리는 "위저즈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조던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일을 해낸 것이다"라며 비아냥 거렸는데 조던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조던과 위저즈는 그의 말에 자극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 스카티 피픈 : 피픈도 마인드 게임에 일가견이 있다.
96-97 NBA 결승전에서 시카고 불스는 유타 재즈를 만났다. 일요일 열린 시리즈 1차전을 승리로 이끈 후 피픈은 "메일맨(mailman-칼 멀론의 별명)은 일요일에는 배달하지 않는가 보지?"라고 말하며 멀론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후 열린 2차전에서 멀론은 피픈의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 형편 없는 자유투를 기록했다. 그러자 피픈은 또 다시 멀론에게 "유나이티드센터 직원이 재즈쪽 골대 림의 나사를 힘껏 조여놨다."며 멀론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에 말론은 피픈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재즈는 2차전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결국 시리즈에서도 불스가 4-2로 재즈를 꺾으며 2연패를 이루었다.
4. 개리 페이튼: 'Big mouth' 페이튼은 NBA최고의 입담으로 유명하다. 그는 마치 입으로 수비를 하는 것 같다.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공격수에게 말을 건다. 상대선수는 페이튼의 정신 없는 소리 때문에 당황하게 되고 자기 플레이를 다하지 못한다.
만약에 공격수가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이미 50%는 수비가 성공한 것이다. 공격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을 때 볼은 이미 페이튼의 손에 있을 것이고 공격수는 페이튼의 속공성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페이튼은 상대선수가 자신의 말을 듣고도 반응이 없을 경우에는 더욱 집요하게 달려든다. 한마디로 그는 찰거머리다. 이에 대해 페이튼은 "농구는 정신력 싸움이며 상대선수의 집중력을 흩트리기 위해서 트래쉬토크를 한다."고 말한다.
조던 조차 "페이튼의 트래쉬 토크는 너무 심하다. 일반적인 트래쉬 토크는 상관없지만 상대방의 인격까지 모독하는 트래쉬 토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NBA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페이튼의 입담에 한번쯤은 당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5. 레드 아우어박: 보스튼 셀틱스를 역사상 전무후무한 8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던 명장 레드 아우어박은 마인드게임(mind-game)의 1인자로 꼽히는 승부사다.
그는 심판이 자신의 팀에게 못마땅한 판정을 했을 때 여지없이 심판에게 따지며 선수들의 기를 살렸다. 그리고 자신의 팀이 승리를 했을때 항상 라이벌팀의 선수들과 감독들 심지어 팬들까지 약올렸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그는 상대편 선수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경기 전 상대편 선수들의 라커룸에 들어가 선수들을 당황시켰으며 상대편 선수들이 샤워를 하는 도중 일부러 물을 나오지 않게 해서 선수들을 난처하게 했다. 또한 그는 한겨울에 상대편 라커룸의 난방을 하지 않도록 지시해 상대편 선수들은 추위에 벌벌 떨며 그를 증오했다.
그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보스튼에 원정경기를 하러온 선수들이 머무는 호텔에 한밤중에 찾아가 화재경보를 울리게 해서 선수들의 숙면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기 팀 선수들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어떤 선수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가차없이 연봉을 깎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선수들은 무서워서(?) 열심히 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전술적인 지시도 없이 선수들을 다그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빌 러셀을 중심으로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어 당대 최고의 선수 윌트 체임벌린이 활동하던 시대에서 8연패가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셀틱스의 수비는 아우어박이 불어넣은 정신력에서 비롯되었음은 물론이다.
그의 이러한 코칭 철학은 오늘날의 여러 감독들에게도 교과서로 통하고 있으며 실제로 감독들은 그의 영향으로 농구경기에서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6. 하킴 올라주원 : 94-95시즌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서부의 휴스튼 라키츠와 동부의 올랜도 매직이 맞붙었다. 당시 라키츠의 올라주원과 매직의 섀킬 오닐간의 신.구 센터대결은 최대 관심사였다.
당시 시리즈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오닐은 "올라주원은 내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했고 이에 올라주원은 "오닐은 덩크밖에 할 줄 모른다. 나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써서 수비수를 따돌린 후에 힘이 필요할 때 비로소 힘을 쓰는 것이다. "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시작된 시리즈에서 올라주원은 오닐에게 "만약 네가 3점슛을 성공시킨다면 나는 너의 엄지발가락에 키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닐은 정말로 3점슛을 시도했고 슛은 당연히 들어가지 않았다. 오닐이 심리전에 말려들어갔던 것이다.
이에 오닐은 더욱 화가 나서 성급한 플레이를 하면서 파울을 범했고 올라주원은 더욱 노련한 움직임으로 덩치 큰 오닐을 제압했다. 결국 시리즈는 4승무패로 라키츠의 완승으로 끝났다. 올라주원이 마인드 게임에서 완승 했던 것이다.
7. 데니스 라드맨 : 라드맨은 리바운드 머신으로 유명하다. 또한 경기마다 바뀌는 머리색과 돌출행동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수비수였다.
그는 특히 골밑에서의 자리싸움에 능했는데 상대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상대 선수의 바지안에 손을 넣어 고환을 만지는 저질스런 반칙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자 상대편선수들은 그를 '벌레(worm)'라고 부르며 상대하기를 꺼려했다.
로드맨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리바운드 잡아내는데 '도사'가 됐다. 오닐도 라드맨의 수비 앞에서는 짜증을 내며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방법이야 어쨌든 다른 선수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로드맨은 리바운드를 잡아내 승리에 기여했다.
라드맨도 지저분하긴 했지만 나름대로의 마인드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선수 중 한 명이다.
8. 레지 밀러 : 밀러도 마인드 게임에서 빠지지 않는 선수이다. 요즘은 좀 잠잠한 면이 없지 않지만 한때는 조던과 격렬한 매치업을 벌이며 트래쉬 토크를 해댔고 결국 난투극까지 벌였던 적이 있었다.
냉정한 조던의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조던이 난투극을 할 정도로 몰아갔다는 사실 자체가 밀러의 '마인드 게임' 능력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불같은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한번은 경기에서 그를 귀찮게 한 수비수의 코를 팔꿈치로 가격해 코뼈를 주저앉게 해버린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이런 성격이니 수비수들이 그를 제대로 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는 강력한 승부근성으로 승부처에서 클러치 3점슛을 잘 터트리기로 유명하다. 강인한 정신력이 없이는 그와 같은 활약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9. '배드 보이즈' : 앞서 언급했지만 조던을 굴복시키며 88-89 , 89-90 NBA 2연패를 이뤄낸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배드 보이즈 만큼 마인드 게임으로 철저히 상대를 제압한 선수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반칙의 달인 빌 레임비어와 맨투맨 수비의 달인 아이지아 토머스와 잔 샐리 조 두마스 , 데니스 라드맨등으로 구성 되었고 당시 감독은 척 데일리였다.
레임비어는 반칙의 달인이라 불렸다. 그는 농구룰 안에서의 합법적인 플레이보다는 반칙성의 플레이가 훨씬 많았다. 그는 심지어 심판이 보지 않을 때는 고의로 상대팀 선수들을 때리며 기를 죽였다. 그는 인사이드에서 너무나 거친 모습을 보여주어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 플레이 때문에 파울로 퇴장 당하는 경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활약(?) 덕분에 피스튼스는 라버트 패리쉬 , 빌 월튼 , 케빈 맥헤일 , 래리 버드로 이어지며 리그 최고의 골밑을 자랑하던 보스튼 셀틱스를 꺾을 수 있었다. 그의 플레이는 훗날 데니스 라드맨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게 되었다.
그는 리그의 왠만한 스타선수들에게 한 두 번씩은 거친 파울을 범해 난투극을 벌였다. 그는 원정을 가서도 전혀 주눅드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홈팬들의 야유를 즐기는 듯 보였다. 그가 은퇴를 발표하던 날 리그의 라이벌 선수들이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에게 눈을 찔려 그와 난투극을 벌였던 찰스 바클리는 레임비어가 은퇴를 발표하자 그에게 "친애하는 빌 , 엿먹어! 당신이 사랑하는 찰스 바클리!"라는 편지를 보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토머스와 조 두마스는 아주 아주 집요한 맨투맨 수비로 유명했다. 토머스는 지금의 페이튼 처럼 트래쉬토크에도 상당히 능했다. 그리고 두마스는 상대편 에이스를 마크하며 스틸해내는 능력이 상당히 특출난 선수였다. 디트로이트는 인사이드에서는 레임비어가 상대선수를 장악하고 아웃사이드에서는 토머스와 두마스가 상대선수를 장악했다. 그래서 이들은 상대팀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불렸고 '배드 보이즈'라는 악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의 플레이가 거칠고 반칙성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게임에 임하는 정신력과 상대를 압도하는 거친 플레이와 사고방식은 요즘의 선수들도 배워야할 점이다. 당시 농구가 그래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