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왜 이곳으로 데려오신건가요?"
"음? 그걸 몰라서 물어? 중기 넌 어렷을 때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굉장히 좋아했어"
"예 제가요? 아뇨 그럴리가요, 제가 미용을 한 건 돈 벌어서 식구들 건사하려고 그런 것이지 미용이 좋아서 그런건 아니에요,
솔직히 미용은 지긋지긋 했어요, 오죽했으면 막판에 직업을 음식배달하는 일로 바꿀 결심까지 했알까요"
"오호 저런, 자기자신을 저렇게 모르다니, 얘 청보라야, 가서 수정구슬모니터좀 가져와 보거라"
나미다의 말을 듣자마자
청보라는 5분도 안 돼 파마츄레이 같이 생긴 츄레이를 끌고 왔는데, 츄레이 상판에 볼링공만한 수정구슬이 놓여있었다.
그것을 나미다 앞으로 끌고 가더니, 수정구슬을 들어 나미다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의 받침대 위에 올렸다.
" 중기야 이리와서 구슬 안을 보자, 이왕이면 홀로그램으로 볼까"
"네 나미다님"
나는 나미다 앞에 바짝 다가가서 구슬 위를 유심히 보았다. 나미다가 손가락으로 받침대의 어느 부분을 만지자
홀로그램 영상이 구슬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이 영상은 7살 쯤 됐겠는데, 중기가 누나와 바구니 들고 산으로 진달래 따러 다니는 모습이네, 중기 넌 꽃을 보면 너무 좋아했지, 꽃 뿐 아니라 예쁜 걸 보면 늘 넋을 잃고 쳐다봤지, 이건 11살 때 여름에 냇가에서 멱감고 나서, 동네 여자 아이들 모아놓고 아카시아 잎 줄기로 파마 말아주는 영상이네, 그리고 이건 12살때 이웃집 동생 데려다 마당에서 머리 깎아주는 영상이고, 이건 14살 때 강가 언덕에 혼자 앉아 수채화 그리는 모습이야"
내 과거가 홀로그램으로 그대로 재현되는게 너무 신기해서 나미다에게 물었다.
"아니 나미다님 이런 영상은 어디서 입수하신거에요, 이 수정구슬 참 신기하네요"
"음 별거 아니야, 우주의 모든 정보는 양자에 다 저장되는 것이고 양자에 저장된 정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의 정보를 추출하는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 미구행성에서 이 정도 일은 빡빡이머리에 염색약 바르기보다 쉬워"
"그렇군요"
자, 고등학생때의 모습을 잘 보렴 고3때 모습인데, 대입학력고사준비로
다른 학생들이 한참 학교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 넌 학교공부보다는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을 남철남성남의 왔다리갔다리 춤을 방불케 할만큼 왔다갔다 하며 독서에 빠져있었지, 그런데 자 보렴, 그중에서도 너는 예술, 예술중에서도 패션에 관련된 책을 가장 좋아했었어,
봐봐 패션에 관련된 책을 열심히 보고 있네, 헤어스타일 책도 열심히 보고 있고..."
"음 이건 미용학원 다닐때네, 여자들이 너의 외모에 반해서 선물공세등 온갖 방법으로 선심을 쓰는데도 중기 넌 눈 하나 깜짝 않고, 오로지 한국 최고의 미용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마네킹대가리하고만 온종일 씨름하고 있잖아"
"맞아요 제가 저랬었네요, 이제 기억이 나네요"
"이 영상은 니가 도쿄에 있을 때로구나, 이거 봐 기모노머리 올리는거봐, 얼마나 열심이고 그걸 즐기는지..."
나미다는 그 외에도 내가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것들에 심취하고 있는 과거의 내 다양한 행적들을 홀로그램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미에 대한 열정이 가정을 이루고 나서 식구들 건사에 몰두하면서부터 시들시들 해져버렸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자본주의의 각박한 현실에 나도 모르게 삶의 지향점이 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미다와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꽤 긴 얘기를 했고, 그리고 나랑 성향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녀와 나누는 대화는 너무 즐거웠다.
접견이 끝나자, 나미다는 핑크와 청보라를 시켜 앞으로 내가 묵을 방을 내어주도록 했는데 핑크가 말하길 궁전에 남은 방중에 가장 좋은 방이라고 하였다. 둘러보니 핑크의 말대로 지구의 5성급 호텔을 능가하는 정말 훌륭하고 넓은 방이었다. 침실에는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이 하얗고 편안해보이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침대 바로 옆에는 전신거울이 딸린 화장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처음보지만 근사해보이는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장식장이 있었다.
그리고 , 침실 옆방은 옷방이었는데 옷가게를 방불케 할만큼 다양하고도 많은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청보라의 말에 의하면 나미다가 나를 너무 예뻐해서 이렇게 특별한 배려를 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미구행성에 오기 전부터 내게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저녁에는 파티가 열렸다. 내가 미구행성에 온 것에 대한 환영형식의 만찬인 것인데, 궁전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연회장에 모였다. 모인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어찌나 예쁘고, 세련되게 꾸몄던지
두 눈이 휘둥그레질지경이었다.
파티장의 특이한 점이라면 지구의 음식같은 그런 음식은 없다는 점이었다. 접시위에 작은 알약 다섯개가 놓인게 전부였는데 ,이것들은 순서대로 먹어야 했고 , 알약을 먹으면 그 맛이 혀보다는 뇌에서 미각이 증폭되는 그런 느낌으로 느껴졌다 알약마다 다양한 맛이 느껴졌는데 특히 마지막에 먹은 알약은 술의 맛이 증폭되어 이후 실제로 취기가 올라와 좋은기분이 엄청 상승했다.
또 파티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 있었는데, 나미다가 지구에서 데려온 나와 국적이 같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시켜 주겠다며 내 손을 잡고 누군가에게로 끌고 간 일이었다. 그 사람은 통이 넓은 하얀 바지에 하얀부츠 그리고 하얀 부라우스를 입고 있는 청년이었는데, 나미다는 그 사람이 앙드레 김이라고 했다. 앙드레김은 미구에 먼저 온 선배로서 내게 도움되는 많은 얘기를 해주었고 나중에도 애로사항이 있으면 자기한테 언제든지 상의하라고 했다.
그 외에도 2011년에 지구를 떠난 미용사 그레이스리 선생도 만났고, 그 다음해에 별세한 비달사순선생도 만났다.마를린 먼로나 오드리햅번같은 헐리우드 배우,일본 X-japan의 히데,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 예술을 사랑했던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라든지, 중세에 유럽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후원하였던 메디치가문의 몇몇 사람, 그리고 레오나르도다빈치등 예술을 사랑했던 역사적 인물들도 여럿 만나서 이사람들과 예술에 대한 즐거운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파티의 분위기는 점점 사그라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각자의 거처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알약에 취한데다, 하루종일 너무 강행군을 해서 몸이 너무 피곤했기에 자려고 방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잠옷을 입은채 침대위에 몸을 뉘였다.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잠들면 아침까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지구의 일들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전거는 어떻게 되었을지, 핸드폰은 어떻게 되었을지, 사고는 어떻게 해결이 되었을지, 배달 못 간 순대곱창은 어떻게 처리되었을지, 아니 무엇보다도 내 몸은 어떻게 장례가 치러졋을지, 매장을 했을지, 화장을 했을지, 아니아니 그것보다도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제 나 없으면, 마누라와 세 자식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가 걱정이었다. 그나마 마누라와 20대인 두 아들딸들은 걱정이 덜하지만,
10살밖에 안 되는 막내 딸아이는 아빠없이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걱정 저런걱정을 하며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중기, 중기, 나야 나미다, 들어가도 될까?"
문을 여니 나미다가 파티장에서의 차림인 채로 몸을 비틀거리며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알약에 많이 취한 듯 싶었다.
"아니 어쩐 일이에요? 나미다님이 절 다 찾아오시고... 들어오세요"
알약을 한 두알 먹은 것이 아닌 듯, 너무 비틀거리므로 나는 나미다의 팔을 부축하여 쇼파까지 걸음을 도와주었다.
"나미다님 너무 취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몹시 피곤해 보이시는데 빨리 가셔서 주무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아,
그리고 신발이 너무 높아서 불편해 보이시네요, 슬리퍼를 갖다 드려야겠어요"
"놔둬, 안 불편해, 습관이 돼서 괜찮아, 그것보다도 중기랑 알약이나 한 알씩 더 할까 해서말야,
오늘 중기가 와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래,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내 옆에 앉아"
"네 나미다님 옆에요?"
흠모하던 미인이 옆에 앉으라니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중기야, 일단 알약 하나씩 먹자"
안 그래도 갑자기 지구의 일이 생각나서 속이 상하려던 차에 잘 됐다 싶어 나미다가 주는 알약을 일단 받아 먹었다.
나미다도 알악을 먹었고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중기야, 나 니 속마음 다 알고 있어, 자꾸 지구의 가족들이 눈에 밟히지? 그래도 어쩌겠니, 이젠 완전히
헤어져버린걸... 이젠 모두 잊고 여기서 새출발 하는거야"
"네 나미다님, 노력할게요"
"그래 잊어버려, 그리고 여기 미구행성은 지구랑 완전히 차원이 달라, 여기는 생식이 없으므로, 생명체들끼리 자신들의 유전자의 번성을 위해 생존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 생존의 경쟁이 없으니 돈도 필요가 없고 돈이 필요없으니, 일을 할 필요가 없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전쟁도 필요가 없지, 그저 자신의 타고난 예술의 끼를 발산하기만 하면 되는거야,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시간이 남으면 남을 꾸며주고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아름다움을 같이 감상하며 즐기는게 일상이지... "
나미다의 말을 듣는 동안 알약의 취기가 점점 뇌속에서 증폭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연회장에서 먹었던 그 알약과는 뭔가 성질이 다른 것 같았다. 뭐랄까 지구에서 느꼈던 성욕과 비스무리한 감정같은 것이었는데, 그래서 옆에 있는 나미다를 덥쳐버리고 싶은 그런 수컷의 본능같은 충동이 불쑥불쑥 일었다.
그런 생각에 나미다의 눈빛을 보니 나미다도 나처럼 그런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고 있다는게 이심전심으로 강하게 느껴졌다.
"나미다니임~"
"주웅기야~"
우린 말이 필요없이 다정하게 껴안았다. 그리고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고 그러다가 볼끼리 볼을 비비고.
그리고 나서는 입술과 입술을 맞 닿고 이후로는 서로의 혀가 서로의 입속을
남철남성남의 왔다리갔다리 춤을 방불케 할 만큼 리드미컬하게 들락날락 하였다.
그 키스는 달콤한 사탕처럼 감미로웠고 또 특이하게도 단지 키스만 했는데도 극치의 오르가슴이 느껴졌는데,
그런 느낌은 지구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황홀한 쾌감이라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그 기분을 제대로 표현할 언어를 찾기 어려울지경이었는데, 만일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표현하려고 했다손쳐도 별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나니 목욕탕에서 생식기가 사라진 걸 알았을때 치솟았던 허망함과 분노도 봄날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나미다님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중기야"
'나미다님과 언제나 이렇게 뱀처럼 엉켜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나도 중기와의 이런 기분 너무 황홀해, 미구에서는 미움도 증오도 없어, 사랑만이 일상일뿐야 , 아름다운 사랑만 하며 살아도 아까운 시간을 추한 증오와 다툼으로 낭비해서야 되겠어?"
우린 말이 필요없이 침대로 가서 누웠고, 서로를 꼬옥 껴안은채 잠이 들었다. 나미다의 은은한 꽃냄새의 체취와 포근한 체온은 나를 엄마의 젖가슴에 안긴 아기처럼 안락하게 해 주었다.
"중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