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시청률 17.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를 찍는 등 인기리에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원더우먼’의 후속작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1월 8일 끝났다. 2021년 11월 12일 시작했지만, 구랍 18일 SBS연예대상, 31일 SBS연기대상 생중계에 치여 두 차례 결방해 1주일 늦어진 종영이다. 최종회 시청률은 6.7%다. 6.4%로 시작했으니 큰 변동폭 없는 선방이다.
2회에서 찍은 8.0%가 최고 시청률인 점을 감안하면 제작진으로선 좀 아쉬워했을 법하다. 하긴 2회 이후 더 이상 오르지 못한 시청률은 이상한 대목이다. 이길복 감독이 밝힌 “장르는 멜로드라마다. 사랑과 이별을 통해서 사는 인생 이야기…우리 드라마는 시청층이 넓다는 점과 악역이 없다는 게 강점”(스포츠서울, 2021.11.10.)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모양새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의류회사 ‘더 원’ 팀장이자 디자이너인 38세 하영은(송혜교)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먼저 사랑의 대상은 32세의 연하남 사진작가 윤재국(장기용)이다. 19금으로 시작한 1회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이층집’까지 짓는 파격적 장면이 뭔가 예사롭지 않은 ‘격정 멜로’를 암시하는 듯했지만, 그렇진 않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선 SBS ‘사랑의 온도’(2017)ㆍtvN ‘남자친구’(2018~2019)ㆍMBC ‘봄밤’(2019) 같은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로선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은 사랑이 펼쳐진다. 재국은 10년 전 영은이 잠깐 사귀었던 윤수완(신동욱) 동생이다. 형제간의 한 여자를 둘러싼 사랑은 ‘가을의 전설’(1995) 같은 영화나 ‘파리의 연인’(2004) 등 드라마로 본 바 있어 식상한 소재다.
문제는 어떻게 빚어내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느냐인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결론부터 말하면 좀 실망스럽다. ‘멜로드라마 맞아?’ 의문이 들 만큼이다. 천륜(天倫)상 부모들의 반대가 빗발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헤어지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사실 그들은 친형제도 아니다. 파리에서의 수완과의 인연도 재국이 대타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면죄부 장치를 해놓고도 영은은 “잡아서 내 옆에 두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재국과 헤어지고 있다.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내 욕심, 미련을 놓은 거야” 따위 궤변은 계속된다. 출국하는 재국에게 공항에 나가 “충분히 행복했어. 벅차게 사랑했어”라 말하지만, 말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물론 다른 무엇보다도 재국이 양모 민혜옥(차화연)의 “둘이 결혼하면 죽는다”는 협박이 영은의 헤어짐에 결정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의 절절함이 와닿지 않는다. 심금을 울리는데 실패한 것이다. 2년쯤 지나 재회하는 결말도 그렇다. 이별이 도저히 안되겠어서 무한 그리움으로 고대(苦待)하다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만나는 그런 건 사랑이 아니다.
재국과 헤어진 후 영은이 보인 행보도 좀 낯설게 다가온다. 사랑의 실연으로 바닥까지 쳤다가 다시 일어서려는 홀로서기가 아니어서다. ‘내 옷을 디자인하고 싶어서’ 회사를 사직하고, 황대표(주진모)의 ‘소노’ 독립 권유를 박차는 게 배불러 하품하는 소리로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소노’에선 자기 옷을 만든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럴 듯한 멜로를 기대한 시청자들이라면 실망할 게 더 있다. 그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그냥 드라마 내용의 일부라는 점이 그렇다. 다른 부분은 우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앞에서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라고 한 이유다. 여고 동창 절친인 황치숙(최희서)과 전미숙(박효주)이 케미를 이루는 찐우정이다.
심지어 영은은 미숙에게 재국과의 이별은 견딜 수 있다면서 너완 어떻게 헤어지냐며 펑펑 흐느껴 운다. 물론 시한부 인생인 미숙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 영은의 모습이지만, 그런 우정이 비중있게 그려져 과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멜로드라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애써 말하자면 우정에도 방점 찍은 멜로라 할까.
드라마의 내용이 어떠하든 작가의 자유지만, 암으로 죽는 친구와의 우정 케미는 내가 보기엔 멜로에 집중하기 어려운, 그래서 유익하지 않은 설정이다. 더구나 그것이 오랜만에 찾아온 38세 노처녀의 사랑을 잠식할만한 기재(器材)로 작용한다는 게 너무 생뚱맞아 보인다. 치숙과 석도훈(김주헌)의 티격태격 과정을 거친 사랑 맺어지기 정도만 그럴 듯할 뿐이다.
유익하지 않은 설정이 더 있다. 영은의 엄마 강정자(남기애)의 하택수(최홍일)에 대한 이혼 요구이다.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택수가 난데없는 날벼락으로 생각하는 이혼요구는 과도한 곁가지다. 그 세대들은 정자뿐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는데, 새삼 그걸 부정하는 ‘자아찾기’라는 게 적어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선 물에 뜬 기름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외 인터뷰하는 영은을 찍는 재국의 카메라 위치가 한 군데로 고정되어 있는 건 너무 성의가 없는 연출이지 싶다. 통상 질문자와 함께 말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제대로 된 인터뷰 사진이라서다. 또 하나 의문은 제1회에서 영은의 무조건 섹스부터 하는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다. 이후 영은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지 않아서다.
16부작 딱 한 번뿐이라 배우의 잘못으로 보이긴 하지만, “차라리 깨끄치(깨끗이→깨끄시) 속이든가”(9회)처럼 발음상 오류도 있다. “자존심도 일시불로 긁었어”(1회), “외모도 능력”(2회), “경험은 제일 차가운 조언”(4회), “유능하게 거짓말을 쳐요”(4회) 같은 초반부 인상적 대사들을 무색케 하는 발음상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