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댄스의유래
왈츠
월츠는 프랑스의 보르타(Volta)란 춤에서 기원하였다는 학설이 있으며 1178년 11월 9일 빠리에서 처음 추어졌다고 문헌에 남아 있으므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듯 하나, 실제로 빠리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보르타」란 원래가 「돌다」라는 뜻으로서 그 때의 춤은 원무(Round Dance)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의 어원은 프랑스의 봐르세(Volse), 독일의 왈저(Walser), 이태리의 왈즈(Walz), 영국의 왈츠(Waltz)등 모두가 빙빙돈다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일인들은 왈츠를 자기네의 지방무용인 「랭드라 : Landler」에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왈츠가 유럽의 전지역에서 전성기를 이루게 된 것은 슈베르트나 스트라우스 등 그 외의 많은 음악 대가들이 불멸의 왈츠 명곡들을 작곡하였다. 19세기 무렵부터였으며 이러한 빠른 템포(1분간 60소절)의 왈츠는 라운드 턴(Round Turn : 360도의 회전)을 사용하는 로타리 왈츠(Rotary Waltz)였다.
19세기 중엽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풍의 비엔나왈츠(Vienna Waltz)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Wien)에서 시작하여 대중화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에선 보스톤왈츠(Boston Waltz)란 것이 발생하여 많은 유행을 하게 되었다.
템포(1분간 45소절 정도)의 왈츠는 「로타리 왈츠」의 범주를 벗어난 새로운 춤이었으며, 이것이 프랑스에서 일반적으로 추게 된 것이 1874년 경이였고, 20세기 초에 영국에 건너가 유럽의 전지역에서 가장 많이 추게 되었으나, 또 다시 헤지테이션 왈츠(Hesitation Waltz : 1분간 45소절)란 새로운 왈츠가 발생되었고, 1922년에 이르러 당시에는 '모던왈츠'라고 하는 느린템포 (1분간 33-35소절 정도) 외 '슬로우왈츠'란 새로운 왈츠가 탄생되었다. 이 슬로우 왈츠는 무도강사이며 음악연주가인 빅터 실베스터(Victor Silvester)씨가 새로운 느린템포의 도법을 고안하여 무도경기대회에서 첫선을 보여 대회심사원과 관계원 및 관중을 놀라게 하였다.
이 당시의 왈츠는 모두가 발레풍의 스타일로써 「라운드 댄스」를 하였으나, 이 대회에서 우승한 실베스터 씨는 그런 스타일을 혁신하여 3/4 회전의 대각선 회전법(Diagonally Turn)을 고안하여 사용한 관계로 인하여 이 생소한 스타일을 춤을 처음 접한 심사원과 관객들은 이를 경이롭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느린 템포의 대각선 회전법을 1935년에 이르러 영국무도강사심의위원회에서 정식으로「현대의 왈츠」로 공인하였고, 그 이후부터 「모던」의 5종목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에 와서는 이슬로우 왈츠」의 Slow를 생략하고 간단히 「 Waltz 」라 통용되고 있다.
1950년에 세계무도발전을 위한 국제무도기구로써 영국에서 창설된 국제무도평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Ballroom Dancing)에서도 이 Waltz를 경기종목으로 체택하였고 어떠한 무도회에서도 빠질수 없는 비중높은 댄스의 하나가 되었다. 이 왈츠는 「라이즈 앤 폴 : Rise & Fall 」이 다소 어려운 점이 있으나, 그 기초는 간단하다. 우회전 (Natural Turn)과 좌회전(Reverse Turn),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하는 좌,우측의 클로즈드 체인지(Cioesd Change)의 4가지 피겨(Figure)가 기초로 되어 있으며 회전법은 3/4회전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내(Ballroom)의 어느 방향이든지 항상 비스듬히 면하여 마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대각선 회전법이라 한다.
월츠는 통상 각 박자에 1, 2, 3로 스텝을 하나, 때로는 1박자 내지 2박자를 머물게 하는 헤지테이션(Hesitation)과 1/2박자로 스텝하는 신코페이션(Syncopation)의 경우도 있다. 아름답고 스무스(Smooth)한 월츠를 추기 위하여는 기초적 테크닉이 중요하다. 다소 신축성있는 운동을 하려면, 각 소절의 3보 사이에 반드시 「라이즈 앤 폴」이 수반되어야 한다. 제1보 끝에서 라이즈를 시작하고 제2보에서 라이즈를 지속 제3보에서도 라이즈를 지속한 뒤, 그 끝에서 「로워: Lower」를 하여야 한다.
이 운동은 항상 소프트하게 하여야 하나, 이는 발만으로써의 의한 운동이 아니라 몸과 다리와 발의 순리적인 운동에 순응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몸의 파동운동과 푸트워크 그리고 반동운동(C. B. M) 및 좌,우의 경사(Sway) 운동이 이 왈츠의 생명인 동시에 우아한 춤으로 승화시켜 주게 됬다.
가장 중요한 운동은 첫째 박자인 제1보 보다는 두번째의 제2보가 더 긴 시간이 소요되며, 세번째 박자인 제3보는 짧게 느낄 정도로 타이밍하는 호버 이팩트(Hover Effect)이다. 또한, 유의할 것은 각 "피겨"의 얼라이먼트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이 왈츠의 완벽한 학술적 이론의 정립은 영국의 무도강사협회인 I. S. T. D.에서 1924년부터 시작하여 24년의 세월이 지나 1948년 1월 11일에 완성하여 무도강사자격시험의 요강으로 그 교칙본으로 삼았고 세계댄스, 댄스스포츠평의회(W. D. S. D.)와 국제댄스스포츠연맹(I. D. S. F.)에서도 「Modern Ballroom」 경기의 5종목중 하나로 체택하고 있다.
왈츠의 특징
1) 동체(Body)의 파동운동(Undulating Movement)
2) 클로즈 턴(Closed Turn : 양발을 모으면서 도는 회전)
3) 동체의 소프트한 스윙(Swing)운동
4) 라이즈(Rise)를 위한 라이즈
5) 포워드 스윙(Forward)과 래터널 스윙(Lateral)
출처 :분당댄스스포츠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최민웅
탱고
탱고의 기원에 대해서는 댄스연구가들 사이에 약간의 다른 견해들이 있으나, 대체로 2개의 계통으로 시작되어 유럽에 전하여 졌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콜럼버스 하바네라(Columbus Habanera)란 형식의 하바네라 탱고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많이 이주한 라틴아메리카인 아르젠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발생한 미롱가(Milonga)란 형식의 미롱가탱고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 카리브 해역인 산살바도르를 비롯한 쿠바 등을 발견한 뒤,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인디언이라고 하는 원주민들의 이상야릇한 야성적인 리듬이 있었고 이러한 리듬과 스페인의 전통적 음악과 합성되어 생긴 음악이 하바네라 형식의 탱고인 것이다. 이 지역에 이주한 사람들은 연초와 사탕수수 그외에 농작물을 경작하는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들을 수입하여 노동을 시켰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흑인과 스페인 계통사이에 혼혈아가 출산되어 이 두 혈통이 뭉쳐 이루어진 것이 '하바네라'라 하였다. 이것은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란 이름에서 붙인 것이다.
이러한 하바네라풍의 탱고가 남미대륙(멕시코 이남의 전지역)에 불꽃처럼 파급되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까지 전하여지게 되었고, 남미의 최남단에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역시 농작물의 경작을 위하여 스페인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들을 수입하여 풀잎 하나없는 볼모지를 개척하면서 목화재배를 시켰으며 이러한 흑인과 스페인 계통의 그 혈통의 혼혈아인 목동들과 항구의 술집들에서 뱃사람들이 모여 자연히 추어지기 시작한 미롱가풍의 탱고와 접목된 것이 '알젠틴탱고'이다.
목동들이 박차가 붙은 장화를 신고 스텝을 밟기 좋게 기타와 밴드네온 등으로 연주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처녀가 집뜰에서 연정을 호소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 것이 '미롱가풍의 탱고'라 하며, 이런 음악들이 술집등에 전하여지면서 댄스의 곡으로 연주하기 시작하여 많은 신곡들이 나와 유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탱고는 하류사회의 하층계급이 많이 모이는 항구의 선창가나 구석진 술집등에서 발생되었기 때문에 이런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법률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1919년에 프랑스 빠리에 처음으로 알젠틴탱고 밴드가 밤무대에 소개되어 점차 이 정열적인 멜로디가 일반인들의 많은 찬사와 더불어 탱고춤이 유행하게 됨에 따라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도 탱고의 금지제도를 해제하고 탱고의 발생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더욱 멀리 보급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항구 뒷골목에서 천하게 추어졌을 탱고는 미국이 무성영화시대인 1920년에 빠리에서 상영된 탱고영화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맵시있는 탱고로 변화하여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 이 New 스타일의 탱고를 '후렌치탱고'라 하며 이러한 뉴 스타일의 음악과 춤이 다시 독일에 건너가서 원래의 애초적인 탱고의 음률이 단음(Stacatto)적인 음악으로 편곡되어 연주하였고 이런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이 다시 Sharp한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볼륨탱고 음악은 '콘티넨탈 탱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영국무도계에서는 1924년부터 각종류의 춤을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때에 폭스트로트, 왈츠, 퀵스텝과 함께 탱고도 개정기술을 제정한 후 계속 그 기술의 개정 및 증보를 거듭하여 1948년에 무도강사자격시험요강의 교직본을 발간하였다. 오늘날의 모던탱고를 그 이론을 확립하는 데 가장 공로가 많은 사람은 영국의 무도연구가인 랜 스클리브너(Len Scrivener)씨이다.
음악의 악기로는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베스 등이 표준악기로 되어 있으며, 유명한 탱고의 명곡으로는 불멸의 라콤파르시타(La Comparcita)가 있다.
탱고는 라틴계통의 음악이나, 춤의 형태는 모던탱고인 것이 특색이며, 그 특징적인 테크닉은 스타카토(stacato), 어택(Attact), 샤프(Sharp)의 3대 Movement이다.
이 탱고도 세계댄스, 댄스스포츠평의회와 국제댄스스포츠연맹에서 5종목 중 하나로 경기종목에 채택하고 있다.
탱고의 특징
1) Stacato, Attact, Sharp, Movement로 한다.
2) 좌족 워크는 CBMP에 클로즈드 포지션이며, 우족 위크는 좌SL에 오픈포지션 이다.
3) 탱고의 풋워크 에서는 토우(Toe)란 용어대신에 볼(ball) 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4) 탱고에서는 스웨이와 라이즈 & 폴(fall)이 없다.(단 베이직 테크닉에 서만)
5) 탱고에서는 방향과 반각을 동시에 가르킬 때도 있다.
6) 항상 양발이 클로즈 할 때는 남자의 우측을 좌측의 약간 뒤에 모은다.
7) 옆 또는 옆 약간 뒤로 할 때는 Ball inside Edge가 되는 경우가 많다.
8) 스타카토, 무브먼트는 퀵카운트에서 하며, 슬로우카운트에서는 2박 자의 끝(&)에서 한다.
출처 :분당댄스스포츠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최민웅
퀵스텝
퀵스텝은 세계제1차대전 직전인 1921년경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 나주의 찰스톤(Charleston)근처에 사는 유색인종(흑인)들이 추고 있던 찰스톤춤을 뉴욕에 소개되면서 당시 무관이며 무도연구가인 바논캣슬 부처가 이것을 원스텝인 퀵스텝을 유럽지역에 건너가서 폭스트로트와 함께 유행시키면서 오늘날의 것으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 당시 폭스트로트의 음악은 1분간에 32-34소절이였으나 점차 빠른 템포에 맞추어 추는 춤을 당시, 영국에서는 'Quick Time 폭스트로트' 라고 하였다.
1923년에는 미국에서 48-50소절까지를 연주하게 되었고 1924년엔 영국에서 재즈의 빠른템포의 원스텝인 Quick Time 폭스트로트를 늘린 템포의 폭스트로트와 구별하기 위하여 후로렌스 파셀(Florence. P.)여사가 이 댄스의 정식호칭을 '퀵스텝'으로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이 제안의 호칭과 종목을 정식으로 공인한 것은 1939년 4월 14일이였다.
오늘날의 퀵스텝으로써 그 학술적 이론과 테크닉을 확립하는 데 공로가 많은 사람은 당시의 무도연구가인 윌 스레스스이산, 프랭크 포드, 빅터 실베스터, 알렉스무어, 죠세핀 브렛드레, 필리스 훼일러 여사 등이었다.
이 퀵스텝은 아주 경쾌하고 명랑하며 스피드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댄스이며, 경기대회에서는 때론 트릭키(Tricky) 스텝이란 도약적인 스텝을 사용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춤으로써, 피겨의 변화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밸런스를 잘 유지하여야 하고 또한 서두르지 않는 원활한 보조로 양무릅을 느추어서 몸을 가볍게 움직여야 경쾌함을 얻을 수 있다. 이 퀵스텝의 기초는 블루스의 워크와 샤세(Chasse)에 근간을 두고 있으나, 대체로 월츠와 폭스트로트의 혼합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퀵스텝의 기본적 피겨는 워크와 샤세로 구성되어 있는 쿼터 턴즈(Quarter Turns)이다.
퀵스텝의 슬로우는 2박이며, 퀵은 1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퀵 앤 라이즈가 수반되는 것이 보편적이고 또한 피겨의 제1보의 슬로우에선 down되나, 진행하는 샤세나 Lock스텝 또는 오픈피니쉬 및 런닝피니쉬 의 마지막 스텝 앞의 슬로우스텝에서는 up이므로 항상 Toe로 스텝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회전 또는 옆으로 진행하는 피겨에 샤세가 적용되나 앞 또는 뒤로 진행할때는 샤세 대신에 Lock스텝을 사용한다.
이 퀵스텝는 상당히 스피드하며 기민한 동작을 요구하므로 사교무도라기보다는 스포츠댄스라고 할 수 있으나,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에겐 건강증진을 위하여 권장할 댄스이며 본인 스스로가 추지 않더라도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매료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퀵스텝도 영국의 I.S.T.D.에서 1924년부터 1948년까지 24년의 세월동안 이의 학술적 이론과 기술적 확립을 정립하여 1948년 1월 11일에 무도강사자격시험의 요강으로 제정발표한 이후, 수차의 개정 및 증보를 거듭한 끝에 베이직 피겨 16, 스탠다드 바리에이션 13, 네임드(Named) 바리에이션 4개, 도합 33개로 구분하여 그 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세계댄스(I.C.B.D.), 댄스스포츠 평의회와 국제댄스스포츠연맹에서도 모던볼룸의 5종목 중 하나로 경기종목에 체택하고 있다.
퀵스텝의 특징
1) 퀵스텝은 워크와 샤세로 구성되어 있다.
2) 퀵스텝은 chasse turn 이다.
3) 퀵스텝는 strong turn 이다.
4) 스웨이와 라이즈는 가급적 억제한다.
5) 샤세와 lock스텝의 라이즈는, 왈츠 타입의 movent 이다.
6) progressive 샤세와 락스텝 및 스핀은, 스웨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7) 볼 밸런스에 forward poise이다.
8) Bounce, Skip, Hop, Tipsy, Tilt, Jet, Woodpacker, Pedulum 등의
바리에이션을 사용한다.
9) 한자리에서 7소절 이상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출처 :분당댄스스포츠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최민웅
폭스의유래 1
폭스트로트의 역사
Foxtrot에 대해 Vernon Castle 부부가 만든 춤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출처가 확실치 않은 글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정도입니다. Foxtrot가 여우걸음을 흉내 내서 만든 춤이라 여우걸음이라느니, Harry Fox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Foxtrot 라느니 설이 난무합니다. 책에는 너무 자세하게 되어 있어 지루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부분도 많지만 누군가 필요할 댄스의 역사와 자료를 위하여 ‘The Complete Book of Ballroom Dancing’ 에 나와 있는 내용을 직역한 것입니다.
The Foxtrot
뉴욕타임즈에 보면 1914년 초에 3번의 댄스 강사 컨벤션 광고가 나와 있었는데 폭스트로트는 거기에 없었다. 그런데 여름의 끝 무렵에 실제로 뉴욕의 모든 강사들이 폭스트로트를 광고 했다. 1914년 9월3일 ASPD(American Society of Professors of Dancing: 미국 댄스교수협회)가 폭스트로트를 포함하여 최신 댄스 스텝을 표준화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최초로 폭스트로트와 관련하여 출판으로 나온 것은 뉴욕타임즈 1914년 7월26자 광고였다. G. Hepburn Wilson이 새로운 댄스 레슨을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M.B. Wilson은 당시 뉴욕에 3개의 작은 댄스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그룹 레슨보다 개인 레슨을 널리 광고한 최초의 댄스마스터였다. 잠깐이나마 Arther Murray가 그의 선생 중 한 사람이었다. Wilson 다음에 붙은 M.B. 라는 뜻은 Master of Ballet로 추측이 되나 그의 직원들은 등 뒤에서 “More Bull(더 황소 같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Foxtrot는 1914년 여름 희극배우 Harry Fox에 의해 기원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1982년 캘리포니아의 파모나에서 태어났는데 유명한 익살 광대 George L. Fox의 손자이며 그의 아버지 역시 배우였다. Harry의 진짜 이름은 Arther Carringford였지만 그의 조부 사후에 “Fox"라는 무대명을 받아들였다. Harry는 15살 나이에 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잠깐 동안 서커스에 합류하여 짧은 여행을 갔었다. 잠시지만 프로야구 선수로도 활약했는데 한 음악작곡자가 그의 목소리를 좋아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희극공연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극장에 출연했고 버버리 코스트의 캬바레에서는 연예인이 되었다. 1904년 벨비디어 극장에서 Mr. Frisky of Frisco" 라는 이름으로 코미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1904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1906년 대화재로 Harry Fox는 시카고에 들렀다가 최종적으로 뉴욕이 있는 동부로 이주해버렸다.
뉴욕에서의 첫 계약은 그를 Miner Burlesquers와 일하게 해준 희극 흥행사와 하게 되었는데 1년 후 그는 “Harry Fox's merry's” 라는 자신의 작품을 올렸다. 이것은 그의 첫 희극 공연이었고 “The Pet of the Petticoats”의 일부였다. 1912년 1913년 폭스는 “Passing show of 1912” 흥행에 성공한 “ The Honeymoon Express" 에 출연했다. 1914년 초 폭스는 뉴욕지역에서 여러 가지 희극에 출연했다. 1914년 4월 Hammerstein 에서 유명한 Dolly Sister인 York 지역의 Yansci Dolly와 팀을 이루었는데 당시 뉴욕 극장은 나중에 영화 상영관이 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다. 극장 측은 고객을 유인하는 전략으로 쇼 중간에 볼룸댄스의 재미를 위해 Harry Fox와 그의 극단인 ‘American Beauties" 가 춤을 추는 희극을 넣기로 했다.
Variety of Magazine 기사에서 “해리 폭스는 극장 정면에 전기로 광고되면서 고액으로 한 달 이상 출연한다” 라고 썼다. 동시에 극장의 지붕이 Jardin de Danse" 라고 바뀌었는데 Dolly Sisters는 밤무대에 출연했다. 1914년 5월 29일자 Variety Magazine은 “뉴욕극장에서 매일 바뀌는 영화의 와중에도 해리 폭스의 데뷔는 외로운 스타로 한복판에서 매번 성공을 거두었다. Dolly Sisters는 뉴욕루프에서 밤에 춤을 추었다. 그 다음 주에 New York Roof 에서 댄스경연대회의 우승자에게 골드컵을 수여했다. 뉴욕타임즈는 ”해리 폭스가 'American Beauties'의 단원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라고 썼다.
폭스트로트는 뉴욕극장의 'Jardin de Danse' 에서 기원되었다. 해리폭스는 아래층에서 래그타임 뮤직에 맞춰 트로트 스텝을 보였고 사람들은 ‘Fox's Trot"라고 불렀다. 이것을 돈벌이를 위해 극장 측이 루프가든에서 댄스로 소개했으며 해리폭스는 Yansci와 기획을 위해 Jardin de Danse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해 8월 롱아일랜드의 롱비치에서 두 사람이 결혼했는데 관객들에게 댄스를 소개하면서 협조하기에는 바람직한 일이었다.
폭스트로트의 오리지널 버전은 유명한 댄스교사였던 Oscar Duryea에 의해 1951년에 주어졌다. 더 심각한 일은 1914년 영국의 정기 간행물 Dancing Times 11월호에서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댄스 교사인 F. Leslie Clendennen이라는 사람이 “ 폭스트로트는.... 폭스라는 사람이 희극에서 따온 신경을 고문하는 무브먼트이며 몇 주 전 그가 오리지널 트로트를 추었다” 라고 썼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 춤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춤이 되었다. 1917년 Yansci는 이혼을 청구했고 뉴욕타임즈는 “해리 폭스가 어제 자산도 없고 U$17,777 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냈다” 라고 단신으로 전했다. 폭스는 두 번, 세 번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하리우드를 전전하다가 1959년 7월 20일 할리우드 근처의 병원에서 죽었다.
Yansci Dolly의 경력도 폭스와 이혼 한 후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자매인 Roszika 함께 영화를 만들었고 점차 잊혀 갔다. Yansci는 1941. 6월1일 목을 매어 자살했다.
폭스트로트는 볼룸댄스에서 아주 중요한 개발이었다. 단조로운 원스텝, 투 스텝 댄스를 대체하는 즐거움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슬로와 퀵스텝의 조화이기도하다. 폭스트로트에는 다른 춤보다 더 다양함이 있는데 배우기에 가장 힘들다. 폭스트로트의 베리에이션을 포함하여 Peabody, 퀵스텝, Roseland Foxtrot 심지어 Lindy와 Hustle도 폭스트로트에서 나왔다.
폭스트로트가 소개 된 후 두 가지 베리에이션이 나왔는데 40 mpm(measures per minutes)에서 만들어진 슬로 폭스트로트와 50mpm보다 빠른 폭스트로트가 나왔다. 이것은 영국에서 나왔는데 1924 ISTD 회의에서 빠른 폭스트로트는 54-56mpm으로 퀵스텝으로 받아들였다. 남자는 오른발을 왼발 뒤로 크로스 시키고 여성은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크로스 시키는 Cross Step이 기본 휘겨이다.
미국에서는 빠른 폭스트로트는 댄스 서클에서 인기 있던 브루클린 경찰 장교 William Frank Peabody 사후 "Peabody"라고 이름 지었다. 빠른 춤이며 Right Outside Position을 자주 쓰고 빠르게 전진하는 특징을 가진 춤이다. Backstep은 1920년에 개발된 Cross Step이다.
-글, 번역: 캉캉-
출처 :★ 댄스ⓓ토피아 ★ 원문보기▶ 글쓴이 : 캉캉
폭스의유래 2
폭스트로트 (Foxtrot)
20세기 초, 영국의 볼룸댄스는 아직 발레의 테크닉에 의한 춤을 추고 있었으나, 당시 미국에서는 점차 무도의 도법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어 다니는 자연운동(Natural Movement)에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운동을 자연가로보행법(Natural Road Walking Step)이라 하며, 이의 주창자는 현대무도의 아버지라 칭하는 버논캣슬(Vernon Castle)부처이다. 이 도법에 의한 캣슬워크(Castle Walk)를 새로운 댄스기법으로 받아들이고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됨에 따라, 영국의 무도계에서 이를 수용하여 발전시킨 결과 폭스트로트란 춤이 만들어졌다.
폭스트로트는 1914년부터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널리 보급되었다. 1924년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도법으로 빠른 템포의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출 수 있는 '퀵스텝'(Quick Step)과 함께 추어지기 시작함에 따라, 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느린 템포의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을 '슬로우 폭스트롯트'(Slow Foxtrot)라고 1939년 4월 14일 정식으로 공인하였다.
폭스트로트란 명칭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으나, 미국 서부지방의 폭스트로트로 알려진 말의 걸음거리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할 것이라 본다. 여우나 말의 네발 짐승이 자연스런 걸음걸이로 걸어갈 때의 동작을 폭스트로트에서 연상하면 된다.
폭스트로트의 기본적인 피겨는 훼더스텝(Feather Step)과 쓰리스텝(Three Step)이다.
이 춤은 올바른 포이즈(Poise)와 포즈(Pose) 및 마루바닥을 길게 미끄러지는 스무스하고 경쾌한 다리의 움직임과 함께, 여성이 안정된 균형(Balance)을 유지하며 진행하는 힐 턴(Hell Turn) 등이 춤을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폭스트로트는 빠르고 느린 스텝의 결합을 기초로 하여 융통성 있게 만들어져 더욱 배우는데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 춤은 안정된 밸런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우며, 몇 년 이상 숙련하지 않으면 그 진수를 느낄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 만큼 깊이와 무게가 있는 춤이며 가장 자연스럽고 웅대하며 부드러운 춤이다.
일반인이 모던댄스를 배우기 시작할 때, 제일 마지막에 배우게 되는 춤이 폭스트로트이다
여성들이 폭스르르어려워하는이유
여성들이 폭스트로트를 어려워하는 이유
파티에서 여성들과 폭스트로트를 춰 보면 잘하는 분들은 물론 잘 하시는 편이지만 대부분은 어려워합니다. 일단은 폭스트로트 자체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이 춰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폭스트로트 음악이 맞춰 춤을 추기 어려운 편이라 몇 스텝 가고 나면 음악과 따로 느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성들은 뒤로 가는 휘겨가 많은데 누구나 앞으로 가는 것은 생활화 되어 있어 잘 하지만 뒤로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초보자에게 가장 신경 쓰이게 걸리는 것이 CBMP OP( Contrary Body Movement Outside partner)의 개념이 없이 어깨를 마구 좌우로 돌려서 아웃사이드 리드 자체가 안 되게 하는 경우, 인사이드로 들어와야 하는데 아웃사이드로 돌아 스텝을 하려고 하는 경우 등입니다.
물론 기초를 제대로 배우고 나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숙달되기 전에는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틀리는 것을 미리 알고 연습하면 시간이 단축될 것입니다.
폭스트로트를 배우게 되면 스텝에 따라 파트너의 인사이드로 해야 하는지, 아웃사이드로 해야 하는지, 그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성이 원칙 없이 어깨를 좌로 했다 우로 했다 하는 경향이 많은데 여성이 스스로 그렇게 하면 남성은 리드가 더 힘들어집니다. 발도 그냥 직진한다 생각하고 정면으로 들어오면 되는데 어깨가 돌아가면서 아웃사이드와 인사이드가 혼란을 일으킵니다. 물론 인사이드의 경우에는 남성도 여성이 다리 사이로 스텝 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아웃사이드인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드가 되도록 리드를 해줘야 합니다.
폭스트로트의 특징은 페더 스텝, 페더 피니쉬, 페더 엔딩, 호버 페더, 커브드 페더, 빽 페더 처럼 'Feather' 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경우에는 아웃사이드로 스텝을 하게 됩니다. 리버스턴은 전체 6 스텝으로 되어 있지만 스텝 456은 Feather Finish입니다.
페더스텝, 페더 피니쉬, 빽 페더, 커브드 페더의 스텝 1은 인사이드가 되며 스텝 2,3는 반드시 아웃사이드로 나가게 됩니다. 페더 엔딩은 PP에서 페더 스텝을 하는 것을 말하며 호버 페더는 Heel Pull 다음에 바로 아웃사이드로 나가는 휘겨를 말합니다.
아웃사이드를 사용하는 또 다른 경우는 위브, 위브 프롬 PP, 내추럴 위브, 퀵 내츄럴 위브 프롬 PP (런닝 위브)등이 있습니다. 스텝 1이 인사이드로 들어가는 경우는 위브, 내추럴 위브이며 나머지 스텝은 PP에서 시작되어 계속 스텝이 마무리 될 때까지 아웃사이드로 사용하여 마지막 에서 아웃사이드로 마무리 하게 됩니다.
Reverse Wave를 특히 어려워하는데 여성이 뒤로 가다가 여기서는 전진이 되기 때문에 더 당황해 하는 것 같습니다. 루틴 상으로도 일단 1라운드 후반부 쯤 나오게 되므로 이때쯤이면 음악도 잘 못 맞추는 시점까지 온 상태라 더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웃사이드로 가는 경우를 나열했지만 정작 휘겨 이름을 잘 모르거나 하면 차라리 여성은 어깨를 힘을 빼서 중간에 두면 남성이 알아서 리드를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어깨를 틀거나 반대로 틀 경우 리드가 어려워집니다.
음악은 남성이 파트너에게만 들리게 카운팅을 해주면 도움이 됩니다.
폭스트로트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은 뒤로 갈 때 발이 교차되는 시점에서 뒤에 남는 발의 Footwork이 TH로 바뀌면서 센터 밸런스 상태가 되는데 이 부분이 숙달되기 전에는 가장 어렵습니다.
비엔나왈츠의유래
비엔나왈츠의 기원과 발전의 과정은 오랜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춤의 발생기원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의 알프스지방의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두고 강한 민속무용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클로즈드 홀드를 한 상태에서 연속회전만을 3박자의 음악에 주로 맞추어 추는 이춤은 다양한 이름으로 수백년동안 전래되어 왔다. 원무인 이 춤의 명칭은 스핀너(spinner:실감는 기계 또는 휠러 wheeler: 큰수레바퀴)등으로 묘사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19세기 중에 '요한 스트라우스월츠'가 유행함에 따라서 오늘날 이 춤을 '비엔나 왈츠'라고 한다.
내츄럴 턴와 리버스 턴 등의 진행성 회전운동은 훗날 프랑스의 7월 대혁명(1789년)으로 루이왕조의 몰락과 함께 특권계층의 춤인 군무의 궁중무도)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거쳐 대중화되면서 거리의 술집등지에서 추어진 비엔나 왈츠가 상류사회의 넓은 무도장으로 옮기게 되어 오늘날의 형태인 남녀1조의 완전한 사교무도로 발전된 것은 요한스트라우스월츠의 유행과 함께 경쾌함을 좋아하는 비엔나 사람들의 기질은비엔나왈츠 음악의 템포를 점차 빠르게 연주하였으며 각 스텝의 액센트를 강조하던 중후한 느린풍의 왈츠도 점차 제1박만을 강조하는 악상으로 변하여 갔다.
비엔나왈츠의 액센트는 제2박 보다 약간 선행하는 선입음(Anticipated Beat)으로 인하여 더 한층 흐르는 경향을 가지고 추진력과 회전력의 원천이 되는 스윙을 주게 된다.
종래의 단일 선율의 무곡은 요세프 런너(Josef Lanner)와 요한 스트라우스 등의 주도로 5내지 6가지 선율(멜로디)을 연쇄적으로 접속한 오늘날의 원무곡 형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이 음악에 안무를 할 때는 피겨를 바꿀 때 마다, 다음 음악 소절(BAR)에 동시성(싱크로나이즈)을 갖게 하여야 하고, 악절의 길이는 16소절의 단위로써 반복하거나 다른 악절로 바꾸게 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왈츠는 클래식 발레의 풋워크였으나 농촌의 농민들이 추는 비엔나왈츠는 두발의 방향이 평범하게 하여 동일 방향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1953년 5월에 이 비엔나왈츠를 세계댄스스포츠평의회에서 경기종목으로 체택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서 이를 세계무도경기대회 및 국제무도경기대회등에서 정식경기종목으로 체택하게 되면서 이의 명칭을 비엔나왈츠라 명명하였다.
일반적 비엔나왈츠는 '컨츄리 비엔나왈츠'라 하며, 경기대회에서 사용하는 비엔나왈츠는 '콘티넨털 비에나왈츠'라고 한다. 전자의 피겨는 약 8개 정도이며, 후자의 피겨는 6개의 리버스 Fleckerl에서 내츄럴 Fleckerl를 이어주는 콘트라 체크가 추가된다. 이 춤을 추는 방법은 슬로우 템포의 월츠와의 구별을 확실히 인식하면서 추는 것이 중요하다. 즉, 첫째는 라이즈와 폴을 최대한 억제하고 상체의 긴장과 완화와의 차이도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풋위크도 될 수 있는 한 플랫에 가깝게 제한하여 놓아야 한다.
둘째는 음악과 피겨의 변화를 8소절의 단위로 하여 체인지, 내츄럴, 리버스와 같이 하며, 또 Fleckerl에 있어서 악절의 교체도 리버스부터 시작하여 좌측으로서 콘트라 체크를 하고, 체크 백(CHECK BACK) 할 때까지 1소절을 요구하는 것을 고려하여 악절과의 조화를 계산하여야 한다.
또한 스타트할 때에는 2소절을 기다린 후에 우측부터 시작한다. 이 춤은 모던댄스이지만 무도강사자격시험에서 채택하는 협회와 채택하지 않는 협회가 있으며, 채택하는 협회에서는 때로는 채택하지 않을 때도 있다.
출처 :분당댄스스포츠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최민웅
첫댓글 준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구서 뵐께요
좋은 자료네요 잘 보았습니다.. 어제 한곡 지루박 한곡 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