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 시댁 큰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시댁 얘기를 좀 해볼까요.이번 추석은 참 의미가 있었습니다.
맏며느리로서 명절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댁에 비하면 시집살이 없는 며느리지요. 시아버님은 제가 시집오기 전에 집안 식구들을 고생시키기는 하셨지만 여느 노인네처럼 겉으로 표현없고 무뚝뚝한 어른이십니다. 옛 어른치고 얼굴은 예쁘장하시고 건강하십니다. 술, 담배 거의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술주정 절대 없습니다. 화를 버럭 내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끔씩 속좁은 말씀을 하셔서 다들 어안이 '벙' 할 때가 있지만요.
이번 명절에 아버님이 산삼을 식구수대로 가져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심마니가 부수입원입니다. 좋은 것은 200만원 이상 주고 팔지만 작은 것은 이렇게 식구들을 위해 선뜻 내놓으십니다. 명절 아침 공복에 다같이 산삼 한 뿌리씩 줄기까지 씹어먹었습니다. 평생에 한번도 볼까말까한 산삼을요. 아버님 덕분에 모두들 아픈 사람 없이 다 건강한 듯 합니다.
저는 맏며느리지만 둘째 동서네로 명절을 세러 갑니다. 시동생, 시누이들이 구미에 있기도 하지만 성묘하기에도 가깝고, 더 중요한 것은 둘째네가 떡집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명절즈음에 떡집은 불이 납니다. 줄구장창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에 막내동서가 들어오기 전까지 명절 음식을 혼자 다해야 했습니다. 모든 식구들이 다 떡집에서 일을 합니다. 시집 오자마자 나에게 명절음식이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고향인 강원도제사 음식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음식은 지역마다 다를텐데, 할 수 없이 내가 본대로 서울식으로 해야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남자들이 명절음식을 차렸다고 합니다. 대부분 장에서 사온 음식으로 말이지요.
하루종일 서서 일을 다하고 나면 저녁때가 되는데, 저에겐 명절음식 만드는 일보다 식구들 식사준비 하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명절 이틀전 저녁부터 명절 전날 삼시 세끼는 시아버님과 조카들 따로, 떡집에서 일하는 식구들 따로, 또 교대로 밥상을 세번이나 차려야 했습니다. 그리곤 결혼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차츰 정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전날 저녁은 미리 음식을 준비해서 회나 고기류로 식사할 수 있도록 하고, 다음날 아침은 평범하게 점심은 간단하게 저녁은 떡집 일이 끝날 때쯤 외식을 합니다. 시누이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정착되기까지 참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음식 준비하다보면 또 밥 먹을 때가 되고, 또, 또...
음식준비도 이제 익숙해져서 이번 명절에는 떡집 일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명절 즈음이면 둘째네 부부는 거의 잠도 못자고 일을 합니다. 오죽하면 밥먹는데 젓가락 들고 조는 일이 있을까요. 그 장면을 보고 참, 애처로와서 그 다음부터는 미리 일을 끝내고 떡집일을 도와줍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게 참 힘들지만, 그래도 일이 더 수월하게 끝나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번 명절에는 친정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다녀오기도 했고, 서울을 오가는 거리가 무척이나 힘겨워 조금은 망설여졌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도닥여주는 시댁식구들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명절에는 형제들과 조카들과 금오산 유원지에 놀러가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다음날에는 계곡에도 놀러가 고기도 잡고 좋았습니다.
얼굴 붉히지 않는 일, 강요하지 않는 일, 애썼다고 고생했다고 문자한번 쏘는 일,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늘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를,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에게 주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