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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스크랩 새들백교회 ? 릭 워렌 ...열린예배 (예배의 본질 파괴하는 타락된 예배)
samson 추천 0 조회 74 09.09.02 13: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새들백교회 ? 릭 워렌 ...열린예배 (예배의 본질 파괴하는 타락된 예배) | 열린예배 2009.08.03 10:39 진실

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1892

 

 

 

새들백교회 ? 릭 워렌

열린예배 (예배의 본질 파괴하는 타락된 예배)

-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성경적 부흥이 무엇인지 바로 인식하고 우리가 지켜 내려오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모든 세속으로부터 보수하여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다.

한국교회를 세속화시키고 타락시키는 소위 교계의 이름이 있는 목사들이 1907년 평양의 대부흥에 비유하여, 1970년 여의도 광장에서 신복음주의의 신봉자인 빌리 그레함 목사를 초청하여 열린 집회를 한국의 제 2의 부흥이라고 하고, 또한 금번 릭 워렌 목사를 초청하여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 모이는 집회를 제 3의 부흥이라고 허위선전하여 수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여 한국 교회를 더욱 타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조영엽 박사

?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총신대학교 대학원 (M.Div, Th.M)

? Faith Theological Seminary (D.Min)

? Grace Theological Seminary (Ph.D)

?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

전문연구위원(이사)

? 편집위원

디모데후서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새들백교회 탐방기:

필자는 금번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미국의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며 집회와 특강을 하던 중 요즘 한참 한국교회에 열린예배 붐을 일으키고 있는 새들백교회(담임목사 릭 워렌)를 지난 6월 24-25일에 탐방하였으며, 지난 7월 13일 오후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릭 워렌 초청집회도 탐방하였는 바, 그 소회를 다음과 같이 게재하는 바이다.


릭 워렌(Rick Warren)에 대하여,

릭 워렌(1954년생, 52)은 미국 남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레이크 포레스트(Lake Forest, Orange County, Southern California)에 있는 새들백교회(Saddleback Church)의 목사이다.

그의 약력을 보면,

캘리포니아신학대학 학사,

사우스이스턴침례신학교 석사,

현 미국 새들백교회 목사이다.


릭 워렌 목사는 남침례교 소속 목사로 1980년 부활절을 계기로 “새들백계곡공동체 교회”(Saddleback Valley Community Church)를 개척하고 크게 부흥시켜 왔다.

그러나 그의 부흥은 거짓된 부흥, 타락된 부흥이다.

남침례교는 비교적 보수적 교단으로서 미국에서 약 200개 교단들 중 개신교로서는

가장 큰 교단(신도수 1,620만)이다.

릭 워렌은 남침례교에 소속은 되어있으나 신앙적으로는 남침례교에서 멀리 이탈한

열린예배를 선도하는 세속화된 교회 목사이다.


새들백교회(Saddleback Church)=열린예배 보는 교회 = 타락된 교회


1. 주소:

Saddleback Community Church

1 Saddleback Parkway

Lake Forest, Ca. 92630 U.S.A.

TEL: 949-609-8000

F X: 714-581-7614

www.saddleback.com

2. 위치: 새들백교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 샌디에고로 내려가는 국도 405번과 5번이 만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내려가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 남쪽 레이크 포레스트(Lake Forest)에 있다.


3. 예배시간:

토요일 4:30 p.m.

6:30 p.m.

일요일 11:15 a.m.

4:30 p.m.

6:30 p.m.

※ 그들은 주일(主日)을 일요일이라고 부른다.


4. 명칭: 새들백교회(Saddleback Church)

새들백교회의 본래 명칭은 새들백공동체교회(Saddleback Community Church)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공동체(Community)라는 명칭이다. 이 명칭은 하나의 교단 또는 교파의 명칭이 아니라 새들백교회와 같은 코드( Code )를 같이 하는 교회들을 뜻한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 공동체교회란 소위 열린예배를 지향하는 세속화된 교회들을 상징한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국내에서 대표적 공동체 교회들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In America):

① 새들백 공동체교회(Saddleback Community Church) 2345 Madero, Suite 100, Mission Viego, Ca. 92691, Ph. (949) 609-8000, 1 800 633-8876, Fax. (714) 581-7614 Rev, Rick Warren(릭 워렌 목사)

② 윌로 크릭 공동체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 P. O. Box 3188 Barrington, Il. 60011. Ph. (847)765-0070, Fax. (847)765-5046, Rev. Bill Hybels(빌 하이벨스 목사)

③ Community Christian Church(Indep.), 1163 E. Ogden Ave., Suite 705-105, Naperville, IL. 60563-1687, ph (708)983-5444, Fax. (708)983-2524

④ Ginger Creek Community Church(Indep.), 777 Roosevelt Rd., Suite 200, Glen Ellyn, IL. 60137-5913, ph (708)858-5999, Fax. (708)858-6049

⑤ Grace Community Fellowship(Nondenom.), (9505 Dearreco Rd., Timonium, MD. 21093, ph (410)561-8424, Fax. (410)561-1192

⑥ New Hope Community Church(Indep.), (11731 SE Stevens Rd., Portland, OR 97266-7597, ph (503) 659-5683, Fax. (503)774-1133

⑦ New Song Community Church(Conserv. Baptist), (4065 Oceans-ide Blvd., Suite T, Oceanside, CA. 92056, ph (619) 940-1500, Fax. (619)940-8144

⑧ Calvary Community Church, Westlake Village, Calif 등등이다.


캐나다에서(In Canada):

Northview Community Church, Matsqui, B.C.

Forest Grove Community Church, Saskatoon, Sask.

Centre Street Community Church, Saskatoon, Sask 등이다.


5. 교회 건물 구조

새들백교회의 구조는 대형 극장을 연상케 한다. 즉, 하나님께 경건함으로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성전이라기 보다는 마치 연극을 편하게 구경하기 위해 모이는 극장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근래에 타락된 교회들은 교회를 상징하는 종탑이나 십자가를 내리고 빌딩처럼 개조한다.

새들백교회와 같은 열린예배를 보는 교회들은 전통적인 교회 관과 예배 의식에 대한 개념ㆍ의식구조ㆍ사고방식의 개조와 변화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외형적 구조의 변경도 강조한다. 강대상ㆍ강단ㆍ의자 등을 모두 개조하고 대형 전광판ㆍ조명장치ㆍ음향장비 등을 설치한다.

① 강단

새들백교회는 강단을 연극무대처럼 만들었다. 열린예배 보는 교회들은 강단을 연극무대처럼 만든다.

강단은 낮게 그리고 넓게 극장형 무대처럼 개조한다. 그리고 의자들을 다 치워버린다. 저들이 강단을 낮게 그리고 넓게 개조하는 이유는 강단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을 필요에 따라 각종 연주회, 현대복음송, 기독교 록음악, 춤, 연극, 오페라 등을 위한 무대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② 강대상

새들백교회는 나무로 만든 작은 볼품없는 강대상을 놓았다. 강대상을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그 좋고 값비싼 큰 강대상을 치워버리고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그것을 플라스틱, 유리 또는 나무로 만들고 밑에는 바퀴를 달아서 목적에 따라 수시로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③ 의자

의 자는 등 받침이 없는 술집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다리가 긴 의자(stool)같은 것을 놓고 청바지에 가벼운 상의를 입고 걸터앉는다. 또는 강단 뒤에 의자들을 강단 밑으로 옮겨 놓는다. 권위의식을 없애고 섬기는 종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러한가?


반증(反證)

그들은 강단, 강대상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단과 교회를 목적에 따라 어떤 축제의 장소나 또는 기타 집회의 장소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교회와 강단을 우상시하지 말라고 비판한다.

물론 우리는 강단이나 교회를 우상시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강단이나 교회를 세상의 다른 것들과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요,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 쓰임 받는 가구는 세상 것과는 구별되는 성구(聖具)들이라 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이라고 하셨고, 주님도 그 말씀을 마태복음 21:13(막 11:17; 눅 19:46)에서 인용하셨다. 토기장이가 똑 같은 진흙으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어 각기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하듯이(롬 9: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는 것과 같이(딤후 2:20), 똑같은 재료로 강단 또는 강대상 같은 성구(聖具)들을 만들어 귀히 쓰기도 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만들어 천히 사용하기도 한다.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기구(도구)들은 거룩히 구별된 것들이기 때문에 성물들(holy thi-ngs) 또는 성구들(holy furni ture) 이라고 부른다. 구약시대 성전의 성구들은 큰 제단, 놋대야, 진설병을 놓는 상, 촛대, 분 향단, 언약궤 등이었다(출 25:-40:). 이 경우에는 다른 기물들과 구별?성별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별한다.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대상을 세상 가요나 춤이나 연극의 무대 등에서 사용하는 기구들과 동일시할 수 없다. 우리는 강단이나 강대상을 세상의 것들과 구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④ 마이크

마이크를 강대상 위 중앙에 고정시키지 않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 잡고 강대상 전후좌우로 돌아다니면서 소위 복음송을 부르거나 설교를 한다.

⑤ 대형 전광판

새들백교회에는 전면 좌우로 대형 전광판 2개, 그리고 강단 중앙 위에 작은 전광판 3개(1개는 정면, 그리고 나머지 2개는 좌우로 향해 있다)가 설치되어 있다.

작금의 다수의 교회들이 과거에는 오 에이치 피(O.H.P)를 사용하였고 근래에 와서는 빔 프로젝트(beam project) 또는 대형 전광판<대형 멀티비전>까지 설치한다. 그리고 영상설교, 영상음악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궤변을 토한다.

반증(反證)

복음송이나 성경도 전광판에 자막으로 나오게 하므로 온 회중이 그것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고 주위가 산만하고 나의 성경, 나의 찬송가(my Bible, my Hymn)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열린예배를 보는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경 찬송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복음송이나 또는 현대복음송(C.C.M.)에 밀려서 전통 찬송은 아예 부르지도 않는다

⑥ 조명장치

새들백교회는 강단을 무대로 전환하여 노래나 춤이나 연극 등을 할 수 있도록 전용 조명세트를 장치하였다. 그 휘황찬란하고 사치스러움이 홍등가의 네온사인이나 댄스홀의 조명, 술집이나 룸살롱, 또는 TV 방송국 스튜디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므로 더욱 흥분하게 하고 더욱 발광하게 한다.

⑦ 음향장비

교회의 음향 효과를 매우 중요시한다. 앰프, 서라운드 스피커 시스템ㆍ믹서(mixer)ㆍ비디오ㆍ카메라ㆍ컴퓨터ㆍ방송실용 모니터 등 다양한 음향 장비를 설치한다. 그리고 음향 장비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전문인을 고용한다.

⑧ 영상음악

찬송이나 복음 송을 부를 때 배경으로 전광판이나 TV 화면에 예배드리는 장면, 산수경계, 고대 유적지들, 건축물들, 사람이나 동물들의 활동 등 온갖 종류의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화면에 나타나는 그 모든 영상들은 신령한 예배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분산시키고 뜻과 정성을 모으지 못하게 한다.

열린예배의 다양한 형태들 (Various Forms)

새들백교회에는 남자가 넥타이 매고 정장하고 성경?찬송 들고 오는 신자는 한 명도 없으며,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부터 평신도에게 이르기까지 정장을 입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릭 워렌 목사 자신이 청바지나 가벼운 옷을 강력히 주장하기 때 문이다. 새들백교회에서는 새들백교 회 청바지 라는 파도처럼 디자인한 청바지를 팔고 있다.

에드 답손(Ed Dobson,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드 시(Grand Rapids) 소재 갈보리교회 목사)은 그의 책「Starting a Seeker Sensitive Service」, 제2장에서 열린예배는 어떤 형식의 예배가 필요한가를 언급하면서 형식에 매이지 말 것, 현대적일 것, 강요하지 말 것, 편안하게 해줄 것 등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1. “형식에 매이지 말 것”(informal) -목사, 안내하는 사람, 성가대 모두 청바지나 또는 가벼운 옷들(blue jeans or casual)을 입는다.

2. “현대적일 것”(contemporary) -기타, 전자 기타, 드럼, 심벌즈, 키보드… 그리고 크리스천 록음악(Christian Rock Music)과 세상의 록음악을 다 연주한다. 결정적으로 전통적이 아니다.

3. “강요하지 말 것”(no pressure) ―공개적으로 초청하거나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부담을 주지 않는다.

4. “외형적 호감을 줄 것”(visually appealing)―강대상 주변을 재 단장하여 교회 강단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 전형적인 강대상에서 전형적인 설교를 하는 사람은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 수 없다고 한다.


릭 워렌 은, “사람들이 교회에 무엇을 입고 가는가는 문화적 문제이지 신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What people wear to church is a cultural issue, not a theological one, so we don't make a big deal about it.”


반증(反證)

1. 새들백교회와 같은 열린예배 보는 사람들은 예배의 어떠한 형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히피머리, 귀걸이, T-셔츠, 청바지들을 애호한다. 그렇게 하므로 자신들은 물론 타인들에게도 편안한 감을 준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머리 꾸 밈이나 의상들이나 장신구들이 따로 있음을 가르친다. 광주리 같은 머리, 히피 스타일, 머리 염색 등 머리 스타일(hair style), 사치스러운 옷, 속이 드려다 보이는 음란ㆍ퇴폐를 조성하는 옷, 단정하지 못한 옷, 가증한 옷들을 엄히 금하였다. 그런데 성도들이 어떤 옷들을 입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가든지 그것은 자유요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교훈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열린예배야 말로 경건의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의 모양도 찾아 볼 수 없다(딤후 3:5). 세상에서도 어떤 예식에 참석할 때에는 예의에 벗어나는 머리스타일, 청바지 같은 옷을 입지 않거늘 더구나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역자나 봉사자들이야! 열린예배는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2:9-10,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2. 새들백교회는 하나님의 전(성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타악기들만 사용한다. 통키타, 전자기타(고음을 내는 Lead 기타, 저음을 내는 Bass 기타), 드럼 5(대북, 중북, 소북, 술통 같은 북 2, 심벌즈 3(심벌즈는 금속으로 만든 둥근 접시 같은 악기로 2개를 마주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 이 악기는 관현악을 연주할 때 처음이나 멈출 때나 끝낼 때 친다. 그러나 새들백교회같이 열린예배 보는 교회들은 북채로 심벌즈를 계속적으로 광란적으로 강타한다. 악기의 예술적 기능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전자 기타, 기타, 드럼, 심벌즈, 키보드 같은 타악기들(percussion instruments)은 고전음악이나 가곡 같은 기독교 문화에 바탕을 둔 서양 민요나 동요들을 부를 때에는 연주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오케스트라(관현악)에는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트럼본, 섹스폰, 클라리넷, 바순, 호른 같은 악기들은 사용하나 기타 등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타, 전자 기타, 드럼, 베스 드럼, 스네어 드럼, 탬버린, 심벌즈, 키보드 같은 리듬악기들(rhythm instruments)은 육체의 흥분과 쾌락을 위한 악기들로서 우리의 정서를 위한 오케스트라에 사용하는 악기들과는 악기의 음의 성질상 서로 조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상의 댄스홀(dance hall)이나 단란주점, 록음악에서는 제1악기로 사용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고상한 음악을 연주할 때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악기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가 타락되고 교회음악 또한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3. 새들백교회는 죄를 책망하는 회개의 설교가 없다. 저들은 전도 초청에 있어서 부담을 갖지 않도록 강요하거나 죄를 책망하는 말들은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전도초청이나 회개에 있어서 강권과 회개를 강조하였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모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 “너희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 이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2:38, 40, 3:19).고 하였다. 이 모든 말씀들은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는 명령이요, 강권이다.

 

4. 저들은 죄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회개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살인ㆍ사기ㆍ도둑ㆍ강간ㆍ호모섹스(동성혼음) 등 죄를 죄라고 책망하지 않는다.

죄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전도의 대상으로만 삼는다. 그러기에 호모 섹스 자들에게도 안수하여 목사로 세우고, 하나님의 돈을 도둑질하고, 신도들을 강간하고…죄에 대한 책망이 없으니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열린 예배보는 교회들이 설교 시에 죄를 책망하거나 죄를 회개하는 통회 자복의 기도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만의 증가는 거짓 부흥이며, 교회는 더욱 타락되게 마련이다.


6. 새들백교회의 예배순서와 광경

새들백교회의 예배순서와 광경에서는 예배에 대한 성경의 교훈, 예배모범, 전통적 예배의식(형식)과 예배의 순서, 순서에 의한 내용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예배에 있어서 새들백교회는,

① 기도(죄의 고백)가 없다. 예배의 첫 순서는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이 되기 위하여, 제일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모든 종교개혁자들(루터, 칼빈, 쯔빙글리, 부저, 낙스, 등)의 예배순서에는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반드시 있었다. 그러나 새들백교회 같은 타락된 교회들은 죄를 고백하는 기도로 예배를 시작하지 않는다.


새들백교회는,

② 찬송이 없다. 그들의 예배에서는 경배찬송은 물론 교리찬송이나 복음찬송을 한 번도 부르지 않는다.

경배찬송이 없다. 경배찬송 은 하나님의 성호(명칭들), 그의 거룩하심과 능력과 위엄과 역사와 섭리를 기리며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다. 경배찬송은 좀더 엄숙하고 장엄하고 경건하며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향하게 한다.

교리찬송이 없다. 교리찬송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가사로 하는 찬송을 말한다.

예를 들면;

① 하나님의 성호를 찬송: 성부 성자 성령께(2)

② 하나님의 삼위일체: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6)

③ 하나님의 창조: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40)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78)

묘한 세상 주시고(312)

④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고요한 밤, 거룩한 밤(109)

그 어리신 예수(114)

기쁘다 구주 오셨네(115)

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지셨으니(135)

감람산 깊은 밤중에(134)

⑥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예수 나를 위하여(144)

주 달려 죽은 십자가(147)

웬 말인가 나 위하여(141)

⑦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무덤에 머물러(150)

예수 부활했으니(154)

할렐루야 우리 예수(159)

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대속하신 예수께서(161)

신랑되신 예수께서(162)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167)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에(168)

등이다.


복음찬송이 없다. 복음찬송은 경배찬송과 교리찬송, 그리고 시편을 제외한 성도의 신앙생활과 관계된 찬송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① 신 앙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383)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405)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마음이 편하다(466)

② 회 개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208)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210)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184)

③ 영적 갱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178)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177)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드른 나의 영혼(172)

④ 성 찬

주 예수 해변서 떡을 떼사(284)

주 앞에 성찬 받기 위하여(283)

아무 흠도 없고 거룩 거룩하신(281)

⑤ 성도의 교제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 자리에(260)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305)

⑥ 봉 사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서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260)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370)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371)

⑦ 감 사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307)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308)

저 밭에 농부 나가 씨 뿌려 놓은 후(310)

⑧ 전 도

기쁜 소리 들으니 예수 구원 하신다(252)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257)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258)

⑨ 영적 전투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389)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390)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400장)

⑩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444)

험한 시험 물 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463)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410)

⑪ 결 혼

오늘 모여 찬송함은 형제자매 즐거움(287)

완전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288)

신랑 신부 사랑에 맹서하는 날

⑫ 장례

후일에 생명 끝일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295)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291)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 아침이 될 때에(293) 등이다.

다시 말해서 새들백교회는 이러한 찬송 자체를 부르지 않는다.

③ 새들백교회는 신앙고백이 없다. 교회 역사는 사도시대 초대교회 때부터 사도들이 고백한 신앙고백 곧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공예배시마다 고백하여 왔다. 교회의 속성들 중 하나는 사도성이다. 교회의 사도성이란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역사적 전통성을 말한다. 우리는 말씀의 사도성, 사도적 교리의 계승을 강조한다. 그러나 새들백교회와 다수의 타락된 교회들은 사도신경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거나 아예 부정한다.

④ 설교에 복음의 핵심이 없다. 설교에 복음의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고난, 주의 보혈, 대리적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재림, 최후 심판, 구원 영생과 지옥 형벌, 죄를 책망하는 회개, 영적전투, 성별된 생활 등의 내용이 없다. 그의 설교는 인본주의에 입각한 심리학, 상담학, 교회성장(외형적) 등에만 골몰한다.

⑤ 송영찬송과 축도없다.

송영 은 송영의 대상자이신 하나님께 애모?동경?찬양?감사?영광(adoration, honor, praising, thanks and glory)을 돌리는 예배 행위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이러한 송영이 많이 나타나 있다(롬 11:36; 16:37; 갈 1:5; 엡 3:21; 딤전 1:17; 6:15-16; 딤후 4:18; 계 5:12, 13, 등).

축도 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사람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목사 또는 감독)이 하나님의 복들(Blessings)을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간구(invocation)하는 동시에 귄위있게 선포(proclamation)하는 축포(a pronouncement of blessings)이다.

⑥ 성수주일은 반대되고 십일조는 강조하는 교회.

릭 워렌은 “… 새들백교회에서는 믿는 자들을 위한 예배는 수요일 밤에, 구도자 중심의 예배(열린예배)는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본다”고 하면서, 예배를 토요일 오후 4:30과 오후 6:30에 그리고 일요일 오전 11:15에 본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예배시간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교회 참석자들의 견해와 요청에 의한 결정이라고 한다.

또한 교회 앞뜰에는 물품대들을 놓고 여러 가지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십일조는 강조하는 이율배반의 교회가 아닌가!

그러나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일을 온전히 거룩히 지키며, 모든 오락을 금하고, 헌신적 예배, 성도의 영적 교제, 병자 심방, 전도, 봉사, 구제 등으로 그리고 영육이 안식하는 안식일로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 교회는 이것을 말과 행위로 역행하고 있다.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주님의 몸이다. 그리고 교회의 속성들 중 첫째는 교회의 거룩성이다. 교회의 생명은 교회의 거룩성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봉헌적 거룩이 필수적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 17)


서울 집회에 대해서,

금년 7월 13일 목요일 오후 7시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릭 워렌 초청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 라는 주제 하에 대집회를 거행하였다. 그들은 이번 부흥회는 세 번째 부흥이라고 하면서 첫 번째 부흥회는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대부흥,

두 번째 부흥은 1970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던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 그리고 이번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은 대집회를 연결시켜 세 번째 부흥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내년(20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계기로 다시금 평양의 대부흥을 일으키자 라고 한다.

그러나 1907년에 일어났던 평양의 대부흥과 1970년에 있었던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와 그리고 금번에 있은 릭 워렌의 대중집회는 각각 그 성질상 그리고 그 특성상 맥락을 같이 할 수 없다.


1. 평양 대부흥 (1907년)

먼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은,

첫째, 기도로 부흥 . 고 길선주 목사가 평양에서 한국 최초로 새벽기도를 시작한 이래 성도들의 뜨겁고도 열정적인 기도가 대부흥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다.

둘째,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가르침으로 부흥 . 전도에 있어서 기독교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교리들을 가르침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계시와 영감 그리고 무오,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들, 그의 사역들, 예수 그리스도의 일위이성, 동정녀 탄생, 대리적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위,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천년 왕국, 최후 심판, 구원 영생과 지옥 형벌, 성도들의 중생, 칭의, 양자, 신앙, 회개, 성화, 영화 등과 같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가르침으로 평양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셋째, 성수주일로 부흥 . 평양 대부흥은 온 성도들이 성수주일 하므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십계명 중 제 4계명(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에 순종하여 한국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켰다. 성수주일이야말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별의 한 표징이 되었다.

네 번째, 회개로 부흥 . 평양 대부흥은 회개의 역사로 일어났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들, 특별히 사신 우상을 섬기며 술과 담배 그리고 옳지 않는 생활들의 대하여 눈물로 회개하므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평양 대부흥은 권징 곧 교회를 정결케 하는 역사로 일어났다. 교회의 생명은 거룩성과 순수성에 있으며 교회의 정결 없이는 교회의 타락을 막을 수 없으며 참된 부흥을 기대할 수 없다라고 믿고 범죄자들에게 엄한 책벌(징계)를 가하였다.

다섯 번째, 성도의 경건생활로 부흥 . 평양 대부흥은 성도들의 경건생활로 일어났다. 그들은 경건생활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며 불신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 결과 1907년 동년에는 평양에서 독 노회가 결성되었으며, 평양신학교 졸업생 7인에게 안수하여 목사로 세웠으며, 해외 선교부를 조직하고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평양 부흥은 100만 구령운동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상과 같이 평양 대부흥은 성경적 부흥, 참된 부흥, 우리의 부흥의 모델이 되었다.


2. 빌리 그레함 대전도집회 (1970년 여의도 광장에서)

금번 릭 워렌 집회를 주도한 주최 측에서는 이번 집회를 평양 대부흥과 빌리 그레함 대전도집회와 연계하여 세 번째 부흥의 파도를 가져왔다고 궤변 한다. 그러나 평양 대부흥은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와 이번 릭 워렌의 대중집회와는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빌리 그레함 은 1918년 11월 7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롯(Charlotte)에서 윌리암 그레함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빌리 그레함은 1934년 그의 나이 16세 때 몰디카이 함(Mordecai Ham) 부흥사의 천막 부흥집회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빌리 그레함은 윗튼 대학을 졸업한 후 일리노이 주 웨스턴 스프링에 있는 자그마한 침례교회의 목사로 2년간 시무하고 그 후 목회와 청년 신앙 운동을 위한 청소년 복음전도회(Youth for Christ) 전임 전도사로 일하였다.

그는 1940년 남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40년대 후반기부터는 미국과 영국에서 자신의 대전도집회들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1950년 빌리 그레함 전도 협회를 창설하였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근본주의자로 알려져 많은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원을 받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처음 다닌 밥 존스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 중엽부터 배교적 지도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신복음주의 노선을 걷게 되었다. 신복음주의 노선이란 신중립주의, 타협주의를 말한다.

그는 1992년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은 “강력하고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었다. 나는 그가 왜 그의 인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아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라고 김일성을 극찬하였다. 빌리 그레함은 1994년 1월에 재차 북한을 방문하였었다. 빌리 그레함의 아내 룻(Ruth)은 장로교 선교사의 딸로서 일제시대 평양에서 고등학교 다녔었다(EPS, 1994. 7. p.62).

“ 신복음주의 ”(New Evangelicalism) 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자유주의 신 신학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칠 때 근본주의(보수주의)와 자유주의와의 사이에서 발생한 하나의 새로운 신중립주의(New Neutralism), 타협주의, 포용주의, 반성별주의이다.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라는 용어는 해롤드 존 오켄가 박사(Dr. Harold John Ockenga)가 1948년 풀러 신학교에서 연설도중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그리하여 새로운(new; 신)이라는 이 용어는 복음주의 (근본주의)에서 이탈하는 청신호가 되었다. 신복음주의란 복음주의로부터 발전된 그 어떤 새로운 형태의 복음주의가 아니다. 신복음주의에서 신(네오스, νεω?; new; 새로운)이란 단어는 시간적 개념이나 또는 발전된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상이한 그 무엇(different kind of quality)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신(new)이란 큰 위험성을 안고 있는 새로운 것을 말한다. 사실 어떤 것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하고도 여전히 진리일 수는 없다. 따라서 신복음주의란 복음주의와는 어원적 개념상으로도 동일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주의와 신복음주의는 간격(gap)이 있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하며, 신복음주의라는 명칭을(자신들에게) 사용하지 않음으로 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혼돈을 일으키게 되며 또한 그들의 영향에 감염되고 있다.

빌리 그레함은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선전가로서 혼합주의를 지향해 나간다.

신복음주의는 ①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자들과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② 그들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며,

③ 그들의 악한 일을 지원하는 것이 되며,

④ 영적 분별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한 새 신자들에게 혼동을 주는 것이 되며,

⑤ 선과 악을 동시에 생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얼마만큼의 열매를 현대자유주의자들의 교회로 넘겨주게 되는 것이 된다.

⑥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되며,

⑦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다.


3. 릭 워렌 집회 (2006. 7. 13.)

그런데 릭 워렌의 이번 집회는 빌리 그레함의 대전도집회보다 훨씬 더 인본주의적, 세속적, 에큐메니칼적 예배의 타락상을 보여주었다.

금번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집회는 1970년 여의도 집회 때 보다 훨씬 더 세속화되어 집회시간 전은 물론 집회 시에도 찬송과 사도신경은 한 번도 없었으며, 워렌의 설교는 매우 낮은 수준의 설교였다.

이번 릭 워렌의 초청집회는 새들백교회 예배와 추호도 다른 점들이 없었다.

제1부 순서, “부흥 워십 콘서트”에서는 소위 현대 복음송 가수들이 나와 현대 복음송드를 타악기들(기타, 북들, 심벌즈, 키보드 등)과 함께 광란적으로 불렀으며,

현대 복음송들을 한국의 판소리 민요곡 들에 맞추어 장구를 치며, 피리를 불며 불러댔다. 이것은 찬송 또는 복음송의 토착화의 시도(attempt)이다. 찬송의 토착화(Contexualigation)란 복음송의 가사들을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노 래들(민요곡들)의 가락?리듬?곡조 등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복음송의 토착화는 찬송의 토착화에서 일보 더 진보한 것이다.

찬송은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Praising God in Song)으로 경배 찬송을 우선시 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리듬은 경배 찬송, 교리 찬송, 복음 찬송 등은 한 곡도 부르지 않고 육체의 정욕만을 위한 소위 현대 복음송(C.C.M.)들 만을 불러댔다. 찬송은 한 곡도 부르지 않았다.

이번 릭 워렌 초청집회는 혼합주의자들의 집회였다. 

자고로 신학교들은 교수들이, 교회들은 목사들이 타락시켜왔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성경적 부흥이 무엇인지 바로 인식하고 우리가 지켜 내려오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모든 세속으로부터 보수하여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다.

한국교회를 세속화시키고 타락시키는 소위 교계의 이름이 있는 목사들이 1907년 평양의 대부흥에 비유하여, 1970년 여의도 광장에서 신복음주의의 신봉자인 빌리 그레함 목사를 초청하여 열린 집회를 한국의 제 2의 부흥이라고 하고, 또한 금번 릭 워렌 목사를 초청하여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모이는 집회를 제 3의 부흥이라고 허위선전하 여 수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여 한국교회를 더욱 타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유다서 3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출처: <교회와 이단> 2006. 8월호 p.26-44.

 

 

 

출처:http://chongshin.re.kr/zeroboard/zboard.php?id=study1&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PHPSESSID=ab3c55bb88c669686e63c022854ed8d8

출처 :분별하라 원문보기 글쓴이 :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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