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29코스②
천대국치마을 입구-천대마을-국치마을-해양과학대학-통영대교-충무교-해저터널-윤이상기념관
20210907
1부에서 이어짐
천대국치마을 입구에서 천대국치길을 따라 남파랑길 29코스를 이어간다. 천대국치길은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앞까지 이어지는데, 인평민영어항과 민영마을, 통영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천암산을 뒤돌아 확인하며 천대마을로 들어선다. 천대마을 골목길에는 수산업체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천대마을에서 고갯길을 오르면 통영 편백숲길 관광농원 및 글램핑 캠핑장 입구에 이르는데, 이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인평민영어항과 민영마을과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민영마을과 천대마을과 작별한다. 고개를 넘으면 국치마을, 바다 건너 미륵도와 국치마을 앞 아늑한 바다를 조망하며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통영대교와 미륵도의 미륵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인평조선소 앞에서 계속 천대국치길을 따라가다가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100주년 기념비 앞 통영해안로·여황로·평인일주로 교차로에 이른다. 이곳은 통영시 인평동과 당동의 경계 지점으로 남파랑길은 오른쪽 통영해안로를 따라 통영시 당동으로 들어간다. 당동 앞 바다 건너는 미륵도, 행정구역은 통영시 미수동에 속한다. 미륵도에 어떻게 들어갈까? 배를 타면 미륵도에 들어갈 수 있다. 배를 타지 않고 미륵도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길이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이어주는 길은, 바다 밑 해저터널, 바다 위 충무교와 통영대교 등 세 길이다.
통영대교 아래에 이르러 통영운하를 따라 해안로를 걷는다. 이 해안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수평적 풍경으로서의 통영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수직적 고도에서 내려보는 통영 풍경의 아름다움은 동피랑의 동포루나 서피랑의 서포루, 북포루, 남망산 등에서의 조망일 수 있지만, 수평적 조망의 통영 풍경의 아름다움은 통영해안로에서의 조망이라고 생각한다.
해안로에서 멀리 남망산이 들어온다. 통영반도 해안로에 통영항이, 건너편 미륵도 해안에 통영유람선터미널이 통영을 출입하는 수많은 배들과 관광객들이 언제나 분주함을 증거하고 있다. 충무교 교각의 벽화 '통영항'이 산뜻한 차림새로 통영의 명품 강구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벽화는 전혁림이 1983년 완성한 유화 '통영항'을, 2006년 석판화 작업을 통해 단순한 이미지로 재구성한 '통영항' 작품인데, 김건우가 2018년 충무교 교각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벽화 설명안내판에는 김종길의 '또 하나의 나폴리' 작품이 적혀 있다.
해저터널 입구에서 통영해안로를 벗어나 해저터널 방향으로 나간다. 몇 차례 해저터널을 왕복하였지만 이번에도 왕복하기로 하고 바다 밑으로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을 다녀왔다. 일제시대 1931년 7월 26일 착공하여 1932년 11월 20일 완공한 통영 해저터널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01호로 1996년 1차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해저터널 당동 출입구에서 도천동 도천5길을 따라가면 도천음악마을에 이른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 음악 거장 윤이상을 기리는 윤이상 기념공원과 윤이상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윤이상(1917~1995)은 1959년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성공의 문을 열었고, 1966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신예 작곡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렇게 세계적 음악가로 발돋움하고 있던 작은 용 윤이상은 1967년 북한의 간첩 혐의로 구속되는 동베를린 사건을 당하여 징역 10년형 판결을 받는다. 수감 중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 등으로 1969년 3월 29일 형 집행 정지가 결정되고, 1970년 8.15 특사로 잔형이 면제되었다. 1969년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가 2년 뒤 가족들과 함께 서독 국적을 취득했다. 윤이상은 상처 받은 용이 되어 조국 땅에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조국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독일에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끝내 그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1995년 1월 4일 베를린에서 타계했다. 유해는 타계 23년만에 대한민국에 봉환되어 2018년 3월 20일 통영 국제음악당 부지 내에 안장되었다.
식민시대와 분단시대를 겪으며 온몸과 마음으로 예술과 조국을 사랑한 윤이상 예술가의 고통을 떠올려본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남북은 분단이 고착되어 이념의 대립이 치열하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 빛나는 예술가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이 진정한 예술의 통영이 되려면, 윤이상에게 빨갱이 간첩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는 자유의 예술가이다. 식민시대에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고, 분단시대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쳤다.
윤이상 기념관을 둘러보고 기념관 앞 거리로 나왔다. '기타이야기, 음악을 즐기는 통영사람들' 현판이 보인다. 무슨 일을 할까? 기타 교습과 기타 수리 및 통기타 공연 등 기타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업체이다. 통영의 윤이상, 윤이상의 통영! 음악의 거장이 탄생한 통영의 도천음악마을 거리에 기타 음악을 교습하는 업체를 보며 마음이 흐뭇해진다. 꼭 첼로여야만 하는가? 대중적 통기타를 배우는 통영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또다른 예술이 꽃피어날 것이다. 그 예술은 대중들의 마음을 챙기는 새로운 예술로 통영을 빛낼 것이다.
아직 가야할 곳이 멀다. 서피랑을 향하여 중앙로를 따라 발걸음을 내닫는다.
3부로 이어짐
건너편의 믿음직한 산은 미륵도 태귀산인 듯
(주)전통한선복원연구소가 무엇일까? 건축설계와 컨설팅, 기술서비스 업체라고 한다.
이곳은 통영시 인평동과 당동의 경계 지점으로 남파랑길은 통영해안로를 따라 통영시 당동으로 들어간다.
통영대교는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통영시 이수동을 잇는다.
통영대교는 길이 591m, 폭 20m로 1998년 완공되었으며 통영운하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벽화는 전혁림이 1983년 완성한 유화 '통영항'을, 2006년 석판화 작업을 통해 단순한 이미지로 재구성한 '통영항' 작품인데, 김건우가 2018년 충무교 교각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충무교는 통영반도의 통영시 당동과 미륵도의 통영시 미수동을 이어주는 다리로, 1964년에 기공하여 1967년 6월에 개통되었고, 1993년 4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상판을 교체하고 교각을 보수하였다고 한다.
왼쪽 끝에 남망산이 보인다.
용문달양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 도로 입구의 문(수중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