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오른 충남 최고봉 서대산
1. 일자 : 2011. 7. 16 (토)
2. 장소 : 서대산(904m)
3. 행로 및 시간
[드림리조트(10:05) -> 용바위(10:28) -> 제비봉(10:49) -> 신선바위(11:24) -> 제말재 삼거리(11:38) -> 중식(12:05) -> 사자바위(12:13) -> (헬기장) -> 북두칠성바위(12:19) -> (헬기장/장군바위) -> 석문바위(12:30) -> 바위 우회길 안부(12:40) -> 정상(12:44, 904m) -> 전망바위(12:51) -> (바위쉼터) -> 돌무덤(13:42) -> 서대폭포(13:58) -> 몽골캠프촌(14:12) -> 드림리조트(12:20)]
< 서대산 산행을 준비하여 >
서대산은 충청도 금산 땅의 산으로 금남정맥 운장산에서 옥천 쪽으로 갈라진 지맥상에 솟아 있으며 충남 최고봉이다. 지지난 겨울 다녀 온 계룡산이 845m이니 높이로는 한 수 위다. 서대산은 수도권에서 애매한 거리인 관계로 안내산악회 산행 행선지에 잘 등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 차를 가지고 가기에도 비효율적인 것 같아 평소에는 산행 장소로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졌는데, 새로 멤버가 구성되자 2시간 남짓의 이동시간과 4시간 정도의 산행거리가 당일 산행코스로는 제격으로 다가왔다. 천덕꾸러기로만 보이던 산이 보물처럼 빛나 보인다. 시각이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 산을 대하는 태도도 변한다. 서대산이 내 마음 속으로 나가온다.
늘 그렇듯이 OK마운틴에서 고수들의 산행기와 사진을 보며 나름의 인도어 클라이밍에 빠져 든다. 서대산은 산 전체가 사유지란다. 등산로가 표시 되어 있는 4개의 코스 중, 제 2코스로 올라 제 4코스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다. 1, 2 코스는 거리와 길의 난이도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처음 가는 길이라 더 대중적인 2코스를 오름 길로 정한다. 오르는 길에 용 바위, 마당바위(사진으로 볼 때 이름처럼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선 바위, 전망바위 등 바위가 참 많다. 전체적 길 사정은 너덜일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에 지치고 힘겨움이 극에 달할 무렵 구름다리 부근 전망바위에 도착할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신선바위로 오를 수 있는데 다리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으로 보아 건너편 신선바위는 눈으로만 올라야겠다. 능선 안부 부근에 있는 사자바위에 서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지는데 2개의 헬기장과 특이한 모양새의 바위가 많아 눈이 호강하겠다. 정상 부근에서 석문을 지나게 되고, 곧이어 소나무 전망대에 서면 산 너울 넘어 천태산도 가름할 수 있을 것 같다.
등산의 기쁨은 내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서 차분히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산의 향기를 맡고 산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있다고, 청담 스님은 말씀하셨다. 산에서 생각이 급해지고 여유를 잃어갈 때, 늘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는데, 서대산에서는 꼭 실천해 보자.
< 희망사항 >
지난달 늦은 중순부터 시작된 장마가 그칠 줄 모르는 기세로 연일 비를 쏟아 붓고 있다. 안내산악회 등 주말 장사로 한 몫 보시는 분들에게는 죽을 맛 일 것이다. 그래도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런 기회가 또 있겠나. 이 참에 푹 쉬자!’라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매주 산행 준비가 즐겁긴 하지만, 시작 할 때는 늘 약간의 스트레스도 있음이 사실인데, 내리는 비에 아예 엄두를 내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다.
이 번 주도 비는 월요일부터 주륵주륵 오고 있다. 지난 한 주를 쉬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눈 길이 자꾸 사무실 창문 너머, 비와 연무 속에서도 희뿌연 자태를 드러내는 의왕 백운산 쪽으로 향하는 시간이 늘어 간다. 안되겠다. 나는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배낭을 꾸리자.
이번 주 목표로 삼은 서대산은 바위와 돌이 많은 산이다. 인생사도 그렇듯이 험한 것에는 사연이 많고 볼 것이 많다. 비가 그치고 날씨가 웬 만 하면 정상 능선에서 바라다 보는 경치가 그만일 것이다. 시야가 탁 트인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산등성을 바라보는 기분은 낯설고도 늘 새롭다. 모든 것이 내 발 밑에서 아득해지고 수굿해지는 기분을 어서 느끼고 싶다.
카카오톡의 글귀를 ‘안으로는 반듯하게, 밖으로는 둥글게’ 에서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즉 ‘이 역시 지나가리라!’로 변경했다. 이 글은 유대 다윗 왕의 반지 일화에서 유래한 것인데, ‘권력과 부와 명예를 얻었을 때 자칫 빠지기 쉬운 교만을 이기고, 실패와 치욕과 가난 속에서도 절망하여 쓰러지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복 돋을 수 있는 글귀는 무엇일까?’라는 고민 끝에 솔로몬이 만들어낸 글귀에서 탄생한 것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이 글은 힘들고 괴로울 때 그것을 벗어나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나태해 지는 것이 두려워 앞으로의 행동에 지침이 되고자 만들어진 것임에 유념해야겠다. 힘겨운 상황에서 이 글을 인용하면 왠지 그럴듯한 도피적 행동 또는 근거가 부족한 막연한 희망으로 오용될 것이다.
며칠 전 평창이 10여 년의 긴 노력 끝에 2018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분명 국가적 경사이고 나 역시 졸린 눈을 부릅뜨고 발표 순간을 생중계로 보았을 만큼 소망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 순간 평창과 우리가 가져야 될 마음가짐은 ‘이 역시 지나가리라’이다. 순간의 기쁨을 넘어 교만을 이기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산행은 성우와 신입회의 외에 대전에 사는 성우 친구도 합류한다 한다. 갑자기 산악회의 구성이 화려해 진다. 낯선 이들과의 산행에 대한 설렘과 함께 걱정도 앞선다. 무엇보다 혼자 산행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무언가 번잡해져 가는 느낌이다. 일단은 변화를 즐겨야겠다. 판단은 일단 뒤로 미루자.
이번이 77번째 백대명산 입산이다. 숫자가 주는 행운의 이미지가 산에서도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뭐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맑아 정상 능선에서 볼 수 있는 파노라마와 산 너울이 조금 더 멀었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이 여기까지가 산행 준비 과정과 마음가짐을 정리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1코로 올라 4코스로 내려왔고 성우 친구는 합류하지 않았다.)
< 금산 가는 길에 >
긴 장마는 토요일 아침 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 비가 언제 그치려나? 다행인 것은 산행지인 금산의 날씨는 맑다는 것이다. 8시경 성우를 태우고 분당을 지나 기흥 부근을 지날 무렵 비의 흔적은 사라졌다. 동일한 지역에서도 일기가 이리 다르니 우리나라는 결코 면적이 작은 나라는 아니다.
두런두런 이야기 끝에 대전을 지나 금산 땅에 도착한다. 분당 출발 2시간 만이다. 날씨는 흐리기는 하지만 등산하기에는 오히려 좋아 보인다.
한 때는 대전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을 그러나 지금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쇠락의 기미를 보이는 드림리조트 주차장에서 행장을 꾸린다.
< 드림리조트에서 제말재 삼거리 전망바위 >
주차비 2천원과 입장료 천원씩을 내고 놀이동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전면 놀이기구 사이로 서대산 주 능선이 펼쳐진다. 길은 대체로 완만해 보이나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는 암릉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험준해 보이는 큰 바위를 가리키며) 설마 저리로 오르는 것은 아니지요?’ 신입회원이 묻는다. ‘맞습니다. 그러나 바위를 직접 오르지는 않겠지요. 가 봅시다.’서대산의 첫 인상은 암릉으로 인해 이렇게 다가왔다.
< 들머리에서 본 서대산 / 용바위에서 >
리조트 방갈로를 따라 자갈이 깔린 널찍한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른다. 청살모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지르더니 나무에 앉아 겁도 없이 우리의 동태를 살핀다. 얼른 사진기를 꺼내 들고 줌을 당긴다. 줌 소리가 너무 크다 싶더니 그 놈은 쏜 살 같이 나무 위로 내뺀다. 청살모는 다람쥐보다 켰으며 시꺼먼 것이 흉측스러웠다.
몽골텐트촌 입구를 지나자 1/2/3/4 등산로가 나뉘는 갈림이 나온다. 축구장이 있는 좌측으로 길을 잡는다. 여전히 널찍한 길을 조금 더 오르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용바위다. 바위 밑으로 석간수가 흐르고 작은 소(沼) 형성되어 있다. 최근 내린 비로 평상 시보다 모습이 화려하다.
용바위를 지나며 길은 본격적인 등산로로 변한다. 고도는 350m 근방이다. 녹음이 짙다. 서대산은 사유지라 하는데 수종은 참나무가 대표 수종이고 키 높은 여러 나무들이 뒤엉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 온 뒤라 그런지 시야는 선명하다. 정상 능선에 오르면 좋은 전망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1/2 등산코스가 나뉘는 갈림에서 좌측으로 길을 튼다. 주차장 안내인이 2코스는 무척 가파르다는 정보를 주었기에 망설임 업이 여정을 바꾼다. 한동안 완만하던 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성우가 묻는다. 이런 길을 ‘된비알’이라고 하냐고? 성우의 등산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진다. 조만간 산에 더 깊숙이 빠질 것 같다. 신입회원이 힘겨워 한다. 조금만 더 가면 제비봉이 나오고 그곳에 ‘잘 생긴 강남제비’를 불러 놓을 테니 힘내라 부추긴다. 잠시 웃었지만 이내 다시 힘겨워한다.
용바위를 지나 20여분이 지날 무렵 제비봉 전망바위에 올라 선다(10:49). 지나온 리조트 부근의 마을과 뒤편의 산, 또 그 뒤편의 산 군들이 너울지고 있다. 그 먼 끝에는 대전 시가지의 모습도 아스라하다. 산과 들과 마을과 도시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광. 우리 한국인에게 산은 일상의 공간인 셈이다. 산은 높이 솟은 것만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겹쳐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산은 깊고도 넓다.
< 제비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 흔들다리 전경 >
제비봉을 지나고부터 길은 그야말로 깔딱 고개 수준의 된비알이 길게 이어진다. 곳곳에 위험한 바위도 산재해 있다. 산에서는 ‘비교적’ 이라는 말이 수식되지 않는 ‘순수하게 오르기에 수월한’ 곳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멋지다. 그 사이로 파아란 하늘은 더 멋지다. 대체 얼마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런가?
< 신선바위에서 성우 / 신선바위에서 >
커다란 전망바위에 도착한다(11:24). 눈 아래 흔들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낡게 쇠락한 모습에 마음이 애잔해 진다. 그곳도 한 때는 명물이었을 것인데. 다리 뒤로 인도어 클라이밍 시 눈 여겨 둔 반석도 보인다. 바위 밑으로 금산 일대의 풍경이 선명하게 내려다 보인다. 멀리 대전 시가지의 풍경을 줌으로 당겨 본다. (집에 와 보니 너무 멀어 흐릿하다.) 한동안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렇게 힘겨워하던 신입회원의 홍조 띤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번진다. 짧은 휴식은 모두에게 힘을 주었다. 올려다 보는 주 능선은 이제 지척이다.
휴식은 신입회원의 말대로 5분 정도의 힘만을 준다. 또 힘겨운 걸음을 뒤풀이 한 끝에 능선 안부 삼거리에 도착했다(11:38). 하늘이 어두워진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비가 오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안부에 오른 안도감을 뒤로 하고 부근 바위로 기어 오른다. 바위 사이로 우리 세 사람이 앉기에 충분한 ‘잔디 식당’이 보인다. 일행을 불러 올린다. 후다닥 식당이 차려진다. 오늘 식단은 성우표 샌드위치, 김밥, 토마토이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은 두 편으로 나뉜다. 먹구름과 뭉게구름 지역이 한 하늘에 나타난다. 동편은 흐리고 서편은 맑음이다. 맑은 하늘을 보며 사진 한 장을 찍어 둔다. 빗방울은 이내 멎는다.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춘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일기에 변한다. 이제 따가운 햇살이 부담스럽다.
30여분 점심시간을 마치고 서대산 정상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 >
< 제말재 삼거리 전망바위에서 서대산 정상 >
제말재 삼거리 안부의 고도가 840m 수준이다. 정상이 904m
이니 고도를 치고 오르는 데서 오는 힘겨움은 없겠다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작은 오르내림
끝에 사자봉에 닿는다. 수사자의 머리 모양을 한 울퉁불퉁한 바위가 길가에 우뚝 서 있다. 오기 전 읽은 어느 산꾼의 산행기에서 서대산 최고의 풍광지역이라 했듯이 주변의 경관은 멋졌지만 이미 눈에 익어
스치듯 지나친다.
< 서대산 동쪽지역 풍경 / 사자봉에서 >
길이 편해진다. 헬기장을 지난다. 오르며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눈에 띈다. 힘이 난다. 편한 능선 길, 마음 맞는 일행, 좋은 풍광 이것들이 어우러져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이어 지난 북두칠성 바위는 그 형상이 도끼바위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휘어진 갈참나무가 호위해 주는 여름 숲 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숲 사이로 햇살이 비취는 풍경도 근사하다.
< 석문바위 / 바위 안부에서의 전경 >
12시 30분 커다란 바위지대에 도착했다. 이곳이 장군바위인지 석문바위인지 모르겠다. 바위 틈으로 길이 나 있으니 석문바위가 맞겠다. 커다란 바위를 우회한다.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치고 오른다. 한 순간에 고도 차가 제법 난다. 편하게 보이는 평지능선에도 굴곡은 존재하는 법이다. 사람 사는 이치와 같다.
바위로 인해 돌아 든 길 끝 긴 오르막을 치고 오르자 작은 안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바위와 마을과 산들의 전경이 멋진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
< 서대산 정상에서 >
안부는 잠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정보 교환 장소로 변한다. 이제 서대산 정상이 멀지 않았다. 안부를 지났으니 오름이 있음은 당연한 일 작은 언덕을 오르자 저 멀리 돌탑이 보인다. 서대산 정상이다. 높이는 904m이다. 널찍한 공터에 햇살이 따사롭다. 누군가가 쌓아 올린 돌탑이 서대산 정상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 정상에서 드림리조트 >
정상에서 드림리조트까지의 거리는 2km이다. 길도 험하지 않다 하니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며 하산을 완료할 수 있겠다. 벌써부터 하산 후 먹을 연포탕 생각에 입맛이 돋는다.
오늘 산행을 하며 보아온 꽃은 개망초가 전부였다. 하산 길 초입 길가에 노란 양지꽃과 산수국, 싸리꽃이 눈에 띈다. 아침에 본 TV프로에서 싸리꽃의 꽃 말이 ‘사색’이라 했는데, 막상 꽃을 보니 연상이 되지 않는다.
하산 길은 오전 등산 길보다는 길 사정이 좋으나, 습기로 인해 바닥은 미끄러웠다.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작은 전망바위를 지나자 길은 변화가 없이 단조롭고 이어졌다. 하산 시작 근 한 시간 만에 돌무덤에 닿았다. 너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이런 돌 많은 길을 너덜이라 한다고 말하고, 어원은 모르겠다고 하니, 우리의 영민한 신입회원 ‘너덜거린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 한다. 특유의 말 ‘아니면 말고’을 덧붙이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일리 있는 해석이다. ‘너덜거리다 와 너덜’ 분명 상관관계가 있다. 그 통찰력이 대단하다.
문뜩 내가 어렸을 때는 ‘너덜거리는 것’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너덜거리는 책 걸상, 낡은 책, 이곳 저곳이 패여 너덜거리는 도로, 때 국물에 젖은 헤진 옷 등 우리네 삶 자태가 너덜거렸는데,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덜거림에 대해 물으면 그 상태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산 전망대에서의 풍경 / 서대산의 암릉 >
돌무덤을 지나고 서대폭포를 기대하며 걸었다. 고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계곡의 물소리도 들리지 않아 조바심이 극에 달할 무렵 물소리기 세차게 난다. 서대폭포다.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세면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 인근에 바위 위에 올라 발 밑을 보니 절 집이 보인다. 서대폭포의 장관은 그곳에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길을 돌아든다.
성심사라는 절로 들어서는 입구는 금줄이 쳐 잇다. 돌아 드는 길도 없다. 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절 집이 사람의 출입을 이리 막아도 되는 것일까? 무슨 연유라도 있는 것일까? 일순간 중간 기착지가 없어져 버리니 허무한 느낌이 든다. 리조트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는데 생각보다 멀고 오르내림도 있다. 지친다. 먼 길도 지치고 하산 시 산이 떠나가도록 떠들어 되던 초로의 혼성 3인조가 길가 개울에서 옷을 반쯤 벗고 욕탕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더 지친다. 산에서도 예의는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2시면 리조트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0분이 더 소요 되었다. 오전에 눈 여겨 본 몽골 텐트 촌을 지나 다시 리조트로 내려왔다. 오면서 살피니 이곳은 예전에는 꽤 큰 규모로 운영된 유원지 인가 본데 지금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흉물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사람이든 집이든 제대로 가꾸지 되지 않으면 보기 흉하게 변함을 확인한다. 다시 찾은 리조트 주차장 내 애마 ‘미스 고’는 무더운 속에서 나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서대폭포 / 몽고 텐트 촌 >
< 에필로그 >
하산을 완료하고 지나 온 길과 풍광을 되돌아 보니, 서대산은 비록 암름을 낀 풍광이 볼 만 했으나 100대 명산 반열에 이름을 올릴 만큼 멋진 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충청남도 최고 높이라는 상징성이 과대평가를 받은 산이라 판단된다.
여름 산행은 항상 힘겹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셨지만 흐르는 땀으로 수분은 늘 부족했다. 근간에 지리산 종주를 실행하고자 머리에 그렸는데 아무래도 가을로 연기해야겠다.
그래도 오늘 산행에서는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가면서 차분히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았고 산의 향기를 맡고 산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하겠다.
산행 후 유성온천에 들려 목욕을 하고 나니 온 몸이 날아 갈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진다. 문뜩.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이 떠오른다. ‘현재를 즐겨라, 평범한 삶을 살지 말라’라는 말로 번역될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인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온천을 마치고 분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저녁 뒤풀이를 생각하니 행복해 진다. 그래 소소한 생활 속에서의 카르페 디엠을 찾아야겠다.
집에서 오는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안양에는 폭우가 쏟아진다고 걱정한다. 대전은 햇볕 쨍쨍 인데! 역시 우리나라 참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