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졸업생이 궁금하시다구요?
내가 아는, 한 대안학교 졸업생 이야기다. SNS에서 낯모르는 사람이 팔로우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본인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대안학교 졸업생은 어떤 어른이 되었나, 궁금한 부모들인 대부분이란다. 그래서 SNS 활동이 심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나는 아들이 둘인데 둘 다 대안학교를 보냈다. 12년제 발도르프학교다. 큰 애는 졸업을 했고 둘째는 고3(12학년)이다. 우리집 애들이 대안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묻곤 한다. 대개는 왜 대안학교를 선택했는지, 그 선택에 만족하는지, 학교는 대안을 선택했지만 졸업 후의 삶에 대안은 있는지. 어떤 분은 존경한다며 감탄하고 어떤 분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미묘한 이질감을 갖기도 한다. 대체로는 좋은 건 알겠는데, 나는 당신처럼 용기도 신념도 없어서 그냥 공고육 학교에 보낸다고 한숨을 쉬며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용기와 신념.
그런 거창한 것이 나에게 있나? ‘얇은 귀’ 순위가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10프로 안에 들 것이 확실한 나인데. 내가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대단한 교육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학교’라고 했을 때, ‘교육’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하는 기준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첫째, 교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성적이나 부모 입김 같은 것이 아이를 대하는 교사의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심 따위는 잠시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애가 어릴 때만 해도 촌지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런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다.
다음으로 학부모에 대한 신뢰다.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학부모, 양육자의 성숙함이 필요하다. 물론 가정마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지만 나는 함께 아이를 키우며 나도 행복한 그런 교육을 지향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가고 싶은 학교.
사람들은 학교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 있느냐 묻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학생이라면, 그리고 학교를 고를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단순한 기준이 신념이고, 당연한 선택이 용기라면 아마도 나는 신념과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보다.
그.래.서.
아이는 바라는 대로 컸느냐, 대안학교는 그런 바람을 채워주었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NO' 절반은 ’YES’다. 아이는 부모의 바람이 어땠건 자기의 결, 그대로 컸다. 대안학교를 나왔으니, 주도성이 뛰어나고 자기 인생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고 창의성이 뛰어난 행복한 사람이 되었느냐면 ‘아니’ 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안학교를 졸업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일생을 가져가야하는 과제일 것이다.
다음으로, 처음에 생각했던 교사, 동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기대는 채웠는가 하는 질문에는 분명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공교육 학교를 다녔어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행복했고, 함께 크는 아이들을 보며 때로는 속도 썩고 때로는 감탄도 하면서 깨지고 배웠다. 교사들은 학력과 능력을 떠나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헌신하셨다. 늘 노력하는 모습으로 모범이 되었다. 아이들이 빛과 같은 존재임을 눈으로, 손과 발로 느낄 수 있었고 기적에 가까운 경험을 여러 차례 가질 수 있었다. 아픔도 시련도 반복되었지만 함께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낙관도 얻었다.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작은 등불이 내 마음 깊숙이에 켜졌다.
지금은 ‘대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앞으로 학교 교육은 더욱 다양해지길 바란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학교뿐만 아니라 민간과 정부가 함께 하는 형태도 좋고 민간 주도의 학교도 좋다.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학교도 좋고 아이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학교도 좋다. 좀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학교들, 다양한 교육이 꽃피는 학교를 상상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국가에서 인정한 교과서만을 배워서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전국에 있는 학생들이 밤늦도록 공부만 하던 시절도 있었대. 어떻게 그 게 학교야?” “정말? 학교 가기 너무 싫었겠다.” “설마, 가기 싫은 학교가 어딨어?”라고 말하는 시대가 오길.
꿈인가? 왜? 꿈꾸면 안 되는가?
첫댓글 제목이 우선 관심을 확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아이는 바라는 대로 컸느냐, 대안학교는 그런 바람을 채워주었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NO' 절반은 ’YES’다. 아이는 부모의 바람이 어땠건 자기의 결, 그대로 컸다." 이 부분 특히 좋았구요.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의 모습인가 하는 선생님의 질문 또한 부모인 저를 뜨끔하게 만들어요. 앞으로 선생님이 들려주실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얘기라 조심스러웠는데 에라 모르겠다 썼어요.ㅋ 정혜신님 말씀처럼 집단화 될까 걱정이...샘이 호응해주신 용기가 나네요.^^
소희 샘 글은 늘 패기가 느껴져요. '꿈인가? 왜 꿈꾸면 안되는가?' 👍
대안학교 졸업생은 어떤 어른이 되었나?
가 궁금한 것처럼 '사교육걱정' 부모들의 자녀는 어떻게 자랐나도 많이 궁금해 하십니다.
교사, 학부모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가고 싶은 학교라니, 아....!
간결하면서도 새로운 삶에 동경을 샘솟게 하는 힘 있는 글 써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혼자 제주여행 갔을 때, 역시 혼자 온 친구를 만났더랬죠. 저보다 10살 넘게 어린 친구였는데 생각이 너무 어른스럽달까요? 얜 뭔데 생각이 이래?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안학교 출신임을 알게 됐어요. 성급한 일반화로 또 "역시 대안학교 출신!!!" 이러고 다녔더랬죠. 대안교육을 시키고 있는 사촌언니랑 이야기를 나누며 중고등 교육은 일반 공교육으로 결정한다는 말에 이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종국엔 "그래서...그 애들이 어떻게 사는데? 잘 살아? 직업은?" 결론을 묻는 질문에 입꾹 되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어떤 '결과물'에만 방점이 찍혀있었단 생각이 글 읽으며 들었네요. 아이 결대로, 하지만 행복하게. 캬! 벌써 조카 아이는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선생님 글을 좀 보여주고 싶어요.
글을 읽는데 기분 좋은 소름이~~~~
마지막 문단 읽으며.. 정말 그렇게 과거의 학교를 회상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희 쌤 글을 읽으면 소희 쌤 삶이 그려져요. 멋있어요.
그래서 쌤 글에서는 힘이 느껴집니다!!
👍
다들 같은 감상이신 거 같아요! 선생님 글에서 느껴지는 힘!!! 그건 삶에서 나오는 거겠지요…! 더더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선생님의 세계 :-) 일오집부터 12년 대안학교까지… 들려주실 이야기 늘 기다릴게요!
다들 과찬을 하셔서... 하 이건 제 의도가 전혀 아닌데... 그래도 으쓱해진다능 하하
ㅎㅎ 샘 의도는 뭐였는데요~?
@채송아 그냥 별 생각 없이도 대안학교 보낼 수 있다...가 제 의도예요.ㅋ
꿈이 아니라고 한 표 던지고 싶어요!!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저 또한 많은 고민 가운데 있고요~ 작년에 아이들을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보낼지 고민했었고, 지금은 현실적으로 홈스쿨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어요. 실행하신 분들과 아이들에게 정말 궁금한 부분이 많아서 책으로, 강연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도 궁금한 게 참 많네요~
그렇죠. 더디지만 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