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협 ‘대학별 수능최저 완화와 응시영역 변화’ 예고 |
대교협 ‘대학별 수능최저 완화와 응시영역 변화’ 예고
지난해 12월발표 이후 올봄 입시설명회에서 재탕, 이번에 삼탕... 다음엔 맹탕?
[베리타스알파=김정식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누더기 대입전형’ 사태가 가시화하고 있다. 대교협이 지난 9일 각 대학에 ‘2014학년 수능 관련 변경에 관한 심의 신청’ 공문을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공문에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의 완화 또는 폐지 ▲예체능계열의 수능 A/B형 선택 변경 등을 논의할 예정이니 심의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대입전형안은 지난해 12월 대교협 발표 이후 학과통폐합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내용을 고칠 수 없게 되어 있는 방침을 대교협 스스로가 수능을 5~6개월 앞둔 시점에 깨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의 경우 수시전형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지난해 얘기됐던 3년 예고제가 아니라 ‘3개월 예고제'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미 2011년1월에 발표된 선택형 수능 시행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다 2014학년 수시전형을 3개월여 앞두고 부랴부랴 손을 대며 대학별 전형안 뒤흔들기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대교협측은 입시안 수정 공문을 낸 이유에 대해 “올해 처음으로 시행하는 A/B 선택형 수능과 관련해 대학들이 준비된 입시안을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수험생의 불이익을 막고 학습부담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대학이 수정을 원하면 심의할 것”이라 밝혔다. 모 대학 입학처장은 “오는 20일 회의를 거쳐 23일 결정될 예정이라 알고 있으며 결정 이후 교육부 승인절차가 필요하지만 대학별 수정발표는 확실시하다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한편 대교협측은 수정된 2014학년 입시안을 늦어도 이달 말 대입전형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거쳐 6월까지 확정•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교협의 수정발표안에 따르면 ‘수능 4개영역 중 상위 2개영역의 등급 합이 10이내’가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 혹은 ‘수능 4개영역 중 상위 2개영역의 등급 합이 12이내’ 식으로 폐지 혹은 완화되는 형태다. 예체능계열의 경우엔 ‘미대 체대 지원자의 수능응시과목: 국어A, 영어B’가 ‘국어A/B, 영어A/B’로 바뀌는 식이다.
이번 입시안 변경은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상위권 대학 역시 흐름을 같이 할 전망이다. 지방 국립대의 한 입학처장은 “수능최저등급 완화 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수능최저 완화처럼 수험생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전했다.
선택형 수능에 대해선 이미 현장에서 많은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실력보다 요행에 성과를 기대한다”는 우려에 있다. 올 1월 9개 주요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입학처장들이 ‘A/B 선택형 수능의 시행을 유보하라’는 제안서를 발표한 이유다. 처장들은 “학생의 A/B형 선택과 대학의 A/B형 선택이 얽히고 여기에 B형 가산점까지 도입되면 대학입시가 더욱 복잡해지고, 대학입시 컨설팅이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입시 유불리를 따진 유형선택으로 합격여부가 달라지면서 불거질 병폐, 일부 과목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학습부담이 가중될 가능성, 고교현장이 학생의 의사에 따라 A/B형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현실, A/B형 선택 비율에 따른 고교서열화”의 문제점도 제기했다. 당시의 유보 성명은 수능을 10개월 앞두고 교육계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입학처장들은 “늦게라도 바로 잡을 필요가 분명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선택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긍정적이라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가 몇몇 입학처장들과 고교 진학지도교사들 위주로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선택형 수능에 따른 변수가 상위권 대학엔 크게 미치지 않을 것인데다 당장 올해 유보 가능성이 없는 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입김 쎈’ 9개 대학 입학처장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대표격으로 성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봄 발표된 일부 대학들의 입시안엔 문제가 많다. 국수영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중 유형을 택하는 방식인 올 수능에서 쏠림현상에 의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대학들이다. 주요대학들이 기존 등급 외에도 백분위 기준을 도입하거나 등급합의 범위를 넓힌 것과 달리 일부 대학들은 지난해와 동일한 수능최저기준을 발표하거나 A/B 모두를 허용하면서도 B형에 대한 가산점을 주지 않아 A형을 치르는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예체능계열의 경우는 주요대학에도 대학별로 요구하는 유형이 나뉘어있어 대학선택에 따른 유불리라는 문제까지 있다. 지난달 20일 고려대의 입학설명회에서도 학부모들은 “예체능계열 A형이 의무화되면 다른 계열 지원은 아예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A/B형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널 뛰는 대학별 입시안 탓에 공교육현장에서의 진학지도대비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대학들이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와중에 생긴 ‘구멍’을 찾으라며 사교육입시컨설팅업체가 호황을 맞이하는 등 부작용도 생겼다. 대교협 주도의 이번 입시안 수정에 대해 “애초 잘못되어 있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현장반응이 대세인 이유다.
문제는 수험생 피해다. 수험생들은 교육부와 대교협, 대학이 내는 엇박자에서 대통령이 주장하는 ‘3년 예고’가 아닌 대학의 ‘3개월 예고’에 갈피를 못 잡고 원서작성 직전까지 대혼란의 수순을 겪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문제다. A/B 선택형 수능은 수험생의 학습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설익은 정책을 과도하게 밀어붙인 면이 있다. 모 대학 입학처장은 “선택형 수능은 정권이 바뀌고 인사가 바뀌면서 뒤에 이어지는 정권과 관계자의 뒷설거지가 불가피한 전시행정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대학편의에 따른 절차의 문제도 크다. 올 입시안을 지난해 11월 말까지 대교협에 제출한 이후 대학별 홈페이지에 입시안을 공개하는 일은 올 4월말에서야 이뤄졌다. 지난해 가을에 치른 논술고사의 기출문제의 공개 역시 4월말에 이뤄졌다. 서울대와 서강대 단국대 등은 5월중순인 현재까지도 논술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늦어지는 정보공개에 대해 모 대학측은 “지난해 가을 겨울 한창 입시를 치른 후 올 2월 추가모집까지 전형을 치르느라 정신 없이 바빴고, 3월엔 올해 업무계획을 정돈하느라 4월에 이르러서야 발표가 된 것”이라 항변하지만, 이는 대학들의 ‘수퍼 갑’ 행태와 다름 없다. 모 사설업체 입시전문가는 “대학이 생각해야 할 건 올해 ‘신입생 성적의 풍작으로 이어지는 대학서열’이 아니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1~2 학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입시정보 공개”라며 “아무리 바빠도 기출문제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도의 일이 6개월이나 걸릴 일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대학들이 기민한 대응을 못하는 데엔 보통 2년 순환 체제의 입학처장직의 탓도 있다. 입학처에서 입학처장의 공력은 매우 중요하다. 복잡한 입시에 대해 이해할 시간은 입학처장들에 따르면 “보통 2년”이라고 한다. 입학처에서 3~4년 정도 지내 입시에 대해 ‘정통’하게 되면 입학처를 떠나는 게 대부분이고, 감을 잡기 시작하는 1~2년 차엔 바뀐 정책에 기민하게 대응하기엔 공력이 덜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 간 입시만 쳐다보는 사교육기관의 입시연구소장직 체제와는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2014학년 전형안을 작년 11월까지 제출해야 했던 대학들은 2013학년 입시를 한창 치르고 있던 와중에 부랴부랴 어설픈 내용을 제출해놓고, 공표는 입시설명회를 진행하며 올 4월에서야 진행했다. 대학들 공표 이후 문제점을 직시한 대교협이 수시전형을 3개월여 앞둔 5월, 수정안을 모색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다.
대교협이 입시안 변경을 편의대로 주무를 수 있는 배경엔 대학입학전형위원회가 전적으로 대학에 유리하게 구성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각 대학이 이미 발표한 모집요강을 변경할 때는 대교협의 대학입학전형위원회 심의 의결 절차를 거쳐 확정해야 하는데 위원회 1기와 2기 총 21명 중 11명이 현직 대학 총장이다. 위원장 역시 대학 총장(한국외대)이다.
이번 입시안 변경은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상반되는 흐름이기도 해 교육현장에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 ‘대입전형 3년 예고제’ 시행을 강조한 바 있다. 중3 때 자신이 치를 대입전형 내용을 알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3년 예고제는 올봄 교육부의 대입간소화 정책 발표 당시 안건이 아예 사라져 한 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3년은커녕 ‘3개월 예고제’를 내민 대교협의 조치는 뒤늦게라도 수험생을 위한 일부 미조정 취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수시전형을 3개월여 앞둔 시점이라는 건 문제가 크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고교현장 역시 “수정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원서접수와 수능시험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입시가 또 바뀐다는 것은 당황스럽다”는 의견이 대세다.
게다가 대교협이 규칙을 깨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 상반기 중 개정을 완료해 2014학년 입시부터 적용할 예정이라 밝힌 바 있다. 대학이 대입전형시행계획을 입학연도 개시 1년3개월 전(전년도 12월)에 모집인원과 전형방법 등을 담아 공표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많은 대학들이 시행계획 발표 이후 대교협의 심의를 거쳐 계획을 변경하는 사례가 잦아 발동된 조치다. 올해만 해도 대부분 대학들이 2014학년 전형계획안을 홈페이지 등을 공표한 시기는 수시전형을 5개월 앞둔 올 4월말에서 5월초였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대학들이 시행계획을 만들 때 준수해야 할 내용을 담은 대입전형기본사항도 공표 이후에는 특별한 사유(구조조정을 위한 학과통폐합, 선발인원이 바뀌게 되는 행정처분 등의 제재를 받은 경우)가 없으면 바꿀 수 없게 했다. 2011년1월에 발표된 선택형 수능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 일부 대학들의 입김에 대교협이 개정 직전에 부랴부랴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전형을 코앞에 두고 입시안이 바뀐 사태는 이미 지난해에도 겪었다. 박홍근(민주통합당)의원실이 지난해 대교협 심의 의결을 통과한 전국 4년제 대학 모집요강 변경 내용을 제출 받아 분석한 결과, 전국 139개 대학이 2월부터 8월까지 모집요강을 변경한 사례는 총 971건이었다. 모집요강 변경시기 역시 황당했다. 수시모집 시작을 불과 3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5월 이후 전형방법을 변경한 경우가 120건에 달했다. 5월 32건, 6월 54건, 7월 14건, 8월 20건으로 수시모집을 목전에 두고 전형방법을 변경해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전형방법을 포함해 모집요강의 세부 내용을 변경한 경우, 2~3월에 가장 많이 일어났지만(2월 350건, 3월 343건) 5월 이후 모집요강이 변경된 경우도 283건이었다. 심지어 7~8월에도 각 26건, 50건의 요강변경사례가 있었다.
고려대 연세대는 7월 말에 이르러서야 수시모집을 한 달 앞두고 수시모집요강을 확정발표했다. 10건의 사항을 심의 없이 대학 자체 결정으로 변경해 가장 많은 적발을 당한 대학으로 꼽힌 연세대는 수시모집요강 발표 후 열흘이 지나서야 최초 계획 대비 변경사항을 공지하기도 했다. 기존 발표에는 우선 모집단위를 선택한 후 지원 가능한 전형 및 트랙을 선택(복수선택 가능)할 수 있었으나 공지를 통해 전형과 트랙을 선택한 후 1개의 모집단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했다. 고려대도 수능 전 논술고사를 실시하겠다고 연초 발표했으나 확정요강에서는 수능 이후로 논술고사 일시를 번복했다.
지난해의 ‘누더기 전형’이 올해도 재현될 가능성이 확실한 가운데 올해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수험생들이 입을 전망이다. 지역 교육청까지 나서서 수시강화 대입체제에 대한 교원연수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해당지역의 고교 상당수는 “수시는 로또이니 정시에 올인하자”는 입시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지방의 한 교사는 “나이 든 교사가 많은 사립고일수록 변화대응에 둔감해 교육체제를 바꾸기 힘든데다가 의욕 있는 교사라 할지라도 대입전형이 자주 바뀌니 수시전형을 준비할 엄두를 못 낸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교사는 “얼마 전 학생부 기재지침이 외부 스펙을 전혀 쓰지 않는 것으로 새로 내려온 터라 안 그래도 업무가 엉켰고 올 여름은 학생들 자기소개서를 봐주고 추천서를 쓰는 데도 고행이 예상되는데 이제야 겨우 정리한 대학별 전형안마저 또 바뀐다면 어떻게 대응하란 말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전국단위 자사고 교장은 “대교협이 작년 11월 말에 대학들로부터 내용을 받아 뿌린 대학별 전형 책자가 저리도 두꺼운데 읽을 건 하나도 없다”며 “어차피 여름까지 수 차례 바뀔 내용이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교감은 “매년 대학별 입시자료에 대해 분석자료를 내고 준비방안을 강구하지만 선택형수능을 치르는 올해는 고교현장에 일 대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며 “입시정책이 이런 식이니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힘이 실린다”고 우려했다. 모 대학 입학처장은 A/B 선택형 수능이 시행되는 올 입시에 대한 현장의 난감함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방법이 없다, 기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