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8일
신경림론- 가장 고결한 민중:자기의 내면화
김승환(민예총 청주시 지부장·충북대 교수)
1.문학 백정 시절과 민중 신경림
달빛이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멀고 험한 텍스트의 길을 향하면서 나는 이러저런 것들을 담아 넣는다. 스치는 생각-이번 여로(旅路)는 얼마나 길까.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감긴다.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겠지?-텍스트는 무한한 것이니까--. 잘못 짚어 허공 중에 거꾸러지는 때도 있으렷다-텍스트엔 많은 함정들이 숨겨져 있으니까--. 여하간 즐겁고도 괴로운 일일 것이다, 텍스트의 길은. 늦봄이었지만 계절을 잊은 낙엽이 교정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로 하얗게 달빛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세상은 여행이며 그 여행의 길을 따라 한 세상 사는 것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평범한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은 다가왔다. 전화의 목소리는 신경림 선생님의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읽어 보라는 의미의, 언뜻 들으면 의논성스러운 상의였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일종의 통고(通告)를 전했다. '그러는 것보다는, 그러지 말고' 등의 말을 나는 '띠' 소리나는 기계에 대고 하고 있었다. 상황이 묘했다. 전파는 빛으로 변해서 나를 묶어 버린다. 아파트의 빈 창문에 길다란 실루엣을 만들며 수만 가닥의 동아줄이 나를 묶어 버린다. 황망한 나는 달빛을 보다가 다섯 발자욱을 내디뎌 컴퓨터 앞으로 다가선다. 교교한 달빛은 컴퓨터에서 회색 빛으로 은은하게 비치고, 나는 그 회색 빛을 따라 10년 전쯤 만들어 둔 파일을 꺼냈다. 5.25인치 하늘거리는 플로피 디스크--. 거기 목계 신경림은 다음과 같이 갇혀 있었다. '독서노트' 라는 이름으로.
독서노트 1 - 문학 백정, 문학 백치 시절
내가 짜라투스트라의 니이체와 죽음의 키에르케고르를 읽고 있을 때 그는 마오쩌퉁의 모순을 읽고 있었다. 내가 로만 잉가르덴을 읽고 있을 즈음 그는 탑싸기 냄새 나는 농민문학론을 쓰고 있었다. 내가 철학 중의 철학이라는 현상학의 논리에 심취해 있을 때나 야우스의 그럴듯한 수용미학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종로 네거리에서 매캐한 최루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푸르른 날」이나「을화」와 같은 문학의 몽환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는 지하 감옥에서 억센 군화 발에 밟히고 있었다. 문학청년인 내가 도서관 깊은 서고에서 찾아온 자료더미에 묻혀 있을 때 그는 녹음기 하나 달랑 메고서 천오백 리 곡곡방방을 떠돌아다녔다.
내가 헤겔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 이미 그는 사상의 순결을 민족에 바친 후였다. 내가 문학선생이 되어서 문학을 입으로 이야기할 때 그는 <문학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와 같은 진실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현학적인 체하던 내가 저 난해하고 명징하며 정교한 이론의 숲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는 표표한 바다에서 부표 하나 남기고 떠다니고 있었다, 어부가 되어. 내가 수많은 문학이론에 짓눌려 있으면서 그 이론들을 다 섭렵하고 나면 문학의 달인(達人)이 되어 있으리라는 찬란한 꿈을 갈고 있을 때, 그는 허름한 웃음으로 파시즘을 막고 있었다.
아, 내가 문학의 백치(白痴)였을 때 그는 아다다를 부르면서 질척한 민중의 숲 속에서 민중을 위해 민중이 사랑하는 민중의 시를 쓰고 있었다. 아니 그는 저 허위의식에 가득 찬 학자 교수 비평가들이 갖가지 이론으로 문학을 더럽히고 있을 때 그는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실천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사실 그에겐 민중이거나 역사라거나 하는 용어도 필요하지 않다. 시인이라거나 재야인사라거나 하는 명칭도 필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개천에 버려진 감석더미요 줄장미요 작약이며 대서방 아저씨다. 그는 금빛 숫햇살이고 국수틀이며 시루편이고 느티나무, 쿠다라관음, 늙고 초라한 아버지다.
그렇다, 그가 연출한 <7,80년대 대한민국공화국>은 차고 어두운 무대. '봄 바람처럼 한없이 부드러운' 그의 내면엔 칼날 서리의 강인함이 있어 우리는 그의 손끝을 따라 7,80년대의 늪을 빠져 나왔다. 그가 대관하여 비극적인 서사시로 연출한 20세기 한반도는 슬픔의 고장. 남한강가 쇠무지벌만큼 슬픈 마을. 그는 슬픔을 사랑으로 바꾸는 연금술사. 197,80년대에 문학사에서 걸출한 이름을 남긴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문예운동가인 문제적 인물. 그러나 그는 원한도 저주도 증오도 잊고서 아무렇게나 불러도 될 이름 신경림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이 시대의 아픔이자 눈물이고 스스로 민중이자 소박한 한 아비일 뿐이어서 함부로 불러도 될 이름, 신경림. 마음대로 불러도 될 그 이름 민중 신경림.
하늘 높고 물 깊은 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적(知的) 사치에 자만하는 백치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20년쯤 전 나는 문학의 백치였으며 작품을 살해하던 아주 무식한 문학 백정이었다. 문학 백정(白丁)이 갖가지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채 장비 장팔사모창 쓰듯 되나가나 작품을 난도질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어찌 나만의 일이랴, 이 땅에 아니 이 세상에 문학을 한다는 꿈을 품은 모든 사람들의 과거 한 페이지이리니--. 컴퓨터의 지하감옥에서 갇혀 있던 글과 이러한 생각들이 떠오르자 나는 흠칫 놀란다. 램프불 칸델라불 전등불로 어두운 지하감옥을 밝혀야만 하리라는 초조함에 휩싸인다. 거기서 나는,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의 과거는 매우 불행한 화석으로 굳어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위로한다. 그 곁에 문학교수 한 분이 나타난다. 깎은 듯한 바위 얼굴이 연상되자 나는 흠칫 놀라며 옛날과 오늘을 오간다. 다행히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게 되어 겨우 백정을 면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백치였다. 10년 전쯤엔 그래도 내가 백치나 백정(白丁)밖에는 못된다는 것을 깨닫던 무렵 정신없이 기록해 둔 민중 신경림은 엑스티(xt)라고 불리던 컴퓨터 속에 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달빛이 쏟아지던 날, 나는 컴퓨터의 미로를 헤집고 다닌다.
독서노트 2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시적 진실은 인간적 진실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시와 시인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갖가지 시적 표현과 수사로 치장한 시들이나 골방에 앉아서 갈고 닦는 기법들은 이 대목에서 빛을 잃어버리리라.「파장」의 기막힌 대목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이 대목은 신경림이 아니고서는 담아내지 못할 표현. 감각과 재능으로 시를 쓰는 뭇 시인들과 그를 구별해 주는 것은 바로 이 대목. 온갖 원한과 증오와 사랑과 눈물을 단 한 줄로 담아낸 그의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솜씨.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아니라면, 인간적 진실의 힘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을 하기 어렵다. 상징이나 비유나 역설이나 이미지 등의 기법을 잘 쓰지 않은 그는 이야기를 즐겨하고 절제된 묘사를 잘 쓰며 눈에 잡힐 것 같은 그림을 이처럼 쉽게도 그린다. 그 깊은 한(恨)을 잡아낸다. 풋풋한 삶의 모습을 재현한다. ---------.
약 10년 전 내 컴퓨터의 파일들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쓰지도 않게 되어 버린 플로피 디스켓 속에서--. 하늘을 본다. 검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이튿날, 나는 짐을 꾸렸다. 그리고 내달린다, 그의 고향 충주로. '못난 놈들'이나 '가설무대'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나는 청주-충주간 36번 도로를 질주한다. 「농무」나 「목계장터」의 전설을 찾으러 하루를 보냈다. 연화리 상입장으로, 노은초등학교로, 가흥으로, 목계로, 중원 고구려비로 헤매고 다니면서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실루엣, 흐릿한 옛 자취를 찾으러 다녔다. 내가 찾는 것들은 없었다. 아무 곳에도 '못난 놈들'은 없었다. 파릇한 잎들과 그늘진 농사꾼과 그들의 소리와 삶의 악다구니는 있었으되 '못난 놈들'은 없었다. 사진기라고 불리는 기계의 망막들은 단 하나의 실루엣도 담지 못했다. 나는 허망한 마음으로 는개 흩뿌리는 충주-청주간의 아스팔트길을 되짚어 왔다. 어스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2.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빛
그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은 나를 비웃고 있는데--. 고요한 밤 나는 일어나 신문을 떠들어 본다. 10년 전과 20년 전 문학의 백정 시절을 회상하면서---. 왼손엔 시집을 오른손엔 해설 기사를 들었다. 신문은 '자신의 내면 탐구'라는 식으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있었다. 나는 정좌를 하고 대결하듯 텍스트를 펼쳐 놓는다. 호흡을 가다듬고 텍스트 읽기를 시작할 때 그의 가장 훌륭한 후배 한 시인이 열쇠 하나를 내민다. 그가 내민 '사과 꽃 위에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과 '먼길 갈 때마다 만나는 구절초'(도종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p.98)의 열쇠를 받아 쥐고서 차근차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쯤 되는 통독---. 나의 망막 속에 다음과 같은 서술들이 별처럼 박힌다.
텍스트 읽기 1 - 자기 존재의 길 찾기
이 시집의 시들은 시인 자신이 체험한 과거의 흔적, 자잘한 삶의 궤적들, 자기가 만난 사람들, 갈등과 긴장 대신 화해와 용서, 사물에 대한 깊은 성찰, 가족사적인 이야기들, 삶의 공간인 집에 대한 상념, 기행 중에 얻어진 이야기들, 자잘한 것들 재인식하기, 지난날에 대한 회한, 90년대 현실에 대한 절망감, 통일지향의식, 환경문제 등 매우 다양하다. 슬픔과 좌절과 회한과 회상과 과거와 불안 등의 키워드(key word)들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자기 속으로 성큼 다가서 있고 대상인 세계(welt)와 거리는 아주 좁혀져 있다.
나는 그래서 그가 '자기 존재에 대한 궁극적 길찾기'를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의 처녀작으로 알려진「갈대」나「사화산·그 山頂에서」는 실존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는 60여 년의 인생역정을 돌아보고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때가 되었으며 그 성찰의 보석들이 여기 담겨 있는 것이다. 시적 자아이면서 시인 자신인 신경림, 그는 진실한 자기 존재를 찾아 내면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경림이라는 존재(본질)와 현실 세계 속에서 사는 신경림이라는 실존을 일치시키고자 그는 자기에 대한 진지한 여행을 시작했다.「갈대」의 존재론적 의문에 이제 그는 스스로 답할 차례가 되었던가?
14인치 컴퓨터 화면에 박히는 서술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기 존재를 찾아서 깊은 내면으로 여행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에 땀이 가득하다. 자판을 오르락거리는 손이 촉촉히 젖는다. 나의 서술은 이어진다, 다음과 같이.
텍스트 읽기 2 - 빛(시간)과의 화해
인생의 길을 따라 62년을 헤맨 그가 62 수의 시를 묶은 것은 분명 우연이겠지--?.「세월이 참 많이도 가고」「별」「귀뚜리가 나를 끌고 간다」와 같이 자기 삶의 흔적들을 그는 빛을 타고 가서 만나고 지운 다음 시에다 담아 두었다. 자기 안으로의 여행인 셈이다. 그는「쓰러진 자의 꿈」에서부터 내면탐구의 방향을 예고 한 바 있지만『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 이르러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이 치열함 또는 긴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일찍이 유종호 교수가 다른 시들을 추문(醜文)으로 만들었다고 찬탄한 그의 빛나는 감각은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가 말한 것처럼 편안한 시(『길』p.116)란 이런 것인가?「농무」에서 보여준 치열한 정신과 빛나는 감각을 사라지게 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민중적 내용을 민족적 형식으로 탁월하게 시화(詩化)한 그의 리얼리즘 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시간 즉 빛 또는 세월이 그의 치열함을 앗아간 것은 아닐까? 시간은 정신을 녹이고 원한을 녹이고 증오를 녹이며 사랑을 낳고 화해를 낳고 용서를 만든다. 그의 시간은 그의 강인했던 민중정신의 모서리를 쪼아서 부드럽게 만드는 한편 쉽고 평이했던 그의 시를 더욱더 쉽고 평이하게 만들어 버렸다.
내 텍스트 읽기는 쉬운 시와 치열한 시의 갈등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시와 시인을 혼동하면서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본다. 거기 혁명가 신경림이 있었고 여기 두보(杜甫) 신경림이 있다. 나는 두 극점의 거리를 분주히 오간다. 그리고 묻는다 - 7,80년대 혁명의 힘과 역사적 진실이 가득해서 그것만으로도 빛나던 그는 이제 신선이 되기로 작정한 걸까? 이런 유추를 통해서도 저 찬란한 「농무」와 「눈길」과 「폐광」의 전설(傳說), 그러니까 삶에 대한 치열한 긴장(tention)이 사라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싸우리라 만년이라도 싸우리라/싸우리라 십만년이라도 싸우리라/내 나라 되찾았다 하나 좋아진 게 없고/내 세상 되었다 하나 달라진 게 없으니>(「쇠무지벌」 중에서)라던 그의 치열한 의식들은 대체 왜 사라졌단 말인가. 당황스럽다. 문학이란 지렛대로 세상을 움직이고자 했고 또 움직였던 따스한 혁명가 신경림은 어디 갔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치열함과 긴장 대신 진실과 사랑과 화해를 넣어 보기로 했다. 그의 치열한 의식을 앗아간 시간(빛)은 화해와 사랑과 나눔이라고 중얼거리는 나의 눈에 「더딘 느티나무」가 다가선다.
할아버지는 두루마기에 지팡이를 짚고
훠이훠이 바람처럼 팔도를 도는 것이 꿈이었다
집에서 장터까지 장터에서 집까지 비칠걸음을 치다가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고 개울을 건너가 묻혔다
할머니는 산을 넘어 대처로 나가 살겠노라 노래삼았다
가마솥을 장터까지 끌고 나가 틀국수집을 하다가
느티나무가 다섯자쯤 자라자 할아버지 곁에 가 묻혔다
아버지는 큰돈을 잡겠다며 늘 허황했다
광산으로 험한 장사로 노다지를 찾아 허둥댄 끝에
안양 비산리 산비알집에 중풍으로 쓰러져 앓다가
터덜대는 장의차에 실려 할아버지 발치에 가 누웠다
그 사이 느티나무는 겨우 또 다섯자가 자랐다
내 꿈은 좁아빠진 느티나무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을 건너 산을 넘어 한껏 내달려 스스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신이 늘 대견하고 흐뭇했다
하지만 나도 마침내 산을 넘어 강을 건너 하릴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 발치에 가 묻힐 때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 들입다 내달리지만
느티나무는 참 더디게도 자란다
(「더딘 느티나무」 전문)
나는 이 시를 읽고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보았다. <①시간의 흐름은 의식의 변화와 비례한다. ②그의 의식은 빛(시간)을 타고 내면으로 과거로 회귀한다. ③이제 자신만 남아서 고독한 자신과 홀로 대면하고 있다. ④이 시들은 가족과 과거와 자신에 대한 깊은 내면적 성찰이다. ⑤이 모든 것들을 관류하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빛이 있다.> 너무나 관념적이다. 신경림 시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고독했다. 다시 또 나는 생각에 잠긴다. 램프불 - 칸델라불 - 전등불을 거쳐 실루엣을 만든 그는 이제 돛을 내리고 우주의 항구에 정박하려 하는가? 서정적 자아를 완전히 자신과 일치시키고 과거와 내면에 대한 고백성사의 통과예식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를 우리는 그저 읽기만 하고 말아야 하는가?
내 상상은 자유였다. 내 망막엔 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종묘공원의 장례행사시가, 민예총이 빛을 타고서 실루엣으로 흘러간다. 나의 졸려서 몽롱한 귀에는 내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역사적 폭발성, 문학적 생명력은 아직도 여전한데 그는 정박해서는 안 된다, 귀향해서는 안 된다고 나의 내면은 소리친다. 마치 그의 귀향과 그의 회항(回航)을 가로막아야 하는 필연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를 다시 거친 바다로, 홍진의 싸움터로 돌려보내야 하는 그날 밤, 나는 저승의 수문장이었다. 밤은 깊어간다.
꿈속에서도 계속되는 것은 -그럴 리가 없을 텐데-였다. 아직 그가 이루어야 할 유토피아는 멀었고 지금도 그는 많은 술을 마시며 그가 바라보는 눈빛은 아련하므로 아직은 그럴 리가 없어야 한다고 나는 주억거렸다. 게다가, 아니 세상에 시인 치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 시인이나 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나를 돌아보고 싶어졌다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사랑과 화해로써 세상을 관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의 본질이므로 말할 것도 없을 터. 시집 구석구석을 넘나들면서 완숙해진 시인의 경지와 한층 섬세해진 감각과 여전히 소박한 그의 철학을 읽을 수는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이 그 원인이라는 데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여전히 꿈속이었다. 가르마 같은 꿈결 따라 나는 텍스트 여행을 계속한다.
3.민(民)사상-새 세상에 대한 역사적 전망과 그 전망의 내면화
교교한 달빛이 창가에 스치운다. 초조했다. 하염없이 내달리는 차들과 새벽빛 몰아 오는 시간의 질주가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의 저 아름다운 「눈길」과 「목계장터」를 나직이 읊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 <아, 나는 여전히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백정인가>. 저 견고한 신경림 시의 내면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자 그가 역사와 대결하고 있고 사회와 싸우고 있다는 식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민중과 통일과 노동을 노래한 자신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 시작이 『길」이었고 그 자성의 가족사적인 표현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이라고 해석하고 나서 나는 즐거웠다. 그럴 법했기 때문이다. 시인과 시를 분리시키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감각이 체험의 힘을 몰아다가 자신의 내면 속으로 다가가게 한 것이라고 나는 덧붙였다. 즐거웠다. 그것도 그럴 법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시와 비판적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에 의해 씌어진 것이 「농무」였다면 자신에 대한 회한과 반성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바로 이 시집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기로 했다. 즐거웠다. 그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므로--. 「추운 가을」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현실인식은 다소 비극적이다. 현실의 비극을 역사의 힘으로 상쇄시킬 수 없을 때 내면으로 잠입하게 된다. 7,80년대 그의 시와 90년대 그의 시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분석의 칼날을 험하게 휘둘러 본다. 비평가의 특권은 남용되고 있음에 분명하지만 나는 모처럼 즐거웠다. 그러면서 나는 이 시집의 시들이 자기폐쇄적이 아니라 자기성찰이며 회한과 회상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임을 읽는다. 그래서 삶과 시의 만남으로 일단 이해하기로 했다. 그 때 지쳐 들어오는 생각이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와 사회주의에 대한 절망>-이것이다. 이것일 것이다. 그가 자기내면의 길로 들어선 원인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더욱 즐거워진다. 그가 그토록 기다렸던 새벽은 부연 빛으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빛을 타고 <근대와 반근대>, 이 시대의 화두가 밀려든다. 나의 텍스트 읽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텍스트 읽기 3 - 자본에 대한 분노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망
그가 보인 전통지향성 즉 '민요'의 세계는 반근대적이다. 비록 그는 자신의 정신이나 시 창작이 반근대주의적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지만(『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p.41) 반근대적으로 읽힐 충분한 소지가 있다. 민요의 정형적 형식이나 민중적 정신을 현대시에서 구현한다고 해도 근대(모더니티)에 대한 부정은 지울 수 없다. 그에게서 근대란 일본제국주의이고 천민자본주의 미국이니까--. 근대, 즉 모더니즘을 거부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전통지향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민중은 근대의 산물이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이므로 꼭 반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이를 비근대적이라고 명명한다. 근대를 인정하면서 근대 속에서 살고 시를 쓰기는 하되 근대의 모순을 철저히 파헤치고 증언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 의식을 가지는 것, 이것이 신경림 시 세계의 본질 아닐까? 그의 시 깊은 곳에는 <자본에 대한 분노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망>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창가를 서성인다. 멀리 길 따라 불빛이 행진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 이것이 신경림 시세계의 본질인가? 근대의 폭압과 자본의 모순에 온몸으로 항거(抗拒)한 것은 분명하겠지? - 감옥에도 가고 안기부 아니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도 받았으니까--. 민중적 진실성도 담보하고 있겠지? - 자기 자신이 가장 민중스러운 삶을 살았으니까--. 파시즘과 외세에 대한 그의 저항을 반외세민중적이고 반독재민주주의로 규정할 수 있겠지? 민족적인 삶을 꿈꾸었으니까. 그의 민중은 자본도 이데올로기도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사상은 <자본에 대한 분노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망>이다. 그럴 듯했다. 그의 문학사상을 명쾌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잘 설명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즐거웠다. 달빛을 어르며 새벽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꿈에서 나는 듣는다, 마침내 그가 꿈속까지 따라와 다음과 같이 속삭이는 소리를--.
시인의 말 1 - 사라진 '새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와 꿈
나는 혁명가도 운동가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저 파시즘의 압제에서 내 자신과 우리를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그 파시즘은 근대의 배를 타고 이 땅에 왔다. 근대의 폭력성은 돈, 즉 자본의 이해타산성에서 나온다. 나는 이에 절망했고 울었으며 그를 증오했다. 근대와 파시즘에 대항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것. 즉, 사랑과 평등이 가득한 새 세상을 꿈꾸는 것. 나는 우리의 노래로써 근대를 무찌르고자 했으며 우리의 아름다운 심성을 되살려 파시즘의 잔혹성을 파헤치려 했다. 우리 당숙 신퉁수의 노래가락과 고향사람 창돌애비의 이야기가 내 문학의 고향이다. 나의 세계관은 새 세상에 대한 열망이고 창작방법론은 이야기시를 근간으로 하는 리얼리즘이었다. 나의 인식은 그러나, 때론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는 시인과 독자와의 '대화'이므로 독자가 느끼는 감정이 시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설이다. 자기 시에 대해서 설명하는 순간 시는 끝나는 것이므로 이 말들은 나에 대한 나의 설명이지 시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나는 경건한 자세로 그의 속삭임을 듣는다. 까마귀 우짖는 몽상의 밤하늘을 나는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몽유(夢遊)의 도원(桃園)에서 나는 그의 진실들을 만난다. 불면의 시간을 재우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명동성당, 종로, 광화문, 성공회 본당--, 그리고 오월의 광주(光州). 그는 광주의 80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시를 모독하는 저승사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권부의 핵심에서 세상을 호령하고 있으므로 역사의 정의는 믿을 수 없다고 그는 한탄한다. 피로써 이루고 눈물로써 맺고자 했던 인간다운 새 세상은 어디에도 없고, 모리배들의 현실만 남았다는 그의 한탄이 깊어갈 무렵 나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말았다. 아쉬웠다. 햇살이 5월답지 않게 뜨겁다.
맑은 이튿날. 나는 텍스트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가지고, 아니 데리고, 아니 모시고 차에 올랐다. 토요일이었다. 중국에서 온 이광재 선생과 김성수 군과 함께 정릉1동 227-29번지를 향해서 내달렸다. 그는 노모(老母) 곧 실루엣의 주인공과 함께 산다고 했으므로 나는 반드시 가야만 했다. 연구실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이 못된 버릇을 반드시 고쳐야 하겠다고 믿고 있는 터이기도 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었고 종로 광화문도 붐비지 않았다. 미아리 고개를 지나고 자꾸만 북쪽을 향해서 나갔다. 부동산 중계소는 퍽 써먹을 만했다. 한적하게 앉아있던 주인은 씩 웃으며 언덕 위를 가리킨다. 가끌막진 언덕을 에돌고 휘돌아서 그의 집에 다다랐을 때 그는 신선(神仙)이 되어 있었다. 도끼자루는 없었으되 그는 온 세상을 다 잊은 듯 바둑 신선이 되어 막 하늘로 오르려는 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신선으로 하늘에 오르는 것을 내버려두고 어머니 실루엣을 찾았다.
결코 들에는 나서지 않으셨다는 어머니 실루엣은 그날 흰옷에 쪽진 머리를 하시고 살구나무 걱정을 하고 서 계셨다. 직관이랄까. 어머니 실루엣은 느닷 있이 나타난 나의 수상한 태도와 손에 들린 검은 기계들을 보고는 분명한 표정으로 '안 된다'라고 강하게 외꼬았다. 뒤틀린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신선으로 선계에 오르려던 그는 속계(俗界)의 필부(匹夫)를 맞아 기꺼이 신선의 나무에서 내려오셨다. 하지만 완전히 홍진의 속계로 내려와서 민중과 시를 이야기하자는 나의 의견을 무질러 버리셨다. 민중이란 고향마을 사람들이며 민요 또한 어릴 적 황아장수나 할머니 어머니의 여성지향성의 표현 아니냐고 묻는 나의 손을 만류하시면서, "술이나 먹세"하는 그의 표정 역시 영락없는 신선이었다. 막무가내로 나는 출력해 온 독서노트를 꺼냈다. 그리고서 앞뒤 없이 여쭈었다.
독서노트 3 - '민 사상' 또는 혁명적 낙관주의와 비극적 세계관
선생님의 생래적인 서정성과 리듬은 어머니 즉 땅 또는 대지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농민은 민족의 실체이면서 근대화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므로 선생님의 농민문학은 민족문학의 다른 이름이지요. 농민에서 민중으로 다시 노동자로 이행한 선생님의 시적 주체는 '민(民)'으로 응축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들은 민중적 삶의 내용을 민족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이를 '민(民)사상'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그리고자 한 것은 민족적 유토피아(utopia) 또는 민족공동체였습니다. 민족적 유토피아에 대한 선생님의 방식은 어떤 때는 낙관적으로 어떤 때는 비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혁명적 낙관주의와 비극적 세계관이 교차하고 있는 선생님의 시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길』에서부터였고 보다 정확히는 『쓰러진 자의 꿈』에서였습니다. '새 세상에 대한 역사적 전망'이 빛날 때 선생님의 시는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이제 『길』과 『쓰러진 자의 꿈』을 지나 여기『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 이르러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져서 봄바람과도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열망하던 "새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의 꿈"은 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는---. 술이나 먹자는 신선(神仙)의 어법을 21세기적 컴퓨터의 현실로 무지르려고 하는 나의 태도는 무례하기가 짝이 없는 일. 그래도 그는 신선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퀭하니 나의 눈을 쳐다보시고는 <그 어려운 말들을 무엇에 쓰려는가? 비극적 세계관이 어떻고 유토피아가 어떻고 하는 둥 이론들은 대체 무엇하는 것들인가? 쉽게 보고 쉽게 읽어야만 하네. 너무 깊이 분석하거나 이론으로 재단하면 재미없지--.>라고 웃음으로 꾸짖으셨다. 남한강 같은 그는 말한다, 다음과 같이. <다 부질없는 것이니 술이나 먹세 그려. 가지 꺾어 셈하며 무진 먹세 그려.> 이젠 선문답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니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그의 시 세계에 다가갈 것 같아서 낮술을 널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살구나무를 바라보고 계셨다.
낮달에 낮술을 걸치면서도 나는 그의 눈을 본다. 천진한 그의 눈을. 그는 원수를 미워할 만하지만 또 능히 원수를 용서할 만한 눈이었다. 부드럽기가 봄바람 같다고들 하지만 삼복의 햇빛도 얼음으로 만들 만한 목소리였다. 한없이 다정한 표정이지만 끝없이 무서운 표정이기도 했다. 취중이나 여럿이서 뵌 적은 있으나 딱 마주앉으니 참으로 많은 느낌이 오고 간다. 그 때 소박한 그의 눈은 말한다, 화해와 사랑을. 그저 서로 만나서 한번 웃으면 다 잊어버릴 과거들을. 분단모순에 대한 분노와 민족공동체의 완성에 대한 끊임없는 그의 노력이 이 시집에서 화해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나는 발그런 그의 얼굴과 목화씨같은 그의 눈을 보면서 가작 「묵뫼」, 「마주치면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갈다가도」의 방정식에 시간을 대입해 보았다. 연륜이라든가 삶의 깊이도 대입해 보았다. 나의 간헐적인 물음에 그는 상당히 긴장하면서 답을 하는 까닭에 나는 웃음을 삼켜야 했다.
그의 긴장 속에, 내가 짐작했던 것과 같이 1990년이 중요한 전환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실사회주의의 변화. 이것이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나는 매일 저 프로이센 제국의 거대한 작품 부란덴부르크 문을 마주하고 있었고, 1990년의 동 베르린 그 격정의 순간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 즈음으로부터 그는 달라졌다. 사회주의 곧 이데올로기에 절망한 것이다. 가슴 뜨겁게 읽던 마오사상의 현실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가 변한 것은, 아니 그의 시가 변한 것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는 확신이 도리질 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자꾸만 고개를 내민다. 본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박한 삶이 경험과 만나 그런 시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텍스트들은 주장하기 시작했다. 혼몽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한편 나의 내면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묘한 상황은 계속된다. 나는 그가 권하는 유리잔을 들고서도 은밀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 대한 다음과 같은 텍스트 읽기를 계속한다. 그의 볼이 불그레한 만큼 나의 속은 시커멓게 탄다.
텍스트 읽기 4 -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망 :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5부
시집 5부는 기행시다. 그런데 대부분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와 '내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그의 시가 내면으로 좀 더 다가간 것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때문이다. 저 더럽고 아니꼬운 파시즘과 비정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써 그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사회주는 실패했고 원래의 자본주의 체제로 재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이데올로기 즉,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우회로를 그는 택했다. 그가 꿈꾸고 희망했던 저 피안의 다른 세계는 바로 그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고, 저 부란덴부르크 문에서 캬라얀의 교향곡이 울려 퍼질 때 그는 비애에 잠겼음에 틀림없다, 절망의 늪에서 헤맨 것이 분명하다. 여기 그 증거까지 있지 않은가.
나는 슬그머니 서투른 일본말로 끼여든다
그렇다면 망한 것은 오로지 현실사회주의뿐이냐고.
(「간이주점 '타까라야' 처마 밑에서」중)
그는 하염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술을 먹고 나는 하염없이 가련한 모양으로 그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희한한 광경이었다. 내가 건성으로 술을 마시며 텍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나는 절박했고 그는 여유롭다. 나는 가련하고 그는 진실했다. 상념의 기차는 내달린다. 텍스트의 너른 들을 가로질러서. 나의 생각은 다시 이어진다.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냉소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젠 냉소조차 싫어하지만 증오와 무시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다른 글에서 중국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절망이 원망에 가까웠지만 중국 현실사회주의는 아직 실패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일찍이 현실사회주의 실패에 관해서 여러 발언을 한 바 있다. 주로 젊고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에게 더 이상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학이 이데올로기에 매어서는 안 된다라든가, 분명히 몰락한 사회주의에 대한 철지난 향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든가 하는 그의 말은 하나도 그른 게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한다. <강철같은 사회주의자의 힘은 오로지/혁명으로 얻은 저희 이익을 지키는 데 쓰이고 있다며/혁명에 다리와 평생을 바친 늙은 전사는 쓰게 웃는다>라는(「늙은 투사의 노래」 중 p.82) 대목이었다.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비판은 냉소를 넘어서 매우 깊었다.
그렇다면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고 무엇 때문에 절망했던가. 회한과 참회와 옛날을 담은 시들을 앞에 놓고 나는 올곧은 「농무」의 전설을 떠올렸다. 이젠 시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십여 년을 걸쳐서 싸워온 그 순결성이 문제였다. 그가 살구나무 이야기를 하고, 공동묘지의 힘센 터를 웃고, 아버지를 미워했다고 강조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인연(因緣)을 내비칠 때도 나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비평가의 창은 시인의 웃음 서린 방패를 끝내 뚫지 못한다. 그는 주흥(酒興) 속을 오가면서 <시에는 이론이 필요 없는 것이여-->의 신선 같은 말씀만 하시고--. 어머니 실루엣은 여전히 살구나무 아래를 서성이시고--.
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산동네를 내려왔다. 멀리 어스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길 가운데 서서 끝까지 손을 흔드는 그의 눈에도 어스름이 비쳤다. 1번 고속도로, 그의 집에서 나와 달리는 근대의 상징(도로)에서 나는 절망했다. 영원히 영원히 나는 그의 시에 다가가지 못할 것만 같아서--. 깊은 밤을 간다, 하염없는 근대의 기계들은. 그날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텍스트를 마주하면서 '잊어야지 잊어야지 버려야지 버려야지 이 굴레에서 탈출해야만 신경림이 보이리라' 웅얼거리며 시멘트 감옥 집으로 돌아온다.
4.신경림 시의 생명력-공간의 시간적 분할인 리듬
밤은 깊어간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가 운다. 아니 웃는다. 둥 둥 둥 두리둥둥 북소리 난다. 떠거덕 떠거덕 고량 베어 너른 만주 몽고 평원에 말발굽 소리 난다. 나는 몽롱한 잠에 떨어져 이젠 원망스럽기까지 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속을 떠다닌다. 그리고 헛소리처럼 중얼거린다 - '그 시의 생명력의 근원(根源)은 어디인가?' 헛소리처럼 답한다 - 삶의 진실성이 시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없는 시는 공허하다, 가슴 저미는 그의 진실한 표정 그 자체가 시다, 솔직담백한 그의 성정과 절제의 미학이 그의 시 속에 가득하다. 시인 자신과 서정적 자아를 거의 일치시킨 채 체험으로 자기고백의 시를 쓰고 있다. 한없는 상념들.
무언가 허전했다. 화다닥 몽롱을 깨우는 것은 '시간에 대한 분절의 감각'이었다. 시인일지라도 그 많은 세상사를 다 간파할 수는 없는 일. 그 어지러운 세상사를 일렬로 늘어 놓고 차근차근 인식하는 힘, 즉 리듬이야말로 신경림 시의 비밀 아닌가? <시는 시간과 그림이다>와 같은 비유를 써 보면서 나는 허전함을 달래본다. 그러나 음악성과 회화성으로 시를 빚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그만의 것이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새 파일 하나를 만들어 새로운 독서노트를 써 내려갔다, 다음과 같이.
독서노트 4 - 리듬, 신경림 시의 생명력
나는 일찍이 리듬 그러니까 음악성이 신경림 시의 생명력이라고 믿고 있었다. 저 『농무』의 가락과『어허달구』의 리듬은 생래적인 것이기도 하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민요의 가락을 체득하고 남기기 위해서 삿갓 방랑의 수년을 보낸 바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민요가락이 그의 시에 육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설명은 어딘가 공허하다. 그런 정도의 가락과 리듬이 있는 시는 지천으로 깔린 것이 요즈음의 일이니까.
나는 그 리듬, 음악성 대신 '시간에 대한 분절의 능력'을 대입한다. 그의 인식은 실로 정교하다. 정교한 인식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리듬을 얻지 못한다. 글자만 맞춰 놓거나 음수만 갖춰 놓고서 리듬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리듬은 몸 속에 흐르는 혼의 소리이며 생명의 숨결이기에 아무나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리듬은 수없이 많은 세상사, 그러니까 세계(welt)를 인식하는 시적 자아의 절제와 법도 속에서만 획득된다. 이 혼란스런 세상을 가지런히 정돈할 수 있는 인식, 이것이야말로 리듬의 본질이다. 그의 리듬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고 그것은 현실주의적이며 민요의 현실주의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처음 내가 독서노트를 쓸 때의 엑스티(XT)는 펜티엄으로 바뀌었지만 나의 신경림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무뎠다. 여하튼 그의 가작과 절창들은 거개가 리듬이 뛰어난 시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나는 이것을 '공간(즉 세계)에 대한 시간의 분절'이라고 해석해 본다. 허허로운 그의 웃음 속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날카로운 심미안이 감추어져 있음을 나는 그의 리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는 노래다>라는 그의 명제는 여전한 것이다. 시계는 세 점을 치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져 쌓인다 달빛이 쏟아진다,
눈이 오겠지 곧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겠지,
눈 속에서 새싹이 트리라 그래도 믿고 싶은 내 꿈을
한파람에 쓸고 갈 서북풍을 몰고서,
풀 벌레가 운다 땅속에 들어갈 제 운명을 운다,
먼 산에서 가까운 산에서 소쩍새도 운다,
모든 것들이 죽어가는 가을밤을 운다.
낙엽이 떨어져 쌓인다 눈처럼 날리며 쌓인다,
서북풍이 몰아치겠지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오느라
침침해진 내 눈에 다시 흙먼지를 끼얹으며.
기러기가 난다 내 젊은 날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검은 하늘을 난다 내 회한 속을 난다.
눈이 오겠지 기러기 소리로 울며 오겠지,
낙엽이 떨어져 쌓인다 달빛이 쏟아진다.
(「가을밤은 길고」전문)
절창이었다. 「초혼」이나 「그날이 오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반열에 놓아야 할, 그러나 깊은 내면을 담아서 더욱 친근한 절창이었다. 밤 두 시를 마다하고 나는 큰 소리로 다섯 번을 읽었다. 귀뚜리처럼 읽었다. 「귀뚜리가 나를 끌고 간다」도 세 번을 읽었다. 부시시 깬 아내는 어둠을 가리킨다. 그 밤, 나는 그의 리듬 감각이 전혀 무디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듬어졌음을 보면서 즐거웠다. 우연히 써진 리듬이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리듬의 변화는 2행의 '곧'에서 시작한다. 생략해도 좋을 부사 '곧'은 시의 흐름을 차단해서 급격한 감정의 상승을 자아낸다. 그 밖에 2음보의 기본구조에다가 변형된 3음보의 내재율을 지니고 있다. 인식의 이분법이 리듬의 이분법을 만들어 냈고 과거를 현재화시키고 미래를 현재화시켜서 시적 자아의 정경 속으로 끌어들이는 정교함은 실로 절묘했다. 고독과 절제를 넘어서고 원망과 증오와 좌절과 분노를 잊어버리고서 내면으로 파고드는 그의 리듬의식은 과연 뛰어났다. 이것은 「농무」 이후로도 계속해서 리듬의 실험을 항진하고 있다는 증거여서 시인에 대한 경외감이 일었다. 예컨대,
넘어가세 넘어가세
논둑밭둑 넘어가세
드난살이 모진 설움
조롱박에 주워담고(「달넘세」 중에서)
라는 대목의 유려한 리듬은 그 고정성으로 인해서 문학적 긴장을 떨어트린다. 정형성을 파괴하는 변화에서 율격이 아닌 리듬이 얻어진다. 지나친 정형화는 시를 가두고 만다. 이것은 리듬이 아니라 표면적인 율격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달넘세」의 갇힌 율격에서 탈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족적 형식의 민중적 내용인 그의 민요조 서정시나 서사적 서정시들은 리듬의 인력(引力)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자유롭지 못하기로 시인은 마음먹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율격을 죽이고 리듬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다르다. 상상은 자유였다. 나는 발갛게 하루를 지새고 삶의 터전으로 나갔다. 여전히 더운 날들이었다. 수은주가 엘리뇨의 지배하에 있던 오월 첫주.
5.가장 고결한 민중성 - 자기의 재발견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밤낮으로 나는 텍스트를 데리고 꿈을 꾸고, 먹고, 자고, 말하고, 시름에 잠기고, 전화하고 또 생각했다.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면서도 그래서 쉽게 읽히기도 하고 쉽게 쓴 것만 같은 '실루엣'은 난공불락이었다. 내가 내지른 창들은 시의 성에 가 닿지도 못한 채 허공만을 찌르고 만 셈이었다. 초조했다. 허전했다. 왜일까. 자나깨나 걸으면서도 나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5월의 바람은 살갑다. 그의 숨결만큼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였다. 그 외에는 절대로 없다고 단언할만큼 많은 생각을 했다고 확신하게 될 정도였다. 그를 통해서 받은 나의 고통과 환희 속에서 남는 것은 '나'였다.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나'였다. 지금 그가 이 시집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표현하는 것은 전부 '나'였다. 그의 나는 시에서 서정적 자아(시적 자아, 시적 서술자)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나는 자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나'로써 환원한 민중(그가 역사의 주체라고 믿으며 민족 대다수라고 믿는)이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민중은 시의 출발이며 인간적 본질이며 「농무」와 「가난한 사랑 노래」를 낳게 한 힘이다. 나는 민중의 강한 인력에 감탄하면서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민중적 진실을 되새겨 본다. 아울러 '민중'의 오류가 시의 해석을 가로막는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그의 시는 반드시 민중으로 읽혀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농무」에도 「가난한 사랑 노래」에도 무조건 민중성만을 찾고자 하는 것은 해석의 오류이다. 시는 그냥 시이므로--. 그의 시에서 민중성의 흔적, 아니 녹아 있는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 하는 의도는 논리의 오류를 강요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7,80년대의 민중의 절대성은 시대적 산물인 뿐,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민중의 실체이면서 신경림 시의 출발점이었던 것. 시와 시인을 분리시켜서 나는 그가 말한 민중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본다. 민중을 '괴롭고 슬픈 자들, 쓰러지고 짓밟히는 것들, 고생하는 내 이웃'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농민과 노동자와 도시빈민과 인텔리겐챠 속에서 민중성을 찾다가 자신에게서 진정한 민중성을 발견했듯이 그의 민중이라는 것은, 기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 자신의 시에 대한 진단은,
시인의 말 2 - 민중적 삶의 내용을 민족적 형식으로 표현한다
어차피 시는 괴롭고 슬픈 자들, 쓰러지고 짓밟히는 것들의 동무일진대 이것이 크게 억울한 것은 없다. 최근 나는 시는 궁극적으로 자기탐구요 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쓰러지는 자들, 짓밟히는 것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고 흩어지는 것들, 깨어지는 것들을 다독거리는 일, 이 또한 내 시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쓰러진 자의 꿈』 후기 중에서)
문학이 더 고급화되고, 정말 인간의 삶을 깊이 생각하고 더 고민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문학을 통한 자기탐구, 문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인 자기탐구를 해나가고, 세상이 좀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찾고, 삶의 환경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고--
(「신경림 시인과의 대화」,『신경림 문학의 세계』, 창비, 1995. p.43.)
라는 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아득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아니 이건 일제강점기나 해방공간에 김동리와 조연현이 하던 그 말 아닌가. 저 문협정통파의 문학적 진실성을 믿지만 인간적 진실성이나 역사적 진실성을 믿지 못하는 내가 조연현과 서정주와 김동리 등의 문협 맹장들이 빛나는 검으로 휘둘러대던 <구경적 탐구>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초자연적 운명론에 자신을 맡기고 감정을 통제하려던 문협의 담론들과 민중과 민족의 현실에 뿌리를 둔 작가회의의 담론이 같을 수는 없는 일--.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두 언술의 차이를 새겨 보기로 했다. 문학을 몰역사적이고 초사회적인 순수의 골방에 가두어 놓은 문학 엘리트들의 <구경적 탐구>와 자신을 내던져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이야기를 내면화한 <내면탐구>는 같을 수 없다. 민중적 삶의 내용을 민족적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가 '나' 즉 내면탐구였고 수년 전부터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음을 나는 읽었다. 그런데 그의 내면탐구는 자신을 죽이고서 얻어진 것. 나는 몽유병자처럼 화다닥 일어나서 『어머니--』를 넘긴다. 그의 '자기'는 어디 있는가?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의 그늘」중)
이것이었는가, 그가 부끄러운 손으로 내민 깊은 마음은? 그렇다면 괴롭고 슬프며 짓밟힌 이들의 내면이라는 것은 결국 '늙고 초라한 아버지'인 신경림 자신이었던가?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길』 p.116)이야말로 민중적 진실의 실체이고 민중은 농촌이나 공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음을 그는 본 것인가? 나는 국가(권력,파시즘) 민족 민중 아버지 신경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그려 본다.
텍스트 읽기 5 - 아버지·국가(권력 파시즘)·외세:민족·민중·어머니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不定)은 국가(권력, 파시즘)에 대한 그의 부정과 상응한다. 반면 어머니에 대한 긍정은 민족·민중에 대한 그의 긍정과 상응한다. 그의 반 외세, 반제정신, 반파시즘 정신은 그러므로 민족의식, 민중의 삶, 반근대 전통지향성과 서로 대립하고 있다. 부의식을 부정하고 모의식을 긍정함으로써 그는 국가보다는 민족을 택하게 되는데 그 민족의 실체가 바로 민중이다. 민중은 바로 자기 자신. 그래서 자신과 아버지의 긴장은 사뭇 도전적이다. 반면 어머니에 대한, 그러니까 민중이라고 해야 할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매우 따스하다. 부의식과 모의식에 상반되는 의식지향성이 그의 시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다시 내 여행의 출발점 민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아무래도 농민문학론과 민요와 이야기시와 문예운동사의 모든 것을 잉태한 '민중'으로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민중이었다 그것은. 나는 컴퓨터 하드디스켓에 그의 민중을 다시 써 내려간다. 다음과 같이.
텍스트 읽기 6 - 자기라는 이름의 고결한 민중
민중은 피지배계층 전체 즉 민족 구성원의 대부분을 가리킨다, 지식인이 아니며 대중도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다, 민중의식은 근대주의 즉 외세지향과 대척적이다 - 라고 70년대 후반부터 그가 주창한 민중론과 민중문학론이 그의 시 기저에 깔려 있음이 분명했다. 민중이 거창한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라 그저 성실하게 살고 있는 민족구성원의 대다수라고 한다면, 그의 이 시집에서 문제삼고 있는 대상들은 모조리 민중이며, 그 민중의 가운데 자리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사가 드러난 것이다. 이젠 자신도 민중이란 용어를 쓰지 않지만 여하튼 그가 그토록 꿈꾸었고 노력했던 민족공동체의 민중성은 여전히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여기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움터 나왔고 문학의 현장성과 삶의 진실성과 민족적 양심이 싹터 나왔다. 오늘을 일컬어 해체와 탈구분의 시대라고 오해하고 사이버(cyber)적 리얼리티가 현실의 리얼리티를 몰아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 때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척박하며 우리의 고통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설익은 낙원의식으로 무장한 모더니즘주의자들에게 대서사의 민족과 민중은 유효하다는 것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독서노트는 <신경림은 민중이다>와 같은 이상한 비유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민중성의 실체는 '자기' 신경림, 목계 강가에서 가슴 태우던 신경림, 바로 그였다. 그래서 나는 <가장 고결한 민중-자기의 내면화 =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이라는 비유를 써 본다. 그 뒤로 「별」 「세월이 참 많이도 가고」 「돌 하나, 꽃 한 송이」 「마을버스를 타고」 「성탄절 가까운」 등이 다가선다. 밤하늘에 나르는 까마귀와 같은 몰골로 나는 거울을 본다. 깊은 밤이었다.
그날 밤. 버려진 감석더미로부터 시작한 그의 시 저 깊은 속에서 민중과 민중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 빛들은 죄다 신경림 자신이 내는 아름다운 빛임을 나는 본다. 리얼리즘 시의 정수인 이야기 기법은 시인 백석(白石)과 반박수 창돌애비로부터, 혼이 담긴 리듬의 노래는 당숙 신퉁수로부터 각각 배운 것. 그 밖에 어머니, 할머니, 봉노방의 황아장수, 장터의 아낙 등 여성성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월의 둘째 주 어느 날 새벽. 나는 황홀한 밤 하늘을 본다. 그의 유다른 모계지향성(여성성)은 시의 내면을 지탱해 준 힘이었던 것.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시계가 두 점을 쳤다. 나는 자리에 들었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들린다, 반박수 창돌애비의 소리가 몽롱을 타고 넘어와 들린다.
김가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죽여라. 시를 만나면 시를 죽이고 시인을 만나면 시인을 죽여라. 민중을 만나면 민중을 죽이고 너를 만나면 너를 죽여라. 과거를 만나면 과거를 그림자를 만나면 그림자를--. 모든 것을 버리고 민중도 버린 다음 자신까지 버려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 저 신경림적 선법(禪法)을 보아라. 속세에서 빌린 저 정릉 숲을 베고 누워서 그저 한 사람이고자 하는 저 처사를 보아라.
몽롱했다. 나와 텍스트 신경림은 하나였다. 그러니까 그의 문학은 그의 문학을 떠나서 나의 문학이며 나와 그를 넘어서 민족의 문학인 것이다.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망망대해(茫茫大海) 같으면서도 무서운 자기절제가 있으며 한없이 사람 좋아 보이면서도 엄격함이 서리 같은 신경림, 그는 나에게 많은 짐을 지워 주었다. 오늘 90년대의 탈구분의 모호한 논리가, 해체의 애매한 이론이 횡행하며 사이버(cyber)적 허상이 현실의 리얼리즘을 몰아낼 것만 같은 지금도 여전히 민족과 민중은 유효하다는 그 고귀한 진실을 알려 주는 민중 신경림. 사상을 기호화시키고 감정을 디지털화시키며 표피적 감각과 설익은 낙원의식이 우리의 진실을 무력화시키려는 1998년 오늘이 절망적이어서 그는 더욱 귀하다, 민중 신경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일 또한 아직 많으므로 우리는 마음껏 그를 불러야 한다, 민중 신경림. 밤은 어두워 가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에 낙엽이 떨어져 쌓인다. 달빛이 쏟아진다. 그는 막걸리를 마셔야겠다면서 씩 웃는다. 웃음 따라 꿈 따라 기러기는 난다. 허름한 옷, 소박한 웃음의 그는 신경림. 왜 그가 문학적 생명력을 가지는가는 그의 시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목계 신경림. 젊은 날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가는 그는, 신경림. 나는 꿈을 깬다. 꿈 바깥은 현실이었고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이데올로기는 망해 있었다.
신 새벽을 넘어 5월의 바람이 몰려온다. 이렇게 나의 텍스트 여행은 끝났다. 여섯 점을 친다. 차들은 질주한다, 근대의 미로(迷路)를. 컴퓨터는 유혹한다, 가상은 이제 진실이라고. 나는 큰 소리로 「가난한 사랑 노래」와 「가을밤은 길고」를 읽어 본다. 나는 행복하다. '이제 나는 백정도 아니고 백치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월의 밤에. '달 뜨는 밤의 설레임을 알게'한 오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