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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기억 빨리대장경 중아함 MN121 공의 짧은 경 - 소공경
방문객 추천 0 조회 313 23.07.25 21:01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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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7.25 21:58

    첫댓글 일단 한번 읽으며 탈오자 수정을 했습니다.

    날짜를 지키려다보니, 미흡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이상하거나 미진한 부분은 지적해 주세요.

  • 23.07.25 23:17

    지적하는 것은 아니고 첨언하자면요..

    삼매에서 출정해서 삼매상태에서 인식되는 것은 있다고 알고 인식되지 않는것은 없다고 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공을 아는것이고,

    삼매에서 출정한 후 삼매상태에서 인식된 것은 있지만 그것이 연기적으로 있는 것이고 머무르지 않아 자성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구경의 공이라는 의미 같습니다.

  • 23.07.25 23:25

    상수멸정은 삼매상태에서 인식되는 것은 없지만 의도된 것이고 출정한 후 없음이 소멸하기 때문에 무상하고 고정된 자성은 없다는 거 같습니다.

  • 23.07.25 23:52

    그리고 연기 무아 공성은 조건지어지지 않은것이고 연기된 법은 조건지어진 것으로 보면 되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감사_()_

  • 23.07.26 08:23

    심혜탈이든 혜해탈이든 그어떤 수행이든 결국 연기, 무아를 선명하게 알기위한 훈련인거군요. 설명 듣고보니 다시 확연해집니다.

  • 23.07.26 08:53

    어처구니없는 질문인데요.
    우리가 매일 잠에드는데요.
    꿈을 꾸는 얕은 단계수면에서 시작하여 그 어떤 인식작용 비슷한 것도 없는 깊은 단계까지 가게 되잖아요.
    그 '깊은 숙면 상태에서의 마음작용 없음'과
    깊은 선정의 마지막에 도달되는 '심소멸'과 뭐가 다를까 싶거든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이지만..
    살펴봐주세요.

  • 23.07.27 03:45

    눈꽃 님아..잠자다 알려진 것과 용쓰다 알려진 것은 우아함이 다른 거 아닐까 싶다.. ㅋㅋㅋ
    방장님 욕보셨습니다..시간이 금인데 우아하신 방장님..()..



  • 23.07.27 11:17

    그 상태만 보면 차이가 없지만 삼매에서는 마음작용의 사라짐과 일어남을 제어할 수 있고 그 찰나를 알아차려서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거 같습니다.

    뭐 시간 맞춰서 잠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지는 것도 제어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긴 한데요. 일반적으로 잠자는 동안 알아차리고 기억에 남는건 삼매에 비해 떨어질수 밖에 없죠.

  • 23.07.27 11:33

    그리고 잠은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들고 삼매는 편안한 상태에서 든다는 점이 다르겠네요..

  • 작성자 23.07.31 22:35

     주말에 본글 보강도 하고, 지적에 응하겠습니다. 늦어져 미안함니다.

     하루 늦었는데요. 본글 보강을 좀 했습니다. 이상하거나 미진한 부분은 지적하면 됩니다.

     넷활동 초창기에 수면 상태를 수행에 전용하는 것을 이야기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보강 내용을 읽어 봐도 알 수 있듯, (앎에서) 본질적 차이는 없다고 해야 합니다.

  • 23.08.01 09:46

    추가된 부분이 있네요.
    경은 암송을 위해 축약된 거라 부처님 당시에는 제자들이 좀더 상세한 설명을 들었을 거라고 보는데요.
    이렇게 삼매에 있어 마스터인 방문객님에게 배울 수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23.08.01 15:28

    매일 밤마다 심소멸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유익한 글을 만날 수 있음에 참으로 기쁩니다.

    불교신문 등에 기고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깝다. 정말

  • 23.08.01 21:03

    '생명을 조건으로 취해진 몸'이 있기에 심소멸 했음에도 인과가 성립하여 다시금 '나'로 돌아온다면 결국 '나의 있음'은 이 육체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렇다면 생물학적 죽음 후에 우리의 의식은 무엇에 연하여 인과를 거듭 이어가며 윤회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화엄에서 15년을 버티고 있으면서도..
    생물학적 죽음 후의 윤회를 긍정 못하고 있습니다.

  • 23.08.01 21:05

    생물학적 죽음 후의 윤회가 긍정되지 않더라도
    무아, 연기, 인과를 받아들임에 하등의 거부감을 갖지않습니다.

  • 23.08.02 09:02

    방문객님 답변이 늦네요.
    질문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갈애와 취작이 있으면 내세가 있다.
    갈애와 취작이 없으면 내세가 없다.
    연기로 보면 내세 또한 조건에 따라 있고 없는 것이죠.
    그래서 부처님도 내세가 무조건 없다는 견해는 단견으로 사견이라고 하셨죠.(눈꽃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지만 부처님이 긍정하신만큼
    내세가 조건따라 있을 수 있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만약 내세에 화생한다면 내세에 대한 확신도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 작성자 23.08.02 10:31

     제가 요즘 좀 많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생명을 조건으로 취해진 몸이 좀 마이 부실해져서요. '좀 마이' 씨리즈라고 할까요.

     서술 구조상 문제와 분량등으로 적지 않은 논점들이 좀 있습니다. 다 적으면 난삽해지고, 당장 필요성도 적고, 불필요한 혼동도 생길 수 있고...시간, 게으름 기타 등등...

     생각만 하고 스킵하다 보면, 요즘은 어떤 내용을 빼버렸는지 기억이 혼미해지고 그럽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언급해 보자면요. 삼매와 존재 표상의 획득, 표상과 무색계선정 그리고 암시에 따른 일상의 영향력, 무색계 선정과 능작근, 해탈과 깨달음 그리고 수행력과 방편, 유여열반등등이네요. 그런데 과거 이미 다 적었던 내용인데다, 위 본글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다 알만한 내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교의 장점 중 하나가요. 그냥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하는 훈련이 된다는 겁니다. 나이 먹고는 그런 두뇌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불교 공부는 치매 예방에도 좋으려나? 최소한 머리가 둔해지는 속도를 좀 늦춰줄 것 같습니다.

     이번 생은 당연히 생명력을 조건으로 취해진 몸과 함께 합니다. 이 몸을 취한 업력은 이 몸과 함께 하거든요.

  • 작성자 23.08.02 10:52

    연기의 이치에 따라 그렇게 성립했습니다.
     마음이 해탈하면, 금생에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 몸을 취한 업력과 같은 것을 더는 일으키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태어남은 없다'고 하는 거구요.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다면, 금생의 이 몸을 취한 업력과 같은 것을 재차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게 '인과'라고 이름하는 연기니까요.

     위 소공경과 연결시켜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확인 가능한 사실들을 가지고 판단해 보자면요. 윤회의 기억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도 소멸이 알려진 경우, 다음과 같은 판단이 성립합니다. 물론 윤회의 기억이 알려진 경우라도, 다음과 같은 판단 과정을 거쳐야 마땅합니다. 단순히 윤회등의 기억이 있다고, 무조건 믿고 그러는 거는 좀... 불교에서 권장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언제나 면밀히 판단하기를 권합니다.
     적었듯, 이 몸을 취한 업력이 소멸을 가로질러 인과를 성립시킵니다. 즉 그처럼 소멸을 가로질러 성립시키는 힘이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있는 것은 있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거는, 위 본글에서 적었듯, 사실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실에 붙은 판단에 따라 그러합니다.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작성자 23.08.02 11:02

    그런데 소멸이라는 특수성이, 죽음과 관련한 판단에서도 나름의 독특한 하나의 기준을 부여합니다.

     이제 살펴 봅시다.
     소멸을 가로질러 인과를 성립시키는 이 몸을 취한 업력은, 원인이 없이 있는 힘인가? 이것을 긍정한다면, 원인 없는 성립을 긍정하는 겁니다. 즉 원인 없는 성립을 긍정한다면, 최소한 높은 확률로 '일상의 나'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문헌을 통해 봐도, 그런 경우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힘은 원인을 가지고 성립하는 힘입니다. 이 힘을 있게 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힘을 있게 한 그 무엇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힘과 같은 것은 다시 발생할 겁니다. 소멸을 가로질러서요... 소멸을 가로지른다는 것이, 죽음을 가로지른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죽음이라 이름합니까?

     불자는 알려진 사실에 입각한 논리적 내지 합리적 판단으로 윤회를 긍정합니다. 하지만 판단과 믿음은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뭐랄까... 그거 그게 맞는 거 같기는 한데, 별로 믿음은 안생겨...그런 경우 많잖아요? 믿음은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같을 수 없는 나와 너, 서로에게 말입니다.

  • 23.08.03 00:12

    감초 등장임다..우몽은 가끔 사람과 아니 생명과 컴퓨터는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아직 정리는 안됩니다..다만 내 스스로 신심의 고양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가령 노트북이 어쪄다 재수 없게도 차 바퀴에 깔려 납짝 사망한 것과 우몽도 노가다판에서 언제 차 바퀴에 깔려서 납짝 사망했다는 생각을 해 보면 별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컴터와 닮은 게 있다면 생전에 프로그램 등이 되 있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비슷해 보입니다.,

    올 촌가 작년 촌가(아 기억이) 암턴 세탁기에 이불 빨면서 핸폰을 같이 돌렸는데 .. 살려 낸 것이라곤 나도 모르게
    어찌 구글에 연결 된 것들만 살아 났고 그 외는 지금도 찾지 못해 아쉬운 것들이 많습니다..메모라든가 전번이라든가 주소라든가 포토라든가 등등 .,

    그런식으로 ..윤회시스템도 비슷할 거 같아요.. 우몽은 여기까집니다..쓰다보니 갠적으로 정리가 더 아리삼삼해지는데요..

    소멸이 무서운 건 내가 소멸 되는 게 무섭고 두렵지 소멸자체가 무서운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참나니 진아니 하는 부류들이 젤로 무서워하는 것이 .. 연기니 조건생 조건멸이니 다 아는 거 같이

  • 23.08.03 00:26

    떠들면서도 정작 지는 있는 거 같단 생각은 죽어도 타협이 안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 마치 컴터 바탕화면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겠거니 하는 거 같읍니다..

    근데 무슥한 우몽은 아무리 보아도 마음이란 마음 따로 있을 수가 없단 겁니다.. 마음은 아메바랑 같이 있던 지렁이랑 같이 있던 돌맹이랑 같이 있던 그런 것이지 .. 지 혼자 용빼는 재주도 유분수지 말임다 .. 아 .. 지송 .. 우몽 오늘 외출했다 지금 꽐라 되서리 지릅니다., 이거시 맨정신에 가능케씀 .. ㅋㅋㅋ

    음 ..눈꽃..






  • 23.08.03 00:42

    더 지름 .. 일테먼 컴터도 어떤 조건으로 있는 것이면 혹 컴터 디엔에이도 있을 거 아닌가 싶어요.. 뭐 생각은 자유라고 봐 주시고 혹 .. 우몽만 모르는 것인가 싶어 쪽팔리기도 하고요.. 혹 또 사람이란 하도 가지각색이니까 우몽 횡설수설에 혹 누가 영감이 생겨날 사람도 또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땡!! 눈까풀이 까무락 까무락 ~~

  • 23.08.03 06:34

    방문객님 설명 잘 들었습니다.
    다시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불어 부디 체력 길러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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