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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文:
박재훈 작곡 양주동 작시로 되어 있는 '어머님 은혜'라는 유명한 노래는 애절한 음조와 노랫말로
특히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을 사람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시키는 노래로 오랫동안 애창되어 왔다.
하지만 그 가사는 실상 싯달타의 가르침을 제자가 받아 적은 글을 그대로 노랫말로 옮긴 것이다.
토씨까지 거의 같은 이 노랫말은 윗 글에서 보듯 최초의 법전으로 알려진 우르남무 법전의 기본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또 孝는 공자 사상의 주요 부분이다.
불교적인 가르침은 이렇듯 특히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 깊숙히 침투해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절에 다니지 않는다고, 혹은 탈퇴하였다고
나는 불교와는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있을 것인지 다시금 생각케 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 뿐 아니라 무해한 듯 우리의 사상과 습관까지 침투한 채
번식을 위한 숙주로 삼고 있는 바벨론 사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진리를 위한 우리의 믿음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이토록 우리에게
깊숙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교(거짓 종교)가 대체 언제 어디에서부터 기원한 것인지와,
그 사상이 우리의 어떤 생각과 습관 심지어 글자와 단어에까지 깊숙히 침투된 채
사단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지 추적해 보도록 하자.
이 땅의 모든 거짓 종교의 기원이 된 그 시작은 처음부터 지금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던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시작은 에덴 한 곳이었고 첫 인간은 단 두 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들은 여호와 하느님을 자신들의 친밀한 아버지로 하는 영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좋은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또 하나의 영적 존재가 숭배 받는 것을 목적으로 끼어 들었으며 그의 시도는 일단 적중하였다.
이로써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고 하느님을 닮게 하고자 사람의 마음에 심어주신 창조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려고 하는
경건한 특성인 영성은 이 영적인 존재의 그릇된 인도로 인하여 올바른 방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느님이 아닌 사단을 섬기게 된 거짓종교의 시작은 바로 사단에 의한 영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최초의 종교가 바로 영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후 점진적으로 사상에 형태를 더하여 가지를 친 결과 지금의 수많은 종교들이 있게 된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는 사람을 오랫동안 샤먼이라고 불러왔다.
이 샤먼이란 말에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겠지만 원래의 샤먼이란 말은 '영혼의 주술사'이므로
결코 우리가 듣게에는 좋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단이라는 또 하나의 영적인 존재와 인간 사이를 매개한다는
의미의 적절한 다른 말은 없으므로 이 샤먼이라는 말에 대해 일단 그 정도의 의미로만 국한하고 내용을 읽기 바란다.
그러므로 최초의 거짓 종교는 그 사상 역시 매우 단순한 형태였지만 샤먼에 의한 샤머니즘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날 다소 미개해 보이는 종족 사이에서 발견되거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무속이라는 의미의 샤머니즘을
제외하고는 기성의 종교 中 가장 원시적인 형태와 색채를 지닌 종교가 바로 불교이다.
최초로 인간이 하느님이 아닌 사단을 섬기게 된 이유가 바로 그가 제시한 방식의 영원한 생명 때문이었는데
사단은 아무 부족함 없던 첫 인간에게 이기적인 욕망을 심어주는데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방식의 성공을 위해 하느님이 아닌 사단의 인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사단이 제시한 속임수인 거짓말 즉,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의
실현을 위해 계속 사단에게 인도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닥친 현실적 문제들과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단이 제시한 해결책을 곧 구원으로 여기고
이것에 이르는 과정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험난한 깨달음의 길이 된 것이다.
이 사단이 제시한 해답을 얻는 것을 깨달음 곧 구원으로 여기게 된 것이 바로 모든 거짓 종교의 시작점이다.
사단의 반역 후 이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 일정기간 사단에게 주어진 것이었으며
자유도덕행위자들인 인간에게 숭배의 선택권이 주어진 듯 보이지만
그들은 이미 사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인간들이 자의적인 선택으로 사단의 인도와 통치 방식을 원하고 섬기게 된 모양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리 언급하자면 사실상 사단에게는 속임수 外에는 아무 대안이 없었으므로
그가 인간들에게 제시한 것들은 첫 인간의 범죄 후 이 땅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여호와 하느님의 약속과 행동을 모방하거나 하느님의 약속과 행동들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찬탈하는 것 밖엔 없었다.
그래서 사단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참 종교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고 언듯 보기엔 그의 모방술로 시작된 것들이
마치 성서에 기록된 하느님의 役事보다 더 먼저 존재하였던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불교는 영어로는 buddhisme으로 佛은 곧 붇인데 한글은 붓으로 기록한다.
ㅅ과 ㄷ 은 혼용된다. 본시와 본디가 그 한가지 예가 된다.
그 기원에 관계 없이 불교가 주요 종교로 자리잡고 흥하게 된 지역이 인도였으므로
불교 생성 훨씬 후대에 쓰여지고 완성된 불경은 불교가 흥하게 된 지역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Sanskrit로 기록되었는데 이 언어를 중국에서는 梵語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마치 라틴어처럼 특수직의 종교언어로,
정화된 세련된 언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속어의 반대라는 말이다.
이 산스크리트 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은 자료를 언급하겠지만 일단 인도에서 이 언어와 관계가 깊은 드라비다어는
그 지방 귀족 언어였다. 드라비다어는 한국말의 古語형태다.
지금도 인도인의 30%가 쓰는 언어이다. 타밀어라고도 한다.
고대 한국인이 사용하던 언어를 실담어라고도 하는데 그 언어가 인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언어가 산스크리트어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 언어들이 모두 현재 한국어와 비슷할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말이 지금 한국의 경상도 지방 사투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慶尙道는 慶州와 尙州를 합친 말인데 특히 경주 지역은 과거 태양 신전이 있던 종교 중심지였으며
동이족 샤먼들의 활동의 主 무대였다. 高靈은 가야의 중심지로 고령 가야라고도 불린다.
고령이란 말은 靈으로 추앙받던 지체 높은 샤먼들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경상도 사투리는 과거 이 지역에 거주하던 샤먼들이 사용하던 귀족 언어였던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의 구자랏 문자와도 형태가 비슷하며 이 언어는 보다 오래된 곳에 기원을 둔
사단의 종교에서 사용하던 특수한 언어였다. 구자랏 문자는 한국어와 모음 체계가 거의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되는 내용에 부분적으로 소개되며 '두 개의 조선'편에서도 상세히 다루어 놓았다.
어쨋든 불경 및 불교 관련 용어들은 보다 쉬운 한글 直譯의 길을 찾지 못하고 한자로 기록된 후에 다시 한글로 음역되게 된다.
불교가 먼저 중국에 전래된 다음 기원 후 샤먼 세력의 대체 종교로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탑 열반 보리 불타 범천 반야 부처 석가 절 중등의 불교 용어들은 다 범어로 기록된 불경의 漢譯을 다시 음사한 말들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불교 관련 용어들은 오히려 한국말로 풀어보면 그 본 뜻이 더 잘 이해된다.
불교 용어를 대할 때 한자가 불교 가르침의 본래 의미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이 과정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돌아가 佛은 붇이고 다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므로 합하면 붓다(붇다)가 된다. 한자는 佛陀이다.
불타는 佛體로도 기록되며 이는 우리 말 부처로 음역되었다.
불타의 漢字 의미는 깨달음의 길은 험하다 정도의 의미이며 불체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몸으로 보통 싯달타의 몸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舍利를 진신사리眞身舍利 라고 한다.
범어로 붓다의 원래 의미는 뭔가를 아는 사람 깨달은 사람이다. 붇은 깨달음이란 말이다.
종종 덕담으로 누구를 가리킬 때 저 사람은 뭔가 아는 사람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 용어로써 성불한 사람을 이르는 붓다에서 나온 말이다. 상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인 것이다.
'성불하십시오'라는 불교 인사도 깨달음에 성공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곧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교만이 아니라 불교에 앞선 종교인 배화교 즉, 조로아스터교나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이 추구해 온 것도 바로 깨달음의 길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에 관한 이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 깨달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
참고로 순수 물리학이란 학문 분야가 있는데 우주의 생성과 지구 물질의 기초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들의 연구로 우리는 원자나 핵 양성자 중성자 블랙홀 이론에 더해 근래에는 소립자(쿼크)들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매우 뛰어난 지능지수를 지닌 젊은이들이 보통 그 학문에 뛰어 드는데 얼마나 깨달음의 속도가 빠른지 1~2년 정도의 선배는
선생과 제자 사이일 정도라고 한다. 그 중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매년 수여하는 상이 있는데
그들은 이 상을 노벨상보다 더 영예롭게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은 물리학상이 아니라 철학상이라고 부른다.
물질의 기본 이치를 깨달았다 하여 수여되는 것이다. 물질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깨달음을 철학이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예이다.
필자가 아는 한 사람이 바로 그 상을 받았는데 초등학교때 그의 아이큐가 165였다고 한다.
그는 越班을 거듭하여 결국 미국 칼텍연구소에 선임 연구원으로 취직하여 소립자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였는데
(원래는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페르미 연구소가 목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보수 없이 연구해야
되는데 이국 생활을 감당할 여력이 없던 그였기에 적지만 보수를 주는 칼텍 연구소로 갔다고 한다.
이 내용은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의 부모가 마침 필자에게 좋은 배우자를 부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가 1996년에 받은 상장은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기에 아직도 필자가 보관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에게 감히 질문할 정도의 지식을 지닌 교수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는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었다.
우주 생성이나 물질의 이치를 깨달으려는 것도 창조주를 배제한 가운데 인간 스스로 생로병사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성서에서는 罪를 하느님의 요구 조건을 빗나간 것이라고 정의하지만 그들은 그 죄 라는 원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주이든 지구내에서든 그들이 원하는 형태의 생명의 기원을 밝히기만 한다면 실로 절대 신과 종교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 공학 유전자 공학등 그들의 깨달음에 기초한 과학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종교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깨달음 얻고자 하는 그 본질은 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같아
생로병사와 죄의식에 대한 극복이 주제가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바로 그 깨달음을 붇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붇 이라는 말의 기원은 무엇인가?
왜 그 붇이라는 말이 한국인에겐 불이라고 발음되는가?
그 붇 불이라는 말은 혹시 불火과 무슨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불교의 기원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이런 질문들을 양산해 냈다.
다음은 불(火)이라는 말과 그 파생어에 대한 누군가의 연구 자료이다.
전개되는 내용을 위해 먼저 참고하길 바란다.
http://cafe.daum.net/poemkim1/JqH3/101
흥미롭게도 세상에 나타난 마지막 붓다로 알려진 싯달타 고타마는 인도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출생 과정을 비롯하여 왕자였다고 하는 그의 나라가 어디였는지등 그에 관한 기록은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싯달타 고타마로 알려진 불교의 창시자인 그는 누구인가?
과연 방대한 그 지식은 어느 한 사람의 깨달음으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먼저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장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니므롯 외에 누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싯달타에 해당하는 사람이 존재하였을 수도 있겠으나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굳이 자신의 존재를 숨길 이유가 없다. 설령 누군가 있었다 하더라도 불교의 사상이나 관습등
모든 것은 그로부터 연유된 것은 아님이 분명하며 그는 단순히 불교의 세력화 구체화만 담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부탁하건데 앞으로 설명되는 지식들은 자신의 앎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만 독자에게 매우 유익한 지식이 될 것이다.
다소의 충격이 있겠지만 숨을 고르고 충분히 같이 추리한 다음 얻어진 결론들을 바탕으로 유익한 토론의 場이 마련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닫힌 마음을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사단이 원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의 많은 가르침들은 후대에 첨가된 것들이지만
그 기본적인 사상만으로도 그것이 어느 한사람의 깨달음이라기에는 보다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한 것들이며 따라서
그 배후에 인간 이상의 누군가가 넣어준 지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싯달타 고마타가 사용하였다는 언어나 사상 그리고 그의 초상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과거 바빌로니아 종교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사실상 한국인의 조상이자 바벨론 종교의 뿌리인 동이족 사람이라는 주장도 설득을 얻고 있다.
그의 제자 중 가장 기억이 좋다는 사람이 그린 그의 초상화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말하려는게 아니라 한국인의 뿌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그의 모습이라는 초상화는 다음을 클릭해서 볼 수 있다.
http://cafe.daum.net/poemkim1/JqmY/13
하지만 차츰 설명하겠지만 싯달타를 비롯한 붓다의 기원은 동이족이나 초기 바벨론 민족 그 이상이다.
불교에서는 싯달타를 포함하여 과거 七佛 즉, 일곱명의 붓다가 있었다고 하며
말세에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올 未來佛을 미륵이라고 부른다.
일부에서는 그 미륵이 과거 여섯번째 붓다로 現身했던 가섭불이라고 하는데
이는 즉, 말세에 중생의 구원을 위한 재림인 셈이다.
이제 과연 과거 칠불은 누구를 말하며 마지막 붓다인 싯달타는 또 누구인지
미륵이란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을 말하는지 파고 들어가 보도록 하자.
나는 다른 항목과 이 항목 2부에서 진시황이 바로 알렉산더였다 라는
다소 충격적인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설명되는 불교와 붓다에 관한 것은 전혀 독창적인 주장인데
이런 주장은 일반적으로 큰 반발을 수반하게 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에 관한 설득을 얻고자 사용할 때는 참으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공격을 위한 공격은 전파자의 진정한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주장이 아무리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여과없이 그냥 받아들이거나 전하지 말고 더 묵상하고
연구를 더하여 증가된 순도 높은 지식과 결론들로 열린 토론의 場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필자가 불교를 가장 먼저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인류 최초의 종교가 바로 불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원이 사단에 의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 사상은 나중에 생겨난 많은 거짓 종교들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불교적 가르침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사단의 종교에 대해 그만큼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종교적 미스테리(신비)를 푸는 마스터 key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최초로 신, 곧 하느님을 섬기게 된 까닭이
바로 불을 두려워 함에서 시작 되었으며 태양신을 섬기는 일이 최초로 발견되는 종교의 형태라는 주장은
불교에 대한 나의 연구 및 조사의 방향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필자가 말하는 불교라는 말은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에 기성화 된 형태의 종교인 불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구원으로 간주하는 원시 형태의 추구가 바로 불교의 가르침의 시작이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사실 이 불교적인 가르침과 교리들은 샤먼들의 활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그래서 가끔은 이 두 종교를 하나로 혼동하기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만큼 밀접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종교의 시작와 발전에 대해 하나씩 벗겨 보도록 하자.
노아 홍수 이후 최초로 하느님께 반역한 자로 기록된 니므롯은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가 바로 사탄의 現顯이기 때문이다.
니므롯의 반역은 우리가 언듯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성서 창세기 10장에서는 그의 출현과 관련하여 이렇게 알려 준다.
니므롯은 땅에서 처음으로 위력 있는 자가 되었다.
그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위력 있는 사냥꾼임을 스스로 나타냈다.
그 때문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위력 있는 사냥꾼인 니므롯 같다”는 말이 있다.
홍수 후 처음으로 위력 있는 자라는 말은 홍수 전에 그와 같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상 그는 홍수 이전의 사단에 의해 구축된 모든 하느님을 대항하는 것을 재현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홍수 후 모든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신으로 섬김을 받게 된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미리 언급하자면 그가 스스로 사냥꾼임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우리 말 山行으로도 사용되는 사냥이라는 말이 후대에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크고 특별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어떻게 단순한 한 인간의 반역이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오늘날의 수십억명을 포함하여
그동안 존재해 온 수백억의 엄청난 사람들을 반역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사단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본능으로 넣어 주신 靈性 즉, 경건이란 특성을 이용하여
마치 보이스 피싱等 교묘한 방법으로 타인의 송금을 가로채는 사기꾼 처럼
인류 역사 내내 하느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가로채 오고 있다.
홍수 전이나 홍수 후 인류 역사가 쓰여지던 초기에 사단에 의해 심겨진 거짓의 뿌리들은 이후 세상의 역사 언어 풍습
그리고 철학 종교를 포함하여 거의 이 세상을 형성하는 모든 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칫 우리가 계속 진리의 정확한 지식을 아는데 게을리 하거나
혹 알았다 하더라도 그럴듯하게 재포장해서 내 놓은 사단의 속임수에 속게 되면
하느님께 드리는 숭배의 상당 부분을 사단이 가로채게 하는 것이 된다.
아바타等의 영화가 그렇고 축일들이 그렇고 국가주의가 그렇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에 열광하는 것도 덫이다.
연예인들을 우상화 하거나 그들을 따라하려는 정신도 사실상 사단의 계좌로 빠져나가는 송금과 다를 바 없다.
외모 지상주의는 성형이나 수술을 정당화 하기도 한다.
최근 유행(트랜드)이라는 미명하에 도교 관습처럼 禪食을 하며 명상을 한다거나 요가를 이용한 다이어트等도
어렵게 탈출한 사단에게 다시 포로로 잡혀 들어가는 모양새와도 같다.
이는 가나안 사람들을 온전히 쫒아내지 않아 반복적으로 배교에 빠진 이스라엘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은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를 위해 고대 바벨론 사상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신 목적을
일부러 망각한 채 약속의 땅에서 그들을 깨끗이 몰아내라 하신 명령을 어기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 남겨 둔 누룩 같은 가나안인에 의해 다시금 부패하고 더럽혀져
결국 그들이 버리고 나온 바벨론 종교로 되돌아 갔던 것이다.
그로 인해 훗날 그들에게 닥친 비극적인 일들과 비참함을 기억하는가?
포로로 끌려가 똥 같은 우상들을 강제로 섬기며 바벨론 江 가에서 슬피 울며 노래 부르던 고라의 자손들을 기억하는가?
이는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우리와 어쩌면 상황이 그리도 비슷한가?
그러니 우리는 조직을 통해 반복적으로 경고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단순한 듣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한다. '귀 있는 자는 깨달을진저'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처럼 말이다.
우리의 깨달음이 불교의 깨달음보다 마땅히 더 나은 깨달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정화수를 떠 놓고 정성껏 빌며 온갖 금기들을 철저히 지키며 그들의 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순수와 열정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역시 심각하게 하느님께 대한 경건의 순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경건은 순도가 낮아질 수 있으며 상당 부분의 숭배를 가로채기 당할 수 있다.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가 정성껏 치료하고 돌보고 결국 자녀를 삼았는데
그가 말 끝마다 자기를 버린 부모를 예찬하고 그리워한다면
아무리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지만 그를 받아들이고 돌본 부모의 마음이 좋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자진해서 사단에게 숭배를 바칠 수도 있다. 승리의 여신은 나이키(니케)이다. 나이키는 사단이다.
그리고 공으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는 과거 왕을 구하는 축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 球자를 한번 破字해 보라. 王 혹은 玉 변에 求가 보일 것이다. (玉은 임금의 상징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왕을 누가 임명하는가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단의 선택을 기도하는 것과 같다.
요즘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월드컵에서 한국이 승리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는가?
손을 모으고 제발 제발 사단이 당신의 편이 되기를 기원하는가?
16강 8강 4강 等 축구 강국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사단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强이라는 한자의 파자와 설명은 2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전 세계인을 열광하게 만드는 신흥 종교와도 같은 이 스포츠는 결코 정상적인 운동 경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며 사단은 웃고 여호와 하느님은 근심하고 계심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런 행동은 마치 세상의 빛이 되라며 送電하신 진리의 전압이 마치 放電으로 인해 희미해지게 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진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재고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간단한 연구만으로, 집회에 빠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의 개인 연구만으로
나는 이미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빛 가운데 걷고 있을 거라는 自慢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종교(불교)의 기원에 대한 이 조사가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으면 한다.
우리가 가진 진리가 보석의 原石이라면 이를 갈고 닦아 정확하고 다양한
빛의 반사면을 지녀야 진리의 빛을 더욱 찬란하게 반사하지 않겠는가?
이 세공의 과정은 마치 깨달음과도 같아 누가 대신하거나 값을 치르거나 할 수 없는
오로지 개인적인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깨달음은 곧 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이 구원이야말로 누가 대신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잖는가?
앞으로 다루어지는 내용들이 독자의 그런 노력들에 좋은 자극제가 되고 촉매가 되기를 바란다.
사단의 씨에 대한 고찰 -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게는 참으로 많은 종교가 있었고 또 지금도 존재한다.
이는 마치 분명 뿌리는 하나인데 뛰어난 접목 기술로 갖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보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종교는 그 종교에 몰입한 다양한 사람들을 신도로 두어 왔으며 그들에 의해 그 종교는 점진적으로 학문적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이것은 하느님을 찾으려는, 어쩌면 순수하고 단순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강력한 힘의 종교의 뿌리는 물론 우리가 이미 익히 아는 바처럼 사단 마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거짓종교라고, 세상의 초등학문과 같은 것이라고 일언지하에 단정지을만큼 단순한 것이겠는가?
고린도 둘째 10: 4-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싸움의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강하게 방비된 것들을 무너뜨리도록 하느님에 의해 강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추리들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거슬러 일어난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려면 知彼知己의 정신에 입각해서 그들의 가르침을 반박할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하느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종교는 사단에 의해 시작된 것이며
그 종교라는 씨에 물을 주어 자라게 하고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한 자도 사단이다.
하지만 사단은 예수께서 지적하셨듯이 '그 속에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자이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거짓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진리의 빛은 여호와께 속해 있으므로 그가 진리를 말하게 되면 자연스레 하느님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사단이 택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바로 빛의 하느님 여호와로 가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광명의 천사가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형체이셨으나 결코 동등되려고 하지 않으신 분이셨다.
빌립보 2:5-9은 이렇게 알려 준다.
"그분은 비록 하느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지만,
장악하려고 곧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사단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사야 14:12~14
너 빛나는 자, 새벽의 아들아, 오 어찌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너 나라들을 무력하게 하던 자야, 어찌 네가 잘려 땅에 쓰러졌는가!
너는 마음 속으로 말하였지.
‘하늘에 내가 올라갈 것이다.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내가 나의 왕좌를 높이고,
북쪽 맨 끝 부분에 있는 모임의 산 위에 앉을 것이다.
내가 구름의 높은 곳 위로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비슷해질 것이다.
그는 원래 지구를 돌보도록 보냄 받은 천사였지만 오히려 하느님께 돌아갈 창조주로써의 권세와 영예를 탐한 자이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하느님 이상이 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예수와는 달리 하느님과 비슷해지려고 즉, 동등되려고, 자신이 창조주 하느님이 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바로 빛의 하느님 여호와로 假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말씀 그분의 창조 기록등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재편집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까지 흉내내었을 것으로 보인다.
뱀을 통한 사단의 목소리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분명히 속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대표적 사기술인 보이스 피싱의 원조는 바로 사단인 것이다.
성서가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분이 자신의 백성과 나라를 두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아들을 땅으로 보내지 않으셨다면 사단의 정체는 아마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단은 드러난 자신의 정체를 또 숨기기 위해 다양한 가면으로 모습을 바꾸며 광명의 천사 행세를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그의 능력은 참으로 탁월하다. 가히 대사기꾼이라고 할 만 하다.
지상의 그의 종들도 그를 본받아 겉으로는 의로운 체 하지만 흉한 해골이 가득한 무덤과도 같다.
마침내 그는 하느님의 아들에 관해서도 그분의 실체와 가르침에 관한 진실은 감추고 사도들이 죽은 다음 그분을
무력하기 짝이 없는 구유에 누인 아기이거나 마리아의 품에 있는 아기, 그리고 결국은
십자가를 진 사람 (나무 木자가 의미하는)즉, 그의 대표적인 씨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니므롯)와 같이 조작해 버린다.
구유는 마치 목욕통과 같아 사단의 씨를 받아 간직하는 조두 항아리를 연상케 하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환생한 니므롯을 안고 있는 세미라미스와 똑 같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참으로 불경스러운 행동을 서슴치 않은 것이다.
잠시 커피 한 잔 합시다.
假裝 행렬을 본 적이 있는가?
참가자들이 갖가지 상상 속의 인물이나 신들의 가면을 쓰고 행렬을 하는데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정작 가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이처럼 사단의 가장술은 참으로 뛰어나서 베뱅이 굿에서 재현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혼으로 위장 하기도 하고
때론 우리가 도깨비 강시 염라대왕 저승사자등을 무해한 귀신을 넘어
어쩌면 인간과 비슷한 성정의 이로운 신으로
여기게 될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도 하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할로윈 데이에 등장하는 가면의 한가지다.
불이 두려움으로 묘사된 것이 흥미롭다.
저런 그림은 보통 영이 그 속에 있음을 묘사하는데 靈은 깨달음이란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깨달음은 반드시 사단의 영감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중국에는 변검술이란 아주 오래된 연극이 있는데
이는 漢족이 아니라 동이족등에 의해 전승되어 온 것으로
사람들은 변검술을 '천부의 꽃'이라고 부른다.
순식간에 수십가지 얼굴로 변하는 것은 마치 사단을 보는듯 하다.
에덴에서처럼 복화술도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다 마술의 한 형태이다.
사단은 여호와 하느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이나 예언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위장하였고
그분의 모든 창조물을 다 자신을 대리한 신들이 창조 하였거나
그 근본인 것으로 가장하므로 사람들의 숭배를 가로채 온 것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정체를 더 이상 숨기기 힘들어지자 그는
창조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철학인 진화론을 주창한다.
진화론은 근대 유물론 사상과 그에 근거한 공산주의 이념의 기반을 이루는데
가장 인간에 근접한 진화의 모습으로 원숭이가 등장한다. 학명은 유인원이다.
힌두교에서는 원숭이가 神인 것을 기억하는가? 심지어 원숭이 사원도 있다.
부처의 現顯으로 온갖 도술에 능한 손오공도 있다.
神이라는 한자가 바로 원숭이가 보인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한자 申은 십이지의 아홉번째로 원숭이를 상징한다.
이집트의 토트라는 신도 원숭이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는 하느님의 심판을 대신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원숭이를 인간의 조상신으로 섬김 받게 한 것은 비단 근대의 진화론만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하와가 뱀의 배후를 몰랐던 것처럼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정성과 숭배가
하느님께 드려지는 것으로 속게 되므로 사실상 사단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면 되레 화를 낼 정도로 그들은 철저히 사단에게 속아 있다.
심지어 그가 얼마나 간교하게 가장하였고 사람들을 속였던지
사람들은 사단이 저지른 모든 나쁜 결과를 다 하느님 탓으로 돌리게 될 정도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일을 겪을 때마다 마치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하느님께 추궁하듯
하느님 맙소사!(하느님 그리 하지 마옵소서!) 오 마이 갓!을 외치는 것이다.
911 테러 당시 사람들이 놀라 도망가면서 'oh! my god'을 외치던 장면을 기억해 보라!
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사단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기본적인 믿음과 교리
그리고 깨달음의 결과가 비슷한데 이는 당연한 것으로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 中에 가장 오래된 뿌리를 계속 파 들어가보도록 하자.
마치 오래된 넝쿨을 따라 케케 묵은 칡뿌리를 찾아 캐내듯 말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심지어 진리의 나무마저 칭칭 감고 있는 넝쿨로 인해 자칫 사단을 잃어 버릴 수 있다.
사단의 범죄적 반역에 가담한 아담 이후 첫번째 사단의 氏는 가인이었다.
사단은 뱀을 시켜 말한 이후에도 계속 하와에게 접근하였을 것이며 어쩌면 하와가 먼저 그를 찾았을 것이다.
마치 풍요롭게 살다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한 집안의 사람들이 닥친 현실을 더 힘들어하듯
그리고 조속히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 몰두하듯 에덴에서 추방된 그들도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그들 역시 어서 에덴으로 돌아가고 싶어 조급해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분명 하느님 아버지의 약속도 있었고 하니 어쩌면 하와는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처럼 생긴 나무를 찾아
자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주어지길 기다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나 짐승이나 먹이는 항상 낚시의 미끼가 된다. 사단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이용한다.
나무 아래서 사단(뱀)이 하는 말을 기다리고 유심히 귀 담아 듣는 하와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것은 마치 지금의 무당들이 神託을 대행하여 나무 아래서 신을 부르며 답을 요청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환웅의 신단수나 싯달타의 보리수 나무가 깨달음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것은 이토록 오래된 기원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가볍게 한 상상이지만 분명 유사한 형태의 일들이 벌어졌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와는 그의 잉태가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었지만 하와의 이 말은 복낙원에 대한 조급함의 표현으로 보인다.
사단은 가인을 잉태한 하와에게 네가 바로 하느님이 말씀하신 그 여자이고
지금 뱃 속의 아이가 하느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씨라고 굳게 믿게 하였을 것이다.
사단은 하와의 조급한 소망을 속임수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바로 사단이 노리던 것이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들은 다음 그에게 주어진 다른 영감들이 또한 여호와로부터 온 것으로 믿었다면
이는 철저히 여호와로 가장한 사단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고 또 성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 설명할라치면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은 다 하느님을 믿지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되묻기에 이른 것이다.
나중에 그는 여자의 씨에 의해 머리를 상하게 될 뱀조차 신격화 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용을 고안해 내었다.
용은 두 뿔의 소와 날개 달린 말 그리고 긴 몸뚱을 지닌 뱀을 합친 상상속 동물인데
소(태양)는 종교적(하늘) 기능을 말(날개는 중개자를 의미)은 전사(사람)를
뱀(기어 다니는)은 농부와 기술자(땅) 집단을 상징한다.
그래서 용은 정확히 천지인의 권세를 받은 삼위일체의 신 사단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은 여호와 하느님에 대해 직접적인 적의를 지닌 일단의 자손들도 두게 되었으며
그노시스파를 포함하여 그들은 직접적으로 사단을 지혜의 근원으로 여기고 숭배한다.
사단은 자신의 첫번째 씨가 된 가인에게 여자의 씨 혹은 그 씨의 조상으로 보이는 아벨을 죽이도록 영을 불어 넣었다.
가인이 여자의 씨로써 기대를 독차지 했던 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질투끝에 아벨을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담과 하와 역시 그들이 하느님께 범죄하게 된 것이 그들만의 순수한 판단이라고 여겨지는가?
이는 다 자유도덕행위자인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단의 간교한 술책으로 빚어진 것들이다.
아담과 하와에 대한 간접 살인에 이어 직접적인 살인 역시 사단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께서 뱀의 허물을 확실하게 벗겨내시면서 증거하셨듯이 최초의 살인자이다.
모든 살인자의 조상, 거짓(속임수)의 아비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옛 뱀이요 중상자 마귀이자 살인자라고 단언하셨다.
계시록에는 그가 옛 뱀(독사)이자 큰 龍으로 나온다.
당시 이미 뱀 즉 사단을 신격화 한 용 숭배가 만연하였기에 그리 부른 것이었다.
계시록에서만 사단을 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뱀과 용은 사단이고 그의 씨는 뱀과 용을 숭배함을 결코 잊지 말라.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 즉, 드래곤 볼은 그의 권세를 상징한다.
특히 조폭들의 현란한 용 문신은 그들이 누구의 정신을 반영하는 자들인지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뱀의 실체가 밝혀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사단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와 시간을 활용하여 인류를 온전히 미혹하였던 것이다.
뱀의 첫번째 씨가 된 가인과 그의 후손은 사단의 지원을 받아
홍수 前 역사 기간 내내 지배적인 위치에서 번창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인의 후손인 두발-가인등이 나타낸 재능도 자신의 조상인 가인의 행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가인은 목자였으며 성을 건축하였던 자로 야발의 천막과 비슷하고
두발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이름에도 가인을 넣을 정도이고
유발의 음악은 차차 언급되지만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띤 분야였던 것이다.
그들의 이름에 하나 같이 '발'이 등장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따라서 홍수 전에 그들의 후손을 포함하여 하늘에서 합류한 천사들의 씨까지 사단의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다.
홍수 전 지구상의 인구가 1500만명이라는 추산도 있고 1억에서 많게는 10억명은 足히 되었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혹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문명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물론 거대한 홍수로 인해 땅 아래 묻혔을 것이고 그들의 역사는 단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 의해 전해진 것들을 통해서 그리고
망 속에 묻혔던 그들의 흔적이나 홍수를 피한 그들의 흔적에서,
더 나아가 그 문명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은 사단의 재현에 의해서 충분히 그 시대에 대해 알 수가 있다.
사단은 범죄한 아담이 생명나무마저 먹게 하므로 하느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 자이다.
사단은 분명히 홍수 전 존재했던 거대한 세상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하느님에 의해 정해진 기간 이후에도 계속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시 그의 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는 하느님을 상대로 온갖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기려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하늘의 천사들까지 자신의 편을 만든 것을 보면 이는 그가 대대적으로 하느님을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어
땅에 대한 통치권을 계속 유지하려 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왕 예수와 그의 천군을 상대로 필사적인 전쟁을 벌이지 않았겠는가?
1914년 직후 벌어진 하늘의 전쟁은 참으로 격렬하고도 큰 전쟁이었던 것이다.
계시 12장에서 1800여년후의 일을 환상으로 미리 본 요한의 생생한 증언을 읽어보라!
그리고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맞서 싸웠고, 용과 그 천사들도 싸웠다.
그러나 용이 당해 내지 못하였고, 하늘에서는 더 이상 그들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큰 용이 내던져졌는데, 그는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그릇 인도하는 자이다. 그가 땅으로 내던져졌으며,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던져졌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땅으로 내어 쫒긴 후에 자신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사단이 알았다고 성서는 알려 준다.
그는 자신의 통치 기간에 한계를 정해 놓으신 하느님의 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던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따르는 인간들의 입을 빌어 여호와께 마치
'당신만 훼방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에게 나의 통치가 뭐 그리 나쁜 것이었냐는'듯
항의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반역에 실패한 패장이 지지자들과 함께 투옥되어서도
부끄럼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특이한 것은 니므롯이란 이름이 대항하다를 의미하고 마르스가 반역을 의미하지만
오히려 인기 있는 신이 된 것처럼 사단의 세상에서는 반역적인 특성이 매우 인기 있다는 점이다.
'케 세라 세라' '렛 잇 비' 등의 노래 제목과도 같이 제 멋대로, 간섭당하지 않고 살려는게
특히 사단이 땅으로 쫒겨난 후에 강조된 이 시대의 특징이다.
과거에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보면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공손하게 대하였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눈을 마주치고 야단을 치면 흉기를 들고 달려든다.
하지만 홍수 전 세상을 폭력으로 멸망의 위기에 빠지게 하는 것은
사단에게 세상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시대를 완전하게 멸망시키고 인간 역사를 새로 시작하게 하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
그런 하느님의 심판은 우주 주권자로써 강력한 권위에 의한 것으로
사단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대홍수로 사단의 세계는 지워졌으며 따라서 그의 시도는 일단 좌절 되었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는 계속 이 세상의 통치자로 하느님에 의해 허락된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전개된 사단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가 원하는 자들만 통치를 하도록 허락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홍수 전처럼 세상의 왕으로써의 사단의 행동에 대해
여호와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은 소극적으로 대처할 것이 분명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거나 지금 하느님의 백성들을 보거나 사실이 그렇다.
사단은 하느님의 관점에서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천사들을 배심원으로 하는
재판 과정이 끝나 확실한 유죄가 판명될 때까지는
임의대로 세상을 통치하며 세상의 신으로써 그가 원하는 것들을 누릴 것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세상이 라는 말은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사단에 의한 사회를 말한다.
그곳은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이므로 세상에는 빛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 이제 깨끗해진 세상에 누가 가인의 뒤를 이은 사단의 씨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話頭가 된다.
어쩌면 홍수 이전부터 사단은 마치 첫 인간 부부를 관찰하듯 노아의 가족을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기회를 노리던 사단은 이내 반항적이고 노아의 권위에 대해 불경한 태도를 지닌 함을 주목하였다.
그런 태도를 지닌 함이기에 아들 가나안이 술에 취한 노아에 대해 성도착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도
그의 두 형제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노아를 인류의 새로운 시조로 정하신 하느님에 대한 불경과도 같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는 가나안이 이미 사단의 사주를 받았거나 함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저주 받기에 분명한 것이었다.
노아는 가인처럼 농부로 홍수 후의 자신의 생애를 시작하였으며
수 년이 지난 다음 마침내 포도원을 경작하였고 포도주를 만들었다.
이 포도주는 지금처럼 오래 숙성시킨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는 분명 하느님과 함께
자신이 믿음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인해 기쁨에 넘쳐 이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다.
성서 창세기 9장에서는 그때 벌어진 일에 대해 알려주는데
이때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잠들었다는 말은 없다.
아마 노아가 술에 취한 채 나체로 그리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행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나안은 예언자로써 그의 태도를 조롱하였거나
인사불성의 노아에게 성적으로 불경한 행동을 하였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조상인 가나안의 태도를 본 받은 가나안 族은 특히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민족이 된다.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멸망된 것을 비롯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소돔이라는 지명에는 소와 돔이 나온다. 고모라에는 곰이 나온다.
이 추리는 임의로 한 것이지만 그들의 행위를 보면 이런 가정이 그럴듯 할 것이다.
소에 대한 자료 1
노아가 아벨처럼 여호와께 경건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바친 동물 중에는
분명 소가 중요한 제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메르가 소머리와 같은 말이고 앗수르의 상징이 소 라는 것은
그들이 수소 숭배를 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경건한 제물로 소를 사용함으로써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상징물로 걸어두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우리도 사냥을 하여 잡은 것을 기념으로 박제하여 만들어 놓거나
그 가죽으로 공예품을 만들어 걸어 놓기도 하며 낚시에서 잡은 것을 魚拓하여 보관하지 않는가 말이다.
조상의 상징물을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의식을 바꾸는 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셈의 후손들에게 소는 조상의 상징으로 매우 중요하였을 것이었고
그들은 지배족이 되었으므로 사단은 마치 나무와 불을 자신의 숭배에 이용하였듯이
그들의 상징인 소를 우상으로 이용하므로 사단 숭배에 소가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소에 대한 자료 2
수레라는 말이 있다. 짐승을 이용하거나 사람이 끄는 바퀴가 달린 운송 도구이다.
말을 이용하는 일이 많았기에 마차라고도 불리는 이 수레는 수리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데
힌두교에서는 이 태양 마차는 태양신의 수리아라고 불렀으며 수레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수리는 독수리의 수리와 같은 말로 으뜸을 말한다.
그리고 이 수리라는 말은 원래 마시는 '술'의 술이었으며 여기에서 소나무를 가리키는 솔이 나왔다.
또한 수리라는 말은 태양을 의미하는 힌두어이다.
'수리 수리 마하 수리'는 태양신에게 소원을 비는 주문이다.
서구에서 학질을 떼 달라며 외우는 주문 '아브라카디브라'와 비슷하다.
독수리의 독禿은 대머리라는 뜻으로 털이 없는 그 새의 머리로 인해 붙여진 말이다.
독수리의 본래 명칭은 수리가 맞다. 수리는 삼족오의 까마귀와 함께 태양새이다.
태양제인 단오를 수릿날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독수리는 조장에 등장하는 새이다.
鳥葬은 하늘새인 독수리나 까마귀에 의해 영혼이 하늘로 옮겨짐을 믿는 장례 형태이다.
시신에서 수습되는 뼈는 무속에서 생명과 환생을 뜻한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이 뼈를 중시하는 풍습과 사상은 세계적이다.
뼈대 있는 집안, 조상의 뼈가 묻힌 곳이라는 말은 조상의 영이 뼈로 이어진다는 뜻이고
뼈도 못추린다는 말은 성서나 무속이나 부활 혹은 환생이 없음을 뜻한다.
성서에도 죽은 뼈가 살아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여러번 반복된다.
흥미롭게도 유대인 전승에는 아담이 여러 동물의 뼈를 모아 놓고
아들들의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는 내용이 있다.
단오제는 니므롯의 죽음을 슬퍼하는 담무스(아도니스) 축제와 매우 흡사한 태양 축제이다.
그러므로 소는 태양을 상징하는 중요한 짐승이다.
고대 이교에 의한 천문학에는 언제나 태양 마차 혹은 수레가 등장한다.
가장 높은 신의 상징인 태양의 뜨고 지는 일과 계절에 따라 그 위치가 변하는 모양이
마치 그들이 그려 놓은 천문 자리를 따라
마차 혹은 수레로 (당시 최고급 승용차 혹은 전용기) 이동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보통 그 천문도는 밭 田 모양이 기본도였다. (장기 바둑판과 윷 판이 다 그 모양에서 기원한다.)
밭을 가는데 가장 유용한 동물이 소이며 농업은 당시 가장 중요한 분야로써
당시 천문 지식의 필요는 거의 농사(목축 어업등 1차 산업)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한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것이 田 口 十으로 이는 태양 신전의 바탕 모양이거나 상징이기 때문이다.
피라밋(방첨탑)의 기초도 사방형이다. 만주 지역에서 발견되는 피라밋도 오벨리스크도 느부갓네살의 탑도 똑 같다.
바로 그 마차 혹은 수레를 끄는 것이 소였던 것이다.
황소가 천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 이보다 더 유래가 깊은데 그 점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따라서 소, 특히 힘센 수소(황소)는 천문도에서 중요한 자리에 위치한다.
황소자리(Taurus [ˈtɔrəs], 기호: ♉)는 괄호처럼 쓰여지며 표기된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초저녁이 바로 이 황소자리를 보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당시 한 해의 시작은 동지였다.
황소라는 말은 힘센 수소를 가리키는데 황은 한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은 한 소가 맞다.
그 한은 환인 환웅의 환과 같은 말로 크다 위대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환과 한은 같이 발음되는데
한이 황으로 발음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黃이 皇室의 색으로 특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이전 바벨론 지역에서 시작된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에 의하면
흑은 북 홍은 남 그리고 황은 중앙을 가리키는 색이었다. 이는 흑해 홍해 사이의 지중해가 黃海였다는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서해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서해는 절대 누런 색의 바다가 아니다.
한이 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비슷한 예로 한새-황새 한길- 행길 - 한데 나가지 마라의 한이 있다.
또 한아버지 한머니 - 할아버지 할머니 대전- 한밭 대천 - 한내 等이 있다.
곧 한은 크다 위대하다이며 태양을 말하기도 하는데 환한 하늘이 바로 그것이다.
인물이 환(훤)하다는 말은 마치 그에게 태양의 후광이 보이는 모습을 말하는 듯 들린다.
황소는 五方에서 중심이 되는 색이므로 중요한 짐승인 소에게 붙여졌을 수도 있다.
성서에서는 힘센 수소로 언급된다. 타우루스 토러스 톨로스를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타우는 그러므로 태양 마차를 끄는 수소의 상징이므로 태양신의 표시가 된다. 그 시작 글자는 T로 고어는 十이다.
이를 신비의 타우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사단의 종교에 왜 십자가가 많이 등장하는지 이유를 알려 준다.
소는 고대로부터 강한 힘과 순종심 젖과 고기 그리고 강인한 번식력으로 인해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였다.
사람들의 생존이 소에게 달렸던 때가 많았는데 지금도 농가에서 소는 최고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고대는 주로 농업과 목축에 의존하던 사회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는 히브리어로도 쇼르인데 수메르어는 go이다. 이 부분은 다른 곳에서도 누차 언급하였다.
소는 소나무 흴 본디 素 불사를 燒 깨어날 蘇 등 해와 악기와 연못 깨달음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본래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겠지만 모방과 배교의 전문가인 사단에 의해
이것들 즉, 소와 소나무와 흰 색등은 그의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황소를 가리키는 타우루스 톨로스는 힘센 수소를 말하는 것으로 돔dome의 어원이 된다.
돔은 그러므로 천문 관측소가 들어서는 지형과 사원의 형태를 부르는 말이 되며 깨달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메소포타미아의 이브라 지역이 바로 그런 접시를 엎어 놓은듯한 돔 형태의 지형이었다.
위도가 남천축(31˚)으로 천문 관측에 좋은 지역인 예루살렘에도 솔로몬은 인위적으로 돔 형태의 둔덕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그 장소에 지금 이슬람의 사원인 바위의 돔이 들어서 있다.
(그 자리는 다윗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성궤를 옮기다가 웃사가 죽고 수년간 보관하였던 오난의 집 마당 자리이다.)
바티칸의 내, 외부도 다 돔 형태이다.
바티가 '占을 치다'라는 의미라고 했는데 점 중에 가장 큰 占은 말 그대로 占星術 즉 별을 보고 치는 점이다.
당시 깨달음이라는 말은 곧 천문에 관한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박사는 곧 천문 박사였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천문 분야의 박사는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압도하며 그들은 가장 앞선 깨달음의 지도자的 박사이다.
시간을 재는 것의 정밀함은 계속 발전되어 왔으며 지금은 수십, 수백만분의 일초까지 오차를 계산해 조정한다.
그들이 제시한 기준은 곧 세계의 표준이 되어 세상을 지배한다. 이 기준이 바로 천문학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통일된 역법이 없었던 과거에는 오죽하였겠는가?
당시에는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면 새로운 역법이 만들어질 정도였던 것이다.
태양이 기준점이기는 하지만 농사나 어업등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달이었기에 달력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농부나 어부는 태양력보다 달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에서 정한 절기를 더 중시하며 살아간다.
우주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이 달이 지니는 중요성으로 인해 많은 신들이 달의 신으로 불리워졌다.
아마 돔의 형태는 솔로몬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노아에 의해 시작되었거나 홍수 전부터 사용되던 형태로 보인다.
수소가 천문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이므로 소가 깨달음과 관련된 동물이나 단어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理解의 해 라는 한자에 소 뿔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소가 태양을 의미하게 되므로 소의 두 뿔은 태양 광선을 의미한다.
이 소의 불을 해체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풀 解라는 말은
결국 천문에 관한 이치를 깨닫는 것, 불과 빛의 근원을 알아 내는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소의 뿔을 잡는다는 말과 뿔의 각을 뜨는 행위 역시 깨달음의 과정을 상징하는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투우사가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천을 휘두르며 그 힘센 수소의 뿔을 잡고 쓰러뜨린다는 것은 곧 깨달음의 정복을 의미하고
한국의 소씨름에서 무기는 오로지 뿔인데 뿔은 태양 광선을 말하므로 이는 사람에 비하자면 광선 총과 같은 것이다.
글자에서 십자가가 보이는 소는 牛보살이라 부른다. 투우가 왜 인기 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牛의 고어이다. 소머리 모양에서 만들어 진 글자이지만
십자가 삼지창 그리고 山자와 신전의 모습등이 보인다. 牛 字에도 십자가가 들어있다.
태양은 그리스어로는 헬라helia 라틴어는 솔sol이며 영어는 선sun이다.
태양의 아들이라는 말은 깨달은자와 동의어이다.
특히 그리스어에 한국말 해와 la라가 들어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라는 신라 알라의 라와 같은 말로 태양을 말한다.
sun은 조선의 鮮과 같은 발음이자 의미를 지닌다.
sol솔 역시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세시 명절로 새로 시작하는 '해'가 바로 설이다.
세계 모든 언어에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 다 한국말과 연결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또한 돔의 형태에 관해서는 이런 추리도 가능하다.
지금도 천문대나 우주를 관측하는 망원경 혹은 레이다가 다 접시 즉, 돔 모양을 하고 있다.
과거에도 야트막한 동산에 천문 관측소가 지어졌었는데 천축 지역에 마땅한 모양의
돔 형태가 존재하지 않으면 솔로몬 시대의 경우처럼 둔덕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돔 모양은 우주를 보다 넓게 바라보거나 담는 형태이므로 그리 지어졌을 수 있는데
지금의 그 오목한 렌즈형의 레이다나 망원경도 우주를 한 눈에 관측하거나
우주에서 오는 빛과 전파를 최대한 넓게 잡아내기 위해 그런 형태를 지니는 것이다.
돔 형태에는 보다 많은 별자리를 입체적으로 그려 놓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돔이라는 형태는 매우 과학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불교에서도 깨달음과 관련하여 샤먼들이 쓰는 말이나 어법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예컨데 眞人 眞如라는 말은 샤먼 혹은 천문에 관한 깨달음을 얻은 샤먼과 같음이란 말이다.
사실 경주 지역의 첨성대나 석굴암은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
이전 가야 시대부터 사용되던 천문 관측소로 그것은 태양신전이고 샤먼 사제들에 의한 건축물이었다.
그것이 아무런 충돌없이 그대로 신라 불교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소나 염소를 신성시 여겨 牛보살이라고 부름을 기억하라!
여기서 우리는 얼마전 히트한 영화 워낭 소리와 불교화인 十牛圖 그리고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 특히 인기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불교와 매우 깊이 연관된 종교로 힌두교도 있다.
힌두교의 의미는 힌-흰 흴 素이고 頭-머리 로 이는 곧 소머리교 흰 소를 신성시 하는 종교라는 말이다.
희다 흰 의 어원은 해 즉, 태양이므로 따라서 흰 소는 태양신을 상징한다.
힌두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 뿌리를 둔 종교로서 두 종교는 매우 비슷하다.
페르라는 말은 한국어 불과 같은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동방은 지금의 극동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소아시아나 페르시아 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해가 뜨는 이란 의미의 아시아나 태양(불)이 뜨는 의 뜻을 지닌 페르시아나 같은 말인 것이다.
(한국말 아는 불을 의미 하기는 다른 말이기도 한데 아궁이 아오지가 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가 배화교인 것이고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인 것이다.
그래서 소가 신성시 되는 것으로 이는 힌두교와 불교가 똑 같다.
필자의 생각엔 파라과이가 위대한 태양(파라)신의 골, 고을(과이)이라는 주장을 빌어 우르과이는 소고을이라고 본다.
갈대아 ur 지방의 우르는 소를 말하는 牛의 의미도 지녔기 때문이다. 과이는 골 고을이란 말이다.
사실 우르는 우리fence(여기서 we 우리가 나옴) 울(울타리) 개(워리)등을 말하는 한국말과 닮아 있다.
소머리라는 말의 기원은 수메르인데 셈과 그의 아들 앗수르의 상징이 소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문학은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셈의 족속이 수메르어로 세메르로 소머리라는 말은 그래서 동의어로 사용된 말이다.
셈 족은 그 지배적 위치로 인해 항상 지도자로 여겨졌고 초빙되었으며 섬김을 받았다.
그 수메르 지도자라는 말이 바로 牛頭머리이다. 묘청이 초빙하려던 백두선인도 유명한 수메르 천문박사를 말하는 것이다.
셈 족이 천문학이라는 지배적 지식의 상징으로 소머리를 사용하였다면 아마 그것은 보다 오래된 기원에 근거하였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아래 가인의 후손들에 관한 내용에서 좀 더 상세히 추리해 보도록 할 것이다.
결국 에덴의 나무와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우상화 시킨 사단은 소와 천문관측소인 돔 등도 모두 우상화 시켰던 것이다.
위의 내용들은 앞으로 반복되는 자주 내용이지만 미리 새겨 두고 계속 진도를 나가도록 하자!
이로써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반역을 포함하여 성서에 간단히 언급된 일들이
결코 즉흥적으로 벌어진 간단하고도 단순한 일들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추리하게 된다.
창세기를 다시 읽어보면 하와의 일도 최소한 하루 이상의 기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들의 선택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계산한 다음에 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노아에 대한 가나안의 태도 역시 분명 이전의 여러 상황들이 축적된 결과였을 것이다.
그날 한 번의 일이었다면 함이 강력하게 반발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완전한 아담도 그들의 후손이 보기에 흠 잡힐 일을 저질렀다면
노아에게도 분명 그의 불완전함과 편향된 태도 등으로 인한 반항의 구실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홍수로 멸망한 세상을 보고 크게 두려워 하였기에
함이 이전 멸망된 자들의 태도나 습관을 관용하는 것을 보고 매우 심하게 나무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붉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가나안이란 이름의 의미도 그 지역 특산물인 적보라색의 염료의 색을 뜻한다.
가나안이 먼저이고 나중에 그 염료를 그의 이름을 따서 불렀을 가능성도 있으나 어쨋든 둘의 이름이
다 불(태양)과 연관된다. 어쩌면 그들이 보인 사단적인 특성과 연관있어 보이기에 추리해 본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은 홍수 전 그들의 조상들이 나타낸 동성애등의 도착적인 행동을 노아에게
자행함으로 경건한 여자의 씨에 대한 심히 불경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동성애라고 보는 이유는 가나안 족(소돔)이 바로 얼마 후 동성애로 멸망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소돔은 남자 동성애의 대명사(소도미)가 된다.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저주는 하느님의 승인을 받은 합당한 것이었다.
술 취함으로 노아가 받은 처벌은 없다. (창피한 기록 자체가 처벌이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니 함도 결국은 그의 후손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 그와 그의 후손들은 마치 낙원에서 추방되어 저주 받은 땅으로 쫒겨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똑 같은 상황과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로 인류의 시조가 된 70명의 숫자를 세어 보면 함이 가장 많은 자식을 낳았다.
이는 당시에 함의 후손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벳이 가장 적었다.
바로 그 가나안의 형제인 구스의 아들이 니므롯인 것이다.
바로 그가 홍수 후 노골적인 사단의 씨가 된다.
성서의 관점에서 단군 환웅과 관련된 신화를 보면 이렇다.
홍익 인간을 실현시키려 환인을 떠나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던 아들 환웅은 분명
함의 후손으로 보여지며 전승을 종합하여 볼 때 니므롯이 바로 환웅으로 보여진다.
아무나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대변하는 자리에 앉도록 사단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또 그만한 충성심 및 업적을
쌓은 자여야만 하는 것인데 성서에서나 세상 역사에 니므롯을 능가하는 인물은 없다.
잠시 桓雄에게 천부인을 주었다는 桓因은 누구인가? 하는 부분을 먼저 짚어보도록 하자!
박용숙 교수는 그의 책에서 주장하기를
환인의 환wha은 가나안의 가ca의 음사로 보여지며 因은 an 즉 최고의 신에 붙여지는 존칭이다라고 했다.
an은 el al 과 같은 말로써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알을 말한다.
因이라는 한자는 커다란 신전 혹은 성읍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환인을 단군처럼 하나의 王家라고 주장한 것이다.
부도지나 환단고기에서도 홍수 전에 환인이 다스리던 3301년에 걸친 시대가 있었다고 하므로
환인도 단군처럼 하나의 왕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것이 맞는 것 같다.
일연은 환인을 제석이라고 적었는데 제석은 제우스라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사실
노아의 아들 야벳의 후손인 야완에 의해 홍수 전 사건이 지금의 그리스인 이오니아(야완)에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석, 환인은 홍수 전 인물 혹은 왕의 가계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단기고사』가 환인, 환웅을 말하면서 환씨전(桓氏典)이라는 책을 거론하였는데,
이는 환인의 ‘桓’이 신족(神族)의 호칭임을 알게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환인에 대해 추리해 보도록 하자.
위의 글처럼 가나안의 ‘ca’와 환인의 ‘Wha’를 같은 음으로 보게 되면 '가'에 해당하는 시조의 이름은 가인이다.
가인이 신으로 추앙 받았다면 그의 가계는 神族, 즉 환인족이라는 추리도 가능하며 또 당시엔 천사의 자식인 네피림도 있었다.
桓의 파자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한다. 因이 커다란 성읍(당시의 국가)을 뜻한다고 했는데
가인이 바로 그의 첫 업적으로 아들의 이름을 딴 에녹이라는 성을 건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연결하면 가인이 바로 桓因이 된다.
또 이렇게 추리하면 東과 태양 그리고 십자가 나무 태양 신전등의 유래가 거의 인류이 시작점으로까지 소급됨을 의미한다.
불과 태양에 관한 이 숭배는 아담과 하와의 동조하에 가인이 시작한 일로도 볼 수 있고 성서 기록을 참고하면
그 일들은 인구가 서서히 늘어가던 셋의 아들 에노스 때에(아담의 나이 235년에 에노스가 태어남)
형태를 갖추고 복낙원과 관련된 깨달음에 관한 기본적인 사상들이 교리로 자리 잡는 등 본격화 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중 다시 언급되지만 일곱명의 환인은 불교의 과거 칠불에 해당하는데
그래서 필자는 환인과 칠불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가인을 통해 이어지는 이 깨달음의 시조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아담 하와 가인 유발 두발-가인 그리고 야발로 정확히 6명이다. 불교는 석가까지 7불이 된다.
물론 아벨 셋 에녹 라멕등도 주요 인물로 나오지만 이들에게는 사단에 의한 깨달음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창세기 앞 부분의 기록은 사실상 실낙원에 대한 설명 부분이고 따라서 사단에 의한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이 기록들을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니므롯(환웅)이 받은 천부인이란 그러므로 가인의 일과 깊은 관련을 지닌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가 실제 물품을 받은 것이라면 - 노아의 아내가 나아마라고 한 것에 기초하여 - 그것은 가인의 가계와 밀접한
노아가 홍수를 살아 남으면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기 위해 간직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환웅인 니므롯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을 받았다고 하지만 위의 추리를 놓고 볼 때
그것은 깨달음의 조상인 가인등에 의한 깨달음의 상징물을 그가 지니게 되었다는 말로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것이지만 굳이 가인을 대신하여 변명하자면,
사실 노아의 때에 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성서가 완간되고 선과 악
그리고 참 하느님과 사단의 존재 및 그 역사가 분명해진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으로 봐야 한다.
노아의 경우만 봐도 그가 보기에는 아담의 장남인 가인이 비록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지만
이는 사람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볼 때 그가 우발적으로 범한 실수였다고 볼 수도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가인은 오랜 기간 자신에게 집중된 구원을 위한 여자의 씨라는 무거운 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 후에 가인은 저주 받은 상태로 마치 수도승처럼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살면서 그 외로움 가운데서도
새로운 여자의 씨가 출현하지 않았던 기간 내내 계속해서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을 위해 여자의 씨로써 해야 할 일인
복낙원에 이르는 어렵고 고된 길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며 알아내려 하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인은 건축과 음악 천문학에 더해 불을 다루는 방법과 연금술을 터득하였던 것이고
어쩌면 용맹스런 전사처럼 에덴을 지키는 천사들과 전쟁을 벌였을 수도 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정확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하느님의 자식들이 고초를 겪는 것에 대해 창조주께 한 도전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살생을 금지하면서도 무술을 연마하고 전쟁을 용인하는 불교의 이중적인 기준은 가인의 입장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에덴밖에서 생명 나무를 대체하는 약효를 지닌 신비의 나무를 찾았을 수도 있는데 신비스럽게 생긴
나무들을 그렇게 보았을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이것이 아마 마약과 목초를 연구하는 漢醫學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인과 위에 언급한 후손들이 상상을 초월한 고생을 하면서 터득한 깨달음들이 후손들에게는
생활상의 실용적인 면과 구원이라는 절대 명제를 해결하는 면에서 엄청나게 유익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들의 깨달음은 후손들이 가히 붓다라고 추앙할 만큼 영향력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회개 불가능한 악인들에 비하면 가인은 순수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살인을 하고도 하느님께 청원하였던 그였다. 적어도 하느님과의 관계는 가까웠던 것이다.
-그 시절은 가르침도 축복도 벌과 용서도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바로 내려오는 시대였다.-
따라서 그의 노력은 후손들에게 마치 지난 세기에 핵무기라는 가공스런 무기를 만들게 된 단초를 제공한
아인슈타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쩌면 노아가 하느님 보시기에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홍수로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지만
가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복낙원을 위한 가인의 처절한 노력은 낙원을 잃은 조상으로써 후손들의 몫을 대신한 희생일 수도 있었으며
그 파생품인 문명의 발전과 분야별로 정리된 깨달음에 대한 시조가 바로 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의 선두에 있던 분야가 바로 연금술과 천문학과 음악이었으며 다 그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된 분야이다.
그래서인지 이 가인 또는 두발 - 가인은 노아 이후에도 비교적 좋은 이름으로 계속 애용되 오고 있다.
그래서 당시 과학 문명의 상징이었던 물품들을 니므롯과 함께 한 자,
어쩌면 아버지 함에 의해 그것들이 보관된 위치와 중요성과 알고 있던 가나안이 훔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인이 지녔던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함이 아들의 이름을 가인과 비슷한 가나안으로 지은 것은 의미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홍수 전 가인에 의해 이룩되었던 엄청났던 문명의 代를 잇는 자가 되기 위해,
바로 그 물품의 진정한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은 바로 자신들이라는듯 가져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물품을 소유하였다는 것은 바로 가인 즉, 환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아마 가인에 상응하는 권위와 권리를 지닌 누군가가 니므롯에게 천부인을 전해 주는 역할을 대신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에서는 그가 데리고 내려온 자가 3000명이라고 했는데
감성서의 연대 계산, 연대 기술, 연대학 항목에서는 벨렉에 관해 언급하면서
한사람이 180여년을 살며 자녀를 낳으면 보통 성인 남자 기준 4000 여명의 부족을 이루게 된다고 계산하였다.
이는 위와 비슷한 수치로써 아마 그 사건은 어림잡아 셈의 후손인 에벨의 아들 벨렉의 날 쯤 벌어진 일로 보인다.
그의 날 - 그의 전체 생애 중 벌어진 일이므로 - 에 세상이 나뉘었던 것이다.
벨렉은 아브라함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의 때에 우르는 이미 바벨론적 거짓종교와 정치 세력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참고로 노아는 바벨탑의 건축을 보았으며 셈은 이삭 출생 후 50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함과 야벳의 나이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 환웅이 내려왔다라는 표현은 노아가 살던 장소가 비교적 고지대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니므롯이 정착한 지역은 그들이 원래 거했던 곳에 비해 저지대인 유프라테스 강 유역으로 보이는데
이는 니므롯이거나 그의 아들을 말하는 왕검이 江華에 도읍을 정하고 아사달이라고 불렀던 것과 일치한다.
누차 설명하게 되는 부분인데 그가 실현시키고자 한 弘益人間이라는 말은
널리 온누리를 두루 이롭게(행복하게) 한다는 의미라지만
그 근본 목적은 한자의 破字에서 얻어지는 의미처럼 뱀의 씨로 세상을 가득하게 한다. 혹은
뱀의 씨로 세상을 넘쳐나게 함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뱀을 숭앙하는 민족이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성씨인 風씨와 그 다음인 巳씨도 뱀에서 나온 姓씨이다.
弘은 뱀이 웅크린 모습의 상형자인 弓과 厶 의 합한 글자이다.
厶는 아무개 혹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합하면 뱀의 씨가 된다.
益은 더할 익으로 파자의 의미는 보패(子安貝 혹은 조두 신주단지)위로 물이 넘치는 모양이다.
조두 혹은 신주단지의 물은 정액을 말한다.
(홍익인간의 古語등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두 개의 조선' 편에서 다루어 놓았다.)
즉 뱀인 사단에 의해 지정된 씨가 넘치게 하겠다는 취지의 사상이 홍익인간인 것이다.
이는 곧 '네 씨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스스로를 축복하게 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여자의 씨에 관한 약속의 사단版인 것이다.
弓이 활을 의미하게 된 것은 그가 짐승과 사람을 죽이는 능숙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한다.
치명적인 뱀의 독은 독화살에 사용되었는데 이 뱀의 웅크린 모양에서 弓이라는 한자가 출발한다.
첫 살인자인 가인처럼 인간과 동물 모두를 능숙하게 죽이는 능한 사냥꾼이 바로 니므롯인 것이다.
추리를 위한 힌트:
가인처럼 니므롯 역시 城을 쌓는 일을 시작하였다.
영국 시인 윌리엄 쿠버는 [신은 자연을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자! 가인 니므롯에 이어 누가 또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건축물을 만들었는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도 사단이 자신의 대표적인 씨로 사용한 자이다.
환웅도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다고 했는데 都邑은 도시 혹은 城을 말한다.
'그의 왕국의 시작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네였다.
그 땅에서 그가 아시리아로 나아가서 니네베와 르호봇-이르와 갈라와,
니네베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큰 도시이다.'
니므롯의 왕국의 기반이 된 그가 건축한 도시(성)들이다.
그는 이어서 셈의 아들 앗수르의 나라를 점령하고
그 앗수르의 수도인 니네베와 갈라 사이에 레센이라는 큰 도시를 세웠다.
이 '갈라'라는 니므롯의 도시들보다 먼저 세워진 도시는
아마도 지금 터키에 남아 있는 인류 초기 유적지인 칼라(칼라휘이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니므롯이 앗수르를 점령한 것은 보통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이렇듯 성서는 비록 짧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 가장 권위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앗수르는 셈의 아들로 그가 거주하는 곳을 점령하였다는 것은
노아의 장남인 셈과 그의 후손들과는 적이 되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그가 노아를 떠난 것이 정상적인 分家가 아니라 적의를 지닌 채 떠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는 셈이 노아로부터 받은 장남(실제로는 야벳- 이 부분은 다소의 혼동이 있다)의 권위와 특혜
그리고 셈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이는 그들이 깨달음의 조상, 붓다로 섬기고자 한 가인이 아벨에게 나타낸 태도와도 부합된다.
그래서 위에서 추리해 본 것처럼 함이나 가나안 그리고 구스 니므롯이 노아를 떠나 바벨론 지역으로 내려올 때
혹시 이미 노아가 가지고 있던 홍수 전의 귀중한 상징들을 강탈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 본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가나안이라는 말은 가인과 발음도, 의미도 비슷하고 그리고 저주를 받은 것도 같다.
아마 가나안은 그런 유사성에서 자신이 가인의 뒤를 잇는 자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나안은 자신에게 내려진 노아의 저주를 뒤집기 위해 니므롯에 적극 협조하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주로 인해 앙심을 품은 그가 노아에게서 훔쳤거나 빼앗은 가인에 의한 깨달음의 상징물인 천부인을
니므롯에게 주었다는 말도 된다. 그 시점에 가나안은 가인과 같은 線上에 선 인물이 되는 것이다.
잠시 상상의 바다로 떠나 보자!
가나안 족은 페니키아인으로도 불린다.
商人으로 크게 득세한 그 민족은 특히 티레, 시돈항과 수많은 선박을 건조한 해양 강국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점령한 그리스는 지금도 수많은 선박과 상선을 지닌 해양 강국인 것이다.
그리스 선박 재벌로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과 결혼한 그 유명했던 오나시스가 기억나는가?
그들과 문명을 공유했던 민족의 후손인 한국도 현재 선박 건조 세계 1위의 해양 강국이다.
어쨋든 이 저주 받은 가나안族에 의한 그 땅이 특히 바벨론 종교의 온상지가 되고
사단의 사주에 의한 세계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가나안족이 그 제국들의 기층을 이루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득세하였던 것을 보면,
구스의 형제인 저주 받은 가나안이 니므롯의 반역에 어떤 형태로이든 주도적인 참여를 하였다고 보여진다.
가나안과 그의 후손들은 셈 족의 가장 비천한 노예로 저주 받았기에 이 저주를 극복하려는,
혹은 무력화 시키려는 행동으로써 앞선 문명의 앗수르에 대한 침략이 있었다고도 보여지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을 배교로 이끄는데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언제나 가나안 땅의 블레셋인들이었다.
이는 니므롯에 의한 앗수르의 침략, 즉 사단의 종교에 의한 참종교의 핍박 그 연장선의 계속된 일들이다.
가나안과 그의 후손들은 함의 후손들 가운데 가장 폭력에 의존하는 부족 혹은 국가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11장을 자세히 다시 읽어 보면
하느님에 대한 니므롯의 반역의 상징인 바벨탑 건축 부분에서 니므롯에 대한 일인칭의 언급은 없고
대신 주체 세력으로 복수형인 '사람들, 백성들'이 언급되었음을 볼 수 있다. 같이 보겠는가? 창세기 11장1~10절이다.
그때에 온 땅은 계속 한 언어로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다가 마침내 시날 땅에서 골짜기 평야를 발견하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고 굽는 과정에 따라 그것들을 굽자.” 그래서 그들에게는 벽돌이 돌 구실을 하고, 역청이 모르타르 구실을 하였다. 이제 그들이 말하였다. “자!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또 하늘에 그 꼭대기가 닿는 탑을 세우자. 우리의 이름을 떨치자. 그리하여 우리가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이 세운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가셨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그들이 한 백성이고 그들 모두에게 언어가 하나이므로, 그들이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니 이제는 그들이 하려고 생각하면 자기들을 위하여 이루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들이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거기서부터 온 지면으로 흩으시자, 그들이 마침내 도시 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벨이라 불렸는데, 거기서 여호와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란시키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거기서부터 온 지면으로 흩으셨다
이는 과거 저주 받은 가인과 또 그와 함께 한 자들이나 그 후손들의 역사처럼
니므롯과 함께 한 자들이 나타낸 경향도 가인의 후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결국 그 지역을 차지하고 상인 제조업등의 基層을 이룬 자들은 니므롯이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들이다.
하지만 노아에 의한 예언처럼 그들의 지배족은 셈 족이었으므로
가나안 족은 셈 족에 의한 지배를 받고 협조하며 권력을 공유한 민족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그들의 후손인 팔레스타인族은 셈 족 후손인 이스라엘에 통제당하고 섬기며 살고 있다.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갈등으로 세계가 고통을 받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해되지 않을만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이라크의 바벨론 城이 결코 재건되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의 예언의 위력으로도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상 팔레스타인과 同族인 한국은 이스라엘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미국에게 정치 군사 경제적 종속된 관계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는듯 보이지만 심정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그 땅은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었다.
이스라엘 전승에서는 그 땅은 노아의 홍수때도 잠기지 않았다고 한다.
야곱의 우물이 있는 자리는 그 땅의 배꼽으로 夏至에 거기 서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 전설은 예수께서 형주에 달리셨던 골고다가 바로 아담이 묻혔던 자리라고 한다.
정확히 그 자리에 예수의 대속의 피가 흘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마음에 두셨던 그 땅을 가나안 족이 먼저 차지하여 더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성서에 모든 내용이 다 기록되지는 않았을텐데, 가나안의 후손들이 그 땅을 먼저 차지한 것은
홍수 전 숭배의 중요한 지역이자 풍요로운 곳이었던 그 땅에 대해
그들의 시조인 함과 가나안을 통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이 그곳인지 모르는 가운데 죽었다.
여호수아때에 와서야 만연한 악으로 인해 그 땅이 가나안 족을 吐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지역은 가나안 땅보다 훨씬 더 넓었지만
모세 여호수아 시대에 그들은 믿음의 부족을 드러냄으로 그 땅을 다 얻지 못하였다.
나중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다소 확장되었지만 그들은 결국 지금의 조그만 지역만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약속의 땅은 상상속 에덴 동산의 모형이자 앞으로 온 땅에 편만하게 될 낙원의 모형에 불과했다.
결국 이는 니므롯이 자신들보다 우수한 셈 족의 문명을 탐낸 것이며
이것은 홍수 이후에 다시 참 종교에 대한 사단(바벨론 종교)의 핍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처럼 사단에 의한 여자의 씨, 혹은 백성에 대한 殺意의 연속인데
노아와 셈에 의해 드려지는 제사는 가납되었지만 그들의 숭배는 그렇지 못한 홍수 전 가인의 일이 연상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역사속에 나타나는 셈 족의 등장이 갑작스러운 출현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그들의 계산으로는 아직 문자도 없고 구석기니 신석기 시대니 하며 과거를 전개해 나가는 시점에
갑자기 고도의 문명을 지닌 셈 족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 이 셈 족이 아담과는 다른 종족으로 동방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번창하던 높은 문명의
소유자들이었다라거나. 심지어는 이들이 외계인이라는 추리까지 내 놓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함이나 야벳족에 비해 셈 족이 매우 우수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셈 족은 함이나 야벳 족속의 지배족 이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셈 족을 축복하신 것은 무엇이 지배력을 갖게 하는가를 알고 계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환웅이 받았다는 천부인은 노아가 소지하고 있던 것을 빼앗음으로
그의 권세를 셈이 아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인 것이다.
가인이 아벨에게 내려지는 하느님의 승인을 못마땅하게 여겨 죽였듯이
그리고 저주 받은 상태로 사람들을 떠나 놋 땅에 거하였듯 그들도 가인의 전철을 밟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천부인 세가지인 청동제 거울 검 방울...놋이라는 말도 청동 황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던가 말이다.
시날 땅의 시날은 시나이와 같은 말인데 나일강의 나일 나이지리아 니제르의 나이나 니는 다 강을 말한다.
우리말의 냇가 하천을 부르는 내가 그것이다. 川은 내 천자인 것이다.
시나이도 시내로 번역되고 읽혀졌으며 지금도 개역한글판 성서는 시내, 시내산인 것이다.
시나이의 시는 샛 강의 샛으로 볼 수 있다.
시나이 반도에도 그런 내보다는 적은 샛 강 혹은 계절강이 많으며 유프라테스 강 상류인 시날 지역도 그렇다.
혹자는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에 위치한 갈대아 땅은 갈대가 많이 나는 지역이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위의 내용은 가인이 도망한 놋이라는 땅 이름이 바로 청동을 말하는 것일 거라는 근거로 제시한 것인데
이는 한국말의 기원이 아담에게로 소급되는 참으로 오래된 것이라는 점을 추측케 하는 부분이다.
영화 천지창조에서 니므롯은 활을 높이 들어 하늘을 겨누며 도전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바로 사람들은 서로 말을 알아 듣지 못하게 된다.
불로 철과 동을 능숙하게 다루며 각종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었던 두발가인 처럼
니므롯도 불의 신으로 행세 하였는데 각 나라의 전승에 그를 말하는 두무지 전욱 ye 등이 그렇다.
하지만 천문학과 연금술은 홍수 직후에는 노아와 셈 족의 전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분야가 니므롯 이후 급속히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것이 되고 있음에 유의하기 바란다.
엄청난 업적을 최초로 이룬 사람을 보고 신화를 썼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신으로, 그의 업적은 후세에 신화로 기록되어 남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분야의 첫 조상이 된 특히, 가인이나 유발 두발-가인 야발 및 니므롯은 어떠했겠는가?
그가 환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천부인은 다 불의 산물인 청동제 검과 방울과 거울이었다.
이것은 무기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인정 받았다는 의미도 되는데 이는 가인과 두발가인의 완전한 再版이다.
그리고 천부인 세가지는 위의 유발 두발 야발로 시작된 세가지 분야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또 환웅이 받았다는 천부인은 모두 巫家의 물품이다.
이는 또 그가 홍수 후 최초로 강력한 영매를 행하였던 사람이라는 증거로써
그 역시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영감이나 능력을 주는 신이 결코 사단이라고 주장하지도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치 지금의 큰바벨론의 주축인 기독교의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그들의 하느님이 사단이라고 믿지 않듯 니므롯과 그를
따르는 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며 주장하였을 것이다. 그들 역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에 속은 것이다.
그러기에 사단에 의해 충성의 시험을 받은 욥 조차도 자신의 고난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사실 사단의 존재는 아주 오랜 후인 200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마치 뱀의 허물을 벗기듯 드러나게 된다.
http://cafe.daum.net/poemkim1/Jqmr/31 뱀의 허물을 벗기는 일이란 주제의 파수대 기사이다.
니므롯 역시 하와처럼 여호와 혹은 여호와의 사자인 뱀이나 용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특별한 능력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첫 인간을 스스로 범죄에 빠져들게 한 사단의 사기술이고 속임수이다.
환인에 대해 잠시 생각을 더 해보면 여러가지 각도의 추리가 가능하다.
환웅에게 천부인을 주었다는 환인은 분명 노아가 아니다.
더더군다나 사단이 직접 주었을리도 없다.
그럼 함일까? 그렇게도 보인다. 함이라는 말과 환은 비슷한 발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함도 이 반역에 주도적인 인물이 된다.
그에게 연금 기술이 없었다면 청동제 천부인 세가지는 노아가 간직한 것을 빼앗은 것이거나 훔친 것이다.
함이라는 이름이 혹 그가 태어난 다음 붙여진 것이라면 그 말의 의미는 붉음이다.
한국말과 한자의 함은 궤짝 특히 결혼과 관련된 궤짝을 말한다. 함진아비라는 말도 있다. 고릿짝이 연상된다.
아니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나안의 가나가 환과 비슷하므로 가나안일까?
가나안은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로 인해 주도적으로 나설 수가 없었기에 니므롯에게 자신의 일을 부탁한 것일까?
환인에 대한 또 한가지 추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桓은 한으로도 읽히며 하늘을 가리킨다. 환한 하늘(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 한, 환은 수메르어 an dan과도 비슷하다. 아니 같다고 보여진다. 다 최고 하늘 높은 정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安巴堅은 an pa king으로 최고 태양신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환단고기에서는 과거 일곱명에 의한 3301년간의 환인 시대가 있었다고 하므로
환인이 특정한 어느 한 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으로도 보인다.
이 일곱명의 환인은 무가 도교의 七星神 불교의 과거 七佛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며 그래서 그 별자리는 상서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북두칠성과 昧 별자리는 음악으로 태양을 깨우는 별이다.
북은 북두칠성의 北에서 나온 악기이고 두는 꼬리별 이름인 斗杓를 가리킨다.
두드림이란 바로 이 斗에게 드림이란 말이다.
북을 두드려 昧(음악의 별) 별을 깨워 음악을 연주하게 하므로 태양이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두드리는 악기로 이루어진 풍물패의 기원이다.
'매'는 깨달음을 위한 징계를 가리키며 '매우 쳐라'는 말은 진실이 밝혀(해가 떠오르듯 분명해짐)질 때까지 치라는 말이다.
진실은 그렇게 해서 환하게 밝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북두칠성인 환인은 태양을 깨우는 별로 태양보다 낮은 지위로 보이는데
어쩌면 환웅이 자신을 환인보다 더 높이려 하였기에 그리 보이기도 한다.
제우스는 우주의 신이지만 별자리는 목성인데 비해 아들 아폴로는 태양신이 되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환웅에게 천부인을 준 그보다 앞서 권력을 지닌 자(환인)가 있었다면 그의 역사도 충분히 남아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홍수 후 니므롯에 의한 사단의 역사에 그 부분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니므롯의 아버지인 구스 그리고 가인의 아버지인 아담이 소외된 것처럼 말이다.
이 환인은 참으로 여러가지로 추측을 하게 만드는 부분인데 분명한 것은
환인이 노아가 아님이 분명하듯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은 분명 아니었으리라는 점이다.
천부인은 청동제 칼(낫)과 방울 그리고 거울로 천지인의 세상을 다스리는 사단의 권한을 상징한다.
이 부분에 대한 추리는 이쯤에서 접고 다음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자! 이제 누가 이 걸출한 당대의 영웅 니므롯의 아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話頭가 된다.
하와와 아담은 오누이간이기도 하고 한 몸이기도 했으며 가인도 누이와 결혼을 하였었다. 그렇다면 니므롯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이 걸출한 사단의 대행자 니므롯의 아내는 바로 세미라미스였다고 역사는 알려준다.
세미라미스는 전승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인 구스의 첩이었다.
구스는 함의 아들로 함 족의 대표적인 족장이자 인류의 시조였다.
단군 신화에 의하면 그녀는 웅녀이다.
熊族은 검은 머리의 아시아 인종을 말하는 것으로 그녀가 바로 셈 족 출신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虎族은 백인이다.
그들은 사단을 대표하는 자들로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데 아마 사단이 특별한 작용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지금 단군이나 김알지 박혁거세 주몽등을 神으로 여기며 현존하는 신으로 太陽인 김정일 문선명등도 있다.
하느님의 교회 안산홍 증인敎는 교주가 죽자 그의 아내가 여신으로 행세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들은 자신들이 새예루살렘 어머니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교회라고 주장한다.
백성을 죽일 권리를 갖는 막강한 권력의 왕들도 하늘이자 신으로 여김 받으며 하찮은 기업주의 권세도 그렇다면
인류의 시조들인 그들이야 말로 오죽했겠는가? 니므롯은 바로 그런 능력이 특별했던 자로 성서에 언급된 자이다.
당시에 사단으로부터 강력한 통치력을 부여 받고 온갖 奇事를 행하던 그들은
그를 따르는 자들 보기에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신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좀더 상세히 알고 싶다면 니므롯과 세미라미스에 관한 여러 신화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그녀를 서왕모라고 하고 그의 아들은 전욱이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전욱의 아버지인 황제 헌원은 구스로도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료를 종합해 보면
니므롯이 점령한 앗수르(앗시리아)의 시조(헌원)였던 앗수르를 죽인 후
가짜 앗수르 행세를 한 것이 중국史에 나오는 황제 헌원으로 보여진다.
분명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사실상 부족이나 국가의 첫 조상이 되는 시점이고
홍수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 신화가 아닌 분명한 사실이었던 만큼 그들, 특히 세미라미스는
자신이 바로 홍수 전 사단의 예언자가 된 女神 하와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중국史와 한국史등 이른바 支那 신화에는 창조신으로 여와氏가 나온다.
여동생으로 아담과 결혼을 한 하와처럼 여와도 태호복희의 여동생으로 그와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은 인두사신人頭蛇身의 교미하는 남녀로 그림에 나온다. 잠시 커피 한 잔 하면서 그림을 보겠는가?
이 그림은 투르판 분지에서 영국 고고학자 스타인이 기원 7세기경 멸망된 고창족의 유물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림은 1~2세기의 漢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고 하며
고구려의 고국천왕 재위시 재상이었던 을파소가 저술한 참전계경에도 여와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여와는 태호복희와 관계를 가진 후 나뭇잎으로 부채를 만들어 자신의 성기를 가렸다고 한다.
선악과(죄)가 성관계를 말한다는 통일교의 주장이 어디서 나왔는지와
무당 굿거리에 왜 부채가 사용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손에는 규구가 들려져 있는데 한자 規矩란 자와 콤파스를 말한다.
이는 측량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기구가 아주 오래 전,
인류 시초부터 사용되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성을 건축하는데는 이 기구가 필수적이다.
설계사무소를 가면 제일 먼저 그들의 전문성을 보여주는게 바로 콤파스와 자인 것이다.
이는 위 그림이 결국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알려 준다.
인류 최초로 城을 건축한 자가 바로 가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위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나는 상형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弗 이라는 글자일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위의 그림은 在美 漢學者가 弗자의 진행 과정을 찾아 올린 것이다.
두 나무를 뱀이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역시 선악과와 생명나무 그리고 뱀이 나온다.
여와가 찰흙으로 빚었다는 인간은 戰士로써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위의 그림과 내용을 고려할 때 그는 하와를 가리키는 말인 듯 보이기도 한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집안은 戰士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인의 후예인 두발-가인은 "힘이 만인을 능가했으며 전술이 뛰어났다”고 역사가 요세퍼스는 말했다.
그의 오빠이자 남편인 태호복희는 중국사에서 인류의 시조로 성이 風씨로 알려져 있다.
風은 전설의 불사조인 鳳凰새의 봉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봉과 풍은 같이 볼 수 있다.
최초의 성씨인 풍씨인 그 族은 15代만에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가 남긴 것은 풍신좋다 풍채좋다 풍골좋다이다.
사실 시조가 사라질 이유는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는 바로 시조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라졌다는 이 기록은 노아 홍수로 인한 멸망을 암시한다.
15대를 어어졌다는 건 홍수 전 기간인 1656년과 비슷하다.
노아로부터 아담에 이르는 씨의 계보는 10대에 걸쳐 이어졌었다.
결국 풍류나 風流道도 기원이 같은데 고대 夷族 중에는 風夷族이 있었으며
지금은 중국의 猫 족이 그 代를 잇고 있다고 한다.
그 묘족에서 전해 내려오는 바벨탑과 언어 혼잡에 얽힌 신화는 성서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다.
잠간 보면서 쉬었다 가도록 하자!
"그 후로 로·한은 쿠사와 메사이를 낳았고 로·산은 에란과 누가슈율을 낳았으며
그들의 자손은 민족과 여러 백성이 되었도다.
그들의 자손은 진영(陣營)을 넓혀 도시를 건설하였도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운률(韻律)이며 같은 음악이었도다.
그들은 모두가 같은 말과 언어로 말하였도다.
그런데, 어랍쇼, 거대한 도시를 만들자고 하였다.
자, 하늘까지 닿는 매우 높은 탑을 쌓자고, 이는 잘못된 일이었으나 그들은 강행하였도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사 언어와 액센트를 바꾸셨도다.
분노가 임하사 하나님은 말과 소리의 장단을 혼란케 하셨도다.
누가 말을 하드래도 옆사람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도다.
말(單語)을 가지고 얘기하여도 사람들은 그 사람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도다.
그래서, 그들이 건설하고 있었던 도시는 마무리되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힘들여서 만들고 있었던 탑은 이처럼 미완성인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도다.
그러자 그들은 절망하였고, 온 세계에 흩어져 나갔으며,
그들은 서로가 이리저리 헤어져서 지구를 빙돌게 되었노라.
그들은 여섯 지역에 이르렀고, 여섯 나라 말을 하게 되었노라" (중국 묘족의 전승)
風 씨에 이은 또 하나의 시조 성은 巳(뱀 사)씨이다.
특히 巳 字는 북두칠성을 닮았는데 둘 다 뱀의 모양으로부터 기인한다.
뱀 족이자 뱀을 숭앙하는 한민족은 그래서 북두칠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칠성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風도 글자 속에 살모사 충虫 字가 들어가 있다.
또 뿔이 달린 모양의 충은 정충으로도 쓰이며 둘 다 모양이 비슷하다.
흥미롭게도 고구려인은 자신들이 바람의 후손이라고 하며
바람이 국명으로 들어간 나라로는 핀란드가 있다. 핀은 바람이란 말이다.
핀은 pin이 아니라 fin으로 힌 흰으로도 읽힌다.
훈과 비슷한 것이다. 헝가리인의 조상인 훈 족 역시 바람의 족속이다.
훈 역시 바람이란 말이다. 따라서 훈가리는 헝가리이며 이는 한겨레와 같은 말이다.
겨레는 한자 族으로 켤레 혹은 신발등을 한 쪽 두 쪽 세는 쪽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族이라는 말은 온구즈 족의 어원이 화살 열 개를 묶은 것을 말하듯 족은 열 개 묶음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온구즈 족은 지금의 우즈벡을 말한다.
말을 타고 바람처럼 이동하며 활을 잘 쏘는 민족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주몽의 직업은 말 조련사였다. (알렉산더도 말 조련사였다.)
어쨋든 여와 태호복희와 뱀 그리고 바람이라는 의미의 風氏 성은 사단 즉 뱀의 씨인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 및 홍수 이후 그들의 계승자들인 니므롯과 그의 아내인 세미라미스와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홍수 후의 사건들이 서로 섞여 신격화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여와氏에 관한 신화는 분명 세미라미스에 의해 더 과장되고 확대되는 것 같다.
여와는 사실 나중에 세미라미스를 칭하는 많은 여신들 이름과도 비슷하다.
이시스 이난나 아스타르테 아스다롯 이쉬타르 아프로디테 에우로페 아마존 아르데미스 등 너무나 많다.
하지만 세미라미스가 여신의 始祖가 아니라 여신의 시조는 바로 하와이다.
하와가 낳은 뱀의 씨인 가인은 당시 위대한 전사였던 것이다.
최근까지 전해오는 함흥 지역의 '생굿두가'에도 여와와 그의 아들에 관한 같은 내용이 나온다.
두발-가인 역시 뛰어난 전사이자 군수물자를 만드는 자로써 가인의 살인에 날개를 달아준 인물이다.
그는 최신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군대에 공급하였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홍수 후에는 이 '여와'라는 이름이 세미라미스에게 붙여진 이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누이 간인 아담과 하와처럼 세미라미스도 니므롯의 계모이자 아내인 것이 참으로 비슷하지 않은가?
니므롯과 세미라미스에서 유래한 가나안 지방 신화의 주인공인 바알과 아나드도 오누이간으로 등장한다.
훗날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데메테르도 마찬가지이며
한국 설화에는 호랑이에 쫒겨 하늘로 올라가 태양과 달이된 오누이 얘기도 있다.
하와의 경우를 보면 분명 그도 니므롯 이상의 영감을 사단으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와라는 이름은 첫 인간이 범죄한 다음 인류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아담이 지어준 것이다.
여와가 흙으로 만물을 만든 창조신이라고 하였으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여를 붙이면 여와가 된다.
하와나 세미라미스 둘 다 여와처럼 전사인 뱀의 씨를 낳은 조상이 되는 여자인 것이 같다.
그렇다면 전설상에 나오는 황제 헌원과 치우가 벌이는 유명한 탁록의 전쟁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당시의 전쟁이 하느님을 대항하는 부족과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간의 다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그들 두 세력간의 전쟁으로 볼 수 있는데 박용숙 교수는 치우를 헌원의 동문이었던 루갈자게시였다고 주장한다.
루갈자게시에 관한 자료는 여기에 나온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72296
그의 城 움마는 사무엘 둘째 2장에 나오는 암마라는 성과 연관이 된 듯 싶다. 그 의미는 어머니이다.
같은 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시 엄마城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 되었다는 뜻이며 어쩌면 母城(기지)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航空母艦이 있고 서울을 母城이라고 한다면 고양 구리 의정부 성남 등의 衛城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프라테스 강의 옛 이름이 아무르인데 이 역시 어머니를 부르는 북한 사투리 어무이와 같다.
아무르 강은 러시아 몽골 만주를 거쳐 흐르는 긴 강의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다.)
우즈벡 키즈키르스탄을 거쳐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무다리야 강의 이름도 어머니 강이다.
고대인들은 이렇듯 생명선인 主 江을 어머니강이라고 부른다. 漢江도 젖줄(생명줄)이라고 말한다.
아무르(아모리)인의 아비는 아모르아비가 되고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인의 총칭으로 그들의 조상은 함이다.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의 함무라비가 바로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우르남무 법전은 함무라비보다 200여년 앞 선 법전이다.
우르남무왕도 법전으로 유명한데 그를 니므롯이라고 본다면 둘 다 함으로부터 받은 법을 반포한 셈이다.
법은 한자로 律이다. 율려는 최초의 소리라고 부도지에서는 말하며 방울이나 악기의 소리로 나타난다.
천부인 중 한가지가 바로 방울이다.
황제헌원을 이겼다는 치우를 이와 동일한 스토리인 이집트 신화에서는 셋seth이라고도 불렀다.
흥미롭게도 한국과 이집트 중국의 서로 다른 기록들은 이 전쟁의 승패를 상반되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이집트는 치우(셋)가 이겨서 그의 시체를 조각내서 경고로 나라들에 보내졌다고 하고 중국사는 그 반대로 전한다.
세트 즉 치우가 붉게 묘사되는 것은 그가 동양인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추리할 수 있게 한다. 셈과 후손을 말한다.
이 세트가 셈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가 참 숭배를 더럽히는 일을 막는 자들의 족장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타르굼에 나와 있으며 유대인들과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 가지 견해는,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었다는 견해이다.
셈은 그 당시에 살아 있었고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보다 더 오래 살았다.
또한 노아도 특별히 셈을 축복하였다. (통찰책 '멜기세덱' 중에서 인용)
셈을 세트 즉 셋이라고 한 것은
셋이 홍수 전 여자의 씨의 첫 계보로써 셈에게 준 영향 때문에 셈 역시 셋으로 불렸을 수 있다.
잠시 부연하자면 일부 한국 학자들은 셋은 가인 아벨에 이은 세번째이므로 셋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하는데
협회 간행물에서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셋이 씨의 계보로써 세번째 아들이지 사실 그 외에도 다른 자녀들이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반복하자면 이집트는 그 신화를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라는 신으로 언급한다.
오시리스는 앗수르와 비슷하며 이 오시리스 즉,앗수르는 셈의 아들 앗수르가 아니라
앗수르를 죽이고 가짜 앗수르 왕이 된 니므롯(가짜 황제 헌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원이 앗수르라면 그의 아버지인 셈이 그를 상대로 전쟁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신화에서는 세트가 얼마 후 황제에게 다시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셈이 사망한 연대와 연관시켜 볼 때 맞지 않는다.
셈의 지휘를 받는 군대를 총칭하여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는데
알렉산더 나폴레옹등 위대한 장군의 군대는 보통 그의 이름을 앞세워 부른다.
따라서 이 셋을 셈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이집트 신화는 세트에게 죽임을 당한 오시리스를 그의 아내 이시스(이쉬타르)가 호루스로 환생 시킨다.
그는 매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불사조 휘닉스가 나온다.
한국의 보라매 피앙새 파랑새로 이는 프랑스라는 국명의 기원이다.
보라매는 파라매를 가리키는 것이다. 파라는 위대한 태양신을 말하며 매는 그의 새인 것이다.
파라라는 말은 우리 말 파란 하늘의 파란 파랗다와 같으며 파라오 파라다이스 평양등의 어근이다.
파란색은 단군의 나라에서 강조되는 색이다. 원래는 흰옷이 아니라 청색 옷을 입도록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나라는 靑邱國으로 불렸다.
이것이 바로 신비의 색으로 여겨지는 고려 청자의 기원이 된다.
짐작컨데 그 청자의 색이 재현 되지 않는 것은 아마 이 염료를 구하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바벨론 성의 이쉬타르의 문을 포함하여 그 도시의 특색은 청색이었다.
이는 청구국이 이곳 한반도가 아니라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며 한국인의 시조가 그 곳 사람들이라는 증거이다.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史料는 그 시대의 일이고 주몽 이후 고조선史는 페르샤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참고로 이집트는 람국藍國으로 불리웠는데 람세스도 같은 의미로 이는 약간 푸른 빛을 띠는 인종적 특징이나
혹은 그 지역 갑각류에서 얻어지는 특산물인 보라색 염료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파라매를 보라매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파라오가 바로로 번역되듯 비슷한 이유를 지니고 있을 것이며
좀더 추리해 보자면 파란색과 보라색의 비슷함에서 그렇게 붙여졌을 수도 있다고 본다.
가나안이라는 말은 바로 이 적보라색을 의미하는데
이는 아마 이 지역의 특산물이자 귀한 물품인 염료에 시조의 이름을 사용하였던 것으로도 보이며
어쩌면 붉다라는 의미를 지닌 함의 이름처럼 지어질 때 이미 불을 상징하는 의미가 들어있었을 수도 있다.
가나안 민족과 한민족은 뿌리가 같으므로 靑邱라는 말의 청색은
가나안 지방의 패류에서 얻어지는 특산물인 보라색 염료- blue violet - 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가나안인을 말하는 페니키아라는 말은 자주색을 말하는 그리스어 휘닉스(포에닉스)와 연관이 있고
피닉스는 프랑스라는 국명도 되고 한국의 피앙새 파랑새이기 때문이다.
보라색은 블루도 있지만 레드도 있는데 이 붉은 보라색은 황실의 색으로 카펫이나 교지등에 사용된다.
바로 주단을 말하는 것으로 貴한 사람을 맞이하는 바닥재로써 예식장에 신랑 신부가 등장하는 바닥재이고
귀빈이 비행기 트랩을 오르 내릴때 까는 것이다. 하기사 요즘은 홈런을 쳐도 홈플레이트 앞에 깔아주기는 한다.^^
그러므로 이 파랑색은 결국 하늘이나 불(태양)과 연관이 있는 말이며 따라서
파라(오) 페라(스키) 페르(시아) 페니(키아) 페르(가몬)등에 사용된 파 페 페르等은 모두 태양 혹은 불을 의미한다.
풀 역시 불의 의미를 갖는데 흔들리는 모습이 불과 비슷하다. 불은 풀로도 불려진다. 풀무가 그 예이다.
쪽(藍) 물들임에 대한 故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글:
30여 년 전 일이다. 수덕사(수덕사)로 여류 시인 김일엽(金一葉) 스님을 찾아갔을 때,
스님은 수덕사 텃밭 한쪽에 쪽(藍)풀을 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들려주었다.
쪽풀은 쪽물을 들이는 일년생 초목이다.
부정(不淨)에 민감하여 고기 냄새, 마늘 냄새만 맡아도 쪽빛이 흐려지기에
부정타지 않는 절밭에서 길러야 물이 좋다는 그 불성(佛性)에 반해 쪽을 기른다고 했다.
쪽물 들이는 데 동짓달부터 이듬해 5 월까지 7백 번 손을 써야 한다.
한데 6 백 99 번째에 정성을 덜 들이거나 부정을 타도 죽어버린다는 지극히 정신적인 생명체라 했다.
저 남색이 왜 불교와 단군의 상징색인가에 대한 한가지 예라 하겠다.
매는 펠리컨(페리칸)이며 이집트에는 황조롱이가 많다.
이 환생한 니므롯을 상징하는 불사조 매는 봉황으로 전승되는데 람세스등 이집트의 왕들이 스스로
자신이 바로 환생한 자라고 주장하며 호루스라고 불렀다. 이는 봉황이 임금의 상징이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첫 성씨가 風이라고 했는데 이는 한자 鳳과 비슷한 것이다. 풍씨의 시조 태호복희가 누구인지 추측케 하는 부분인 것이다.
이시스는 이쉬타르와 비슷한 이름이다. 흥미롭게도 이시스가 환생한 아이 호루스를 안고 있는 그림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마돈나와 어찌나 비슷한지 지금도 일부 카톨릭 신도들이 그 앞에서 경배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바로 아래의 사진이 이시스가 호루스를 안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아이 두무지를 안고 있는 이쉬타르 여신이나 세미라미스가 안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아이 전욱을 안고 있는 중국 서왕모의 모습이 카톨릭의 성모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일찌기 중국에 파견된 카톨릭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성모로 전파하려던 마리아 상과 똑 같은
불교상들이 이미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로마 교황청의 의식 중에 이 마리아 숭배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래의 글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마리아 예찬 기도문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어머니께서는 세상에 참된 빛을,
당신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주셨나이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시어
하느님에게서 흘러 나오는
선의 샘이 되셨나이다.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소서.
저희를 예수님께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어
저희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목마른 세상 한가운데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되게 하소서.
아래 그림은 카톨릭 찬송가 '하늘의 여왕' 악보 중 일부이다.
이 마리아가 이스테르 여신을 말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영국 국가이다.
영국인의 조상은 동방에서 이주한 갈리아 족이다.
영국이라는 말은 잉글랜드에서 나온 말인데 잉글은 에그의 변음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전파된 부활절(easter)에 계란이 등장하는 것이다.
계란에 물을 들이는 것은 북극의 오로라(태양 광선과 지구 磁氣 충돌) 현상을 상징한다.
계란은 알이고 태양과 생명을 상징하는 이 알이란 말은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아라비아 아리안등
종족이나 국호에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卵生神話처럼 알알(아랄海) 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닭이라는 말은 duck에서 나온 말인데 이는 그 지방에는 오리가 닭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달걀도 오리알에서 나온 말이다.
갈리아라는 부족 명칭은 쿠르 크레테 가리아등과 연관되며 태양 신전을 말하는 한자 韓(코리아)과 연관된다.
갈리아 족은 영국에 많은 태양신 숭배 사상의 흔적을 남겨 두었는데 그 태양 여신은 지금의 여왕이다.
'신이시여 여황을 보호하소서!' 로 시작되는 이 국가의 가사는 태양신을 섬기는 마리아 숭배와 다르지 않다.
비슷한 여신 숭배로 한국의 선도 성모 숭배가 있다.
너무나 흡사한 이 숭배에 관한 기사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해서 볼 수 있다.
http://cafe.daum.net/poemkim1/Jqm5/99
다시 돌아가 수메르 점토판과 이집트 신화 모두 셋(세트)이 72명의 판관을 데리고 그를 죽였다고 기록한다.
이와 비슷한 전설은 페니키아(가나안)를 비롯하여 중동 전체에 고대 설화로 널리 퍼져 있다.
전체적으로 중국사가 다소 니므롯에 우호적임을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세미라미스(서왕모)의 아들 전욱颛顼의 중국 발음은 두무지로 들린다. 바로 담무스 두무지이다.
이집트와 수메르어의 ‘Dun, Dan, Du’는 모두 흙무지로 ‘壇’을 말하며
갑골문자에도 ‘土’는 흙무지(피라미드)의 그림문자로 나타나고 그것을 ‘뚜’라고 읽고 있다.
보통 단을 쌓는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바로 흙을 쌓아 올리는 것을 말한다.
土의 갑골자 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중의 글자는 신전의 모양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壇’을 몽고어에서 ‘ta’로 읽으며 다시 그것은 수메르어의 ‘Du’와 닮은꼴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두무지란 흙무더기라는 의미이며 신단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뚜(土)가 둔으로도 읽히는 것은 우리말 언덕의 옛 형태인 둔덕에도 나타난다.
둔덕은 강원 경상도 사투리로 두덕 두둑이라고도 하며 흙을 파 올려 흙무지를 만드는 쥐를 두더쥐라고 부른다.
둔덕의 덕은 堤防이라는 의미로 뚝을 말한다. 뚝은 두무지의 다른 이름인 마르둑의 둑을 말한다.
담무스의 담은 담벽의 담으로 보인다. 고대의 웅장한 담은 성과 신전의 경계이자 표시인 것이다.
담은 신성함 접근 금지를 의미하는 扃堂(경당)의 의미도 있다. 담을 넘는 것은 불법 침입의 대명사이다.
요약하면 니므롯 담무스 두무지 마르둑은 다 같은 신의 명칭이다.
土가 단 혹은 땅 위의 십자가의 모양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당연한 상형자로 알고 있는 수많은 글자가 이토록 태양신 숭배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음을 말이다.
전욱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잘 모신 사람으로 기록되며 신권을 일반인과 분리한 자로 나타난다.
홍수 전 죽은 유명한 자들을 제사로 기억하는 것은 노아가 아닌 이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며 지금껏 세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향제로 치루어지는데 보통 10월 경(홍수가 끝난)을 깃점으로 세계적으로 지내고 있다.
협회를 포함하여 많은 역법은 홍수가 끝나고 방주 밖으로 나온 이 시점이 일년의 시작이 된다.
이는 아담의 때까지 역산을 해도 비슷한데 아마 인류의 시작이 그 무렵인었던 것으로 보인다.
치우는 제우스와도 비슷하다. zeus의 s는 him처럼 복수형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s를 빼면 제우가 되는데 이는 치우와 같다. 혹자는 치우를 治雨의 의미라고도 한다.
홍수가 막 지난 그 시대에 물을 다스리는 것은 신의 자격 중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바다에서 나오거나 물과 불을 다스리고 번개와 비를 다스리는 능력을 겸하는 신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근간 한국의 황소의 뿔을 달고 붉은 옷을 입고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상징은 치우에서 유래한다.
또 다른 사람은 이 치우를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자오지 환웅에서 차음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치우를 이로운 신으로 보는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라 도깨비(독아비)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머리에 독(항아리)를 이고 씨름하는 아래 수메르 유물 사진을 연결해 보라.
신화는 성서의 가르침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신화는 사단의 작품이다.
따라서 그들의 연보를 기준으로 역산하려는 것은 믿음에 큰 암초와도 같을 것이다.
또 신들의 족보를 정확하게 꿰 맞추려는 것은 족보와 늙은 여자들이 지어내는 이야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성서의 교훈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일이다.
신화는 다만 사단이 하느님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감출 수 없었던 부분들을 찾아 그의 위장을 드러내게 해 줄 뿐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과장되긴 하였지만 신화에는 분명한 근거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승에 의하면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죽은 후에도 약 40년간 바벨론 지역을 강력하게 통치하였다고 한다.
전승은 또 니므롯을 죽인 셈과 함께 한 72명의 전사에 대해서도 알려 주는데
아마 그들은 셈의 후손인 에벨과 함께 한 자들일 가능성이 많다. 이 에벨에게서 여자의 씨가 나오게 되며
아마도 고대 에블라 왕국이 그의 나라를 말하는 것 같다.
셈의 아들 중 에벨이 특별하게 언급되는 것은 참숭배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낙원을 그리워 한 부족이었다. 에벨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이란 의미가 있는데 그곳에 낙원이 있었다.
에블라에 관한 자료실이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5a1943a
전승의 내용을 종합해 보건데 당시에 니므롯으로 대변되는 사단의 씨들과
홍수에 의한 하느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노아의 직계 후손들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바벨탑 건축에 대한 경고로 언어의 혼잡이 있은 직후였다.
흥미롭게도 중국사는 셈과 함께한 자들을 九黎라고 기록한다. 이는 아홉명의 검은 옷을 입은 자란 의미인데
구려라는 말은 아마 그들의 지역인 kur를 가리키는 말일 수 있다. (kur에서 굴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것을 구려라고 적었다면 아마 그들이 이후에 세미라미스와 그의 사제들을 가리키는 九夷族에 굴복하였거나
그들에게 흡수된 이후에 의미가 더해진 명칭일 수도 있다. 어쨋든 우리는 이 구려가 매우 오래된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구려로 기록된 자들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구려가 쿠르에서 나온 말이라면 이 쿠르라는 지명은 이후 성서에 등장하는 가리아 사람과 연관되며
그것은 크레테와도 연관된다.
아도니야는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기 위해 자신의 마차 앞에 50인의 달리는 자를 두었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경호대(보디가드)를 말하며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훈련받은 가리아(쿠르) 사람들이었다.
아도니야는 그들과 별도의 계약을 맺고 고용하였다.
역사는 이들이 바로 스키타이(스파르타 훈hun)족으로 용병들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들이 바로 馬韓 세력으로 고구려(九黎)인들이다.
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인 특히 고구려인들과 분명한 간련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이렇다.
동유럽에는 불가리아라는 나라가 있다. 꼭 북한 크기의 영토에 800여만명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이 나라는 백제(부여)와 매우 연관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유를 발효시켜 먹고 몽고 반점이 나타나는 유일한 유럽 민족이 불가리아인 것이다.
국명에 불이 들어가는 것도 부여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신채호는 한국을 부여라고 부른 적이 있다.
불이 깨달음과 관련된 오래된 말이므로 그 다음에 들어간 가리아가 눈길을 끈다.
그들이 바로 가리아 족의 후예인 것이다.
그 불가리아가 가장 흥했던 시대는 고추불가 왕국 시절이었다. 그 왕조는 부여와 매우 밀접하다.
고추는 우리말 고추와도 같은 것으로 고추 모양의 곡옥이 천손을 상징하는 보물이듯 그 시대에 고추는 특별한 것이었다.
백제에도 고추 왕가가 있었다. 그 고추불가 왕조 시대에 그들은 비잔틴 제국과 맞상대 할 정도로 위용이 넘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리아 크레테 쿠르(구려)가 고구려를 비롯한 한민족의 조상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空이라는 한자가 굴에 거하던 사람들이 工 즉, 일하러 나가면 비어 있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듯이
한동안 굴에 거주한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다. 이들이 거하였던 굴에 대한 내용은 아래에 나온다.
아마 그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홍수 직후로 보이는 것을 참고한다면 노아도 굴에 거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전승은 또 죽임을 당한 니므롯을 환생시킨 세미라미스가 이후 이들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주고 있다.
계속 도시를 건축하던 강력한 왕 니므롯이 죽자 세미라미스는 강력한 영매술을 행하며
니므롯이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그를 따르던 자들이 믿게 한다.
이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말을 후손들이 믿게한 하와와 똑 같다.
이것이 바로 이집트등에 나타나는 환생 신화의 근거가 된다.
결국 윤회사상도 이들 내지는 그들의 홍수 전 조상들의 것이다.
이때 세미라미스와 함께 영매를 행한 자들이 샤먼 사제들의 기원이 되는데 그들은 위대한 아홉명의 九夷로 알려지게 된다.
구이는 이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대만의 구족문화와 일본의 쿠슈(九州)등이 그 예이다.
다시 언급하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구천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이 九泉이 바로 생명의 기원으로 그들을 말한다.
이집트에서도 이들 아홉 신관은 매우 위력 있는자로 추앙 받았다.
그들은 세미라미스와 함께 비밀회의를 통해 중대사를 결정하며 계속 그 세력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사단의 씨인 니므롯의 후예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隨神과 陰祀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이를 통해
샤먼들에 의해 지정된 우수한 因子가 니므롯의 후예로 세상을 통치하는 왕이 되는 본격적인 사단의 씨가 만들어 진다.
이 일은 그 씨를 니므롯의 후예, 사실상의 사단의 지상 대표자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만장일치여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만장일치 화백회의의 기원이다.
오늘날 비밀리에 교황을 선출하는 것도 이것에서 기원하였는데
중세 이전 약 1000여년간 교황은 고대 니므롯처럼 제정일치의 강력한 권한을 지닌 옥황이었다.
수신과 음사 이것이 바로 신주단지 신앙의 기원이다.
촛불은 초와 불의 합한 말이다. 왜 이 어둠을 밝히는 빛인 이 도구를 초라고 부르고
초를 세워두는 도구를 촛대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사실 초(촛)는 남자의 성기를 말하는 좃과 비슷하고 모양새 역시 그렇다.
좃은 조상의 약자이기도 하며 불은 佛이다.
북한 평양 대동강변의 그들의 오벨리스크를 본 적이 있는가. 아래의 사진을 보라
그것이 바로 불이 촛대 위에 타고 있는 형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벨리스크는 남자의 성기, 씨의 근원으로써 신의 성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장승 거석 문화의 기원인 것이다.
씨를 만들고 보관하며 맞춤 아이를 길러 세상으로내려 보내는
이른바 사원 중심 문화는 나중에 서구에서는 광장과 거대한 물줄기의 분수대와 오벨리스크로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장승과 연못 성황당으로 전승되었다고 하였다.
대동강의 옛 명칭은 貝水다. 조개는 신주단지 안에 들어있는 씨의 상징물이다.
그 물이 흘러 강을 이룬다는 말이 패수이다. 생명의 씨(정액)가 넘쳐 강을 이룬다는 말이므로
패수라는 대동강의 옛 명칭은 성서 계시록 22장의 생명수를 연상하게 하는 사단版 江 이름이다.
150m의 거대한 주체탑과 20m의 봉화 김일성 광장
그리고 거대한 분수대는 북한의 것이 서구적 형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양 신전인 피라밋의 어두운 지하 밀실에서 그들의 씨를 조두에 받아 전하는 순간을 바로 이 촛불로 밝히는 것이다.
씨는 하늘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여기서 하늘은 피라밋 정상의 천사가 머무는 방이다.
그 방을 천사들의 마스터베이션 룸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집트 신화에서 수음으로 무수히 많은 신을 낳았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분에서 발견된 구유통 같은 목욕통은 그들의 정액이 굳어서 변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온 천하를 다스리는 왕권을 지닌 씨가 만들어지는 이 조두가 보관되어 있는 사원(신전)을
천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며 신전을 지키는 결사대들은 천사가 되는 것이다.
고구려는 이 미트라(武豆婁)를 양성하는 나라였으므로 천사국 혹은 대천사국으로 알려져 왔다.
무두루는 미트라의 漢譯으로 한자의 의미는 별(婁 태양)의 씨(豆)를 지킨다(武)는 뜻이다.
무두루와 비슷한 文豆婁도 있었다.
文武라는 말로 진한 마한을 대체하는 말로써 지배층을 말하는데 이른바 文武大臣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씨는 창세기 3장15절의 여자의 씨가 그 기원으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가리킨다.
에덴은 훗날 하늘로 옮겨지므로 하늘의 씨가 되며 생명나무는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신목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숲 속의 에덴은 신단이 숲 속에 지어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沃沮라는 말은 이란이라는 국명과도 같아 숲을 말한다.
신채호는 옥저를 숲을 말하는 만주어 와지의 음사라고 했다.
이 하늘은 깨달은 영혼이 가거나 머무는 장소이다. 따라서 샤먼(깨달은 자)은 신이 된다.
그리고 에덴을 지키는 불검의 천사들이 있었던 것처럼 신전을 지키는 무사들이 있게된 것이다.
이 모든 종교와 의식들은 다 모방의 명수인 사단에 의해 옮겨진 것임을 볼 수 있다.
戰士는 말을 타고 다닌다. 태양을 지키는 전사들은 천사를 말하므로 날개 달린 백마를 탄 기사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홍수 후 제사에서의 촛불 사용 의식은 니므롯의 죽음과 환생을 알리는 제사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모든 제사에 초와 촛대가 등장하게 되는데 무당의 굿거리에도 나오게 되고 카톨릭의 미사와 교회 강단에도 보이며
심지어 지금은 기능상 필요 없는데도 예식장의 축하용 장식으로도 쓰이게 된 것이다. 씨와 관련 있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를 때 밤에 불을 환하게 밝혀 두는 것은 귀신이 魂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전등이 없었으므로 촛불을 많이 켜 두었을 것이다. 지금도 영정 앞에는 환한 전등 대신 희미한 춧불을 켜 둔다.
이 의식이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촛불 잔치를 벌려 보세~ 하는 대중 가요 노랫말이 비속한 의미로 널리 회자된 적이 있었다.
촛농은 하얀색이다. 성 관계시 불이 꺼지면서 나오는 정액인 것이다.
세미라미스의 사제들은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켜는 등의 의식을 행하며 영매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이른바 玄人의 시작이고 早衣仙人과 검은 사제복
그리고 선비족과 지금의 組暴들의 상징이 된 검은 양복의 기원이 된다.
그것은 상가 예복인 검은 옷의 기원도 된다. 장의차도 주로 검은 색을 사용하며 리본도 검은 색이다.
바로 그 사제들이 검은 옷을 입고 니므롯의 죽음과 환생을 주장하며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특히 현인 선비 조의선인의 나라로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고구려 벽화 속에 나타나는 조의선인이다.
흥미롭게도 천자문의 시작 부분은 하늘 天 따 地 검을 玄 누르 黃이다.
연금술은 이들 사제 집단의 기술이다. 훗날 중세때에 이들 연금술사들은 마귀의 영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며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된다. 흥미롭게도 전해지는 모든 史料에 이들 연금술사들은 모두 검은 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구려에 고가 더해진 것은 아마도 go가 수메르어로 강력한 수소를 가리키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고구려의 옛 명칭은 코우리 카우리이다. cowry는 영어의 cow와 같으며 역시 소를 말한다. 코리아의 프랑스 말은 꼬레이다.
'옛날 옛날 고릿짝에' 고릿짝의 고리가 아주 오래전의 그들을 말하는 것이다.
짝은 지정된 아이를 옮기던 궤짝을 말하는데 고리인들이 그 궤짝을 옮기거나 지키는 일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리는 손잡이라는 말로도 사용되며 쇠고리를 잡다 소꼬리를 잡은 놈이 壬字라는 말은 곧 왕의 씨를 가졌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고구려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고릿짝 즉, 길러진 지정된 아이를 담아 내려보내던 궤짝을 의미하게 된다.
이 국명에서 고구려인들이 쌈지 세력의 역사에서 무슨 역할을 담당한 집단이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민족이며 또한 용감한 무사 집단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일을 하도록 특별히 양성된 무사 민족을 스파르타 스키타이인들이라고 불렀으며 강력한 전사 집단의 상징어가 된다.
이들이 바로 몽골 고구려의 조상으로 영화 속 자주 등장하는 신전 수호의 임무를 받은 결사 조직의 기원이다.
이들의 후손 북한은 현재도 抗日 독립 운동 뿐 아니라
태양신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채 세계 강국들과 겨루는 집단이다,
그 나라에는 현존하는 태양신도 있고 신전도 있다.
씨를 숭앙하는 촛대와 촛불인 오벨리스크가 貝水(대동강)옆에 세워져 있다.
패수라는 말은 보패의 물로 조두에 담긴 정액을 말한다. 평양(파라다이스)에서 흘러나오는 물인 것이다.
깨달은 자의 정액은 정령이라고 부르는데 그 씨는 구원과 연관을 지니게 된다.
고구려 군인들의 투구는 치우(셈)천왕 처럼 소머리 뿔이 상징이다.
그리고 고구려 땅에 소머리와 관련된 이름이나 지명이 많다.
속말 말갈의 속말은 수메르라는 말의 만주어이며 말은 무니이고 갈은 고을이란 말로
이는 곧 수메르무니고을이란 말이다. 춘천은 옛 지명은 牛首州이다. 소머리고을이란 말이다.
우리말의 수장을 가리키는 우두머리 역시 수메르지도자라는 말이다.
頭와 머리는 중복이므로 우두는 수메르라고 읽어야 한다.
백두산의 백두도 역시 소머리 수메르란 의미이다. 백은 흴 素이다.
아마 유물들과 시기를 고려해 보건데 셈이나 그의 아들인 앗수르는 소를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앗수르의 상징은 소머리이고 그의 아버지인 셈에게서 세메르, 수메르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메르와 소머리는 같은 말이며 지배족인 셈 족 곧, 수메르인은 오랫동안 지도자로 알려졌던 것이다.
세미라미스는 그의 강력한 통치 기간에 과거 그의 우상과도 같은 하와의 자리에 앉으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함에 의해 전승된 홍수 전의 여신들은 아라랏 인근에서 숭배되고 있었다. 지금의 쿠마니 市 지역이 그렇다.
이 성의 과거의 이름은 고마나이다. 고마는 곰이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熊女(여신)의 고향이다.
그곳은 지금의 갑바도기아 지역인데 과거 그곳에는 여인국도 있었다고 한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왕검을 낳는다.
잠시 벗어난 글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다음 그들과 후손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아주 오래된 이 지역에 얽힌 흥미있는 조사를 같이 해보자!
갑바도기아에는 마치 닭벼슬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바위들이 있으며
오래前 화산 활동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많은 동굴에는 도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훗날 한때 이 바위의 굴과 지하 도시에는 200 여만명이 거주 하였다고 한다.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생긴 지하 교회도 있는데 kur족은 바로 여기에 거주하였던 족속으로 여겨진다.
이 kur에서 우리말 굴이 생겨났다.
사실 한자 빌 空 자도 굴(穴)에서 사람이 일하기 위해 (工) 나간 모양이다.
穴은 구멍을 가리키는 글자인데 아래 사진에 나오는 쿠르 지역은 굴이라기 보다는 구멍으로 보인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처음 주거지로 정한 곳이 바로 이 쿠르 지방으로 보이는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신라 사람들을 구구타예설라라고 기록하였는데
구구타는 바로 우리 말 구구닭(꼬꼬닭)의 기원으로 닭벼슬처럼 생긴 이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예설라는 귀함을 말한다.
거대한 남자의 성기처럼 보이는 돌기둥들은 어쩌면 오벨리스크의 기원인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고산 지대였기에 저지대에 비해 홍수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노아의 가족은 저 바위 기둥들을 홍수 전부터 본 적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비한 형태의 이 지역은 광산이 많은 지대이다.
서라벌이라는 말은 斯禮筏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고 박제상은 말하는데 이는 노예들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사례벌은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꽂아 놓는 깃발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상하고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곳에 시조가 살았던 부족들이 이 지역을 상상하며 만든 말들이 많다.
박제상은 신라의 발상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고들은 종족의 힘을 얻어 方丈山 방호굴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였다.
그 칠보의 옥으로 천부를 새겼는데 이를 方丈海印이라고 하였다.
그곳에서 10년마다 신시를 열어 세상의 글과 말이 달라지는 것을 막아 대화합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천하의 도처에 성황당이 생겨났으며 神仙을 믿는 종교가 생겨났다.
방장이란 이 지역의 특이하고 괴상한 바위 모양을 방호굴은 속이 빈 항아리와 같은 굴이란 말이다.
칠보를 채취했다 함은 이곳이 광산 지대임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을 에르지에스 닥이라고 부른다. 닥은 오리를 말하는 duck이고 의미는 산이라는 말이다.
일연에 의하면 신라의 시조가 백마와 함게 내려온 곳이 바로 토함산인데 지금의 토함산은 산의 명칭과 맞지 않는다.
토함이란 화산 활동으로 푹 패인 지역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라의 육부 촌장이 모두 산에서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 산을 말하는 지명은 모두 험산들이다.
예컨데 茨山(자산)은 가시가 돋힌 산을 말한다. 경주에는 이런 산이 없다.
표암봉 궐곡 돌산 금산 금강산이 그 山名으로 갑바도기아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금산 금강산은 광산을 말한다.
일연은 이들이 있던 곳을 탁수 라고 하고 이 탁은 도와 같이 발음한다고 했다. 위의 duck와 같다.
한자로 道는 타우로 발음되며 탁수는 타우루스 톨로스와 비슷하다. 저 지역이 정확히 토러스 산맥에 위치한다.
이 나라를 계림국이라고 했는데 훗날 중국에 비슷한 지형을 鷄林(구이린)이라고 했다.
이 갑바도기아에는 연금술이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 지하 방이 있으며 헤로도투스는 이곳을 syllia라고 적었다.
이 실리아는 엘람어로 양치기이며 리그베다 경전에는 태양신의 황금마차 수리아라고 적혀있다.
신라 실리아 시리아 수르 수레 수리 술 솔 소가 무엇과 상관되는지 잘 알려주는 말들이다.
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입술에 대해서도 언급해 보자. 입은 한자로 口인데 원형이 태양 신전이다.
태양(술)으로 들어가는 문(신전)이란 말이다. 당연히 붉은 혀는 태양을 상징할 것이다.
혀가 불과 관련된 것은 성서에도 여러번 나온다.
경회루의 해태상과 아래의 사진처럼 아즈텍 인디안 신전에
혀를 빼 문 문양이 발견되는데 이 혀는 바로 태양(불)을 상징하는 것이다.
영어 발음처럼 ㅎ은 ㅅ으로도 발음된다. 혓(햇)바닥 샛바닥이 그렇다.
그래서 새bird가 해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해와 새는 같은 말이다.
태양은 둥글므로 알 환丸으로도 표기된다. 구슬이란 말은 그래서 입술과 동의어로 보이는 것이다.
태양은 임금 왕을 상징하는데 구슬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권력을 주는 짐승인 용은 입에 구슬을 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구슬을 가진자 마음대로 되게 한다는 의미의 如意珠(드래곤 볼)이다.
구슬은 이슬이란 말과 같다고 하고 굿거리의 굿과 같은 어원을 지닌다고 한다.
따라서 필자는 입술 구슬 이슬 굿 god 갓 등의 모든 말이 다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이 추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cafe.daum.net/poemkim1/Jqm5/98
흥미로운 것은 환단고기에서는 신라 탈해(석탈해)이사금의 등장과 관련하여
그는 오랫동안 海濱에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이 해빈이 흑해의 동쪽을 말한다.
그 지역은 龍城國이라고도 적었는데 그곳이 바로 그루지야 공화국의 수도인 트빌리시가 있는 곳이다.
그루지야라는 말은 용을 죽이다, 혹은 깨닫다로 選民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태에서 직접 나온다고 했다.
이는 바로 제왕절개를 말하는 것으로 이곳은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수술법은 기원전 5-7세기경 페르시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혁거세를 낳은 왕비가 파소로 나오는데 이도 그가 페르시야 공주였음을 암시한다.
이래저래 이 삼한족의 시작이 그곳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참으로 많다.
아래의 사진은 갑바도기아 지역의 괴상한 바위산이다.
이 지역에 산재된 저런 동굴에 한때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모여든 난민들로
인해 200만명이 넘게 거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근거로 퍼져 나간 쿠르족은 훗날 티벳 돈황 지역에 비슷한 형태로 거주한다.
그곳이 바로 막고굴이다. 이 막고굴의 주인은 고구려인들을 포함하여 晉 즉, 동이족이다.
한때 4000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이곳은 폐허가 되었으며 集安에 새로운 부도가 생겨난다.
이 무렵 신라 고구려 백제에 불교가 들어오는 것을 봐서 아마 불교국의 출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굴을 신성하게 여기고 뱀이나 곰 신선등이 사는 곳이라고 여기게 된 이유가 여기에서 연유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세미라미스는 여신으로 추앙받은 후대의 강력한 여왕들의 기원이다.
그의 후예로는 클레오파트라 제노비아 빅토리아 소서노 지금의 영국 여왕等 수 없이 많다.
지금의 쿠마니 市 인근 지역 고대 여신의 이름은 ma mo maya이다.
마야는 태양신으로 아즈텍인의 신 이름으로 전승되며 마야는 흥미롭게도 싯달타의 어머니 이름이다.
일본국의 시조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도 태양 여신이다.
석가모니로 알려진 싯달타의 나라와 정확한 출생은 알려진 바가 없다.
석가모니는 샤카무니의 漢譯이다. 무니는 스승이란 말이다.
범어로는 풍경을 샤카라고 부른다. 풍경은 木魚이자 물고기를 의미한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물고기 신은 니므롯으로 전설은 어부이기도 했던 그가 죽임을 당한 후 반인반어의 모습으로 환생하여 물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오시리스 신화와도 같고 바다에서 소 떼를 끌고 나왔다는 포세이돈 신화와도 같다.
이집트 전설에서 그를 살린 것은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시스였다.
바로 환생을 주장한 세미라미스의 영매를 말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가나안의 물고기 神인 다곤이다.
카이사르 시이저가 대승정이자 황제로 취임하면서 썼다는 法帽도 물고기 상이며 이는 교황의 모자로 전승된다.
그는 서유기의 바다 요괴 사오정으로도 나타난다. 포세이돈과도 같다. 둘 다 삼지창이 무기이다.
삼지창은 山 出자 문양으로 한자에 엄청나게 등장한다.
이는 천지인 삼위일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피라밋의 모양도 된다.
이 바다에서 나온 반신반어인 불사의 신은 사이렌 인어아가씨 로렐라이 심청전 용궁 전설등의 기원이 된다.
雙魚門 쌍어문양 하늘의 물고기자리인 파이씨스 등도 역시 이것에 기원을 둔다.
다곤신은 홍수 직후 앗수르의 주신이다.
노아와 그의 아내는 세계적인 홍수로 인한 멸망을 그야말로 물고기처럼 살아 남았던 것이다.
다곤이 곧 단군이므로 한국에 물고기 문양이나 용궁 물고기신 등의 전설이 많은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락이나 가야라는 말은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가야 김수로 왕릉을 지키는 쌍어문 문양을 보라. 그 문양은 너무도 똑 같은 문양으로 힌두교 사원에도 사용된다.
이 물고기상은 훗날 아주 동일한 모양으로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시로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사단에 의해 배교한 이후의 일로 결국 이스라엘처럼 그들 역시 또 하나의 바벨론이 되었다는 표시이다.
지금은 교인임을 표시하는 문패로도 사용된다.
니므롯이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물(바다)의 신으로 자처한 것은
하느님의 심판인 홍수를 이겼고 이길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가 탑을 높이 쌓은 것이 하늘과의 교신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홍수를 이기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니므롯은 신이 또 한번 홍수를 가져 온다면 자신이 복수하고 말 것이라고 떠벌렸다고 한다.
그리 처신하기 위해 니므롯은 분명 시조인 노아와 그의 아내를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용하였을 것이다.
물고기 상에 대해서는 이곳을 클릭하여 참조하기 바란다. http://cafe.daum.net/poemkim1/Jqla/12
흥미롭게도 부처상의 머리는 곱슬인데 곱슬머리 흑인의 조상은 함의 아들 구스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니므롯도 분명 우성 인자인 곱슬 머리였을 것이다.
곱슬 머리가 발견되는 동양인은 그들과의 혼혈로 보인다.
탐무즈(박쿠스) 상에 나오는 머리카락도 다 곱슬이다. 렘13:23절
佛頭花라는 꽃을 아는가? 수국과도 같은 그 꽃은 머리가 보글보글한 부처를 닮아 있다.
꽃말은 까마귀 밥나무 꽃이다. 까마귀는 삼족오에 등장하는 해의 새이기 때문이다.
인도 여인들이 하는 이마 연지는(곤지라고도 한다.) 태양을 상징한다.
연지는 볼과 이마 등에 붉게 칠하는 물감을 말한다.
석굴암의 암실 속 부처상의 이마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화혈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 빛을 정확히 반사한다.
사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천체 이동을 관측하는 것은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때의 부도는 그래서 暗窟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석굴암처럼 암실 속의 金人像은 평소엔 어둠속에 있지만 화혈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몸은 광채로 휩싸인다.
암실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순간 두려움으로 경악케 되는 것이다.
그 위치는 정확한 천문 계산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별자리가 이동하면 부도의 기능이 상실된다.
인도 여인들의 이마 곤지가 태양을 받아들이거나 반사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연지곤지가 자신이 처녀임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현재 인도에서는 여자들만 그 표시를 하는데 태양신전의 사제들은 처녀성을 제물로 바치게 하였던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세미라미스는 역사 태동기에 그 모든 여신에 관한 믿음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킨 여자이다.
따라서 그의 남편이자 아들인 니므롯은 죽었다가 살아난 태양신이 되고
이는 태양절기인 동지(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음란한 제사로 전승된다.
동지를 깃점으로 태양이 활동을 재개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축일의 날자와 풍습이 이해될 것이다.
고대에는 새해의 시작이 동지라고 여겼는데 이 날을 깃점으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이 축제들은 농사 시기와 맛물려 있으므로 태양신은 곡식의 신을 겸하게 된다.
데메테르는 곡식의 여신으로 파종기(춘분)와 수확기(추분) 무렵에 그를 위한 제사가 바쳐진다.
농업의 신인 demeter는 영어로 추수감사절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스터가 부활절을 의미하듯 태양신 세미라미스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들이 제사를 음란하게 치르는 이유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신화에서 보듯
자녀 출산이나 풍작이 다 그들이 바람 피우는 것의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음란한 제사를 지낸 것이며 다산과 풍요를 원하는 여인들은 처녀성을 바쳤다.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용한 장작불의 장작은 생명 나무를 상징하며 불은 깨달음, 해탈을 뜻한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장작불을 지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그는 상록수로 대체되는 것이다.
상록수는 말 그대로 늘 푸른 나무로 영생불사의 상징이다. 그래서 소나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혼은 결코 죽지 않거나 환생함을 뜻하는 상록수, 바로 이것이 사단이 제시한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것이다.
상록수에 불을 밝혀 놓거나 불이 없던 시절에 보리수 나무등이 등장하는 것은 붉은 불과 열매가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전날 죽은 나무(마르둑)가 이튿날 아침 상록수로 살아나며 거기에 태양 빛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석가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탄생했다는, 해탈했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는 상록수과의 나무이다. 왜 그 나무를 소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힌트가 보이는가?
영어권에서는 그 나무를 에버그린 트리라고 하는데 역시 상록수라는 의미이다.
소는 소머리의 소와 같다. 나무는 남무이다. 바로 니므롯을 가리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소 가 흴 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흰머리 그것이 바로 힌두이고 백두이며 에베레스트 산등 고산의 정상 모습이고 靈山의 상징이다.
흰 소와 뱀 白松 정상에 눈 덮힌 하얀 산과 나무 신선의 白髮 제물에 쓰이는 하얀 양 등 흰 색이 높임 받는 이유이다.
이는 아마 그들이 홍수 후 방주에서 나온 아라랏 산등 토로스 산맥의 고산에서 처음으로 본 눈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눈은 여러 글자 원형에서 물의 근원으로 나타난다. 雨와 雪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고어의 설은 이렇다.
비가 내리는 모양의 雨자 아래의 밑변은 삼지창으로 샤먼의 도구이며 사단의 상징이다.
순백은 순수한 물의 상징이 되며 그것은 사단의 씨의 근원인 샤먼의 정액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은 자인 붓다 즉, 샤먼의 정액 精靈인 것이다.
특히 태양신 숭배 사상은 천축 지역이 그 발생지이다. 후대에 천축 지역이 아닌 곳으로 퍼져 나가긴 했지만
역사상 그 지역 즉, 남천축인 30도에서 북천축인 40도 지역 사이에서 고대 주요 문명들이 흥하거나 망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은 중천축인 35도에서 북천축 사이 지역이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38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중동의 남천축은 예루살렘이며 한반도의 북천축은 만주 일대이다. 천축 지역은 대체로 눈이 내리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 덮힌 트리 등을 축복으로 여기는 등 그 의식과 눈은 필수적인 연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 의식과 축일 관습이 북반구에서 시작되고 퍼져나간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한국의 불의 신 조왕처럼 굴뚝을 통해 드나든다.
그래서 한국에도 동짓녘 머리맡에 버선을 벗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그 신이 거기에 복을 두고 간다고 한다./?
굴뚝은 굴 kur(구려) 와 마르둑의 뚝이 합친 말로 보인다.
굴은 꼬불꼬불한 형태를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된 음이고 뚝은 굴의 끝에 쌓은 뚝을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음이다.
아궁이(아는 불을 이르는 다른 말)에서 땐 빨간 불이 굴뚝을 통해 하얀 연기로 날라간다.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소 떼를 몰고 살아나왔다는 신화를 기억하는가?
소는 나중 니므롯의 후예들에 의해 신격화 된다.
상록수를 소나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니므롯, 소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나무는 환생한, 해탈한, 깨달음을 통해 영생을 얻은 니므롯을 나타내는 그의 나무인 것이다.
松은 태양신의 상징인 니므롯(탐무즈)을 말하는 十字와 관직 公의 합한 글자이다.
숭배를 받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관직이 정승인 소나무도 생긴 것이다.
태양신의 상징인 십자의 나무라는 의미의 한자가 바로 나무 木 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하는 노랫말이 기억나는가? 이는 바로 니므롯의 환생을 예찬하는 가사이다.
소는 素이므로 특히 백송은 흰소 백사처럼 神木으로 우대 받는다. 신선의 긴 머리도 백발이다.
소나무에 관한 내용을 좀 더 추가한다.
소나무는 솔이라고도 불린다. 가요로 '솔아 솔아 푸른 솔아'가 지난 해 한 대통령의 죽음을 기리는 곡으로 애창 되었다.
불쏘시개로 애용되는 것으로 솔가지가 있다. 소나무의 기름기인 테르핀 진액이 많은 잔가지를 부르는 말이다.
사실 그을음이 많은 이 솔가지보다 좋은 불쏘시개도 많지만 종교적인 의미에서 더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솔은 원래는 술이었으며 이 술은 수리라는 으뜸을 뜻하는 순수 한국말에서 나온 것으로
나무 중의 으뜸이라는 뜻이라 한다. 松이라는 관직의 소나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른데 그것은 솔이 라틴어로는 태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ㅅ과 ㅎ의 교차 사용으로 인해 솔은 홀로도 부를수 있는데 홀은 영혼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홀본은 영혼의 집 고향이라는 의미로 한민족이 세운 중국의 도시 하얼빈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백두산에서 발원한 松花江이 흐른다. 송화강은 소해강이란 말이다. 화는 해 송은 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머리강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 혹은 그들의 영혼의 인도자인 샤먼이 바로 셈 족이기 때문이다.
솔은 또 영혼을 칭하는 영어의 소울soul과도 비슷하다. 태양은 만물의 근본으로 영혼의 의미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강력한 통치자들은 자신이 태양의 아들이라고 하였거나 아예 태양이라고 불렀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로 기록되는데 해모수의 해는 태양 모스는 moss moses masia로 곧 태양신의 예언자라는 말이다.
태양은 그들이 죽어 돌아가 하늘에서 빛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므로 곧 신이 되는 것이다. 혼은 신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니므롯의 경우에도 그는 태양신 탐무즈 아폴로로 나오는데 이는 그가 환생하였다고 여겨진 다음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말하는 영어 소울은 라틴어 태양 솔sol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도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사랑하는 사람(혹은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에 올라가 태양이 되어 빛으로 인도하고 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는 사상의 시작이다.
陽은 별 양으로 우주의 광명체라는 면에서 태양과 별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소나무가 환생한 니므롯의 늘푸른 나무가 되고 숭배 받는 나무이며
솔 로도 불리는 것은 바로 환생한 태양신 니므롯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솔은 한국의 歲時를 부르는 말인 설로도 불리워진다.
또한 영혼의 고향이라는 의미의 하얼빈(원래는 홀본 솔본) 처럼 영혼을 말하는 영어 소울soul이기도 하며
한국의 수도인 서울도 결국 솔이란 말처럼 영혼 태양을 의미한다.
솔이 수리에서 나온 말이므로 으뜸이란 뜻도 지니므로 곧 首都가 되는 것이다.
비슷한 이름의 도시로 영국의 솔즈베리가 있다. 영혼의 들판(伐)이란 의미일 것이다.
그곳에는 스톤헨지라는 거대한 인신공희의 제단이 있고 많은 영혼을 치는(칠 벌伐)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殺伐하다는 말은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불길한 느낌을 이르는 표현이다. 벌이 나오는 말로 벌목등이 있다
벌판을 말하는 영어 단어에 moor가 있는데 이는 무어인과 같은 말이다.
그 의미는 사냥터등이 있는데 과거의 사냥은 샤먼들이 제물로 바치기 위해 제물을 샤냥하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사냥은 그들의 학문이기도 했는데 사냥과 관련된 용어가 아직도 섭렵涉獵이라는 말로 학문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니므롯은 위대한 사냥꾼이었다는 성서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가 위대해 진 것은 바로 사람을 사냥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살벌이란 말이 바로 솔즈베리와 같다고 본다.
벌판이란 말은 황산벌처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기억되는데 과거에도 피를 흘리는 의식이 자행되던 곳이다.
터 와도 같은 말이다. 죽은 자들의 언덕이란 의미의 모헨조다로의 다로가 바로 터라는 말이다.
사냥이란 말은 산행이란 한자와도 같은 말이며 산행이란 도를 닦는다 심신을 수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죽이는 일은 이렇듯 태양신 숭배와 밀접한 것이며 이는 훗날 해부 의학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塚(무덤)에서 발견된 가지런한 뼈는 죽은 귀족의 뼈가 아니고 이렇듯 제물로 바쳐진 시신을 다시 수습한 것이다.
장기들에 이름을 붙이고 제자리에 봉합하며 뼈를 맞추는 일은 샤먼 사제가 되는 마지막 과정의 하나이다.
천문학 다음이 의학이고 다음이 약학 철학(야금 연금 포함) 종교학등이 박사의 권위 순서를 이르게 된 이유이다.
따라서 무덤 주위에 소나무를 둥글게 심었던 것은 그 속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졌던 때문으로 보인다.
소나무가 松이 된 데에는 이런 우화도 있다.
소나무 송 (松)이란 한자에는 ,중국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소나무덕에 비를 피할수 있게 되자 고맙다는 뜻으로 나무에게 공작의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즉 나무 공작이라하였고
이 두글자가 합해져서 "松"자가 되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다.
진시왕은 알렉산더라고 다른 항목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그는 사단에 의해 더 큰 니므롯으로 사용된 자이며 그의 행적은 니므롯과 너무 닮아 있다.
그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가 3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고 했는데 그 나이는 죽음을 염려할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불로초를 구하려 그런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것은 그가 니므롯의 행적을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생명 나무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과거 가나안 지역에는 소나무가 많았으며
올림픽 중 고린도 부근에서 열린 이스트미아 경기 대회의 승자는 소나무로 만든 면류관을 받았다
이 나무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중요하게 사용한 나무로 통찰책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의 柱廊이 늘어선 유명한 석조 건축물들도 원래는 소나무로 지어진 것이었었다.
한국에도 소나무는 왕궁이나 사원등의 기둥이나 석가래등에 사용되는 중요한 건축목이다.
왕궁은 길게 소나무로 된 주랑으로 이어진 것이 그리스의 건축 양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단 산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상 곧게 자라지 않기에 건물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다.
이 소나무는 쓰임새도 다양하여 송화가루 솔잎 송진 테르펜유 솔방울등이 특히 유용하다.
떡은 단군 왕검이 세웠다는 종교인 德敎의 덕에서 나온 말이다.
세시 풍습으로 떡국을 끓이고 나누어 먹는 것은 덕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처럼 덕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원래는 덕국이라는 말이다. 한가위에는 햅쌀로 松片을 만들어 먹는다.
솔잎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하려 한다거나
솔잎의 약리 작용을 넘어서 떡이 바로 덕을 말하듯 솔 소나무가 상징하는 단군 니므롯을 기억하는 풍습인 것이다.
카페의 그림과 페이지 제한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2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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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위=사단의 자리 사단의 왕자 사단의 씨가 앉은 곳 사단의 깊은 것
길리기아 - 미다스 왕 버가모 -페르가몬 몰약이라는 이름의 국명
수리는 태양을 말하므로 소도 태양을 말할 수 있다. 솔은 원래 술이었으므로 술이란 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입술인 것이다. 입술은 구슬이다. 구술 술 살 쌀 솔 다 같은 말이다.
보드카 위스키 와인 꼬냑 럼 막걸리 청주 탁주 고량주 와는 달리 술은 대명사로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조상에게도 술을 바치며 신에게도 술을 바친다. 디오니소스 박쿠스는 술의 신이었다.
수레도 태양을 의미한다. 말이 이동 수단이 되면서 수레는 마차로 바뀐다.
하지만 다용도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소가 말을 앞선다. 소의 크기는?
들소와는 달리 한국의 소는 온순하며 크기가 작다. 싸움소는 황소로 크기가 크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는 아들인 자신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과 그때를 계산하려 한 시절이 있었다. 아니 그 기간이 길었다.
많은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인 가장 주된 동기였다.
그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무시한 것인데
예수도 심지어는 사단도 우리보다 더 정확히 그 날을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날과 그 때를 계산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반역으로 스스로 하느님이 정한 날, 예수께서도 모른다고 한 그날을
계산해 내려는 시도인 것이다. 자신이 하느님이 되거나 미리 계산하여 하느님을 덮에 빠뜨리려는 것이다.
북은 북두칠성의 머리인 北 斗는 꼬리별 두드림은 그에게 드린다는 말이며 昧별은 음악으로 태양을 깨운다는 말이다.
그래서 해가 뜨게 하려는 것인데 매는 동이의 음악이라고 했다. 풍물패의 기원이다.
부채를 부치는 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방울소리는 소리가 크면 바람이 일어난다고 생각
방울이란는 말은 사방에서 울다 울린다는 말로 팔괘 방울을 연상케 함. 방상의 상은 눈이 네게- 빈센트
衆은 눈이 세게 巴는 눈이 두개이다.
코스모스에는 단장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코스메틱은 여기서 유래
유니폼의 기원
마르두크, 몰렉, 바알 등?의 상징물로 수소를 숭배하였다. 수소는 황도대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로 꼽히는 황소자리를 차지하였다. 태양신은 흔히 수소로 상징되었고, 뿔은 광선을 의미하였으며, 수소의 강한 생식력은 “생명의 수여자”인 태양의 힘을 상징하였다.
암소 역시 이슈타르 또는 아스타르테?이 여신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림?의 상징물로서 동등한 영예를 받았다. 아론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 그런 수소 숭배(송아지 숭배)를 들여온 것은 여호와의 눈에 참으로 큰 죄였다
음악의 어원이 이 매별에 있다. 두표가 매를 두드림으로써 두드리는 음악이 발생한다.
두드림은 斗에게 드림이라는 뜻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을 때 해의 잠을 깨우기 위하여 두표가 매를 두드린다.
소의 뿔이 광선을 의미한다면 뿔을 뜨는 것은 빛을 연구하는 것을 말하므로 解나 物 覺은 다 의미가 있다.
미탄니는 시리아 마리 옆이자 다메섹 부근에 있는 왕국이다.
(Smyrna) [몰약] 서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