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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解字(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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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기담 스크랩 이정귀
樂而忘憂 추천 0 조회 188 09.03.11 11: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李廷龜   이정귀 1564~1635
이정구 /1564(명종 19)~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인.

 한문 4대가의 한 사람.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보만당(保晩堂)?추애(秋崖)?치암(癡菴)?습정(習靜). 현령 계(啓)의 아들로 윤근수의 문인이다. 14세에 승보시에 장원한 뒤, 22세에 진사,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1598년(선조 31) 명나라의 정응태 무고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술변무주 戊戌辨誣奏〉를 지어 명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러 차례 대제학에 올라 문사(文詞)에 능한 자들을 발굴했고, 중국을 내왕하면서 100여 장의 〈조천기행록 朝天紀行錄〉을 펴냈다. 그뒤 병조판서?예조판서?좌의정?우의정을 지냈다. 문학을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도구로 보았으며, 그의 문장은 당시 관인문학을 선도하는 전범(典範)을 보였다. 시문집으로 〈월사집〉 68권 22책이 전한다.

 

 

          尋僧  심승    스님을 찾아
                           李廷龜   이정귀 1564~1635

 
石逕崎嶇杖滑苔  석경기구장활태

지팡이 짚고 이끼 낀 미끄러운 石逕 오르니
淡雲疎磬共徘徊   담운소경공배회

아득한 풍경소리 엷은 구름 위에서 노니네
沙彌叉手迎門語   사미차수영문어

어린 중이 두 손 모으며 맞더니
師在前山宿未回   사재전산숙미회

스님은 앞산에서 잠들어 돌아오지 않으셨다하네


어떤 방문

가파른 돌길에 지팡이 미끄럽고
엷은 구름 성근 풍경 함께 허공 배회하네.
사미는 손 맞잡고 절문 맞아 하는 말이
스님은 앞산에서 주무시곤 안 왔다네.

石逕崎嶇杖滑苔 淡雲疎磬共徘徊
석경기구장활태 담운소경공배회
沙彌叉手迎門語 師在前山宿未回
사미차수영문어 사재전산숙미회
-이정귀(李廷龜, 1564-1635), 〈스님을 찾아(尋僧)〉

석경(石逕): 돌 길. / 기구(崎嶇): 가파른 모양. / 장활태(杖滑苔): 지팡이가 이끼에 미끄러지다. / 소경(疎磬): 이따금 들려오는 풍경소리. / 배회(徘徊): 서성이다. / 사미(沙彌): 절에서 심부름하는 어린 스님. / 차수(叉手): 두 손을 나란히 합장함.


가파른 돌길을 말없이 오른다. 지팡이가 습기 머금은 이끼 위를 찍으면 그만 쭉 미끄러진다. 핑계 김에 다리를 쉬자 고개를 들면 하늘엔 엷은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는데 산 위 절집의 풍경 소리가 구름 사이로 들려온다. ‘이제 다 왔어요. 조금만 힘내세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구름 속 절집에 다다라 스님을 찾았더니,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사미승이 나와 합장을 하며 말한다. “큰 스님은 간밤 앞산에서 주무신다고 가시고선 여태 안 돌아오셨는데요.” 

 


                     幽居  유거    한가히 살며
                                李廷龜   이정귀 1564~1635
 
幽居地僻斷過從   유거지벽단과종

 외진 곳에 한가로이 사니, 발길 끊기고
睡起閑齋萬事용   수기한재만사용

한가한 집, 잠에서 깨어도 할 일이 없네
猶有憂時心未已   유유우시심미이 그

래도 근심은 있어, 마음이 안 좋으면
夕陽扶杖看前峯   석양부장간전봉

석양에 지팡이 짚고 산봉우리 바라보네

 

 

           대동강(大同江)

                        

芳草??雨後多(방초처처우후다) 방초는 비가 온 후에 더 무성하구나
夕陽洲畔采菱歌(석양주반채릉가) 저녁 무렵 섬 가에 마름 캐는 노래 소리
佳人十幅稍裙綠(가인십폭초군록) 미인의 열두 폭 치마 푸르르니  
染出南湖春水波(염출남호춘수파)남호의 푸른 물결을 물들여 내내   


            [字義]

芳:꽃다울 방 ?:풀 성하게 우거질 처 洲:물가 주 畔:두둑 반 采:나물 채
菱:마름 릉 歌:노래 가 佳:아름다울 가 幅:;폭 폭 稍:벼 줄기 끝 초 裙:치마 군 綠: 染;물들일 염 波:물결 파
佳人:아름다운 여자 采菱歌:연밥을 따며 부르는 노래 稍裙:푸른 치마

 


[通解]

 꽃다운 풀이 파릇파릇 돋아난 언덕, 향기로운 강둑길에서 비가 내린 후의 해가 질 무렵에 아가씨들의 연밥 따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이 입은 열 폭의 치마는 대동강의 푸른 물결에 물을 들여서 내놓은 것인가. 푸른 치마폭은 정녕 남쪽 호수의 물빛 같구나.  

 

 봄바람이 실버들 마구흔들어
 그림 같은 다리 서쪽 해는 지는데
 꽃보라 어지러운 꿈 같은 봄을
 어쩌라  방주에 임은 안 오고.....

                  
 搖蕩春風楊柳枝  畵橋西畔夕陽時
 요탕춘풍양류지  화교서반석양시
              
 飛花?亂春如夢  ??芳洲人未歸
 비화료난춘여몽  추창방주인미귀

                                   
빠진자 ** 료= 총명할 료  추= 심방변+ 周  창=심방변+長

 

 

□ 조선처럼 문장가(文章家)를 높였던 나라도 찾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양관’(兩館: 예문관과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을 최고로 쳤다.

대제학을 ‘글의 저울’이란 뜻에서 ‘문형(文衡)’, 또는 대학자란 뜻에서 ‘대학(大學)’이라 부른 것은 문장뿐만 아니라

학문도 제일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제학은 임금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고, 반드시 일세(一世) 제일의 학자를 가려야 했다.

 “정승 셋이 대제학 하나만 못하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이는 정치력이나 처세술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연안 이씨의 이정귀(李廷龜) 이명한(李明漢) 이일상(李一相), 광산 김씨의 김만기(金萬基) 김진규(金鎭圭) 김양택(金陽澤)의

 ‘3대(代) 대제학’을 높이 쳤던 것은 이 때문이다.


미문(美文)보다 한 차원 높은 글이 명문(名文)이다.

미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명문은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송(宋)의 구양수(歐陽脩)가 ‘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에서 “명시는 대개 궁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해진 뒤에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라고 한 것은

무언가 갈구하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빛을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조선중기의 문장가 임제(林悌?1549~1587)가 그런 인물이다.

“사해제국(四海諸國)이 다 황제라 일컫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어찌 죽음이 애석하겠느냐”는 유언처럼 배짱이 맞지 않는 나라에서 그는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잠곡(潛谷) 김육(金堉)의 시에 “자장(子長)은 먼 유람에 명문장가가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자장은 사마천(司馬遷)을 뜻한다.

사마천이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空桐)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탁록(?鹿)까지 갔으며,

동쪽으로는 바다[발해]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장강(長江)과 회수(淮水)를 건넜다”라고 적은 것처럼 수많은 답사로 명문장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명문장이 반드시 책상 위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논술에 매달려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 불문(佛門)에서 1년에 두 번 산사에 들어가 참선하는 것을 안거(安居)라고 한다.
음력 10월 16일부터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
음력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라 하는데,
그 기간이 90일이므로 구순(九旬) 안거라고도 한다. 안거는 원래 하안거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婆羅門敎)에서 시작된 것을 불교에서 받아들였다.
하안거는 비가 내리는 우계(雨季) 때 시행되므로 '우안거(雨安居)'라고도 불리고
여름이므로 결하(結夏), 하좌(夏坐), 좌하(坐夏) 등으로도 불린다.
이 기간에는 곤충이나 개미 등이 많이 돌아다니고 초목들이 성장하는 때이므로
탁발에 나섰다가 혹 곤충이나 초목들을 밟아 그 성장을 저해할 것을 우려한 것도 하안거의 한 유래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 2권의 '유행경(遊行經)'이나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39권에 불타(佛陀)가 제자들과 안거 수행한 행적이 기재되어 있다.
'승가라찰소집경(僧伽羅刹所集經)' 하권에는 불타가 45년간 안거 수행한 지방이 열거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에는 흉노(匈奴)나 선비족(鮮卑族) 같은 북방 민족들이 명멸하는
16국시대(서기 304~ 439)에 인도에서 들어왔는데
'십송률(十誦律)'이나 '광률(廣律)'에 안거 수행방법이 자세히 실려 있다 한다.
당나라 때 마조(馬祖)선사가 창건한 총림율사(叢林律寺)가 안거수행을 중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안거는 시작할 때는 '결동(結冬)'이라고 부르고 끝나는 것을 '해동(解冬)'이라고 부른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구(李廷龜)의 '월사선생집(月沙先生集)'에는 송운(松雲)선사, 즉 임란 때의 의병장 유정(惟政)대사를 기리며,
"이별한 후에는 지팡이 짚고 읊조리며 어디로 가셨는가/
금강산 중향봉에서 동안거 중이겠지
(別後吟 向何處/結冬應在衆香峯)"라는 시가 있다.
이런 참선의 전통이, 많은 현실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를 지탱하는 정신의 뿌리이다.
불황에 신음하는 사람들도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張旭張芝不復生
龍蛇起陸也誰驚
閒將如意書空遍
一紙靑天字字明

 

장욱 장지 한번 가고 다시 나지 않으니
용사비등 필세라도 그 누가 놀랄것가.
때로 如意 가지고서 허공에다 쓰노라면
푸른 하늘 한 종이에 글자마다 또렷하다.


- 柳夢寅/書空 (허공에 박힌 글자 )


술 취해 흥이 거나하면 숫제 제 머리채를 풀어 그 끝에 먹을 듬뿍 묻혀 글씨를 썼다던 狂草의 대가 장욱.
연못 가에서 글씨 연습하다가 온 못물을 먹물로 만들어 버렸다던 장지.
이제 그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내 비록 그들에 필적할 붓을 지녔다고 속으로 은근히 자부해 보지만,
내 글씨를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장욱이나 장지가 다시 태어난게라고 감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늘 지니고 다니는 如意를 붓삼아 이따금씩 허공에다 대고 글씨 연습을 마음껏 해보곤 한다.
푸른 하늘은 한 장의 화선지이다.
그 위로 썩썩 거침없는 붓질이 지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용이 춤을 추고 뱀이 고개를 바짝 추켜 들 듯이 꿈틀대며 용틀임하는 글씨가
허공 위에 한 자 한 자 또렷히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如意는 신선이나 도사들이 책상 옆에 두고 늘상 매만지는 3,40cm 가량의 장식용의 막대이다.
끝이 고사리처럼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 가려운 등을 긁는데 쓰기도 한다.
내가 허공 위에 쓴 저 글씨를 알아 볼 사람이 누구랴?
허공 위에 쓴 글씨는 아무도 모르라고 쓴 글씨이다.
종이 위에 써도 알아볼 눈이 없거늘 허공 위에 쓴 글씨를 알아볼 사람이 누구겠는가?
아마도 유몽인은 이 시를 쓸 때 마음이 조금 답답했던 모양이다.
내 품은 뜻이 이렇게 큰데, 펼쳐 보여 본댔자 아무도 알아주질 않는다.
그렇지만 푸른 하늘은 내 마음을 알겠지.
그가 저 푸른 하늘에 대고 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月沙 李廷龜가 그를 대제학에 추천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가 월사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님을 믿을 건가 못믿을 손 님이시라
미더운 시절도 못 믿을 줄 알았으라
믿기야 어렵건마는 아니 믿고 어이리
- 이정귀(李廷龜) -

알았으라 : 알았도다

 

이몸이 죽어져서 접동새 넋이 되어
이화 핀 가지 속잎에 싸였다가
밤중만 살아서 우리님의 귀에 들리리라

접동새 : 소쩍새

 

내 가슴 헤친 피로 님의 양자 그려내어
고당소벽에 걸어 두고 보고 지고
뉘라서 이별을 삼겨 사람죽게 하는고
- 신흠(申欽) -

헤친 : 파헤친
高堂素壁고당소벽 : 높은집 깨끗한 벽
삼겨 : 생기게 하여

 

님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믿었더니
날 사랑하던 정을 뉘에게 옮기신고
처음에 ?시던 것이면 이대도록 설으랴
- 송시열(宋時烈)-

헤오시매 : 사랑하시오매
?시던 : 미워하시던

 

금로에 향진하고 루성이 잔하도록
어디 가 있어 뉘 사랑 바치다가
월영이 상란간 캐야 맥받으러 왔나니
- 김상용(金尙容)-

金爐 : 금으로 만든 향로
香盡하고 : 향이 다 타고
漏聲이 殘하도록 : 물시계 물이 다하도록
月影이 上蘭干 : 달빛이 난간에 올라 옴
캐야 : 하게 되어서야
맥 받으러 : 남의 속 마음을 헤아려 보다

 

금로에 향내 걷히고 루성이 흐르는데
차가와라 솔솔 부는 바람
사람을 들삭이는 잠을 잃은 봄밤의 꽃 그림자
달빛타고 오르네
아! 아! 난간으로......!
- 송나라 학자 왕안석 -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라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알으실까
아무나 내 형용 그려다가 님의 손대 드리고자
- 강백년(姜栢年) -

님의 손대 : 님에게

 

어제 검던 머리 설마 오늘 다 셀소냐
경이쇠용이 이 어인 늙으리오
님께서 뉜다 하셔든 내 긔로라 하리라

鏡裏衰容경이쇠용 : 거울속에 비친 쇠한 얼굴
뉜다 : 누군가

 

쓴 나물 데은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어
초옥 좁은 줄이 그 더욱 내 분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탓으로 시름겨워 하노라

쓴 나물 데은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어 : 옛날의 榮華로움
다만당 님 : 임금을 가리킴

 

간밤에 우던 여흘 슬피 울어 지내여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물이 거슬러 흐르고자 나도 울어 예리라
- 원호(元昊) -

 

이몸이 쓸데없어 세상이 버리오매
서호 옛집을 다시 쓸고 누웠으니
일신이 한가할지나 님 못뵈워 하노라
- 西湖主人 李摠 -

西湖 : 중국의 절승지로 시인 묵객들에 널리 膾炙됨,
여기서는 경기의 楊花渡(양화도)를 서호로 가상한 것이다

이총의 字는 百源, 연산군 4년 양화도에 귀양 갔다가 賜死당했다

 

오냐 말아니따나 싫거니 아니말랴
하늘아래 너뿐이면 아마 내야 하려니와
하늘이 다 삼켰으니 날 괼 인들 없으랴
- 문 향 (文香) -

말아니따나 : 말라고 하거나 따나
내야 하려니와 : 나다 하겠지만
삼켰으니 : 태어나게 하였으니
괼 인들 : 사랑할 사람인들

 

내 양자 남만 못한 줄 나도 잠깐 알았건만
연지도 버려 있고 분때도 아니 미네
이렇고 괴실까 뜻은 전혀 아니 먹노라
- 정 철 (鄭澈) -

괴실까 뜻은 : 사랑할까 하는 생각은

 

바람불어 쓰러진 나무 비온다고 싹이 나며
님그려 든 병이 약먹다 하릴소냐
저 님아 널로 든 병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

하릴소냐 : 나을소냐 "하리다"는 "낫다"의 고어

 

보거든 슬뮈거나 못보거든 잊히거나
제 나지 말거나 내 저를 모르거나
차라리 내 먼저 죽어서 그리게 하리라
- 고 경 명 -

슬뮈거나 : 싫어하고 미워 하거나

 

옛적에 이러하면 이 형용이 나았을까
수심이 실이 되어 굽이굽이 맺혀 있어
아무리 풀려하되 끝간데를 몰라라

 

한숨아 세한숨아 네 어느 틈으로 들어 오냐
고무래장지 세살장지 가로다지 여다지에
암돌쩌귀 수돌쩌귀 배목걸새 뚝닥박고
용거북 자물쇠로 수기수기 채었는데
병풍이라 덜컥 접은 족자라 대대글 만다
네 어느틈으로 들어오냐
어인지 너 온날 밤이면 잠못들어 하노라

고무래장지 : 위로 열고 막대기로 받치는 들창
배목 : 걸쇠를 거는 못

 

창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을 내고자
고모자이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쩌귀 수돌쩌귀
뵈목 걸쇠 크나큰 장도리로 내 가슴에 창 내고자
이따금 하 답답할제면 여닫어 볼까 하노라

 

대천 바다 한 가운데 중침 세침 빠지거다
여남은 사공놈이 끝 무딘 사엇대를 끝마다 둘러 메어
일시에 소리치고 귀 꿰어 내달말이 있오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 하소서

中針細針 : 바늘

 

천한코 설심한 날에 님찾으러 천상으로 갈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뷔님뷔 님뷔곰뷔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번도 쉬지 말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은 아니 쓰리되
념의 온 가슴이 산득산득하여라

天寒, 雪深,
념의 온 가슴 : 옷깃을 여민 가슴

 

저 건너 흰옷입은 사람 잔밉고도 얄미워라
작은 돌다리 건너 큰 돌다리 넘어
밥뛰어 간다 가로 뛰어 가는고
애고 애고 내 서방 삼고라자
진실로 내 서방 못될진대 벗의 님이나 되고라자

밥뛰어 : 바삐 뛰어

 

만경창파지수에 둥둥 떳는 부락금이 게오리들아
비슬 금성 증경이 동당 강성 너시 두루미들아
너 떳는 물 깊이를 알고 둥 떳느냐
우리도 남의 님 걸어두고 깊이를 몰라 하노라

증경이 : 원앙새

 

양덕 맹산 철산 가산 나린 물이
부벽루로 감돌아 흐르고
마흐라기 공이소 두미 월계 나린 물은
제천정으로 돌아 든다
님그려 우는 눈물은 벼갯모으로 돌아 든다

 
 

 

 

 

 

 

 

 

 

 

 

 

 


□북한산 노적봉
노적봉은 만경봉 서쪽에 있다. 우뚝 솟아있고 충만하여 그 형상이 마치 노적가리와 같기 때문에, 그 무엇을 가득 쌓아놓은 형상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월사(月沙) 이정귀의 ‘유삼각산기’
 

노적봉의 최고 정상에 올라가 바라보니, 서남쪽 큰 바다는 멀리 중국의 청주(靑州)?제주(齊州)에서 시작하고, 뜬 구름 흐르고 해 떨어질 때 은하계(銀河界)가 망망(茫茫)하다. 눈의 힘은 다함이 있어 더 이상 먼 곳을 볼 수 없으나 바라보이는 형세는 끝이 없다. 기록할 만한 것은 수락산(水落山)?아차산( 嵯山)?관악산(冠岳山)?청계산(淸溪山)?천마산(天磨山)?송악산(松嶽山)?성거산(聖居山)인데 여러 산이 첩첩이 쌓인 것이 마치 언덕과 개밋둑 같다.
월계(月溪)의 골짜기는 탁 터지면서 무섭게 밀려가는 큰 물결이 서쪽으로 주입되고 있다. 한강 일대는 마치 얼음처럼 흰 피륙을 끌어다 놓은 것 같다.
그 물굽이는 돌아서 굴곡을 이루며 왕도(王都)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섬들이 구름 사이에 은은하게 보인다. 도성의 1백만 호에 이르는 집들은 가까이 다다른 듯하여도 다 볼 수 없고, 단지 발아래 밥 짓는 연기가 하나의 산 그림을 단장하고 있음을 볼 뿐이다. 구름 사이로 한 청산(靑山)이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종남산(終南山 : 서울의 남산)임을 알겠구나.

 

●이정귀(李廷龜) : 1564~1635. 조선 중기 한문 4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또는 보만당(保晩堂)?치암(癡菴)?추애(秋崖)?습정(習靜)이고, 대제학?우의정?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문인 최유해(崔有海)가 편간한 월사집(月沙集) 68권 22책이 전한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시 ‘노적봉’

걸어서 중흥동(重興洞)에 들어가다
노적봉(露積峯)을 돌아보았네.
기이한 바위는 다 하우(夏禹)시대의 작품 같고
기이한 풀들은 신농씨의 본초(本草)에도 빠진 것 같네.


 


●하우 : 고대 중국 하나라 왕조의 시조인 우임금.
신농씨 :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 후대에 의약 분야의 신으로 추앙 받는다.

 

실학자 유형원의
‘북한산성과 노적봉’


북한산성은 삼각산 중흥동(重興洞)에 있다. 절정에 걸터앉고 둘러 내려와 계곡 어귀의 석문(石門 : 岩門)에 이르러 끝났다. 주위가 9,400자(尺)이니, 곧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이다. 세속에서 일컫기를 중흥동 석성(重興洞石城)이라고도 한다. 성 가운데 산봉이 있는데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마치 노적가리와 같아서 노적봉(露積峯)이라 한다.

●이곳은 지금의 북한산성 내부에 있는 중성문(中城門) 안쪽에 자리한 노적사(露積寺), 중흥사(重興寺), 태고사(太古寺) 일대로 현 고양시 북한동 지역이다.

 
 
 

 
 
노적봉,
청정법신불의 신령함이여
노적봉,
청정법신불의 원만함이여
대우주의 무한대생명은
영원하여라.

 


 

노적봉과 대웅전

노적봉의 ‘노적(露積)’이라 함은

 

북한산(삼각산)엔 석가봉, 문수봉, 보현봉, 나한봉, 일출봉, 월출봉, 원효봉, 의상봉… 그리고 노적봉이 있다.
‘노적(露積)’이라 함은 ‘감로(甘露 : 부처님의 생명, 부처님의 빛…)’가 가득하다는 뜻이니 노적봉은 감로가 가득하고, 부처님의 생명, 부처님의 빛이 가득한 곳이다.

 

노적봉과 관련된 전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들은 북한산의 북한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하던 중 산중턱에 이상한 봉우리(노적봉)를 발견하고 주막의 노파(덕수할머니)에게 물은즉, 그것은 수만의 병력이 먹을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라고 말하자 군대의 강세를 짐작하고 전열을 크게 상실하여 퇴각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8?15 광복당시에는 노적봉 정상 좌측에 있던 바위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하며, 우측의 바위가 떨어질 때는 조국통일이 된다고 하는 내용이 나이 많으신 이 지역의 어른들로부터 구전되고 있다.
 
                                                                                                                         
 

 

 
                      삼보전과 노적봉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에서도, 법주사 미륵부처님에서도
언제 어디에서도 북두칠성은 항상 빛나고 있었습니다.
노적사의 노적봉에서도 북두칠성은 항상 빛나고 있었습니다.

북두칠성과 노적봉(자연?생명)
북두칠성과 노적봉과 나(참나?眞我)

북한산 노적봉 노적사에서 나는 부처님과 북두칠성과 노적봉과 하나되었습니다.
천지생명과 하나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생명인 참나는
대우주의 대생명인 부처님과 북두칠성과 노적봉과 하나되었습니다.

참나는 진리를 깨달은 대자유자재의 생명이요
불사불멸 영원불멸의 생명이요
영원히 아름답고 찬연히 빛나는 부처님의 완전한 생명입니다.


 
□학질을 쫓아보내는 글 
.......

대저 나무가 썩으면 날짐승이 모여들고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친 뒤에 외부의 적이 와서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해친 뒤에 외부의 邪氣가 와서 해치는 법이라오.

名利의 굴레는 사람을 패망의 길로 몰아넣으며,
鷄肋과 같은 벼슬에 연연하면 그 화는 촛불에 날아드는 부나비와 같다오.
그대가 그 길로 가려는 것을 내가 만류하여
그대의 생명을 보전해 주었으니,
무릇 내가 그대를 병들게 한 것은 알고 보면 그대를 玉成해 주는 것이라오.

월사 이정귀, <학질을 쫓아보내는 글> 중에서


무엇이 잘 안되면, 곤란을 겪게 되면
늘 남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운수를 탓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손해와 고통의 원인은
결국 자신이 먼저 만들었으니
무엇을 탓하겠는가.
지금 잠시 걸림돌이 생겨 불편하거나
뭔가 손해를 본 것같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쩌면 더 큰 화를 피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나 스스로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사악한 기운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나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월사는 당파로 인해 시기하는 사람들, 헐뜯는 사람들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통을 당했다.
친구들은 유배를 가거나 사사를 당했고
월사 자신도 몇번이나 죽음의 위험에 빠졌다.
그러나 대명외교에 있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매번 그 위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해꼬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헐뜯음에 고통당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줄 테니까.

 

□ 손수 반찬을 마련한 정승부인


조선 시대 인조 때에 이정귀(1594~1635)라는 정승이 있었습니다. 이정귀는 육조의 판서를 모두 지내고 마침내는 대제학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판서 권극지(1538~2592)의 딸로서 마음이 어질고 여자다웠습니다.

권씨는 영의정 다음으로 높은 벼슬인 좌의정의 부인이었지만 조금도 교만한 빛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숭부숭한 옷을 입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 무렵, 정명 공주가 며느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만조의 고관 부인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게 하였습니다. 모처럼만에 화려한 잔치라 아낙네들은 저마다 곱게 단장을 하고, 금은 노리개에 옥비녀, 비취비녀를 꽃은 채 속속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비단옷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서로들 옷치레를 흘끗거리며 뽐내는가 하면, 한편 부러워하기도 하며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뒤늦게 가마 한 채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베치마에 갈포 적삼을 입은 늙수그레한 부인이 그 가마에서 내리자, 공주가 황급히 버선발로 뛰어나가 마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런데 여기가 어디라고 저런 차림으로 들어오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철딱서니 없는 아낙네들은 몰래 코웃음을 치며 입귀를 씰룩거렸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그 부인을 모셔다가 한가운데의 주빈 자리에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아낙네들은 모두 의아해하였습니다.
'도대체 누구일까요?'
점심상이 나오고 한참들 흥이 겨울 때였습니다.
"저는 먼저 좀 물러가야겠습니다."
그 부인이 일어섰습니다.
"아직 해도 많이 남았는데 왜 이리 총총히 가시려 합니까?"
공주는 부인의 손을 붙잡으며 못내 아쉬워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대감이 약방의 도제조 감독의 일로 대궐에 가셨고, 큰 아이가 이조 참판으로 출근하였으며 작은 아이는 승지로 숙직이어서 제가 집에 가야만 반찬을 마련하여 숙직 상을 보내겠으므로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그제야 한자리에 앉았던 부인네들이 그가 바로 좌의정 월사 대감의 부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다르다 했더니 역시……."
부인네들은 한편 놀라고, 한편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처지에 있는 분이 그렇게 검소할 뿐 아니라, 집안일을 손수 보살피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권씨 부인을 흠모하며 높이 칭송하였습니다.
동인?서인의 다툼이 극심하여 나라의 형편이 말이 아니었던 그 당시에도 이정귀는 그 부인의 훌륭한 인품 덕분에 어려운 나라 살림을 잘 꾸려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어머니의 할 일은 많고 또한 어려웠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이야기입니다.
 
 
 
 시평보유,  詩評補遺

평생성벽사혜강
平生性癖似暳康
평생의 성벽이 혜강  같아서

 

라조인상육십상
懶弔人喪六十霜
육십  평생 조상 위문 게을렀었네

 

증미식공하사곡
曾未識公何事哭
공을 전혀  모르는데 어찌 곡하나.

 

난방당일수강상
亂邦當日守綱常
어지럽던 그 날에 강상을 지켜 설세

 

註. 오억령(吳億齡)은 광해 계축년  인목대비 
   폐비의 논의가 있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그 부당함을 논단 하였던 기개 있는 인물이었다
   뒤에 물러 나서도, 이따금 천정을 우러르며,
    어찌 어미 없는 나라에 처하여 구차히
   살겠는가,  하는 탄식을 발하였다고 "
   해동명신록"은 전한다. 당초 그의 무덤은 원주에
   있었는데,  무덤을 쓴 후 두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자
   묘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백천 선영으로 친장하였다.
   이때는 광해의 난정이 인조반정으로  종식되었던 때라
   오억령의 천장에는  그를 사모하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는 월사月沙  이정귀 (李廷龜)가 있었는데. 때마침 
   살아생전 망자와는 일면식도 없던 동악東岳 이안눌이 문상을 왔다
  상주가 이정귀에게 가서  "선인께서는 동악공과는 평소 서로  알지
   못하셨는데도  조문하여 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동악공은 당대의
   거수巨袖이시니 만사로 황천길을 빛내고 싶사오니 감히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月沙가 동악에게 이 뜻을 전하고 운을     불렀다. 위  시는
   그때 월사가 부른 운에 따라  동악이 지었다는 詩이다
   평소에 아는 이의 문상조차 게으르던 그가  왜 평생 면식도 없던 이를
    조문 왔던가, 폭군의 서슬에 누구도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강상綱常으로  제 자리를 굳게 지켰던 그 정신을 사모해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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