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향해서 끝없이 달린다. 이거다 잡으려하면 멀어지고 또 다가가기를 반복한다. 안간힘을 쓰며 다가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꼼짝도 할 수 없이 무거운 몸뚱이의 허우적거림에 스스로 놀라 눈을 번쩍 뜬다.
아! 아침이다. 오싹하게 느껴지는 한기에 뒷머리에 손을 넣어본다. 식은 땀인지 서늘한 축축함이 묻어난다. 기운이 빠진다. 무엇 때문에 밤새 이토록 안간힘을 쓴 것일까?
3월 19일 토요일 아침 7시 18분이다. 강화 나들길 3코스(능묘가는 길)걷기에 나서는 날인데... 평소의 습관대로 움직이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데 최소한의 짐만 챙겨야지 하며 서둘러 이것저것 챙겨본다. 마음만 급한 탓인지 허둥지둥 서두르는 손끝이 떨린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 동구청에 도착하고 모두가 기다리는 미니버스에 오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 가득한데 인사 나눌 겨를도 없이 착석하니 버스가 출발한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의 섬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손꼽힌다. 오늘 강화 나들길 3코스를 전등사에서부터 시작해 걷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동구청 출발 후 1시간 가량을 달려 전등사 동문 주차장에 도착한다. 밀짚모자를 선두로 소나무, 솔내음, 바오로, 스텔라, 무늬만, 송학사, 백송, 단비, 바다, D, 비갠뒤, 느림보, 별라, 천사친구, 무지개, 달팽이, 바다처럼, 엔디, 봄사랑, 처음처럼까지 21명의 올레님들이 전등사로 향한다.
오랜만에 길을 나선 밀짚모자의 목소리가 정겹다. 새로운 얼굴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란도란, 소곤소곤 길을 오르며 나누는 이야기소리가 새소리, 바람소리와 어우러져 자연의 소리로 하나 된다.
윤장대의 화려한 색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들어 1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한다. 동남아 불교 국가를 여행하다가 보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윤장대도 모두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글을 모르거나 바쁜 중생들에게 경전의 내용을 설법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한다. 글을 아는 여유 있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종교일 수 있겠는가.
전등사 경내로 오르는 길. 밀짚모자는 강화도와 전등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오랜만에 보는 밀짚모자다운 모습이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는 나이 지긋한 학생들의 자세는 더 진지하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자연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다 보면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 선현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배움이 가장 쉽고도 현명한 배움의 방법임을 올레님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진정한 배움이려면 그 배움을 통한 깨달음이 나눔과 베품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배움에 대한 욕구는 꿈의 크기만큼이나 여전한데 과연 배운 것에 대한 나눔과 베품은 얼마나 드러내고 있는지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성당에서는 다음 주에 있을 예수 부활 대축일 맞이 준비에 분주한 이때에, 사찰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모두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며 그 분을 닮고자하는 마음가짐을 함께 나누는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향로전을 지나 정족사고로 향한다. 사고란 고려 및 조선시대에 나라의 역사 기록과 중요한 서적 및 문서를 보관한 전각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춘추관과 충청도 충주,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설치했다. 이것으로 춘추관 외에 이들 충주·성주·전주의 사고를 3대 사고라 해서 여기에 역대 실록을 분산 보관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춘추관과 충주 및 성주의 사고가 소실된 반면 전주의 사고만 유일하게 보존되어 그곳의 실록 등을 한때 내장산으로 옮겼다.
1606년(선조 39), 명종까지의 실록이 여러 벌 복원되자 묘향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전주 사고본을 옮겼다. 또한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에도 사고를 마련하여 새로 간행한 실록을 보관하였다. 1628년(인조 6), 조정에서는 강화 마니산에 새로 사고를 설치하여 묘향산 사고에 보관했던 전주본을 옮겼다가, 1660년(현종 1) 강화 정족산에 사고를 마련하여 마니산 사고에 있던 전주본을 이곳에 비장하였다.
본래의 정족사고는 1931년 무렵 주춧돌과 계단석만 남긴 채 없어졌다. 다만 사고에 걸려 있던 ‘장사각’과 ‘선원보각’이라는 현판만 전등사에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다. 폐허가 되었던 장사각 건물은 1999년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출처-전등사)
정족사고 앞마당에 오밀조밀 쌓여진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이런 돌무더기는 큰 산이나 사찰은 물론 동네 야산의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소원성취, 기도, 바램, 희망 등등 이런 말들이 떠오르지만 나에겐 ‘꿈’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한 바램으로 돌 하나를 얹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젠가 그 꿈을 이루어간다고 했던가. 아직도 꿈을 꾸는 나이, 꿈을 그리고 싶은 그래서 꿈을 이루고 싶은 나이, 꿈을 꾸는 데에 나이가 문제 될 수 없다. 꿈을 꾸는 나이는 청춘이다.
아직도 나는 꿈을 꾸고 있다. 현실에서 잘 해낼 자신이 없어 시작도 못해 보았던, 실패가 두려워 도전해 보지도 못했던 꿈이다. 나보다 가족을 우선해 접었던 꿈, 크기조차 줄지 않고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꿈이다. 밤새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던가.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도 감사하다.
커다란 바위도 만나 넘어가거나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길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고 헤메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길에는 사랑과 위로가 있고 때로는 고마운 스승이 나타나 환한 빛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오늘 걷는 이 길에서 꿈을 향해 가는 길을 마주하게 된다. 들길을 가다보면 마을이고, 산길을 걷다보면 꽃무더기를 만나 환한 웃음 한 번 지어보고 지나간다. 산길이 끝나는가 싶으면 한 채, 두 채 집들이 나타나 먼 길을 가야하는 어설픈 나그네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성공회 온수리성당은 파란 하늘 아래 한옥의 멋스러움과 소나무의 푸르름이 더해져 더욱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지붕 끝 십자가를 향해 서서 잠시 사랑과 꿈을 담은 기도를 올린다.
길정저수지와 이규보 묘로 향하는 갈림길에 선다. 밋밋한 뚝길을 걸어야하는 길정저수지 방향을 뒤로 하고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이규보 묘로 방향을 정한다.
이규보는 고려시대 시인이자 문장가(1168∼1241)이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고려 1191년(명종 19)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당시 최고 집권자인 최충헌에게 기용된 문인의 한 사람으로 뒤에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특히 민족의 영웅시인 ≪동명왕편≫을 지어 고구려인의 큰 포부와 활동을 읊어 민족의식을 선양하였다. 몽골군의 침입으로 인한 국난극복의 일환으로 ≪팔만대장경≫ 조판의 국가적 사업이 시작될 때에 불교 호국의 신앙과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을 지었다. 문집으로는 ≪동국이상국집≫이 있다. 이규보 묘역은 196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 재실을 복원하였다. (출처-이규보묘)
이제 능묘 가는 길로 향한다. 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곳에 묻힌 고려 왕족들의 무덤이 3기가 있다. 곤릉, 석릉, 가릉이다. 열지어선 나무들이 파랗다. 숲 길이 예뻐서 능묘가는 길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봄볕을 벗삼아 곤릉으로 접어든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 했던가. 시집살이로 고된 삶을 살았던 이 땅의 며느리들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하고, 나는 봄볕을 맘껏 즐기기로 한다. 넘칠 때 즐길 줄 알고 부족할 때 고마워할 줄 아는 지혜를 자연을 통해 배운다. 짧은 여름철 반짝 햇빛이 반가워 공원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북부 러시아의 여인들처럼.
석릉은 진강산에 자리하고 있다. 석릉 앞 너른 단 위에서 진강산의 기운을 받으며 망중한도 즐겨본다. 파란 하늘을 보고,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숨소리도 듣는다. 꿈을 향해 길을 가는 나그네의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인천가톨릭대학교 뒷길을 지나 가릉을 향해 간다. 가릉은 강화나들길 3코스의 끝점이자, 4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고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가다보면 어느새 다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이다. 꿈길에는 끝이 없다. 나는 지금 다시 꿈을 향한 길에 나선다. 밤새 뒤척이고 허우적대더라도 또다시 나만의 꿈을 꿀 것이다.
역시 수많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ㅎㅎ 머릿속으로 쏙~쏙~들어오는 길위의 역사......복습까지 하도록 해주시구요. ㅎㅎ 함께 걸어서 기쁨이 배가되는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주제인 '꿈'도 계속 이어 가렵니다. 훌륭한 기록들 위에 잘 머물다 갑니다. ^^
처음처럼님! 늦었다고 구박해서 미안합니다 ㅠ ㅠ, 자작에서는 잘 먹었구요~ 물론 좋은 댓글도 감사하죠~ ^o^ 신기한 것은 어제 20일(일) KBS FM1 아침 "송영훈의 가정음악"에서 이규보의 시가 소개되더라구요~ 학교 때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잊고 있었는데... 강화도에 갔다 오자마자...
오랜만에 떴다 처음처럼님! 역시나 긴장하며 읽어야만 하는 처음처럼님의 후기, 인간이기에 죽을 때까지 꿈을 꾸며 살아야겠죠. '꿈을 이룬 사람은 떨어지는 별과 같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가 가끔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번쩍 정신 들게 하네요. 만족할 꿈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야망말고 이제 소망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처럼님 . 정말 단문의 위력이 더욱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해주는 것 맞네요. 차분차분 꼼꼼이 잘 읽고 마음으로 눈으로 강화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전 그날 긴 겨울잠에 있는 제천 청바지펜션을 찾아가 검은 비닐을 벗기고 땅을 뒤집고 냉이를 캐며 2박3일의 봄날을 지냈지요. 3주 토요일 만큼은 고양올레에 꼭 비워두고 싶은 맘인데 이번에 어긋났네요. 지성과 감성이 빛나는 글 감사합니다. ^^
처음처럼님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공부(?)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 기분전환하는 듯한 생각도 들고, 어쩜 이리도 지식이 풍부하실까 하는 감탄도 나오고... 지루하지 않게 읽으면서 강화도 전등사와 온수리 성당도 다시 보고,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느슨함이 부럽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두요~~~ 멋지지 말입니다 ^^
첫댓글 꿈 꿀 자유와 꿈 꿀 낭만과, 꿈으로 향하는 본성적 의지를 가진 자, 그대 이름은 꿈과 동행하는 인간...인생 삭막하고 건조하게 살면 안 될 일이지요. 소중한 꿈, 꾸며 삽시다...멋진 후기 잘 감상합니다.^^
역시 수많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ㅎㅎ
머릿속으로 쏙~쏙~들어오는 길위의 역사......복습까지 하도록 해주시구요. ㅎㅎ
함께 걸어서 기쁨이 배가되는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주제인 '꿈'도 계속 이어 가렵니다.
훌륭한 기록들 위에 잘 머물다 갑니다. ^^
처음처럼님의 지각이 강화도 둘레길 후기를 보니 용서가 됩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소나무님...ㅋㅋ
처음처럼님! 늦었다고 구박해서 미안합니다 ㅠ ㅠ, 자작에서는 잘 먹었구요~
물론 좋은 댓글도 감사하죠~ ^o^
신기한 것은 어제 20일(일) KBS FM1 아침 "송영훈의 가정음악"에서 이규보의 시가 소개되더라구요~
학교 때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잊고 있었는데... 강화도에 갔다 오자마자...
능묘 가는 길은 참으로 여유로운 걸음걸이였습니다~~
끝 없는 꿈들을 하나씩 안전하게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떴다 처음처럼님!
역시나 긴장하며 읽어야만 하는 처음처럼님의 후기, 인간이기에 죽을 때까지 꿈을 꾸며 살아야겠죠.
'꿈을 이룬 사람은 떨어지는 별과 같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가 가끔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번쩍 정신 들게 하네요.
만족할 꿈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야망말고 이제 소망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강화나들길은 참으로 평화로운 길이었어요^^. 늘 평화로운 세상이기를 꿈꾸며, 올레님들과 좋은 길 많이많이 걷기를 희망합니다. 처음처럼님이 오시면 언제나 후기가 풍성해서 참 좋아요~~^^
처음처럼님의 올레 후기가 글과 사진과 음악으로 또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한 여운이 있습니다.
잘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처음처럼님 . 정말 단문의 위력이 더욱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해주는 것 맞네요. 차분차분 꼼꼼이 잘 읽고 마음으로 눈으로 강화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전 그날 긴 겨울잠에 있는 제천 청바지펜션을 찾아가 검은 비닐을 벗기고 땅을 뒤집고 냉이를 캐며 2박3일의 봄날을 지냈지요. 3주 토요일 만큼은 고양올레에 꼭 비워두고 싶은 맘인데 이번에 어긋났네요. 지성과 감성이 빛나는 글 감사합니다. ^^
처음처럼님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공부(?)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 기분전환하는 듯한 생각도 들고, 어쩜 이리도 지식이 풍부하실까 하는 감탄도 나오고... 지루하지 않게 읽으면서 강화도 전등사와 온수리 성당도 다시 보고,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느슨함이 부럽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두요~~~ 멋지지 말입니다 ^^
와,,,멋진 봄소풍입니다.
처음처럼님의 글 속에 담긴 마음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까요?